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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케리비안의 해적4: 낯선 조류>는 영원한 젊음을 선사한다는 샘물을 찾는 항해지다. 이른바 천국의 영생수가 있는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속에 천사를 가장한 수많은 인어 악마들과의 사투도 흥밋거리다. 하지만 국왕은 그것을 찾는 자들을 이교도 숭배라 정의하고, 그 사원을 모두 허물어뜨린다.

 

그런데 왜 국왕까지 나서서 그 근원지를 망가뜨려놓아야만 했을까? 그것은 여태껏 신성한 샘물을 찾아 가는 모든 과정들을 일순간에 확 깨버린 일이었다. 굳이 국왕까지 나서서 정죄해야만 했던 이유가 뭘까? 그것 없이는 자신의 권위와 국가의 체제가 바로 설 수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쓴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는 그런 관점들을 대비하여 읽게 해 준다.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이단에 대한 규정은 주류를 위협하려 드는 비주류에 대한 정죄였고, 그만큼 정치적인 연합에서 실패한 사안들이 이단으로 규정된 게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혁명은 모두 단죄의 사슬로 사라진 것도 그런 연유다.

 

그렇지만 이 책은 독일신학자 바우어의 사회학적인 차원만을 놓고 이단 배경을 그려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교회의 존립과 공동체성의 보호차원을 더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이는 오늘날의 자유주의 신학사상이나 예수의 인성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나, 혹은 영지주의의 흐름을 따르는 구원 사상들이 교회의 정통성에 치명타를 가져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구속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거나(펠라기우스주의)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일(마니교)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런 고백을 하면서도 나사렛 예수를 우리와 너무나 다른 존재로 이해하거나(도세티즘), 우리와 너무나 비슷한 존재로 이해하는(에비온주의) 바람에 그 분이 우리에게 구속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148쪽)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단의 개념에서부터 뿌리와 본질, 그리고 초기의 고전적인 이단들과 그 영향력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그것은 기독교 내부에서 시작되어 외부 문제와 결부되어 발생하고 확대되는 면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이단이든지 처음부터 외부에서 시작하는 발전 양상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에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슬람 분파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알 퀴야다 알 이슬라미야라는 분파에 대한 게 그것이다. 이슬람교 내에서는 그 분파를 이슬람교로 인정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종교로 취급해야 할지 논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메카 참배와 금식, 다섯 번의 매일 기도가 의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현재 기독교에 대한 도전은 외부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내부 비판도 거세다. 대사회적인 바른 영향력이 후퇴할 때에 외부 목소리는 거칠게 나타난다. 그에 비해 내부 비판은 같은 기독교 안에서 일어난다. 그것이 정통 기독교를 더 아름답게 세우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론 그걸 흔들어 해체하려는 이단적인 경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때에 정통기독교가 직면한 도전을 뚫고 나갈 길은 무엇인가? 신학적인 정통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도 그 한 가지다. 다만 그것이 기독교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필요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신앙과 단절을 가져오는 것이면 해가 된다. 아울러 정통 교회가 교리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더 깊은 상상력을 만족케 하는 신앙의 로맨스를 재발견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 때에만 정통 기독교가 온건한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고, 그 상승세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기독교정론지 뉴스앤조이에도 보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 교회가 신앙을 지켜온 치열한 역사

알리스터 맥그라스 지음, 홍병룡 옮김, 포이에마(2011)


태그:#이단,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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