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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 모든 블로거, 트위터리언, 그리고 페이스북 유저 역시 시민기자다. 이들은 때론 정규군보다 빠르고 깊이가 있다. 기존 문법을 파괴하는 촌철살인과 감각적 글쓰기. 뉴스게릴라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인터넷 생태계 곳곳에 출몰해 융단폭격을 퍼부으며 의제를 설정한다. 바야흐로 시민기자 전성시대다. 김병기 뉴스게릴라본부장(편집국장)이 곳곳에서 활약중인 시민기자들을 만났다. <편집자말>

 

공포의 필살기, 다섯손가락으로 1분에 200타

 

그를 '시민기자' 코너의 첫 번째 손님으로 초청하자는 편집부 후배들의 제안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얼마 전 시민기자와의 대화 자리에서 그를 잠깐 만났을 때의 까칠한 분위기가 먼저 떠올랐다. 게다가 나는 빅뱅 멤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는 스포츠-연예 전문 시민기자다. 얼마 전 TV를 장만했고, 유일하게 가족들과 함께 보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 시간에도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이런 내가 그에게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지난 8일 저녁 스포츠 전문 시민기자답게(?) 줄무늬 운동복을 입고 서울 상암동 사무실에 나타난 그와 마주 앉은 뒤 5분이 지나지 않아 또다시 아찔했다. 다섯손가락으로 1분에 200타, 급하면 팔꿈치나 손등으로 쉬프트 키나 엔터키를 누르는 '공포의 필살기'. 1시간이면 기사쓰기 끝, 한번 '필' 받으면 스포츠 중계 현장에서 양손 타법을 구사하는 기존 매체 기자들보다 빠르단다.    

 

설마? 커피숍에서 독수리 타법으로 요란스럽게 자판을 두드리다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머쓱해졌다. 소심한 나, 이런 건 곧바로 확인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친 뒤 내 노트북을 그에게 들이밀고, 한번 쳐보라고 했다. 양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으면서도 아직도 4-5개정도의 손가락만을 사용하고 있는 기자는 경이로운 눈으로 아래 20초 동영상을 찍었다. 

 

☞ 동영상 보기

 

양형석 시민기자(78년생). 오마이뉴스 메인면에서 그의 바이라인이 달린 스포츠-연예 기사를 즐겨보는 독자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그의 본업은 핸드백 사업이다. 남대문 시장에서 가업을 잇고 있다. 양 기자는 지난 2005년 3월 21일 기자회원에 가입했고, 뇌출혈로 쓰러졌다 회복하기까지 1년여의 기간을 빼고 지난 5년동안 무려 1천여개의 기사를 쏟아냈다. 

 

"소녀시대 빨리 보고 싶어 좀 일찍 일어났다"

 

 

- 퇴원한 지 1년 반정도 됐는데, 건강 상태는 어떤가?

"50%정도 회복됐다. 2년 1개월 전에 오른쪽 머리를 다쳐 왼쪽이 마비됐다. 일주일에 3차례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소녀시대를 빨리 보고 싶어 좀 일찍 일어났다(웃음)."

 

부담스러웠던 연예인 이야기가 초장부터 나왔다. '가장 보고 싶었던 소녀시대 멤버는?'이라는 추가 질문을 던지며 드리볼 할 수도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소녀시대 멤버가 몇 명인지조차 모른다. 그래서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 오른쪽 한손으로만 200타라는 데,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려고 피나는 연습을 한 결과인가?

"(질문 취지에 어긋나) 미안한데, 드라마틱한 계기는 없었다(웃음). 친구들과 채팅하면서 실력이 늘었다. 퇴원한 직후엔 한 문장 쓰기도 어려웠다. 퇴원하고 3달여 뒤에 쓴 기사는 배구 중계 기사다. 그냥 다시 시작했다. 쓰러지기 전, 양손으로는 700타 정도 쳤다."

 

- 현재까지 1100여 개의 기사를 썼다. TV를 끼고 살아야할 것 같은데?

"월-수-금요일 오전에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오후에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는다. 화-목-토요일엔 남대문에서 가방가게를 하시는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있다. TV는 주로 밤에 본다. 그리고 부족한 게 있다면 주말에 몰아서 본다. TV를 끼고 사는 정도는 아니다."

 

- 이 정도면 팬클럽이 생길 만도 한데.

