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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5년 4월, 양양군 산불진화 모습.
 사진은 2005년 4월, 양양군 산불진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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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방재청에서 화재 건수가 줄고 피해액이 줄었다고 하는데 그거 믿는 소방관들 거의 없습니다. 다 실적주의에 따른 성과 부풀리기지 현장의 실상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불나는 것은 비슷비슷한데 탁상 행정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덕분에 소방관들을 허위 보고와 성과 조작의 늪으로 몰고 있고, 어려움만 가중시키고 있을 뿐이죠."

23일 서울 도심의 한 소방서에서 만난 소방관 A씨는 지난해부터 소방방재청이 벌이고 있는 '화재와의 전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성과주의를 강조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볼만도 토로했다.   

"소방관들이 실적주의에 내몰리면서 혼탁한 경쟁 속에 내몰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성과주의 정책을 강조하다보니, 그게 소방행정에 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현장 소방관들에게 허위와 거짓을 강요하면서, 골병들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성과주의 정책이 소방관들에게 허위보고와 거짓 강요

소방방재청이 2010년부터 의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화재와의 전쟁'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소방 당국은 성과를 자랑하고 있는 반면 일선 소방관들은 실제 성과와는 차이가 있고 단순한 숫자 놀음에 불과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전시행정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재와의 전쟁'은 최강 소방을 만든다는 목표아래 소방방재청(청장 박연수)이  2010년부터 펼치고 있는 화재 피해 저감 정책이다. 조직적인 소방작전·전술 재정립을 통한 화재 피해 최소화 및 화재로 인한 사망률 '10% 이상 저감' 등 인명피해를 줄이는 것이 가장 우선된 목표다. 소방검사제도 개선과 다중이용업소의 화재보험 의무적 가입, 비상구 폐쇄·훼손·물건적치 등 불법행위 신고 포상제를 비롯한 예방 활동도 핵심 추진 사항들이다.

소방방재청이 지난 1월 발표한 '2010년 화재발생현황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화재와의 전쟁'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전체 화재 건수는 4만1862건으로 최근 3년과 대비해 -13.3%(6415건) 감소했고, 인명피해는 1891명으로 -25.5%(648명) 줄었으며, 재산 피해 역시 2667억 원으로 -9.4%(277억 원) 저감되는 등 화재로 인한 피해가 예년보다 많이 작아졌다.

그런데, 이런 성과가 실질적이 아닌 단순한 수치 조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선 소방관들의 주장이다. 소방당국이 성과와 실적에 따라 포상이나 불이익을 주면서 소방관들을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고, 이 과정에서 허위보고와 실적 조작을 양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소방방재청은 29개 항목의 평가 지표를 통해 일선 소방서들의 화재 예방 진압 활동을 수치화 시켜 '화재와의 전쟁' 실적이 우수한 소방서는 특진과 성과급 등의 인센티브를, 부진한 소방서에는 페널티를 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평가에서 1등을 차지한 소방서는 소방서장과 소방관 한 명이 특진한 반면 실적이 부진한 지역은 소방본부장이 직위해제 됐다.

이 때문에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일선 소방관들은 화재상황보고를 허위로 하거나 때로는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소방관들은 평가 지표의 핵심 조항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공익적인 업무에 도입된 성과주의 정책의 폐해라는 것이다.

감점 받지 않으려면 화재 현황 축소해야

소방방재청의 '2011년 화재와의 전쟁' 평가지표 구성(안)
 소방방재청의 '2011년 화재와의 전쟁' 평가지표 구성(안)
ⓒ 소방방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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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와의 전쟁 핵심 목표가 인명피해 감소에 있는지라, 사망사고 발생 여부가 소방방재청의 주요 평가 지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3년간 현황과 비교해 인명피해가 날 경우는 감점을 당하게 돼 있고, 줄어들면 가점을 받게 돼 있다.

화재 사고 건수도 중요한 평가 요소다. 역시 줄어든 곳에는 가점을 주는 반면 늘어난 곳에는 감점을 준다. 화재 현장에 5분 이내 도착하는지 여부도 주요 평가대상이며, 주택가 스프링쿨러 설비 확충과 언론 홍보 활동도 평가 지표 중 하나다. 

