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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황매산 철쭉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정자 황매산 철쭉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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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사람을 유혹하여 집 밖으로 불러내는 마법을 가졌나보다.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산과 바다에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친다. 특히, 축제가 열리는 곳이나 이름이 잘 알려진 곳은 북새통을 이루기 일쑤.

봄이라지만 초여름이다. 산은 녹색물결을 이루고 꽃은 색깔을 더욱 진하게 물들이고 있다. 5월을 상징하는 철쭉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한창이다. 경남지방에서 철쭉이 군락을 이루는 곳은 황매산. 해발 1,108m의 이 산은 산청과 합천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고, 산의 세 봉우리가 매화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황매산영화주제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산청 쪽 황매산영화주제공원.
▲ 황매산영화주제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산청 쪽 황매산영화주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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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번 휴가를 권장하는 직장 분위기로 특별휴가를 낸 20일. 선 분홍 철쭉을 구경하러 황매산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주말과 휴일을 피해 일부러 평일에 휴가를 낸 것. 황매산을 가기 위해서는 산청군 차황면과 합천군 가회면 방향의 두 곳 중 한 곳을 택해야만 한다.

차황면은 황매산영화주제공원이 있는 곳으로 영화 '단적비연수'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35번 고속국도 산청 나들목을 나와 약 18㎞ 거리에 이르면 황매산 들머리에 들 수 있지만, 이보다 약 12㎞를 더 둘러 합천 가회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청 쪽은 몇 해 전 와 봤던 터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기에. 역시 선택은 잘했다는 생각이다. 똑 같은 산과 들이지만 처음 맞이하는 새로움이란 즐거움이 있었기에.

깃발 황매산 중턱에 펄럭이는 깃발. 에베레스트 산 입구에 나부끼는 깃발이 연상된다.
▲ 깃발 황매산 중턱에 펄럭이는 깃발. 에베레스트 산 입구에 나부끼는 깃발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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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많이 빠진 합천댐은 황톳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여름이 오면 이내 수줍은 속살도 감추게 될 것이리라. 중간 중간 드러난 작은 섬, 저 언덕은 이곳에 뿌리내려 살았던 옛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 옴을 느낀다. 나 역시도 태어난 집과 삶의 생명인 논과 밭을 조국근대화(?)를 위한 명분으로 다 내어주고 쫓겨나다시피 한 이주민이기에. 이런 모습에서 동병상린의 아픔을 느꼈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 호들갑 피운다고 할까?
가슴에 평생을 안고 살아가는 아픔이 있다면,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아픔을 쉽게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여행이란 머릿속에 지워진 낡은 흑백필름을 천연색으로 재생시켜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합천댐이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들어선 내 고향 거제를 기억해 내게 한다.

억새 황매산 평원에는 억새가 만발이다.
▲ 억새 황매산 평원에는 억새가 만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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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정상이라고 보여지는 저 봉우리를 넘어서면 또 다른 봉우리가 있는데, 거기가 해발 1,108m 황매산 정상이다.
▲ 황매산 정상이라고 보여지는 저 봉우리를 넘어서면 또 다른 봉우리가 있는데, 거기가 해발 1,108m 황매산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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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댐 주변 회양삼거리에서 1089번 지방도를 따라 조금 지나니 황매산 만남의 광장이 나오고, 곧 이어 황매산 들머리인 입구다. 잘 닦여진 꼬불꼬불한 길은 경사를 오르게 한다. 등산복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팡이를 짚고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힘겹게 옮겨 놓는다. 정상부에 다다르자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고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키 큰 나무라곤 볼 수도 없다. 억새와 철쭉만이 평원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이다.

평일인데도 넓은 주차장은 차량들로 넘쳐난다. 빈 배를 국밥 한 그릇으로 채웠다. 자욱한 안개는 선 분홍빛 철쭉을 보여주지 않는다. 산인지 평야인지 구분이 안가는 넓은 땅은 차가 교차할 수 있는 넓은 노란색 포장길을 만들어 놓았다. 왜, 꼭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차라리 걷기 좋은 푹신한 흙길이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산 중턱에 올라섰다. 능선 좌우로 넓게 확 트인 고원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다. 군데군데 군락 지은 철쭉은 붉디붉은 선 분홍빛을 볼 수가 없다. 너무 늦게 온 탓일까, 벌써 꽃잎은 떨어지고 꽃 수술대 몇 개만 붙어 있는 철쭉 모습이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걸었다.

황매산으로 오르는 길 황매산으로 오르는 길은 나무 데크로 잘 만들어져 있어 걷는 즐거움이 있어 좋다.
▲ 황매산으로 오르는 길 황매산으로 오르는 길은 나무 데크로 잘 만들어져 있어 걷는 즐거움이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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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데크는 걷기에 편해 좋았다. 경사진 계단을 오를 때는 계단 수를 세는 습관이 있어 세어보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백 개가 넘어가면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힐라치면, 순간 숫자가 생각나지 않는다. 한참을 올라 산 아래를 내려 보니 가슴이 확 트인다. 사진에 보는 붉은 철쭉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산을 오르는 즐거움으로 대신할 수밖에.

목에는 제법 무게가 나가는 카메라를 멨다. 걸을 때 마다 좌우로 출렁거려 중심 잡기가 어렵다. 걷기 편하도록 가지고 간 지팡이는 오히려 짐이다. 눈이 부시어 쓴 선그라스는 흐르는 땀에 미끄러져 콧등을 벗어난다. 많은 등산객이 교차하는 곳에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양손을 이용해야만 하는 바위를 오를 때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대략 난감이다. 안전사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다음부턴 작은 가방이라도 준비해서 등에 메야 할 것 같다.

