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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 서울전시회 '바보 노무현을 만나다'가 지난 12일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해서 오는 23일까지 열린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사진촬영을 할 수 있는 '트릭아트' 사진코너에서 한 관람객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막걸리 한잔을 채워주는 장면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 서울전시회 '바보 노무현을 만나다'가 지난 12일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해서 오는 23일까지 열린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사진촬영을 할 수 있는 '트릭아트' 사진코너에서 한 관람객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막걸리 한잔을 채워주는 장면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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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처지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검찰의 무리하고 비열한 수사와 여론전에 시달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평소의 그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대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그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과, 평생 추구했던 도덕적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상태에서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조차 지켜낼 힘이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는 자기 인식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진보와 개혁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노무현의 가치를 상찬(賞讚)한다. 누구는 친노가 아니라는 식의 성분 분석을 하는 친노 '적자'(嫡子)가 나오는가 하면, 친노의 지위는 특정 세력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얼굴을 붉히는 정치인들도 있을 정도로 친노 경쟁 또한 치열하다. 2년 전의 상황을 떠올리면, 상전벽해도 이만한 것이 없다. 정치적 친노의 꽃이 만발하고 있는 요즈음, 마음이 그리 편치 않으니 웬일인가?

2년 전 그때, 검찰과 이명박 정부의 행태가 부당하다고 지적하고 나선 사람은 극소수였다. 지식인들은 침묵했고, 민주당은 외면했으며, 진보 언론들은 일찌감치 그를 파렴치한 죄인으로 낙인 찍었다. 친노 적자들조차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를 옹호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2년 전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철저하게 고립된 채로 짓뭉개지고 있었다. 그의 처지를 생각할 때 제자들에게서조차 외면당한 채 홀로 십자가를 졌던 예수의 모습이 떠오르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2년 사이에 벌어진 사람들의 태도 변화를 마음 편히 바라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부활한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경제학자인 내가 드러내놓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부활을 환영하는 것은, 부당한 억압을 받고 외롭게 세상을 떠난 그가 마침내 신원(伸寃)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는 그가 재임 시에 펼친 기념비적인 경제정책들도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부활은 정책의 부활로 이어져야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 서울전시회 '바보 노무현을 만나다'.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 서울전시회 '바보 노무현을 만나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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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야기한 '사람 사는 세상'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었다.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구체적으로 마음에 그리고 있었고,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책들을 실제로 만들어 시행했다.

반칙과 특권과 불로소득이 사라지고 국민 모두가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는 정의로운 사회, 서울과 지방이 고르게 발전해서 지방이 이유 없이 차별받지 않는 균형발전 사회, 분배와 성장이 상호 촉진적으로 이루어지는 동반성장의 사회, 생각이 달라도 얼마든지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참된 민주주의 사회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린 사람 사는 세상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가 추진한 정책들은 역대 어느 대통령도 펼치지 못한 기념비적인 것들이었다.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고 쓸데없이 논란을 자초하는 미숙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정책 내용은 실제로 우리 사회를 사람 사는 세상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 획기적인 것들이 많았다.

내가 관심을 가진 부동산 분야만 보더라도, 부동산 실거래가 제도를 도입하여 시장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 부동산 보유세 강화의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법제화한 것, 개발이익 환수제도를 정비한 것,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행복도시와 혁신도시 건설을 추진한 것,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해서 주거복지의 수준을 높이고자 한 것 등 기념비적인 정책들이 그의 재임 시에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표만 의식하는 보통 정치인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정책들이 '마구' 쏟아진 셈이다. 정책 하나하나에 대해 기득권층이 엄청난 공격을 퍼부어댔고 그것이 마침내 일반 국민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음에도 끝까지 정책의 기조를 지켜내는 강단을 보인 것도 역대 대통령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모습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과 반대라면 무조건 괜찮다는 뜻)'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들 정책을 대부분 무력화시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부동산 정책을 예로 들어 말하자면, 종합부동산세, 개발이익 환수제도, 지역 균형발전 정책, 공공 임대주택 공급 정책 등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장기 정책들이 지난 3년 사이에 무력화되거나 크게 후퇴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천신만고 끝에 구축해 놓은 부동산 정책의 인프라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노무현의 정치적 부활은, 그가 생전에 우리 사회를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추진했던 주요 정책들의 부활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다. 그런데 노무현의 가치를 소리 높여 상찬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친노임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인사들이 지천에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 노무현의 정책을 부활시키자고 나서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2년 사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급변한 것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렵다.

종합부동산세의 복원이 급선무

예산 부수법안인 16개 감세법안 가운데 종합부동산세 개정안 등 13개 법안을 직권상정된 가운데 2008년 12월 12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감세법안에 반대하며 의장석 점거를 하다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끌려 내려가고 있다.
 예산 부수법안인 16개 감세법안 가운데 종합부동산세 개정안 등 13개 법안을 직권상정된 가운데 2008년 12월 12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감세법안에 반대하며 의장석 점거를 하다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끌려 내려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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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부동산세는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명박 정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종부세 무력화에 집중했다. 그 결과 종부세는 사실상 의미 없는 세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007년 48만 명에 달했던 납세 인원은 2008년에 41만 명으로 줄었고 2009년에는 21만 명으로 격감했으며, 또 2007년에 2조 4천억 원에 달했던 종부세 세수는 2009년에 1조 2천억 원으로 격감하였다. 2010년의 세수는 이보다 더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노무현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이라면 제일 먼저 종합부동산세로 상징되는 보유세 강화 정책의 복원을 외치는 것이 마땅하다. 특히 친노 '적자'들은 이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자칭 타칭 친노 세력 가운데 종부세 복원을 주장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종부세 복원을 외치고 있는 것은 민주당도, 국민참여당도 아닌,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이다. 그녀는 얼마 전 종부세 무력화가 지방정부의 재정을 얼마나 어렵게 만들었는지 조사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을 뿐 아니라, 종부세를 원상회복시키기 위한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진정성을 가진 정치인이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즘 정치인들 사이에 최대 화두는 복지국가이다. '역동적 복지국가', '정의로운 복지국가', '한국적 복지국가' 등 내세우는 구호도 다양하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복지국가 건설을 외치면서 종부세 복원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수 확보가 필수적이고 세수 확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세금을 먼저 걷을까 하는 것인데, 모든 세금 가운데 가장 우수한(세금을 혐오하는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에 의하면, '가장 덜 나쁜') 세금은 보유세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증세를 하려면, 소득세나 소비세처럼 생산과 유통에 부담을 주는 세금보다는 보유세를 강화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다른 세금을 증세하는 일은 그 다음에 할 일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 국민들은 노무현의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하고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고 하는 정치인들의 진정성을 테스트할 수 있는 좋은 리트머스 시험지를 가진 셈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종부세의 복원과 보유세 강화 정책의 재구축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가 여부이다. 입으로만 노무현의 가치를 말하고 복지국가를 운운하면서,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할 정책 과제를 외면하는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껍데기는 가라!"

비가 내리는 속에 열렸던 2010년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 때 모습.
 비가 내리는 속에 열렸던 2010년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 때 모습.
ⓒ 봉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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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무현, #종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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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헨리조지센터 대표,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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