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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였다. 논농사를 짓고 있는 고향집에, 큰형부가 오리 새끼를 시장에서 사오셨다. 농사를 짓지 않는 밭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연못을 청소하고 잡초를 뽑아 아담한 농장을 만들었다. 뒹굴어다니던 나무토막이나 합판을 주워 오리의 집을 만들고 울타리도 치고, 정말 그럴듯한 오리농장이었다.

 

큰형부는 몇 해 전엔 닭을 키운 적이 있다. 여름 내내 모이 주고 키웠지만, 큰형부는 직장생활 틈틈이 고향집에 들러 닭을 돌봐야 하니 힘들어했다. 그 모습에 애가 쓰인 어머니가 결국 모이 주는 일부터 닭 보살피는 일 모두를 떠맡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렇게 힘들게 한 해를 보낸 기억이 있기에 이번 오리의 등장 역시 우리 가족들에겐 그다지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때 어머니는 다시는 그 어떤 동물도 키우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는데, 큰형부가 느닷없이 오리를 사오는 바람에 큰형부와 어머니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주말마다 큰형부는 '닭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는지 오리를 정성을 다하여 돌보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도 큰형부의 그런 모습에 더 이상 막지는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오리를 같이 돌보며 지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서 차차 오리는 자랐다. 주인을 알아보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먹이 주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리는 유난히 어머니를 따랐다. 어머니의 목소리나 발소리가 나면 으레 어머니가 서 있는 곳으로 '꿱꿱'거리며 몰려들었고, 힘들긴 해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재미가 좋았던지 어머니는 가끔 자랑을 하시곤 했다.

 

"순희야, 있제, 오리가 마아 내가 저거 가까이 가믄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이다. 묵을 거 달라고 그라나. 암튼 시끄러버 죽겠다 아이가."

"엄마는 좋겠네. 엄마를 저렇게 좋아하니 말이다. 시끄러븐 기 아이라, 좋제?"

 

몰려든 오리들을 쳐다보며 손사래를 치시던 어머니. 구부러진 허리를 펴가며 집과 논을 왕래하는 것이 힘들 법도 한데, 오리들의 그런 행동들이 은근히 좋으신지 나를 논두렁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셨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왔다. 추수할 때도 오리 소리가 시끄럽다고 누구 한 사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그런 맛에 힘을 더 얻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절대로 닭이든 뭐든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어머니인데, 글쎄 어머니의 속마음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오리의 수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겨울이 되니 열 마리 남짓 남았다. 작년 겨울, 그 얼마나 추웠던가. 눈이 내리고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한파라며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던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오리 모이 주러 논에 가신 어머니는 감기가 들어 며칠씩 앓아눕기도 하고, 꼼짝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할 때가 많았다. 그사이 큰형부도 회사 일이 바빠 제대로 오리를 돌보지 못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큰형부의 왕래가 점차 줄어들면서 큰형부는 오리를 이웃에 나눠줘서 어머니의 고생을 줄여보라고 하였다. 하지만 매일 모이 주러 다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의 근심은 더 심해졌다. 어머니는 큰형부를 원망했고, 오리 걱정에 하루하루 힘들어하셨다.

 

어머니는 오리를 포기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람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일이지만 "몸이 안 따라주니 나도 죽겠다" 하시며 포기하셨다. 겨울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어머니는 이웃 할아버지에게 오리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하게 됐고, 그 이후로 오리에 대한 일은 할아버지 맘대로 하셔도 된다고 하셨다. 한결 마음 편해진 듯했다.

 

그렇게 춥고 매서운 겨울을 지나 올해 봄. 농사일이 줄줄이 겹쳐 있는 이맘때 논에서 살다시피 하신 어머니. 그 생각에 모처럼 쉬는 지난 휴일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김밥을 싸서 논으로 갔다. 논두렁에 호미 하나 들고 앉아 계시는 어머니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반가움에 어머니 곁에 가니 툭 한마디 던지셨다.

 

"아이고, 자들이 인자 내가 겨테 가도 소리도 안 내고 모르는 척한다. 우짤꼬."

"엄마는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라노. 맘을 비우래이. 우짜겠노. 자들도 지 어려불 때 돌봐준 주인 아는가보네."

"그른가보데이. 묵을 거 주도 내인테 안 오고, 묵을 거 던져주도 안 묵더라. 오라꼬 소리 질러도 안 온데이."

"할 수 없다 아이가. 그 추븐날 우리가 우째했노. 그래도 엄마가 우째할 수 없었다 아이가. 자들도 아마 엄마 마음 이해할 끼다. 섭섭해하지 마라. 엄마"

"그러키는 한데 그라도 맘이 영 그렇네."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불러봐도 모르는 척한다는 오리들이 섭섭했는지, 어머니는 오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이웃 할아버지가 다가서자 정말 장난처럼 오리들은 '꿱꿱'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달려들었고, 할아버지가 던져주는 먹이를 잘 먹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그저 할 말이 없었다. 바라보는 나도 그런데 여름 내내 키웠던 어머니는 오죽하겠는가 싶었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그 추운 겨울을 이기고 이렇게 살아서 알도 낳고 살도 찌고 건강해진 모습을 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이젠 정말 무엇이든 키우는 것은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태그:#오리, #어머니, #봄, #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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