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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6월부터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6월 지역투어 첫 행선지는 제주도입니다. 바람 부는 제주는 돌도 많고 여자도 많다는데, 진짜일까요? 여러분이 몰랐던 진짜 제주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편집자말]
6월 21일, 병실에 누워있는 송강호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 10년간 '(사)개척자들'의 일원으로 국제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전쟁 난민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
▲ 송강호씨 6월 21일, 병실에 누워있는 송강호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 10년간 '(사)개척자들'의 일원으로 국제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전쟁 난민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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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송강호씨를 면회하기 위해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열린병원을 찾았다. 그는 전날 해상에서 해군의 준설작업을 저지하기 위해 바지선에 올랐다. 하지만 군인 여럿이 손과 발로 그를 밀어내는 바람에 바지선 아래로 추락해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부상이 증명하는 것처럼 그는 지난 100일 동안 전쟁을 방불케 하는 제주 강정마을의 살벌한 현장을 조금도 거부하지 않고 온몸으로 마주했다. 병상에 눈 감고 누워있는 그를 깨워 대화를 청하자, 불편한 가운데서도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는 강정마을에서는 송강호씨를 '교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교수가 이렇게 온몸으로 싸우다니. 먼저 "언제 교수를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주 오래전 독일에서 돌아와 강단에서 잠시 신학을 강의한 적이 있고, 해외에서 평화봉사활동하면서 현지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송강호 '교수'는 왜 강정마을에서 싸우나

하지만 그는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모두 다른 활동으로 빠지려고 하니까, 부모들에게 미안해서 강의를 더 못하겠더라"고 했다. 항상 사회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그의 신념과 실천이 여러 학생을 교실 밖으로 밀어냈기 때문에 빚어진 '불상사'다.

신학. 그의 전공이자 삶의 이정표다. 그는 한때나마 전공을 살려 교회에서 사역을 감당하기도 했다. 1993년 그는 서울 용산에 있는 작은 교회의 전도사를 맡아 청년들을 지도했다. 당시 송강호 '전도사'는 청년들과 함께 르완다, 소말리아 등을 방문해 교회와 기독청년들이 인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나눴다.

"우리가 현장을 방문해보고, 전쟁과 기아처럼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심각한 재난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내전으로 구호의 통로가 차단되면 국제기구들의 어마어마한 힘도 현지 난민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어요."

(사)개척자들은 어떤 단체?
개척자들(www.thefrontiers.org).종교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전 인류의 하나님'이라는 믿음아래 국경을 넘어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재난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인류의 슬픔과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는 모임이다.

1993년 '세상을 위한 기도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골방에서 기도하던 소모임이 개척자들의 시초다. 이후 청년들을 중심으로 분쟁과 재난으로 신음하는 국가들을 돌며 난민을 돕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리고 기도와 실천을 반복하며 경험을 쌓은 다음 2001년에 이르러서 외교통상부에 '(사)개척자들'로 정식 등록하였다.

현재 경기도 양평에 한국지부를, 말레이시아에 국제부를 두고 있으며, 30여 명의 활동가가 동티모르, 반디아체,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아이티 등 분쟁 지역에서 평화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개척자들의 가족들은 경기도 양평에 있는 샘터공동체에서 공동으로 생활하고, 사전예약제에 의해 외부인들의 방문도 받는다. 공동체는 공방을 운영하여 공동으로 만든 물건을  판매하기도 한다. 단체의 운영은 많은 부분 후원에 의존하고, 지출은 매달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다.
이후 그는 '(사)개척자들'의 일원으로 국제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전쟁 난민을 돕는 평화활동가가 되었다. 강정마을에 들어오기 전, 지난 10년 동안 그는 아프가니스탄, 인도와 파키스탄이 다투는 카슈미르,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등 수많은 분쟁지역을 돌아다녔다.

이중 인도네시아 반다아체는 전쟁이 아니라 대형 쓰나미로 재난이 발생했던 곳이다. 그는 불과 몇 분 사이에 10만 명이 사망하고, 수십 만 명의 고아가 발생하는 재난의 현장을 목격했다.

"반다아체에서 목격했던 재난의 규모는 매우 컸어요. 그런데 내가 방문한 다른 전쟁 지역과 비교하면 반다아체의 재난은 규모가 컸지만, 상처와 후유증은 상대적으로 작았어요.  전쟁은 증오와 보복을 남기고, 그 증오와 보복이 조직적으로 훈련되어 다시 전쟁을 만들어냅니다.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심각한 재난은 전쟁이란 사실을 눈으로 목격했지요."

