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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은 깊은 산속이나 텔레비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을 타고 다니거나 기네스북에 오르지는 않았더라도,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재주로 우리를 웃게 하는 생활 속의 달인들은 얼마든지 있죠. 혼자만 알고 있기는 너무 아까운 '생활의 달인'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병상에 다른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죽음이 떠나고 채 열 시간이 안 되어 발생한 일종의 사건이었다. 죽음이 나가던 순간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쉬쉬 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세 시간도 안 되어 쉬쉬하는 표정은 사라졌다. 새로 들어온 할머니의 걸쭉한 입담이 죽음의 기억을 물리쳐 버렸다고나 할까.

연세가 89세라고 했다. 내년이면 90이라고, 아흔 살이라고 마치 훈장처럼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이 새로 들어오신 할머니는 그야말로 단숨에 병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검은 머리카락이 단 한 올도 섞이지 않은, 완전히 백발인 머리에서 뭔가 빛이 나는 느낌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의 그 성성함 같은, 누구라도 제압당하지 않을 수 없는 일종의 포스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 데다 언변이 또한 거침이 없고 보니, 우울하던 병실에 갑자기 무슨 위문공연단이라도 들이닥친 꼴이었다.

"내가 말이요. 이 싸가지 없는 새깽이들 버릇을 좀 고쳐볼까 하다가 이것이 쪼까 잘못 돼서 내가 내 버릇 고치게 되아 부렀는디 말이요잉? 아이고 아고 허리야, 오매 죽겄네. 오매오매 나 죽겄네. 이런 호랭이나 물어갈…."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실은 모두가 내상 환자들이었다. 콧속으로 미음을 흘려 넣는 방식의 식사로 생명을 붙잡고 있는 할머니는 그래도 완치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상한 데가 하도 많아서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 설명조차 불가능한, 기력이 너무 없어서 링거나 꽂은 채로 온종일 누워 있거나 누워 있기조차 힘들어서 안절부절인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특정한 병실만이 아니라 효자병동 전체의 분위기라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새로 입원한 예의 '간달프 할머니'는 거의 유일하게 내상이 아닌 외상으로 입원한 케이스였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한마디씩 흘린 말을 종합해보면 할머니의 허리뼈 관절들이 죄다 어긋나버린 것 같았다. '간달프 할머니' 당신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허리가 "아주 그냥 작신 뿐지러져부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허리가 부러지기까지의 사연이 글쎄, 뭐라고나 할까, 요새 흔히 쓰는 말로 하자면 '완전 대박'감이었다. 이야기는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래방 간 '새깽이들' 골려주려고 집에 가다가 그만...

영화 <마파도2>의 한 장면. 배우 김지영씨는 <마파도2>에서 '욕쟁이 할머니' 영광댁 역을 연기했다.
 영화 <마파도2>의 한 장면. 배우 김지영씨는 <마파도2>에서 '욕쟁이 할머니' 영광댁 역을 연기했다.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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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어버이날 그날에 효자병동의 모든 병상에는 병원 당국에서 보낸 카네이션 한 송이씩이 놓였다. 그리고 그날 전북 고창 지역 전역에서 크고 작은 소동이 잇달아 벌어졌다. 순대국이라든가 김치찌개 같은 것들을 주 메뉴로 하는 소형 식당을 제외한 중급 이상 거의 모든 식당들이 예약도 없이 밀려드는 손님들로 몸살을 앓아야 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전국 각처에 흩어져 있던 '고창의 아들딸'들이 흡사 무슨 경쟁이라도 벌이듯이 너도나도 몰려와서 부모님들을 모시고 외식을 나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동안 외롭게 살아오셨던 어버이들에게 그날 하루 5월 8일은 참으로 행복한 날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짧게는 삼십 분에서 길게는 두 시간 이상씩 밥 한 끼 먹자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매우 낯선 경험으로 인해 행복감은 반감되고 말았다. 왜 이런 뉴스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지만, 그 바람에 어느 건축업자는 점심 시간에 공사장 인부들을 차에 싣고 이 식당, 저 식당, 식당 순례만 하다가 오후 일을 완전히 망치고 말았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등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손해가 발생했고, 그에 따른 불만이 며칠 동안 유행병처럼 터져나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간달프 할머니'도 그날 여느 어버이들과 똑같이 외식을 나갔다고 했다. 다른 어버이들과 다른 점은 점심이 아니라 저녁이었고, 그래서 기다리는 고생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경기도 일산에 사는 큰아들 내외와 손주들로부터 시작해서 부산, 울산, 대구 등지에서 '이런 자식' '저런 자식' '온갖 자식'들이 스무 명 가까이나 몰려들었다.

