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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밤 불린 콩을 적당히 삶는다.
 하루 밤 불린 콩을 적당히 삶는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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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서자마자 콩 사왔냐는 질문부터 던지는 남편. 벌써 삼 일째다. 희귀 품목이나 엄청난 고가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 몇 천 원 하는 콩인데 더 이상 미뤘다간 신상에 해롭지 싶었다. 해서 오늘은 만사 제쳐놓고 우리 콩을 구하러 생협 마트로 뛰었다.

남편이 이리 애타게 찾는 콩은 콩국수와 콩물이 먹고 싶다는 표현이다.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남편에게 여름은 힘들고 괴로운 계절. 자연히 기가 빠지고 식욕이 떨어지는데 이럴 때 시원한 콩물 내지는 콩국수는 남편에게 힘을 솟구치게 하는 뽀빠이 시금치요, 아이들 말로 '울트라 캡숑 짱'인 셈이다.

작년엔 콩이 흉작이어서 콩 값도 비쌌다. 에게~요걸로 몇 그릇이나 나올까 싶을 정도로 작은 봉지 하나에 칠천 원. 그러나 콩 값 조금 아끼자고 수입 콩을 먹고 싶진 않았다.

사 온 콩을 덜어 하루 밤을 불린 다음 냄비에 안쳤다. 맛있는 콩물을 만드는데 제일 중요한 과정이 바로 이 과정. 덜 삶으면 비릿하고 너무 삶으면 메주 냄새가 나는지라 냄비 옆에 붙어 서서 적당히 삶아진 그 지점을 불을 켜고 찾아야 했다.

콩국수 만드는 여름날, 축제와 다름없었다

 잣과 호두를 함께 갈면 더 고소하고 영양가 있는 콩물 완성
 잣과 호두를 함께 갈면 더 고소하고 영양가 있는 콩물 완성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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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삶다 보니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시하여 고모, 삼촌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이 모여 살던 우리 집에 콩국수를 만드는 여름날은 축제와 다름없었다. 엄마는 커다란 가마솥에 콩을 삶고 할머니 고모들은 마루에서 칼국수를 미는데 그 양이 엄청나 한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밀가루는 우리 집에서 기른 호밀가루다. 호밀은 백밀에 비해 색깔이 누렇고 더 구수한 반면 야들야들한 백밀의 촉감과 달리 거친 느낌이 난 것 같다. 아무튼 한쪽에선 열심히 칼국수를 밀고 다른 쪽에선 다 삶은 콩을 맷돌에 가는 공정이 시작된다.

엄마와 함께 맷돌 손잡이(어처구니)를 같이 돌리는 장난은 내가 제일 하고 싶어 하던 놀이였다. 엄마와 고모가 아무리 비키라고 해도 악착같이 달려들어 양손을 잡고 뺑뺑 돌리다가 위아래 맷돌짝을 흔들어 놓거나 속도가 안 맞아 일만 더디게 해서 혼나던 기억. 어릴 적 추억이다.

다 갈은 콩은 바로 커다란 무명 자루에 넣는다. 오지자배기에 물을 붓고 콩이 든 무명 자루를 힘껏 주물러 콩물을 얼추 빼낸 뒤 자배기 위에 걸친 나무 삼발이 즉 쳇다리 위에 올려놓고 자루를 쥐어 짜 나머지 콩물을 쏙 빼놓으면 깔끔한 콩물 완성.

칼국수를 그릇에 담고 맑은 콩물을 부어 오이채 썬 것을 올려놓으면 정말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콩국수가 탄생한다. 반찬이라 봤자 시어 꼬부라진 열무김치나 얼가리김치, 대표적인 여름반찬 오이지가 전부지만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시원한 우물 물을 부어 만든 콩국은 요즘 얼음 띄워 내온 콩국의 시원함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에휴, 맷돌로 간 콩물을 아무리 그리워한들 무슨 소용인가. 믹서기로 후다닥 갈아 낸 콩물, 힘이 하나도 안 들어 좋긴 좋다만 걸쭉한 데다 열까지 받았으니 콩물의 질과 맛은 비교하고 자시고가 없다.

삼계탕 버금가는 여름 보양식 콩국수

 호두, 잣이 들어가 약간 발그레해진 콩물
 호두, 잣이 들어가 약간 발그레해진 콩물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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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인삼과 닭으로 끓인 삼계탕 버금가는 여름 보양식을 해주는데 콩물 하나는 섭섭하지. 나이 든 사람들에겐 견과류가 좋다는 소릴 들었는지 엄마 아빠 생각해 딸이 특별히 보내준 호두와 잣이 있다.

맨입에 호두와 잣을 먹는 게 익숙지 않아 영 줄어들질 않았는데 콩과 함께 갈면 영양 만점 콩물이 될 터. 세 가지를 섞어 콩물을 갈아냈더니 발그레하고 걸쭉한 콩물이 완전히 서양식 수프 찜 쪄 먹는다.

둘이 먹자고 칼국수까지 밀긴 그렇고. 소면 대신 면발이 더 쫄깃하고 구수한 중면을 삶았다. 도자기 냉면 그릇에 먹음직스럽게 국수를 담고 그 위에 텃밭에서 방금 따온 싱싱한 오이를 채 쳐 고명으로 곱게 올려놓았다.

이로써 남편이 그리 노래를 부르던 콩국수 완성. 김장김치와 부추 파김치 꺼내놓고 콩국수의 최상의 짝 오이지를 썰어 놓고 보니 밥상이 그득하다. 비록 맑고 담백한 옛날 그 콩국수는 아닐지라도 꿩 대신 닭으론 훌륭하다.

삼계탕 삼자는 안 꺼내는 대신 여름이면 줄기차게 콩물과 콩국수를 외치는 남편. 매일 조금씩 갈아 아침마다 두유처럼 주면 남편 건강에도 좋고, 마누라 점수 따기도 좋고. 일거양득이다. 조금 쉬었다 먹자고 손사래 칠 때까지 주구장창 해대야지. 우리 집 여름 보양식 콩물국수를.

 김치와 오이지, 여름 반찬
 김치와 오이지, 여름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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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국수 완성. 텃밭에서 딴 무농약 유기농 오이 고명과 함께
 콩국수 완성. 텃밭에서 딴 무농약 유기농 오이 고명과 함께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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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건강하게 - 나만의 보양식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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