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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프랑스인.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프랑스인.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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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지하철 안에는 항상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출퇴근길에 혹은 외출 시 이용하는 지하철 안에서 독서를 하는 프랑스인들의 풍경은 아름답다. 1900년에 개통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지하철은 아직도 서로 마주보고 앉게 되어 있는 구형 좌석이 많은데, 한 번은 필자를 포함하여 그 좌석에 앉은 4명의 승객이 전부 책을 읽는 장면도 연출되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유럽에서 책 읽는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도시가 파리다. 런던, 베를린, 마드리드, 브뤼셀 등 다른 어느 나라 수도의 지하철에서도 파리지엥만큼 책을 읽는 승객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프랑스인의 독서 습관은 유아시절부터 형성된다. 글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부터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잠들기 전에 이야기책을 읽어 주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그래서 어른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 꼬마들이 글을 깨우치는 나이가 되면 스스로 동화책을 찾아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1년 3월, 지방 일간지 <디망쉬 웨스트 프랑스(Dimanche Ouest France, 프랑스 서쪽 지방 일간지의 일요일판)>의 의뢰를 받아 IFOP(프랑스 여론 연구소)가 18세 이상의 표준인구 956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실시한 결과, 프랑스 인구의 절반 이상이 꾸준히 독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56%가 1년에 5권 이상의 책을 읽고 있고 20%가 1년에 20권 이상의 책을 읽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인구는 10%였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에서는 1년에 몇 권의 책을 읽느냐에 따라 독자를 세 층위로 분류한다. 연간 20권 이상을 읽는 사람을 '다독자(grand lecteur, 그랑 렉퇴르)', 6~19권을 읽는 사람을 '중독자(lecteur moyen, 렉퇴르 모와이양)', 1~5권을 읽는 사람을 '소독자(petit lecteur, 프티 렉퇴르)'로 구분한다.

IFOP 여론조사에서는 프랑스 여성이 남성보다 독서를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인 중 다독자는 20%인데, 여성은 그 비율이 22%로 남성보다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여성 독서 인구가 많은 것은 이들이 가정 바깥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독서율이 저조한 전업주부에 비해 직장 여성이 독서를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에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또한 독서를 가장 많이 하는 연령층은 50~64세로 이들의 26%가 다독자에 해당했다. 여유 시간이 많은 퇴직자라고 해서 독서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로 퇴직자들의 독서량이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열독률과 독서 성향이 살아온 환경, 교육 수준, 경제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조사에서도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회사원이나 노동자들보다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리 19구의 한 동네 서점. 책방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파리 19구의 한 동네 서점. 책방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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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1순위로 독서 꼽은 프랑스인들

문화생활에 대한 IFOP 조사에서 프랑스인의 29%는 독서를 우선 꼽았다. 이는 2006년의 35%에 비해 6%포인트가 감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문화생활 항목을 월등하게 앞서는 수치다. 2위는 20%가 꼽은 전시회나 박물관 관람이었다. 신문 구독, 콘서트와 공연 관람은 12%에 해당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인터넷 서핑이 새로운 문화생활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생활 조사에서 인터넷을 우선 꼽은 사람은 8%였다. 3%였던 2006년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 TV 시청과 영화 관람이 각각 7%를 차지했고, 음악 감상이 5%로 수치가 가장 낮았다.

프랑스인의 89%는 아이들이 올바른 독서 습관을 들일 수 있게 하는 데 최근 발간된 프랑스 문학책이 좋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인의 64%가 현재의 소설가들이 이전의 소설가들보다 질이 낮은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46%는 소설가들의 앙가주망(사회 참여)이 이전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프랑스인의 39%는 인터넷과 전자책의 발달로 종이로 된 책이 조만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이한 것은 젊은이들과 교육 수준이 낮은 층에서 이런 우려가 더욱 높다는 사실이다. 18~24세 젊은이의 43%, 노동자의 53%,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 중 48%가 이와 같이 우려했다. 다독자와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 중 이 문제를 우려한 사람은 21%였다.

프랑스에서 독서 인구가 꾸준히 유지될 수 있는 요인 중의 하나로 미디어의 영향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에 있다 보면 TV는 물론이고 여러 라디오 방송을 통해 문학 프로그램을 자주 접하게 된다. 신간을 발표하는 작가나 화제가 된 책의 저자들이 초청되어 전문가와 함께 깊이 있는 토론을 장시간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런 문학 방송이 시청자나 청취자의 독서 욕망을 자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많은 서점들이 신간 출간 기념으로 인기 작가를 초청해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를 주도하는 방식으로 신간 도서 프로모션에 적극 참여하면서 작가와 독자의 거리감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프랑스인들은 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주제와 작가를 든다. 이들이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미디어 외에 친지나 서점상의 의견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독자의 16%는 서점상의 권유로 책을 선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인 이상으로 대우받는 서점상, 동네 책방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

프랑스에서 서점상은 일반 상인들과 위상이 다르다. 문화상품으로 구분되는 책과 다른 일반 상품이 구별되는 것처럼, 서점상은 단순한 상인이 아닌 문화 전달과 공유의 화신으로 인정되고 있다.