"우리 새깽이들이 말이요 잉? 꼭 그렇게 떼로 몰려댕기요 잉. 오늘은 이놈이 오고, 내얄은 저놈이 오고, 아 그러면 나도 좋고 지들도 한갓져서 좋고 을매나 좋겄소. 아 그란디 이 호랭이나 물어갈 새깽이들이 뭔 간첩질 할 것이 그리도 많다고 한 놈이 떴다 하믄 금방 다들 와뿐져. 아 그것이사 나도 알제. 이놈들이 뭔 간첩질을 하는지를 내가 으째 모르겄소. 이 사연이 아주 사람 배꼽 빼먹는 사연인디, 이 배꼽은 낭중에 빼기로 하고 우선은 내 이 허리가 작신 뿐지러진 사단이 말이요 잉?"

그날 '간달프 할머니'의 자녀들은 아마 무슨 이벤트를 계획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선운사 뒤편에 펜션도 하나 빌렸다. 오후 느지막이 출발해서 빌린 방에 짐을 풀고 풍천장어 전문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단다. 그리고 다시 빌린 방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풍천장어를 안주로 한 잔 마신 복분자 술 때문이었는지 방에 들어오자마자 잠이 쏟아져서 잠시 눈을 좀 붙이기로 했다. 실제로 잠을 잔 시간도 그야말로 잠시일 뿐이었다. 눈을 감을 때 시작한 텔레비전 연속극이 눈을 떴을 때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방 안에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다. 가방이며 짐 같은 것들만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을 뿐 그 많던 '새끼'들이 한 명도 안 보이는 것이었다.

"한 시간도 넘게, 두 시간도 넘게, 기두리다가 옆방 사람들한티 물어봤더니 모른다는 거여. 다들 우르르 몰려 나가는 것만 봤다는 거여. 그래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께 요놈의 새깽이덜이 나 혼자 방구석에서 지들 짐보따리나 지키라고 놔두고 지들끼리 2차를 간 것이더라고. 그래봐야 지들이 노래방이나 뭐 그런 데밖에 더 갔겄어. 노래라믄 나도 안 빠지고 잘 부를 줄 아는디 말이여. 그란디 쏙 빼놓고 지들끼리만 간 것이더라 이것이여.

에라잇 호랭이나 물어갈 새깽이덜아, 내가 무신 허천날 일 있다고 니들 짐보따리나 지키고 있을 줄 알았냐. 갈란다. 해서 기냥 나와버린 거여. 선운사에서 우리 집까지는 오십 리 길이란 말이거든. 내가 잘 안단 말이거든. 옛날에는 걸어서도 곧잘 댕기곤 했으니께. 까짓 옛날에 걸었던 길을 오늘이라고 못 걸을 것인가. 까짓, 걷다가 자빠져서 허리라도 작신 뿐지러져버리면 그것도 장히 좋겠다, 이런 생각을 뒤지락, 뒤지락, 잉?"

그렇게 나와서 집으로 간다고 혼자 밤길을 걷다가 정말로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듣는 순간에는 웃느라고 바빠서 아무 생각할 틈이 없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게 또 그랬다. 얼마나 속이 상하고 야속했으면 그 밤중에 튀어나와버렸을까. 아무튼 할머니는 '소원대로' 밤거리에서 넘어졌고, 허리를 다쳤고, 엉금엉금 기다가 마침 지나가던 택시 운전기사에게 발견되어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새벽이 다 되어서야 '어버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허둥지둥 달려온 '새깽이들'을 보는데 허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면서도 웃음이 자꾸 터지더라고, 그것을 참느라 어찌나 힘을 썼는지 눈알이 한 뼘이나 튀어나와버렸다는 거였다.

'개그의 달인' 할머니가 코미디 프로를 보며 울다니

아닌 게 아니라 할머니의 눈은 부리부리한 데가 있었다. 연세가 그쯤 되면 대개 눈꺼풀이 내려와서 눈이 작아 보이기 마련인데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자신의 그런 신체적인 특징을 할머니는 아주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천재적인 유머 감각이 있어 보였다. 이렇게 되면 할머니의 살아오신 내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할머니는 젊어서도 그렇게 말씀을 재미있게 잘 하셨어요?"
"호랭이나 물어간다. 사람이 가심에 쌓인 것이 많으믄 말이다, 잉? 그러믄 누구라도 다 이렇게 되는 것이제. 안 그러믄 터져서 금방 죽을 것 같은디 어쩔 것이냐. 너 같으믄 어쩔 것이냐. 기냥 죽고 말래? 아님 이렇게라도 해서 살래?"

갑자기 하댓말로 마치 무슨 죄인이라도 대하듯이 호령을 하는 할머니, 이때부터 할머니는 나를 아들이라고 불렀다.

"어이 아들, 나 쩌그 저 숟가락몽뎅이 쪼까 집어줘 봐."
"어이 아들, 나 시방 오줌 싸야 쓰겄응게, 저리 좀 가봐봐. 봐서 좋을 것 같으먼사 보라고 하겄는디, 볼만헌 것 하나도 읎응게 잉?"

그러니까 할머니의 말씀을 정리하자면 이런 얘기였다. 세상을 슬프지 않게, 한스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머감각이 발달했다는 얘기였다. 큰애 낳고 바로 다음 날부터 시어머니에 이끌려 보리밭을 매러 나갔다가 '밑이 빠져' 버렸었다는 할머니의 젊은 시절은 "콩밭 매는 아낙네야"로 시작하는 노래 한 곡 속에 다 들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할머니는 콩밭 매던 날의 기억을 자주 언급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 기억이 무슨 한이라든가 슬픔이 아니라 통쾌함이었다.

