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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동물들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변형시키는 '변태'를 하곤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태'를 하는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들의 이야기를 조명해 우리 사회의 '사회적 변태'는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좇아 보고자 합니다. - 기자의 말

 금요일 밤, 누군가에게는 즐겁기 짝이 없는 시간들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의 순간이다
 금요일 밤, 누군가에게는 즐겁기 짝이 없는 시간들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의 순간이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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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멋들어지게 표현하고 싶다면 프라이데이 나잇(Friday night). 적어도 젊은 세대에게 이때는 '한 주간의 피로를 풀어버리고, 조그마한 일탈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으로 생각되기 마련. 하지만 금요일 밤의 달콤함은 모든 젊은 세대가 느낄 수 있는 대상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올시다'.

대개 직장인들은 '갑(甲)'에게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을(乙)'의 모습에서 벗어나 '꽤나 씀씀이가 쿨한 소비자'로 변하기 십상이다. "내일 토요일이잖아! 한 잔 더해!"라는 식의 당당함이 표출되는 순간, 그들은 금요일 밤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된다. 하지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 '나약한 을(乙)'에서 취약하기 짝이 없는 '슈퍼 을(乙)'로 사회적 변태를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투잡족'.

물론 지금과 같은 흉흉한 시대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비정규직 전선에서 보직을 두세 개씩 바꿔가며 사회적 변태를 해야만 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기자가 주목한 사람들은 정규직이지만 금요일 밤부터 비정규직으로 자신의 삶의 형태를 변태시켜야 하는 이들이다.

혹자는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20대가 수백만인데 정규직이면 비교적 나은 거 아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 오후 10시면 사회적 변태를 하는 한 남자를 만나봤다. 그들은 왜 정규직이면서 비정규직을 택했는지 궁금해서.

미래를 위해 편의점에서의 변태를 택하다

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최호섭(29, 가명) 간사. 기자는 금요일 밤이면 정규직 노동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주말을 사는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을 찾았다. 근무 투입 2시간 반가량 전부터 시작된 인터뷰, 인터뷰 내내 그는 시간을 체크했다.

왜 금요일 밤까지 시간에 쫓기며 비정규직으로 사회적 변태를 하는지 궁금했다.

"아직 어리지만 어느덧 20대 후반입니다.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죠. 계획한 것들은 체력이 허락할 때 미리미리 해놔야 하지 않겠어요? 시민단체 일을 하면서 나중에 대학원에서 좀 더 공부하고 싶은데, 그때를 대비해서 학자금도 마련해 놔야 하고, 결혼도 생각하고 있으니 주택 청약에 돈도 조금씩 부어야죠, 부모님께 용돈도 드려야죠, 생활비에 보탬도 해야지요…. 생각해보니 돈 들어갈 데가 참 많더라고요. 하하."

 금요일 밤이면 비정규직 노동자로 변태하는 그. 그래도 "본업은 시민단체 간사"라고.
 금요일 밤이면 비정규직 노동자로 변태하는 그. 그래도 "본업은 시민단체 간사"라고.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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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 사회적 변태를 '미래지향적'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택한 사회적 변태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떨까. (솔직히 기자는 '명색이 정규직인데 왜?'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사실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하겠더라고요. 당신 같으면 말할 수 있겠어요? 말 못하지…. 부모님들 마음이 다 같잖아요. 알게 되시면, 없는 형편이어도 '차라리 내가 돈을 주마'라고 하실 것 같아요. 마음고생 하느니 몸 고생하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 여자 친구도 '꼭 해야 해?'라고 묻지만, 어쩔 수 없이 '응'이라고 할 수밖에…. 하하."

'이건희가 되고 싶다' 같은 비현실적 망상이 아닌, 미래에 공부하고 살 곳을 위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그. 그럼 그가 속한 시민단체에도 그와 같이 금요일 밤, 혹은 주말에 변태하는 간사들이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생존의 문제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선배 간사들이 좀 있습니다. 결혼을 했거나, 월세방에 사는 사람들은 절실하거든요. 지출의 규모가 달라지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주말이 허용되지 않는 변태들... "그래도 일 할 수밖에 없다"

생존의 문제로 편의점에 뛰어들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결국 그 문제는 최 간사의 미래형이나 다름없다. 그가 평생 20대 후반의 '비교적 늙은 피터팬'으로 살아갈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 그렇다면 그의 일주일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어봤다.