많은 프랑스인이 서점에 들르는 이유가 단순히 책을 구입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2006년에 서적 전문 주간지 <리브르 엡도(Livres Hebdo, '주간 책'이라는 뜻)>의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 IPSOS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구입할 책을 정확히 정해둔 상태에서 서점 문을 여는 사람이 58%인 것에 비해, 42%는 신간 정보나 새로운 문화 소식을 접하기 위해 서점에 들른다고 한다.

서점상들은 이들의 문화적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고객이 찾는 책뿐만이 아니라 찾지 않는 책까지 소개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 고객의 다음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역설적으로, 나는 사고 싶은 책이 있을 때 서점에 가는 게 아니다. 그럴 경우에는 인터넷을 이용한다."

많은 프랑스인에게 서점은 휴식, 문화, 만남의 공간으로 인지되고 있다. 이를 감안해 편한 소파가 놓여 있는 서점도 있다. 프랑스인이 서점에 머무는 시간은 1회 평균 26분으로, 아이를 서점에 풀어놓고 장을 보러 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서점(상)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일부는 "서점이 없는 도시는 정체된 도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점 안에 놓여 있는 소파. 서점은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책을 뒤적이며 쉬다가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서점 안에 놓여 있는 소파. 서점은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책을 뒤적이며 쉬다가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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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안에 준비되어 있는 어린이 책 코너. 아이들 키에 맞는 책상과 의자가 앙증맞게 구비되어 있다.
 서점 안에 준비되어 있는 어린이 책 코너. 아이들 키에 맞는 책상과 의자가 앙증맞게 구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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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는 경기 불황을 겪고 있지만, 책 시장 전반은 성장세를 보였다. 책 판매량은 2003년 39억6000만 유로에서 2010년 41억8000만 유로로 늘었다. 이는 도서정가제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물가가 계속 상승 추세인 것과 달리 도서정가제 덕분에 책 가격이 다른 물품에 비해 안정된 것이 책 시장 전반이 성장한 원인 중 하나라는 진단이다.

그렇지만 규모가 작은 독립 서점들은 경기 불황의 파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리브르 엡도>(5월 13일자)의 한 기사에 의하면 2003년에서 2010년 사이에 독립 서점의 매출량은 평균 5.4% 하락했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 서점은 어느 출판사나 기업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작은 서점으로, 한국의 동네 책방으로 이해하면 된다. 현재 프랑스에는 3500여 개의 독립 서점이 존재하며, 이들의 매출은 전체 책 시장의 20%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처럼 만만치 않은 상황임에도 최근 동네마다 작은 서점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이것은 프랑스 사람들의 동네 책방 사랑과 관련 있다.

파리의 서점들은 보통 소르본대학을 중심으로 한 파리 5·6구 시내에 집중되어 있다. 필자가 사는 파리 북동쪽 19구에도 처음 이사 왔던 7년 전에는 서점이 한두 개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서점이 열 개가 넘는다. 필자의 집 바로 옆에도 6년 전에 새로운 동네 서점이 들어섰는데, 처음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동네 사람들이 이 서점을 돕고자, 시내에 있는 큰 서점을 이용하는 대신 이 서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구입하고 싶은 책이 없으면 책을 주문하여 3~4일 기다리더라도 동네 서점을 보호하는 프랑스인이 많다.

독립적인 소서점 상인들은 대부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서점을 여는 일은 드물다. 보통 독서와 문화 수준이 상급인 이들 서점상은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데, 이들의 의견은 서점가와 출판인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미디어의 독서 토론에서 작가, 출판인과 함께 서점상이 초청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점점 화면이 전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 파리의 카페에서도 이제는 화면이 설치되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신형 지하철에도 서서히 화면이 설치되고 있다. 어디를 가도 화면이 자리 잡고 떠들썩하게 음악이 흘러나오는 현실에서 책에 시선을 모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 무엇보다 우리가 책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는 책이 우리에게 꿈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꿈이 박탈된 세상에 살고 있다.

파리의 '카르티에 라탱'에 위치한 대형서점 지베르(Gibert).
 파리의 '카르티에 라탱'에 위치한 대형서점 지베르(Gibert).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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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발행하는 <서점신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서점, #책, #프랑스, #도서정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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