"뙤약볕이서 땀 찔찔 흘려감서 밭 매다 보믄 오줌이 마렵단 말이시. 어찌나 더운지 일어나기도 귀찮어. 아 그란디 그때는 머시냐 거 고쟁이를 입었단 말이거든. 고쟁이란 것이 밑이 쭉 찢어져서 말이제. 앉은 채로 기냥 오줌 싸야겠다, 허면 그냥 오줌이 나오는디, 와아따 참말로, 어찌나 시원스럽고 오지던디. 누가 볼까 무서할 것도 읎고, 본다 해도 내가 콩밭 메는 줄 알지 지가 무슨 오줌 싸는지 으떻게 알 것이여."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거의 모든 지난 일들이 할머니에게는 웃음의 소재가 되고 있을 뿐 한숨이나 눈물의 소재가 되지는 않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유일하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라고 했다. 코미디언들이 사람을 웃기려고 애쓰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저 가슴에 쌓인 슬픔은 얼마일까, 한은 또 얼마일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는 거였다. 소위 '발상의 전환'이라는 것을 이 '간달프 할머니'만큼 절묘하게 해치우는, 그리고 그것을 오롯이 자신의 재산으로 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은 대목이었다.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의 한 장면. 배우 나문희씨가 연기한 '권순분 여사'는 유쾌한 꾀로 자식들을 골탕 먹인다.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의 한 장면. 배우 나문희씨가 연기한 '권순분 여사'는 유쾌한 꾀로 자식들을 골탕 먹인다.
ⓒ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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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아홉 할머니의 새로운 목표는 '남자친구 만들기'

무슨 날만 되면 여기서 저기서 자식들이 떼로 몰려오는, 몰려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은 것 또한 '간달프 할머니'가 이루어낸 역발상의 성과였다. 큰아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더니 그 아이를 할머니더러 키워달라고 데려왔더란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그렇게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할머니 자신의 자식들이 다섯이었다. 만약에 다섯이 모두 그런 식으로 애를 데려다 맡긴다면 어쩔 것인가. 그래서 그만 뚝 끊기로 했다는 거였다.

"아 내가 지놈들 젖 멕이고 업어서 키우느라 쎄가 다 빠져부렀는디, 그것도 모자라서 지들 새끼까지 나더러 키우라고? 사람이 새끼 낳고 그 새끼 키우는 재미로 사는 것이제, 돈 벌라고 사는 것인가. 돈 벌어서 믓 할래? 밥 굶냐. 그러믄 나한테로 와라. 밥 멕여주께. 아 이랬더니 요놈들이 낭중에 보니께 지 에비 제삿날도 안 내려오고, 명절에도 오는 놈보다는 안 오는 놈이 더 많고.

그리서 내가 꾀를 하나 냈지 않았겄더라고. 하루 한날 죄다 불러놓고 저금통장 셋을 내놓았제. 내가 지난 30년간 품팔이해서 모은 돈이 다 여그 들었다고, 이것을 찢어서 노놔주면 푼돈밖에 안 될 것잉게 한놈한테 줄란다, 그러니께 너그들이 의견 취합해서 누구한테 주면 좋을지를 나한테 알려달라, 했더니만 아 요놈들이 뭔 날만 되믄 여그서 저그서 죄다들 끼데오는 거여. 와따 참말로 얼매나 오지고 배가 터지던지."

"실제로 돈은 있으시고요?"

바보 같은 의문이지만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따 너도 참말로 깝깝하다 잉? 아 나한티 뭔놈의 돈이 있겄냐. 내 손에 10원 들어오면 20원 달라는 것이 새깽이들인디, 새깽이들 키우는 것이 그런 것인디, 뭔 돈이 아직까지 있겄냐고. 아 그란디 요놈들이 내 말을 믿더라고. 시방도 믿고 있어. 철석같이 믿고 뭔 날만 되믄 쫓아들 와. 내가 암만혀도 100살이 넘도록 살아야 헐랑가벼. 아 으찌케 죽겄냐고. 이 오진 재미를 두고서 말이여."

할머니의 '오진 재미'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발칙하다고나 해야 마땅할 할머니의 머릿속 생각에 따르면 할머니는 이제 곧 연애를 할 것이란다. 집에서는 하나도 안 보이던 남자가, 영감이, 남편감이 병원에 들어와보니 쌔고 쌨더라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퇴원 전에 연애를 하고, 퇴원 당일에는 '새깽이들'에게 그 사실을 공표한다는 것이다. 그때 보여줄 '새깽이들'의 표정을 생각하면 오금이 다 저릿저릿하다고, 그런 말을 하면서 할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여든아홉 되신 할머니의 기력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렇게 힘차게.


태그:#어버이날, #병원, #삶의기술, #유머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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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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