황매산 철쭉 황매산 드넓은 고원에 철쭉꽃이 붉은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
▲ 황매산 철쭉 황매산 드넓은 고원에 철쭉꽃이 붉은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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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턱에 올라섰다. 아래에서 볼 때 이곳이 정상인줄 알았는데, 그 너머로 더 높은 봉우리가 또 하나 있다. 거기가 정상인 모양이다. 눈으로 볼 때, 그래도 제법 더 가야할 판. 맥이 풀린다. 한 숨을 몰아쉬고 또 힘을 내야만 했다. 체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낀다. 쉽게 하는 말이지만, 지나가는 등산객이 쏟아 내는 말도 비슷하다. 일 년 전과 오늘이 다르다고. 녹색 잎 사이로 철쭉은 활짝 펴 있다. 산 아래보다는 그래도 색깔은 더욱 선명한 붉은빛이다. 아기 얼굴에 흑점이 군데군데 있는 모습을 한 꽃잎은 예쁘기만 하다. 사마귀 머리를 닮은 암수 수술대는 머리를 치켜들고 세상 밖 구경이나 하는 모습으로 내밀고 있다.

황매산 안개 황매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왼편은 합천 쪽이고, 오른편은 산청 쪽. 산청에서 부는 바람으로 합천에서 인 안개가 산 능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 황매산 안개 황매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왼편은 합천 쪽이고, 오른편은 산청 쪽. 산청에서 부는 바람으로 합천에서 인 안개가 산 능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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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정상에 올랐다.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었으면 하는데, 몸을 식혀 줄 바람은 외출이라도 나갔나 보다. 산 아래를 보니 합천 쪽에서 인 안개가 산청 쪽 산등성이에 머물러 있다. 산청 쪽 바람이 합천 쪽 안개를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다. 며칠만이라도 좀 더 일찍 왔으면, 철쭉꽃 물결의 장관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땀은 온 몸을 적시고 갈증은 진한 목마름을 느끼게 한다. 물건을 파는 듯한 사람이 있어 물어보니, 물은 없고 아이스바만 있단다. 하나 사서 먹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몇 사람이 나무그늘에 쉬면서 물을 마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 체면불구하고 구원을 요청하니 흔쾌히 물병을 내 준다. 미안하고 쑥스럽기까지 하다. 멋쩍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한마디 했다.

"제가 절에 다니는데, 다음에 절에 가면 이 고마움을 여러분에게 복이 돌아가도록 기도 해 드리겠습니다."

여행객 힘들게 올랐던 황매산 정상에서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신 고마움에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다. 한국도로공사 단성영업소 마실기획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밝은 모습이다.
▲ 여행객 힘들게 올랐던 황매산 정상에서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신 고마움에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다. 한국도로공사 단성영업소 마실기획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밝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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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표지석에 있는 정상 바위에서 한동안 쉬며 사방팔방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서 제법 시간을 보내며 사홍서원(모든 보살의 네 가지 큰 서원.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모든 번뇌를 끊고, 모든 가르침을 배우고, 불도를 이루는 것)을 기도했다. 바위 아래로 내려가자 물을 얻어 마셨던 단체 여행객이 아직 쉬고 있다. 또 다시 다가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한국도로공사 단성영업소 마실기획 직원들이란다. 이어 기념사진도 한 장 찍어주겠다고 하니 모두 일어서 자리를 이동하고 포즈를 잡는다. 찰깍하고 작별인사를 하며 하산길이다.

철쭉꽃 아기 얼굴에 흑점이 군데군데 있는 모습을 한 꽃잎은 예쁘기만 하다. 사마귀 머리를 닮은 암수 수술대는 머리를 치켜들고 세상 밖 구경이나 하는 모습으로 내밀고 있다.
▲ 철쭉꽃 아기 얼굴에 흑점이 군데군데 있는 모습을 한 꽃잎은 예쁘기만 하다. 사마귀 머리를 닮은 암수 수술대는 머리를 치켜들고 세상 밖 구경이나 하는 모습으로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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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왔던 길을 똑 같이 내려가는 터라, 나무계단에서 또 다시 숫자를 세어보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 올 때 보다 힘이 덜 들어서인지 비교적 숫자 기억도 쉽다. 모두 583개. 그런데 올라 올 땐 564개라고 핸드폰에 저장돼 있다. 이렇게도 많이 차이가 날까 하는 의문이다. 하기야 어떤 여행객은, 4백 9십 몇 개라는 말을 하는 것도 들었다.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할까, 모두 내 마음의 문제란 생각이다.

산중턱에 자리한 기와지붕의 정자는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안개가 지붕을 살짝 넘나들며 춤추는 모습은 정말 고요하고 아늑한 자태다. 철쭉 꽃 숲길을 지나니 평평한 산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묵상하며 걸었다. 사진에서 보는 화려한 철쭉 군락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름 의미 있는 하루의 휴가였다.
황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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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남 거제지역신문인 <거제타임즈>와 <뉴스앤거제>에도 송부합니다.

0. 황매산철쭉제
. 기 간 : 2011. 5. 7 ~ 5. 22(16일간)
. 장 소 : 황매산군립공원내 철쭉군락지(해발800m지점)
. 주요행사 : 철쭉제례, 산상음악회, 연날리기, 보물찾기, 가훈써주기, 사진촬영대회 등
. 이용시설 : 토속음식점, 농특산물판매장, 2011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홍보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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