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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에게  '반말'이고 '강압'적이며 '폭력'적인 경찰 수사는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친근(?)한 소재다.
▲ 영화 '공공의적'의 한장면 우리네에게 '반말'이고 '강압'적이며 '폭력'적인 경찰 수사는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친근(?)한 소재다.
ⓒ 공공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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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래 전 일이다. 새벽에 혼자 차를 몰다 일방통행로를 들어갔는데, 갑자기 앞에 있던 차가 잠시 정지한 후에 다시 급 악셀레이터를 밟으면서 내 차를 받았다. 직감적으로 '아, 일부러 했구나'라고 느꼈다. 이후에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건장한 체격에 제법 예쁜 그림도 오른팔, 왼팔에 새긴 청년들 여럿이 다가왔다. "이거 누구누구 형님 차 아니야?" 아..형님이라는 단어, 영화에서나 보던 단어였다.

나를 급가속해서 받았던 그 차량의 운전자는 웃으면서 전화통화를 하더니, 이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뒷목을 잡고 핸들 위로 쓰러졌다. '이거 진짜 고의구나' 싶었다.

차량밖을 나오니 그 청년들이 에워싼다. 그 사람들이 무슨말을 했고 어떤 행동들은 했는지는 영화에서들 많이 보셨으리라. 휴대폰을 빼앗으려 하기에, 대로변으로 나가 112로 신고를 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폭력배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나와서 위협을 한다"고 했다.

아마 별로 겁을 먹지 않는 성격(몇번 죽을뻔 했다 살아나서 그런가 보다)이라 그랬지, 아마 겁먹었으면 휴대폰도 빼앗기고 완전히 당할 수 밖에 없었을거다.

관할 경찰서인 00경찰서로 갔다. 교통사고 조사계라는 곳으로 갔는데, 담당 형사가 몇번을 강조한다. "일방통행 도로를 들어간 사람이 보통 잘못"이라고 한다. "일방통행로를 들어간 것은 잘못이지만 상대방이 급가속까지 하면서 내 차를 받았다"고 했더니 "거짓말이다. 10년넘게 내가 여기서 교통사고 조사를 해봐서 아는데 이런 경우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거다" 라고 했다. 추측도 아니고 이건 확정적이다. 무슨 수사가 이런가.

세번 넘게 피의자 조서에 "나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느니 고쳐달라"는 내 변경요청을 묵살했고, 10년이 넘게 자신이 교통계에서 근무했으므로, 당신의 말은 '거짓말' 이라고 그 형사는 주장했다. "사고를 내고 도망치려고 한 거 보니 거짓말" 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이 휴대폰 빼앗으려 해서 대로변으로 나가 신고한 것을 '도망치려 했다'고 진술했단다. "도망치려는 사람이 112 신고합니까? 최초 신고자가 누구인지 한번 조사해 보시죠" 했더니,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한다.

가장 황당했던건, 그 형사가 "글씨를 잘 쓰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범인, 이런 사람 없다, 배운 사람이다"라고 했다. "보통 글씨 못쓰는 사람들이 범인"이라고도 했다. 내 차를 들이받은 사람은 내가 보기에도 글씨를 또박또박 잘썼고, 내 글씨는 상당히 저질 악필이다.

사고 현장을 같이 나갔더니 증인이라고는 모두 그쪽 편이고, 증거라고는 바닥에 남겨진 파편들과 사고 당시 바퀴와 차량위치 그리고 아주 진하게 새겨진 스키드 마크 뿐이었다.

당시 내차를 들이 받았던 상대방 차량은 가장 보험금을 많이 탈 수 있는 10여년 넘은 BMW7 시리즈 중고차 였다.(말이 7시리즈지 고물차였다.)

너무 억울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무섭거나 이래서가 아니라 정당하지 못한 것을 굴복하게 만드려고 하는 상대방인 그에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자신에 화가 났다. 지금이야 서장실이나 경찰 청장실이라도 미친 척 뛰어 들겠지만 그때만 해도 꽤나 청순(?)했고.