 그의 일주일 일정. 일주일 중 정말 힘든 날은 일요일과 월요일이라고.
 그의 일주일 일정. 일주일 중 정말 힘든 날은 일요일과 월요일이라고.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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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금요일은 시민단체에서 여느 간사와 다름없이 일을 합니다. 간혹 주말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럼 아르바이트 끝나고 나가서 일하게 되는 거죠. 솔직히 그럴 땐 선배들한테 너무 죄송하면서도 고마워요. '밤새 일하다 왔다'고 배려를 해줘서 말이에요.

어찌 됐건 금요일부터 생활이 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금요일에는 늦은 6시에 퇴근하고 좀 쉬다가 늦은 11시에 편의점으로 출근하는 거죠. 그리고는 토요일 이른 10시에 퇴근, 눈을 좀 붙이고 일어나면 한 늦은 5시가량 되더라고요. 그럼 집에서 공부 좀 하다가 늦은 11시에 다시 출근하는 거죠. 근데 일요일 이른 10시에 퇴근하고 나서는 잠을 안 자요. 일요일도 토요일처럼 자 버리면 월요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체리듬을 '주 5일 체계'로 돌려놓으려면 일요일 낮은 그냥 버텨야 하는 거죠. 덕분에 월요일에 피로가 몰려오는 거지…."

얼추 계산해 보니 72시간 동안 14시간가량 수면을 취하는 셈. 그와 같은 변태들에게는 직장인들이 꿈꾸는 '주말 늦잠'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거의 못 뵈러 간다고 한다. 짬을 내 일요일에 다녀와도 되지만 다녀오면 몸이 피곤해 엄두가 안 난다고.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물어보고 싶은 질문 하나가 혀끝을 간질인다. '아니 그렇게 고생하다가는 잃는 게 더 많을 것 같다. 대체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 참다 참다 뱉고야 말았다.

 평일에는 권력을 감시하는 손이지만, 주말에는 편의점의 상품들을 판매하는 손으로 변태한다.
 평일에는 권력을 감시하는 손이지만, 주말에는 편의점의 상품들을 판매하는 손으로 변태한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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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는 것은 주말 휴식과 생체 리듬입니다. 이렇게 사니까 왜 직장인들이 주말을 그렇게도 기다리는지 알겠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상대적 박탈감도 많이 느끼죠. '남들은 쉬는데 난 여기서 뭐 하나' 싶더라고요. 하하.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얻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시민단체 간사 활동이라고 봅니다. 주말이라도 이렇게 일하면서 돈을 버니까, '미래에 이러 저러한 것들을 해야겠다'는 계획도 세울 수 있고, 지금의 생활에 더 의욕이 생기는 것이지요. 편의점에 안 왔다면 아마 미래 계획은커녕 당장의 생활도 힘들었을걸요."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현재이기도 하다

그는 비정규직을 통해서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 짓(시민단체)을 계속하고 싶으니까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힘닿는 데까지 계속할 것 같아요. 그래도 편의점은 일하다 시간이 나면 시민단체에 관련된 공부도 할 수 있으니까 다행"이라는 그. 근데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실질적인 삶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데, 미래 설계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을 병행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아 보인다.

"단기적으로 최저임금이 5410원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정규직·비정규직을 떠나서 최저임금의 상향조정은 정말 중요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공정임금'의 실현, 즉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사회가 와야 저 같은 사람들도 일할 맛이 나지 않겠어요? 우리 88만원 세대들은 신분 상승이 불가능하니, 일한 만큼 대접이라도 받아야죠. 근데 지금 몇 시에요?"

 야식 준비를 앞두고 바쁜 손님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최호섭(가명) 간사. 밤샘 알바라 틈틈히 업무관련 공부를 한다고 한다
 야식 준비를 앞두고 바쁜 손님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최호섭(가명) 간사. 밤샘 알바라 틈틈히 업무관련 공부를 한다고 한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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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보니 늦은 10시 53분. 벌떡 일어난 그는 빠르게 편의점으로 이동했다. 대개 근무교대 10분 전에 도착해 있는 게 예의인데 기자 덕분에 전 시간 노동자에게 미안하게 됐다고. 편의점으로 뛰어들어간 그. 작업복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상품 정리를 하던 전 시간 노동자에게 '먼저 퇴근하라'고 말을 건넨다. 바로 이 순간. 간사 포스 풀풀 풍기던 그는 이제 "어서 오세요"를 밤새 외쳐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변태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식을 사러 온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는 바코드를 연방 찍어대며 허공에 인사를 던졌다.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문득 85호 크레인 위에 서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책 <소금꽃나무>가 떠올랐다. 그 책에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이 말은 옳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도 될 듯하다. 최호섭 간사 같은 사회적 변태들의 경우에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현재이기도 하다'가 더 적당하기 때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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