이러다보니 화재 현황을 축소하는 경우가 많고 상황보고도 다르게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 전남지역의 소방관 B씨는 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화재가 나면 현장에 빨리 도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건데, 도로사정에 따라 여의치 않을 때가 있습니다. 도로가 꽉 막혀 있을 때는 방법이 마땅치 않거든요. 그런데 5분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보니 현장 가까이 접근하면 일단 무조건 도착했다고 허위 보고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안 하면 감점을 당하니까요."

그는 "사망사고 같은 경우는 감점 요인이 크고 평가를 좌우하기 때문에 화재와의 연관성이 조금이라도 명확하지 않은 경우는 일단 화재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는 보고를 올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야산에서 불이 났는데, 거기 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겁니다. 화재로 인한 사망일 수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은 경우는 불을 보고 놀라서 달아나다 사망했다고 보고 하는 겁니다. 나중에 화재 사고로 밝혀지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은 화재 관련 인명 피해로 잡히지 않게 하는 거죠."

이 소방관은 이어 "지난해 평가에서 목포소방서가 사망사고가 줄어들어 1등을 차지했지만 올해는 화재로 인한 사망사고 늘어나서 감점 요인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소방관들이 인명 구출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것도 아닌데 이를 점수화 시켜서 경쟁으로 내 모는 정책은 소방 현실을 너무 모르는 탁상행정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위에서 발표하는 성과, 믿는 소방관들 없다"

소방관들이 등장하는 영화 <서서 자는 나무>의 한 장면
 소방관들이 등장하는 영화 <서서 자는 나무>의 한 장면
ⓒ 미카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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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소방관 C씨도 같은 주장을 폈다. 소방서들마다 화재 사고를 축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소방관들이 출동해 완진(완전 진압)된 것만 건수로 잡지 작은 화재나 무시해도 될 것 같은 사고는 화재 건수에서 아예 누락시킨다"며 "평가를 의식해 1억 원 난 피해액을 1천 만 원 정도로 줄여서 보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 따라서 성과가 크다는 소방방재청의 발표는 믿을 게 못 된다고 강조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소방관들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비슷했다. 부산의 한 소방관은 "평가 기준이 현장의 실정과 안 맞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짜 보고서나 허위 보고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사고 건수나 인명피해 줄이는 것은 어느 소방서들이나 다 마찬가지고, 간부들이 평가 점수가 승진과 연관이 있다 보니 다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주장도 언급했다.

"'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하거나 단독 주택에 '간이 스프링쿨러'를 설치하는 등의 방재시설을 늘리면 가점을 받게 돼 있어요. 비중 있는 평가 항목이거든요. 그런데 관련된 예산 지원은 없다보니 이런 점수라도 받아야 하는 소방서들이 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극히 일부에 한정된 이야기이기는 한데, 어떤 방법을 쓰냐면 지역 유지 등에게 사정을 잘 이야기 해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 소방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업체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겁니다. 말이 협조 요청이지 보는 시각에 따라 압력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한 건당 300만 원 정도가 들어가는 예산을 개인이 부담하기는 힘들고, 사실상 이런 부조리를 위에서 조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전남 순천의 D소방관은 소방 훈련 시간을 규정한 부분의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최강 소방을 구현한다는 목적으로 모든 소방관들이 월 40시간을 훈련을 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3교대 체제에서 업무 외에 따로 훈련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그래도 무조건 40시간을 맞춰야 하다 보니 하지도 않은 훈련을 밤 12시까지 했다고 보고서를 올리게 되는 거지요. 위에서 자랑하는 성과도 다 이런 식의 보고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그는 '화재와의 전쟁'으로 인해 도리어 소방관들의 업무 위험성이 높아진 게 우려된다고 했다. "5분 내 출동을 위해 소방차가 중앙선을 넘어 달리는 경우가 자주 생겨나면서 위험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안전 대책 등이 전혀 제시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면, 간혹 소방관들이 사고 피해를 개인이 부담이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화재사망 사고 인위적 예방은 천연덕스런 거짓"

 2011년 '화재와의 전쟁' 2단계 작전 추진을 위해 지난 3월 25일 소방방재청 주관으로 열린 지휘관 회의
 2011년 '화재와의 전쟁' 2단계 작전 추진을 위해 지난 3월 25일 소방방재청 주관으로 열린 지휘관 회의
ⓒ 소방방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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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화재와의 전쟁' 성과를 비웃는 글들이 여럿 올라와 있다.