법률구조공단에 문의해 봐도 '어려울 것'이라 했고,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실을 시간당 1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세군데 들렸는데, 일방통행 진입이고 증인도 없어서 '힘들다'고 했다. 혼자 진행하기로 했다.

내가 완강하자, 모두들 '그냥 합의해'라고 했고 당시 나를 들이받았던 차의 소유주가 나서서 "싸게 합의하자"고 했다. 경찰서에 불려다니는 고통을 아는 사람은 알 거다. 경찰서 수사에서 합의하면 나는 그저 강압적인 경찰의 주장과 내 차를 받은 그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게 되는 것인데, 그만큼 마음이 넉넉하지 못했다고 할까. 검찰로 넘겨달라고 했다.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거의 안 자고, 교통사고 수사사례라든가 자동차의 물리력이라든가 이런 걸 공부했다. 인터넷 참 좋다. 다른 증인도, 증거도 없어서 바닥에 새겨진 진한 스키드마크와 두 차량의 파손부위에 집중했고, 당시 차량에 ABS브레이크가 장착됐는지, 스키드 마크는 어떤 사고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인지 사례조사를 했다.

스키드 마크와 물리적 충돌의 상관계수, 거리와 순간 시속의 계측량을 조지아텍 (조지아텍은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학중 하나다)에서 박사를 마치고 연구원을 하고 있던 지인에게도 부탁했다.

나름 여러 주장과 이런 자료들을 재판에 제출해 3번의 재판(1번은 검찰, 2번째와 3번째는 보험사의 민사청구)에서 모두 '혐의 없음' 으로 판결됐다. 일방통행로 진입 벌금은 물었지만, 3번을 결국 다 이겼다. 경찰에서 그냥 합의봤으면 내 성격상 평생 속쓰려 죽었을거다.

 밖에서 보면 대리석으로 대단히 화려한데, 안으로 들어가면 검사실이나 중수부 사무실(어쩌다 한번 가본 일이 있다)도 기대와 달리 아이보리색 슬레이트 판자형으로 꽤 초라했다. 갈색 오크 탁자와 소파라도 대놓고 있을줄 알았더니... 아, 맞다 이런 고급(?)스러워 보이는 집기는 밖에 없고 안에 있더라. 검사들의 안전을 위해서 언제 여기 소방점검 좀 했으면 좋겠다.
▲ 서울중앙검찰청 밖에서 보면 대리석으로 대단히 화려한데, 안으로 들어가면 검사실이나 중수부 사무실(어쩌다 한번 가본 일이 있다)도 기대와 달리 아이보리색 슬레이트 판자형으로 꽤 초라했다. 갈색 오크 탁자와 소파라도 대놓고 있을줄 알았더니... 아, 맞다 이런 고급(?)스러워 보이는 집기는 밖에 없고 안에 있더라. 검사들의 안전을 위해서 언제 여기 소방점검 좀 했으면 좋겠다.
ⓒ 서울중앙검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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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앙검찰청에서 수사를 받았는데 그때만큼은 수사관과 검사가 그 경찰서 경찰보다 훨씬 덜 편향적(?)이었다. 그렇다고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더 정당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사건과 관련해 사건자료를 복사하러 서부검찰청 자료실에 들렸을때, 단지 서무처리 하는 직원이 "왜 그런 일을 저질렀나? 사건은 어떻게 된건가? 말을 해야 자료를 준다"고 물었다. 웬만한 검사보다 더 다그쳤다. 대체 무슨 권리로 복사 민원 담당하는 자가 사건 경과를 추궁하듯 묻고, 말을 해야 준다고?

결국 서부검찰청에서는 한바탕 했다. 반말 비슷하게 하는 그 사무직원을 놔두고 서부검찰청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아마 비서실장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들어온 나를 보곤 놀라 벌떡 일어났고, 상황 설명을 하자 그 사무직 직원보다 훨씬 높은 사람일 그가, 오히려 진심으로 미안해 하고 사과를 대신 했다.

민원실 담당자들에게 서류 발급비를 내면서 "이래저래 태도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해서 너무 화가 나 검찰청장실을 뛰어 올라갔다 왔다"고 했더니 민원실 담당자들 서넛이 옹기종기 오더니 "자기가 다 속이 시원하다. 그 담당자 그동안 말 참 많았다"고 했다. 나보고 '용자'란다.