"너도 기자냐? 나도 기자하겠다. 이런 댓글을 주로 본다.(웃음)

 

- 불편한 몸으로 일주일에 2-3개 정도의 기사를 쓰는 게 힘들지는 않나?

"아프기 전보다 기사 올리는 빈도는 줄었다. 몰아쓰는 날에는 2-3개 쓰기도 하는데 힘들지는 않다. <오마이뉴스>는 내 놀이터다. 여기에 글쓰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시점부터 내 생활의 일부분이다. 한 손으로나마 다시 일상을 회복한 게 기쁘다."

 

까도남인줄 알았는데, 1시간여 정도 대화를 나누다보니 부드럽고 톡톡튀는 '열혈 시민기자'. 하지만 그는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거듭 손사래 친다. 스포츠 중계와 드라마, 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느낌을 공유하는 것 역시 즐겁다는 것. 그래서인지 그의 기사는 알기 쉽고 유머스럽다. 도제식 교육을 받고 천편일률적인 기사에 능숙한 언론사 기자들이 흉내낼 수 없는 필체다. 가령 이런 식이다. 

 

"3분 41초 86은 무척 짧은 시간이다. 기껏해야 컵라면 하나를 익힐 시간이다. 그러나 '마린 보이' 박태환은 그 짧은 시간에 대한민국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 해냈다, 박태환!수영 역사 새로 쓴 '마린보이' (2008.08.10)

 

"나는 유난히 여성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여자농구에 대한 애정은 꽤 길고 깊다.물론 선수들과 팬 이상의 친목을 쌓고 싶은 야욕(?)은 전혀 없음을 미리 밝히고 싶다."

- 김영옥의 충격 고백, 과연 '일부'의 문제일까 (2011.06.05)

 

"기사 미리 써놓고 점수만 입력하는 게 전문성?" 

 

그가 <오마이뉴스>에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공짜 수강료'였다.

 

"시민기자였던 친구가 소개했다. 당시 오마이뉴스는 시민기자 강좌를 했는데 6주의 기간동안 개근을 하면 강좌료를 돌려준다(5만원)고 했다. 물론 나는 5만 원을 돌려받았고 그 때부터 시민기자가 됐다."

 

- 왜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나?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쓴 기사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좋다. 거친 댓글이 많기는 한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보면 '욕은 네가 쓰고, 원고료는 내가 챙긴다'고 혼잣말한다. 한달에 20-30만 원 정도의 원고료가 들어온다. 큰 돈은 아니지만 기사를 쓰는 동기부여는 된다."

 

- 시민기자는 어떤 점에서 매력적인가?

"손예진씨가 나오는 드라마 '스포트라이트'를 봤다. 방송 기자들이 아이템 회의를 하는 데 말단 기자들이 좋은 아이템을 내도 선배 기자들이 한마디 하면 '킬'되더라. 그런데 시민기자는 자유롭다. 성역이 없고 분야도 특정되지 않는다. 어떤 내용이든 쓰고 싶은 글, 읽히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게 시민기자의 최고 권리이자 장점이다."

 

- 기존 언론인과 비교할 때 시민기자의 경쟁력은?

"언론은 홈런 타자만 주목한다. 그런데 시민기자는 그 앞에서 번트를 댄 선수의 역할 또는 중간에 잠깐 나와서 한 타자만 막고 들어간 투수의 이야기를 풀어쓸 수 있다. 시선을 자유롭게 넓혀서 경기의 줄거리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시민기자의 경쟁력이다. 또 모든 관중이 언론처럼 홈런 친 선수만 주목하는 게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쓴 글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기사를 골라보라는 질문에 아래와 같은 기사를 예로 들었다.

 

박태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왕기춘을 두 번 울리지 말라

"'괴물 신인' 성공 뒤엔 우리의 땀이 있죠"

 

양 기자 인터뷰를 위해 사전에 준비한 질문은 30여 개. 물론 이 질문지에는 스포츠와 연예계 이야기는 빠져있다. 2시간여 동안 20여 개의 질문을 쏟아내며 인터뷰 후반전으로 진입했지만, 양 기자도 자신의 전공 과목이 회자되지 않는 것에 큰 불만은 없어보였다. 다행이다. 꿩대신 닭이라고, 내친 김에 좀 더 진지한 질문으로 들어갔다.

