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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찌는 더위가 계속이다. 어느 지역은 장맛비로 힘들고, 또 어떤 곳은 무더위로 인해 힘든 날들이다. 비가 온 뒤 기온은 더 올라가고, 이렇게 더운 날에는 시원한 계곡에 발 담그고 시원한 수박 한 통 깨놓고 가족과 함께 나눠먹는 것이 아마도 최고가 아닐까 싶다. 몇 번 내린 비는 가뭄으로 마른 벼들의 목마름을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비가 내리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여름이라 입맛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쉬는 날이라 고향집에 갔다.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더했다. 숨이 턱턱 막힐 듯한 날씨인데 어머니는 이런 무더운 날에도 논에서 무얼 하시는지 집 전화는 받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논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오리울타리 옆 그늘진 곳에 앉아 계셨다. 까맣게 그을린 모습에 더 작아진 듯한 체구, 논두렁 위로 걸어가는 나의 마음이 아련해졌다. 세월은 참으로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을 자꾸만 변하게 하는지, 어릴 적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 수는 없는 건지 지나가는 세월을 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 어머니는 웃고 계셨다. 반가움의 미소가 멀리서도 보였다. 더운데 일하러 나온 것을 두고 좀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집에서 혼자 있으면 또 뭐하나, 이렇게 나와 오리도 돌보고 논에 물도 대고, 밭에서 하나 둘씩 영글어 가는 고추며 오이, 이런 채소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오히려 더 건강에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맛이 없어 삶은 감자 몇 개와 수박 몇 조각을 먹었다며, 남은 수박을 내 놓는 어머니를 보고 아득히 먼 예전 어릴 적, 수박화채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새삼 스쳐지나갔다.

 

무더위가 기성을 부리는 낮이면 소를 몰고 산으로 들로 소 풀 먹이러 다니던 친구들을 따라 다니며 동네 옆 하천에서 친구들과 함께 멱 감던 여름방학, 그렇게 놀다가 으스름 해질 녘엔 둑 위에 옹기종기 모여 방학숙제 하느라 잔디 씨 편지봉투 한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오던 여름방학, 저녁이면 어머니는 마당 한 귀퉁이에서 가마솥에 국수 삶아 주시던 기억이 사뭇 떠오른다.

 

아버지는 짚을 모아 마당 한가운데 모깃불을 피워 주셨고, 저녁을 먹고 난 뒤 평상 위에는 지난 장날 사온, 하루 종일 장독대 옆 우물 안에서 시원해져 있을 수박을 꺼내 어머니는 언니, 오빠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들 평상 위에 모여 앉아 있을 때 어머니는 수박을 반으로 잘라 커다란 양푼이에 수박 안을 싹싹 긁어내셨다. 발갛게 익은 부분들을 설탕을 뿌려 달달한 화채로 만들어 놓고 어머니는 수박의 겉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흰 부분까지 긁어내고는 따로 바가지에다 넣어 두셨다. 맛있게 만들어진 화채를 두 쪽으로 나뉜 수박 통에다 담아 오빠들에게 하나씩 건네주었고, 바가지에 담긴 허연 화채에 설탕과 물이 반반 섞인 화채는 언니와 내게 주셨다.

 

"나는 이거 안묵는다. 오빠야들은 수박통에다 뻘건 수박주고, 나는 이기 뭣꼬. 안묵는다."

"야가 와이라노. 이거도 설탕 뿌리가 달다. 마아 묵어래이."

"실타. 와아 오빠만 그거 주고 우리는 이거고. 실타."

"니는 담에 수박 사믄 줄게. 마아 오늘은 이거 묵어보래. 으응"

 

방 안에서 말없이 화채 한 그릇을 비우던 아버지도 똑같이 안 나눠준다고 어머니를 나무랐지만 이미 오빠들은 수박 통 하나씩을 들었다. 한참이나 어머니와 내가 실랑이를 하는 동안 큰오빠는 들고 있던 수박 통을 내게 건네주려 했지만 어머니는 극구 말리셨다.

 

"어무이, 이거 순희 주이소. 난 아무데나 묵어도 괜찮심더. 자아. 니 묵거라."

"마아, 니 묵거래이. 담에 사믄 순희 줄꺼니께 마아 오늘은 니가 그냥 묵어라이."

 

그래도 오빠가 양보하려는데 약간은 미안해졌던 다음에는 꼭 수박 통에다 언니와 내게 화채를 만들어주겠다는 어머니의 약속을 받아내고야 바가지에 담긴 화채를 먹었던 그 기억이 수박을 먹을 때마다 나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늘 떠오른다. 그때는 그냥 오빠들과 언니와 나를 차별한다고만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아들과 딸 차별이 심하다는 생각만 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 상황이나 그런 사건들이 가끔은 있었던 어린 시절.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성차별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깊은 마음이 있었던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오빠들의 오랜 객지생활, 모처럼 방학이라 모였던 시간이었는데 어머니는 평소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을 그렇게 수박 통 하나씩 화채 가득 담아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질보다는 양이 우선일 수밖에 없었던 것, 온 가족이 다 나눠먹으려고 설탕과 물을 섞어 먹었는데 그냥 설탕물이었던 기억이 난다.

 

불현 듯 그때의 일을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있는 내 옆에 그때, 수박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긁어대던 젊은 엄마의 얼굴과 쭈글쭈글해진 주름 깊게 패인 까만 할머니의 엄마가 더 가까이 내 시야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이유는 왜일까.

 

더운 여름, 수박을 먹을 때마다 그때의 수박 통에 담긴 수박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 뒤로 어머니는 장날 묵직한 수박 한 통을 사 오셔서 여름밤 평상 위에 걸터앉은 언니와 내게 수박 통에다 벌건 화채를 설탕도 듬뿍 뿌려내어 건네주셨던 그때, 농담처럼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어머니 앞에서 섭섭함을 토로해 본다.

 

약속을 지켰는지 아닌지 기억이 없는 어머니 앞에서 참 못난 딸이 되어보기도 하지만 옛일을 끄집어내어 쫑알쫑알 하는 주름살 자글자글한 막내딸이 그래도 예쁜지 어머니는 연신 웃으셨다. 그날 어머니와 둘이서 고향집에서 수박 통에다 화채를 만들어 먹으며 오붓한 여름 오후를 보내고 돌아왔다.

 

"엄마, 참으로 수박 통에다 설탕 뿌리고 물 섞어 묵는 화채 맛이 우째 이리 맛있는지.... 정말 맛있데이. 그라고 미안하데이."


태그:#수박, #화채, #수박통, #수박그릇,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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