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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7월 지역투어지인 대구경북과 울산을 만나 보세요. [편집자말]
지난해 1월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조례 제정에 대한 토론자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지난해 1월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조례 제정에 대한 토론자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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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공포 이후 진보교육감 당선 지역을 중심으로 조례 제정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교육감을 배출한 지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필자가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지역인 대구시교육청에서 대구교육권리헌장이라는 걸 만든다고 한다. 대구는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지 않고 왜 교육권리헌장을 만든다고 하는 걸까? 뭔가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들도 다들 어떤 이야기가 오고가는지 알지 못한다. 궁금했지만 알 방법이 뾰족히 없었고, 그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예상과 기대만을 가졌다.

공청회 알릴 수 있는 시간은 딱 3일

그러던 중 처음으로 지난달 27일 대구교육권리헌장에 대해 의견을 듣는 공청회가 열렸다. 어떤 내용이 논의될지 궁금해서 공청회를 기다리던 차였다. 하지만 학교로 공청회 안내 공문이 온건 6월 22일이었다. 심지어 주말이 끼여 있어서 안내나 홍보를 할 시간은 3일이 다였다.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공청회를 하기는 하는 건지 대구교육권리헌장이 과연 만들어지기는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구시교육청도 홍보가 안 돼 자발적 참여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초등은 학교당 교사 1명, 학부모 1명, 중·고등학교는 교사 1명, 학생 1명이라는 참가인원을 할당했다.

다행히 우리학교는 할당을 받은 학교라서 출장을 내고 공청회에 갈 수 있었지만, 나와 공청회에 함께 가기로 한 다른 교사는 그렇지 않았다. 그 학교는 할당을 받지 않은 학교였던 것이다. 대구시교육청에서 개최하는 대구교육권리헌장 공청회를 참석하고자 여비부지급출장신청(출장비를 받지 않는 출장신청)을 낸 그 교사는 "니가 뭐라고, 거길 왜 가냐?"라는 말을 다른 교사들에게 들어야 했다. 하긴 나도 국가인권위에서 하는 학교인권 강좌에 참가하는 걸 알게 된 교감선생님으로부터 "무서운 분이셨네"란 말을 들었으니까. 학생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교사는 무서운 사람이나 뭔가 대단한 사람이어야 하는가 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9월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시키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반대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9월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시키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반대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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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는 평일 4시에 열렸다.  내가 아는 청소년들은 공청회 시간을 듣고 화를 냈다. 수업 중인데 어떻게 갈 수 있느냐고 말이다.  어느 학교 어느 교사가 학생이 교육권리헌장 공청회 간다고 수업을 빼주겠냐고 말이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이고 심지어 시험기간인 학교도 많다고 했다. 그 청소년은 "그 시간이면 교사들도 못 가는 거 아니냐"고 "공청회에 대체 누가 오는 거냐"고 되묻기도 했다.

공청회가 끝나고 나서 받은 자료를 가지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보았다. 어떤 게 마음에 들고 어떤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학생들의 의견은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대구교육권리헌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이거라도 생기는 게 어디냐"라는 평가했다. 하루 종일 학교라는 곳에서 갇혀 있는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안전보장선이 생기는 거니까 그거 자체만으로도 너무 기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고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학생들의 가장 관심사면서 학교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복장 및 두발 자유화와 관련된 '제6절 복장, 두발 등 용모에 관한 권리'가 논란의 대상이었다. 16조는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었다. 학생들은 복장과 두발 등에 대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에 대해 정말 기뻐했다.

"두발 자유 제발!"이라고 절규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바로 뒤이은 조항이 '제17조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관한 학교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인 것을 보고 금방 실망의 탄식을 내뱉었다. 권리와 의무가 심하게 충돌하는 모순된 조항을 보고 학생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면 결국 지금이랑 똑같이 학교가 단속하는 거잖아요. 뭐가 달라!", "바꿀 생각이 없는 거네, 뭐!"

모순된 조항, 권리헌장 맞어?

지난해 7월 7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발족식 및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7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발족식 및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최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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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구교육권리헌장은 모든 절에 권리 조항과 의무 조항을 동시에 같이 적고 있어서 더 옹색했는데 이런 식이다. [제5절 의사 표현의 자유]에서 "제13조 학생은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경우, 부당하거나 자의적인 간섭 또는 제한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권리조항을 넣고는 의무 조항 구색을 맞추기 위해 "제14조 학생은 타인의 의사를 편견 없이 경청하여야 한다"를 넣어 놓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사를 경청하는 건 도덕의 영역이다. 그렇게 교육을 할 순 있지만 법규적 성격을 가질 수 있는 헌장에 도덕을 강요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

필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준 학생도 있었는데 대구교육권리헌장에서는 학생의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제8절에서 명시하고 있지만, 교사의 의무 부분에서 학생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의사나 변호사는 자신이 직업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정보를 유출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잖아요. 교사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교사들은 학생들의 질병이나 성적이나 뭐 성정체성 같은 거 막 교무실에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별 생각 없이 막 물어보고.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런 정보보호가 법으로 정해지지 않고 빠진 건 진짜 이상해요."

그 말을 듣고 '아, 정말 이래서 당사자의 의견을 꼭 들어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학생의 편에서, 청소년의 편에서 생각해본다 하더라도 정말 당사자만이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익추구가 목적인 기업들도 회원약관을 바꿀 때 몇 달 전에 공지하고 의견수렴절차를 거치는데 심지어 민주주의와 인권을 바탕으로 해야 할 학교와 교육청이 정작 당사자들인 학생  의견을 듣지 않고, 누가 말할 수 있는 통로도 만들어 놓지 않고 그냥 그들만의 헌장을 만들어서 내놓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대구시교육청이 6개월의 걸쳐 내부 인사는 물론 진보적인 교육계 인사들까지 두루 참여시켜 대구교육권헌장을 만들었다는 설명을 과연 어떤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믿을지.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교육권리헌장은 학생들에게 '당신들을 위한 헌장이 있으니 더 많이 책임지고 더 잘해야 한다'라는 오히려 굴레가 될 거 같다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학생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면 학생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변화를 만들어야할텐데 두루뭉술한 권리와 세세한 의무사항들이 열거되어 있는 교육권리헌장이 그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는 한 가닥 희망도 없는 것 같아 자꾸만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만 들여다보게 된다.



태그:#지역투어, #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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