다음번에 갔더니 그 직원은 '휴가중' 이라면서 다른 직원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복사서류를 '턱' 하고 준다.

검찰청에서 서류발급 민원을 돕는 직원이 이 정도면 나머지는 어쩌란 말인가. 지금은 검사도 아닌 이인규 전 검사가 문재인 전 이사장이 쓴 책 '운명'과 관련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 당시 고압적인 자세라는 것이 '문 이사장의 주관적인 판단' 이라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이제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BBK 사건이 한참 다시 떠오를 때 법무법인 바른 소속으로, 이 법인이 맡고 있는 이지아-서태지 소송 사건을 터트린(?) 이인규 전 검사가 검사되려고 명문화된 법률책만 파다보니, 보통 사람들의 심리적인 판단에 대한 객관성은 글자로 법에 적혀 있지 않아 전혀 몰랐나 보다.

서울법대 다니던 친한 동생들이 몇몇 있었는데 "왜 검사는 대체로 고압적인가?" 물었더니(기왕이면 출신학교가 제일 많은 서울대에 물어보는게 좋지 않은가) "가끔 선배들이 와서 술을 사곤 하는데, 피의자가 특히 사회 저명 인사고, 자존심 강한 사람이면 양말 벗어서 뱜을 때리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했단다. 그런 일을 당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구겨서 검찰로 더이상 오고 싶지 않게 빨리 불도록 만든단다.

"검사가 처리해야할 일은 수북하고, 한국 특성상 땅 넓은 외국과 달리 혈연관계나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들이 많기 때문에, 증거주의 수사 보다는 피의자의 '말'을 위주로 하는 수사가 성과 부분에서 더 빠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아주 "먼~ 옛날 얘기"라고 했다. 지금 어떤지는 MBC보고 얼핏 짐작만 했다.

최근에 보도됐던 MBC의 '검사와 스폰서'가 아주 극소수 일부만의 이야기거나 사실과 다른 보도였을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양말이었다면 지금은 스폰서와 폭탄주, 그리고 섹스가 됐나 보다.

물론 신림9동에서 고시공부 하느라 몇년을 혹은 몇십년을 하루종일 여자친구와 모든 유흥 마저 다 끊고, 열심히 공부한 뒤에 보상심리가 있을 수 있는 것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섹스 말고 사회적 지위에 맞는 아름다운 섹스도 참 많지 않은가.

나를 수사했던 그 교통사고 10년 경력의 형사는 경찰학교로 갔다고 한다. 직접 경찰학교로 전화를 걸어 오랜 만에 인사 겸 통화했다.

"저 아시죠? 일방통행로 사건의 주인공." 
"아, 당연히 기억하죠." 기억력도 참 좋다.
"그 사건 3번 재판에서 모두 이겼어요. 다른 건 모르겠는데 글씨 못 쓴다고 범인이라고 했던 건 정말 억울했습니다. 이거 기억나시죠?(일부러 기억하냐고 묻고, 이래저래 소송하려고 했다)"
"(웃으며) 기억하죠. 그때는 제가 부족하고, 잘 몰랐던 거에요. 도와 드릴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도와줄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 것 하나 없어도 사는 나름 모범 시민이고 글쟁이다. 10년 넘게 교통사고 조사해서 '전문가'라더니, 그때는 잘 몰랐단다. 그 경찰, 지금은 경찰학교 교수가 됐단다.

이런 경험들이 나만의 경험일까? 최근에 경찰 수사권과 관련해서 검경 간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보도를 많이 봤는데, 밥그릇보다는 그 밥에 그 나물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한쪽이 콩나물 정도 되면 한쪽은 숙주나물 정도.

검찰이든 경찰이든 국민께 수사에 대한 믿음을 시스템으로든 태도로든 먼저 취하고 얻으려 해야지, 자꾸 저러니까 밥그릇이 되는거다.


태그:#수사권, #경찰, #검찰, #교통사고, #밥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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