그가 속한 개척자들은 "평화를 만들고 그 역할을 하는 단체"다. 전쟁과 자연재해가 발생한 곳에서 고아들을 돌보고 난민들이 자립하는 일을 도와준다. 다른 해외구호단체들이 대부분 해외 구호와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개척자들은 '평화'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가 외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 있으면 정부와도 맞서야 한다.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에 잠수함을 판매하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해외 구호단체는 이런 일에 신경을 쓰지 않지만 개척자들은 정부를 비난하고, 정부와도 대립합니다. 우리나라가 수출한 무기가 동티모르 어린이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가 강정마을에 들어온 것은 지난 3월이다. 10년간 해오던 해외평화봉사 활동을 잠시 내려놓고, 2년의 휴가를 얻었다. 휴가 동안 해외 분쟁지역을 여행하기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그가 강정마을에 들어온 이유는 외국으로 나가기 전에 그간 '마음속에 빚'으로 남아 있던 마을을 방문해서 기도로 빚을 덜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도와 실천, 그게 개척자들의 삶입니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와 보고 놀랐어요. 이곳에서 불의와 정의가 (국익을 명분으로) 정당화되는 상황, 마을 구석구석에서 정의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상황을 목격했지요. '최악의 상황에 서자'는 우리 개척자들의 구호를 이곳에 적용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강호씨(왼쪽)가 강동균 마을회장(오른쪽)과 해군의 준설작업을 저지하기 위해 바지선에 오르려고, 타이어 펜더에 매달려 있다. 이후 송씨는 가까스로 바지선 위에 올랐지만 해군들에 의해 바지선 밖으로 내던져져 부상을 입었다.
▲ 해상 시위 송강호씨(왼쪽)가 강동균 마을회장(오른쪽)과 해군의 준설작업을 저지하기 위해 바지선에 오르려고, 타이어 펜더에 매달려 있다. 이후 송씨는 가까스로 바지선 위에 올랐지만 해군들에 의해 바지선 밖으로 내던져져 부상을 입었다.
ⓒ 강정마을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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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해군기지 반대 투쟁의 맨 앞에 섰다. 굴착기 아래 누워보기도 했고, 군인과도 맞섰다. 지난 100일 동안 연행도 되고, 부상도 입었다.  그는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물이 먼저 찬다"고 했다. 지난 10년 동안 총성이 울리는 극한 상황에서 활동해봤지만 공권력의 방해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다.  

그는 "평화는 고요하고 잔잔한 상태가 아니라, 불의에 대항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경험되는 내적 성숙감"이라고 했다.

"불의와 맞설 때, 마치 배를 타고 바람을 맞는 것 같은 살아 있는 희열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 바람이 강정마을에 불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마을이 희망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최근 많은 사람이 강정마을을 찾아오는 이유는 이 마을의 지난한 투쟁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당장 퇴원해서 강정마을로 달려가고 싶다"

그는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남아야 대한민국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데, '평화의 섬'을 실험해보기도 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 강대국의 동북아 패권주의 그늘로 편입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또 그는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은 "정체성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5월 31일, 생명평화결사가 박원순 이사를 초청하여 '강정마을의 오늘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당시 토론자로 참여한 송강호씨는 "강정마을에 유엔평화기구를 유치하자"고 제안했다.
▲ 송강호씨 지난 5월 31일, 생명평화결사가 박원순 이사를 초청하여 '강정마을의 오늘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당시 토론자로 참여한 송강호씨는 "강정마을에 유엔평화기구를 유치하자"고 제안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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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하다. 강정마을의 소식을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으로 기사를 썼는데, 첫 기사는 채택됐고 두 번째 기사는 "잘렸다"고 했다.

송강호씨는 가족으로 부인과 아들 한별(27), 딸 샘(24)이 있다. 한별이는 대학원생이고, 샘이는 대학 학부생이다. 활동을 하려면 가족이 마음에 걸릴 만도 한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그는 개척자들의 공동체 생활을 설명했다. 

개척자들의 가족들은 경기도 양평에서 공동체 생활을 한다. 활동가들은 월 30만 원 안팎의 급여를 받지만, 공동체에서 생활 대부분을 해결한다. 비록 자기 차를 소유하지 못하고, 아이들이 자기방을 소유하지 못해도, 공동체가 함께 공유하고 먹기 때문에 궁핍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개척자들 공동체는 해외 평화봉사활동에서 장애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활동가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까지도 부양한다.

그가 부상을 당한 뒤에도 해군은 준설작업을 위해 동원한 바지선을 철수하지 않고 있다. 그는 "당장 퇴원해서 강정바다로 달려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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