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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로 예수 읽기〉
▲ 책겉그림 〈통째로 예수 읽기〉
ⓒ 왕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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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완상 전 적십자 총재가 쓴 <예수 없는 예수 교회>는 기독교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그분은 박제된 기독교의 교리에서부터 생명력 있는 예수의 기독교를 회복하길 주문했다. 그것은 사도신경의 암송에서부터 벗어나 예수가 가르친 주기도문의 삶을 실천하는데에 있다고 했다.

기독교 내에서 교리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교리는 이단으로부터 교회의 진정성을 보호하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 다만 그것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박제된 교회만을 양산할 수 있는 치명적인 흠결이 있다. 생명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껍데기로서의 교회를 생산해 내는 게 그것이다. 그것이 지나칠 경우 진심으로 예수의 삶을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옭아맬 수도 있다. 중세의 마녀재판이 그랬다.

그가 강조한 것은 다만 그것이었다. 한국교회가 주기도문의 삶을 그대로 실천해야만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고 한 것. 사실 사도신경은 당대의 이단으로부터 구분하고,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만든 조항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강화하는 동안 예수님께서 가르친 주기도문의 삶은 점차 설 자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도신경의 틀이 교회의 진정성을 구축해 왔을지라도, 교회의 생명력은 그만큼 죽어 왔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그 삶으로 보여 준 주기도문의 삶을 살도록 촉구했던 것이리라.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 안에서 '예수'는 충분하고 과분할 정도로 신앙의 대상, 예배의 대상으로 섬겨져 왔다. 사실 역사적 예수가 자신이 훗날 기독교의 신앙 대상이 되리라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물론 그는 그리스도로 믿어진 존재였다. 그러나 정작 단 한 번도 자신을 신앙의 대상, 구세주로 믿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그는 대신 '사랑의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전 삶을 바쳤다."

이는 김진의 <통째로 예수 읽기>에 나오는 머리글이다. 그는 예수의 탄생 전 로마의 압제 상황을 비롯하여, 동정녀 탄생에 대한 이해, 유년기와 가출기의 유대인 예수의 관점, 그가 주도한 하나님 나라 운동의 성격, 그의 주기도문의 이해,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주는 교훈 등, 그의 전 삶의 과정을 통째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썼다. 다만 역사적인 예수의 실존여부보다도 예수의 삶이 주는 참 교훈과 가치를 건져 올려, 그대로 살고자 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이색적인 부분이 없지 않다. '쿠란 속 예수', '출가자 예수', '사생아 예수'에 대한 부분은 독특한 내용이다. 쿠란에도 예수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예수는 지극히 인간 예수에 집중돼 있음을 밝힌다. 출가자 예수도 부처의 출가를 연상하게 한다. 예수가 열두 제자를 거느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삶이 출가자였다는 것을 그가 추측해 낸다. 사생아 예수는 어느 영화 감독자의 이야기를 빌어서 서술하고 있다.

그가 밝히고자 하는 핵심은 그것이다. 박제된 교리 속에 갇혀 있는 예수에서 생명력 있는 예수를 발견하고 따르자는 것. 예수가 하나님을 유대교에서 해방시켰듯이 교리에 갇혀 있는 예수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것. 우상처럼 굳어진 기독교의 예수를 살아 있는 진리로 다시 드러내고자 하는 희망.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상식적으로 되짚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

이 책은 찬찬히 읽어 보면, 얼마 전에 출간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와 궤를 같이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듯, 달을 봐야 함에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너무 몰입해 있다고 하듯이, 한국교회도 예수의 삶이 주는 가르침을 배우고 그대로 살아야 하는데도 오히려 그리스도화된 예수에만 너무 몰두해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심층종교를 추구하지 못하는, 표층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지닌 단면임을 상기시킨다.

물론 이 책은 몇 가지 논쟁점을 야기할 수도 있다. 사실(fact)과 진리(truth)의 관계 속에서 너무 진리에만 몰입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예수의 성령잉태설이나 부활에 관한 부분도 그것이다. 성경을 기록한 기자의 의도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 사실의 초점을 너무 간과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 의도하는 바는 죄인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죄 없는 인간으로 온 예수여야 했다는 게 그것이다.

또한 구약 속에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가 추구한 하나님을 어설프게 조화하는 것을 과감하게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도올 김용옥의 주장에 동의하는 부분이지만, 그것은 한 하나님 안에 있는 동전의 양면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이 단순한 소생을 넘어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를 촉구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은 정말로 깊이 있는 성찰로 다가온다. 더욱이 예수께서 가르친 주기도문에 대해, 보프 신부가 지적했다는 <주의 기도>는 더욱더 의미심장하게 들려온다.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말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는 말을 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란 소리 하지 말라 아들딸로서 살아가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지 말라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258쪽)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독정론지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통째로 예수 읽기

김진 지음, 왕의서재(2011)


태그:#주기도문, #사도신경,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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