   

- 오마이뉴스를 방문하는 외국 언론인들로부터 항상 듣는 질문은 시민기자의 전문성이다. 그 때마다 나는 준비된 답변을 늘어놓는다. '주부 시민기자는 가사-보육 전문가이고, 교사 시민기자는 교육전문가이다. 정치인 시민기자 역시 정치 전문가다. 그들의 생활은 뉴스의 현장이다. 기존 언론인은 글쓰기에는 능할지 모르겠는데, 시민기자들이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있다'라고. 양 기자는 어떻게 생각하나?

"기자의 전문성이 무어냐고 반문하고 싶다. 지난 2006년 프레스카드를 발급받아서 프로야구 한 시즌을 기자석에서 지냈다. 3시간여 동안 야구 경기를 눈여겨 보고 기사를 쓰는 언론사 기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내에서 제일 빠른 언론사는 항상 기사를 미리 써놓고 마지막에 최종 점수만 입력해서 엔터를 치더라. 그게 전문성인가?

 

예전에는 통계자료가 기존 언론사에만 뿌려졌다. 그런데 지금은 KBO사이트에 접속하면 누구나 그런 자료를 접할 수 있다. 또 팬 사이트에 들어가면 훨씬 자세한 기록도 나온다. 글쓰기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는 오히려 마니아들이 더 많이 알고 있다." 

 

역시, 물어보길 잘했다. 과거 언론인들의 배타적 정보독점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 시민기자를 이해하는 또다른 핵심이다. 그에게 한 수 배웠다.

 

 

"오마이뉴스에는 제가 있으니 다른 일에 집중해 주세요"

 

- 그럼에도 시민기자로서의 한계를 느끼거나, 또는 힘들었던 기억은?

"큰 경기나, 큰 사건이 있으면 중복되는 주제의 기사들이 많이 올라온다. 내가 그 중의 하나일 때가 가장 슬프다. 누구나 다 생각한 것을 쓴 거다. 항상 다른 기사, 나밖에 못 쓰는 그런 기사를 쓰고 싶은 욕구가 있다."

 

-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가 창궐하고 있다. 그런데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시민기자의 글은 기사로 공식화되는 것이다. 내가 기사를 쓴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다."

 

- 시민기자로서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에게 전할 자신만의 비법은?

"오마이뉴스에는 제가 있으니 다른 일에 집중해 주세요.(웃음) 즐기면서 써라. 많이 쓰다보면 자신만의 분야를 갖게 되고 전문성도 생긴다. '왜 내 글을 이렇게 대접하냐'라고 묻기보다는 즐겁게 쓰는 사람들이 오래가고 오마이뉴스와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같다."

 

이날 인터뷰는 3시간여 만에 끝이 났다. 1시간은 식사를 같이하면서 이런저런 덕담을 나눴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 '독대'가 시작됐다. 그가 나의 기막힌 사정을 간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포츠와 연예계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자는 작전은 주효했다. 이게 이 인터뷰의 한계이자, 내 한계다. 그래서 그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블로그 '히트 앤드 런'을 소개한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이렇게 정의했다.

 

"<오마이뉴스> 유일의 스포츠 연예 찌라시! 편파보도! 사실 확인 부족! 객관성 부족! 그래도 그냥 치고 달린다!"

 

"내가 편집국장이라면? 정치 색깔 지우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기사는 정확하다. 그리고 유쾌-통쾌-명쾌한 기사를 쓰는 그는 내 잘못된 선입견처럼 까칠하지 않았다.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 마지막으로 당신이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라면 무엇부터 바꾸고 싶나?

"가끔 톱 기사가 두 개로 나뉘어서 나온다. 그 한쪽에 항상 시민기자의 기사를 올려놓고 싶다. 그리고 가벼웠으면 좋겠다. 김여진씨가 정치적인 발언을 할 때뿐 아니라 주말드라마에 나오는 그의 코믹한 캐릭터도 비중있게 소개했으면 한다. 심하게 말하면 오마이뉴스의 정치 색깔을 지우고 싶기도 하다."

 

'시민기자' 첫 회부터 사실 진땀을 뺐다. 처음에는 편집부를 원망했지만, 스포츠-연예 전문 시민기자와의 대화는 발랄하고 유익했다. 혹, 보고 싶은 시민기자가 있으면 이 글에 댓글을 달아주면 된다. 편집부가 엄정하게 심사(?)한 뒤 초대손님을 결정하면 어디든 달려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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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민기자, #양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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