'신문기사들 보니까 너무 우습습니다. 소방청장이 '화재와의 전쟁'  너무 잘해서 인명피해 줄였다고들  난리입니다. 불타 죽는 사람들을 어떻게 감소시키나? 경찰이 교통사고 사망자 줄일 수 있나? 피해 날 때마다 문제 안 되는 것 줄이는 줄 뻔히 알면서… 나중에  화재 인명 피해자가 증명원 발급 안 된다고 할 때 소방서 상대로 소송이나 걸지 않으면 다행이다'

'상식의 탈을 쓴 몰상식한 인간들입니다. 화재로 인한 사망사고가 인위적으로 예방이 된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을 늘어놓다니. 물론 홍보와 더불어 예방 활동을 철저히 하면 약간의 효과는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과와 결부시키기 위해 자위적으로 판단하는 게 문제죠.'

일선의 고위 소방책임자들 중 일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소방방재청장 주재로 열린 화재와의 전쟁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부산소방본부장이 '화재와의 전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는 것이 소방 관계자들이 전언이다. 당시 2단계 작전의 정책추진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자리였던지라 부산소방본부장의 문제제기에 소방방재청장은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 신현철 부산소방본부장은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내부회의에서 한 이야기라 언급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며 부담스런 마음을 나타냈으나, 부산소방본부의 한 관계자는 "당시 본부장님이 '전쟁이라는 것이 기한을 정해 놓고 하는 것이지, 기한 없이 이렇게 하는 것은 소방관들에게 부담도 많고 여러모로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 해운대소방서 노재훈 소방관은 "이 때문에 부산소방본부장이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며 "통상 1년 반이나 2년이 되면 본부장 인사를 본청과 순환해야 하는데 찍힌 사람은 2년 넘어도 그대로 있고 잘 비빈 사람은 2달 만에 영전되는 등, 소방방재청장이 내부의 불만에 귀 막은 채 인사 전횡까지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방방재청 "업무 힘들다 보니 일부에서 억지 주장 펴는 것"

소방관들의 진화작업 모습. 사진은 2008년 1월 7일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냉동물류센터 화재현장.
 소방관들의 진화작업 모습. 사진은 2008년 1월 7일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냉동물류센터 화재현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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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은 무리한 성과와 실적을 강조하는 정책이 소방행정에는 맞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람 많이 사는 곳이 당연히 화재가 많고 인명피해도 많은데 이런 기준을 무시한 평가가 소방에 대한 신뢰성을 깎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화재와의 전쟁 평가에서 상위를 차지한 소방서는 목포, 제주, 부산 항만, 담양, 영광 등 중소도시들이었다. 

한 소방관은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현실을 이렇게 자조했다. 

'위에서 화재와 전쟁한다고 성과를 내라하면 군말 없이 해내야 하는 소방관은 대국민 신뢰도 1위란 허울에 갇혀 노예 같은 생활만 하다 50대 후반에 생을 마감한다. 소방방재청은 화재와 전쟁하고 하위직 소방관은 목숨과 전쟁하고. 서러운 내 팔자'

서울의 소방관 E씨는 "각 소방서별 평가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현장 실정에 맞는 소방행정과 기준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 소방관들의 요구"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일하는 일선 소방관들과 행정 업무를 주로 하는 소방간부들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보니 실제와는 차이가 있는 위선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진단한 그는 "소방 전문성이 없는 행정 관료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소방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의 관계자는 "실적에 대한 평가는 방재청과 각 소방서들이 교차 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업무가 힘들어지다 보니 일부 소방관들이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일 뿐"이라고 성과에 신뢰성 문제를 지적하는 소방관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어 "다만 일부 평가지표에 대한 불만이 있어 대학교수들에게 관련 연구 용역을 발주했고, 곧 바뀐 지표을 통해 평가를 시행할 예정"이라면서, "일선 소방관들의 불만이 있겠지만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 소방방재청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위해 기존 정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태그:#소방, #소방관, #소방방재청, #화재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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