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010년 5월 28일 밤. 부모는 종현이가 하늘나라로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때부터 종현이가 평소 좋아하던 동화책도 몇 권 읽어주고, 지난 9년 동안 행복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얘기해 주었다.

맥박이 200회를 넘었고 혈압은 40도 안 됐다. 열은 40.5℃가 넘어 머리와 목·어깨에 얼음 수건을 채우고 차갑게 식은 손발엔 핫팩을 올려놨다. 맥박이 200회와 0회를 오가며 요동치더니 종현이의 심장은 결국 멈췄다. 엄마는 종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많이 힘들었지? 이제 괜찮아. 하느님 품에 가서 편하게 지내렴.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웠고 정말 사랑한다. 이 세상에 너처럼 예쁜 아이는 없을 거야."      
         
.백혈병으로 하늘나라에 간 9살 정종현 환아와 그의 부모.
 .백혈병으로 하늘나라에 간 9살 정종현 환아와 그의 부모.
ⓒ 김영희

관련사진보기


완치율 90% 이상인 백혈병... 종현이는 갑자기 사망했다

2007년 4월. 6살 종현이는 어린이집을 마치면 아빠가 운영하는 바둑교실에 가서 형들과 바둑을 두며 즐겁게 살았다. 어느 날 얼굴색이 누렇고 눈 밑이 퉁퉁부어 동네 의원에서 피검사를 했다. 의사는 백혈병이 의심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날로 바로 대구의 큰 대학병원에 입원해 골수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종현이 병은 치료 성적이 좋은 백혈병 유형에 속해 골수이식을 받지 않고도 항암치료만으로 90% 이상 완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때부터 3년간 종현이는 16차 걸쳐 집중 항암치료를 받았다. 

2009년 8월. 종현이는 평소 만화 <고스트바둑왕>을 좋아했고, 바둑 실력이 한창 늘 때여서 종현이 부모는 백혈병·소아암 아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메이크어위시재단'에 프로 바둑기사 조훈현 국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소원신청을 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말고 종현이가 평생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시간이 지나도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8월 21일 종현이는 서울로 올라가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조훈현 국수님을 만났다. 조 국수는 종현이와 지도기를 갖고 "꼭 병마와 싸워 이기라"고 격려해 주었다. 이후 종현이 아빠도 그동안 병간호를 위해 그만두었던 바둑교실을 다시 시작했다.

.프로 바둑기사 조훈현 국수와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종현이.
 .프로 바둑기사 조훈현 국수와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종현이.
ⓒ 김영희

관련사진보기


2010년 3월. 9살이 된 종현이도 드디어 초등학생이 되었다. 1학년 3반이 되어 입학하는 날 종현이 부모는 종현이가 친구들처럼 자유롭고 건강하게 자라길 간절히 기도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종현이 부모는 마냥 행복했다. 완치의 꿈을 품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종현이 가정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일은 5월 19일에 일어났다.

종현이 부모 "'빈크리스틴'이 의사 실수로 정맥이 아닌 척수강으로"

종현이는 유지 항암치료 12사이클 중 마지막을 시작하기 위해 저녁 8시에 입원했다. 10시에 소아과병동 처치실에서 레지던트 1년 차가 척수강 내 주사로 항암제 '시타라빈' 3.5cc를, 정맥주사로 항암제 '빈크리스틴' 1.46cc를 놓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시타라빈'과 '빈크리스틴' 두 항암제는 무색 투명한 액체로 용량만 다를 뿐 색상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데도 1년 차 레지던트는 둘 다 꺼내놓고 투여를 했다. 문제는 척수강 내로 '시타라빈'이 투여되고 정맥주사로 '빈크리스틴'이 투여되어야 했는데, 종현이 부모 주장에 따르면 1년 차 레지던트의 실수로 두 항암제가 바뀌어 투여되었다고 한다.

환자는 보통 척수강 내로 ‘시타라빈’이라는 항암제를, 정맥주사로 ‘빈크리스틴’이라는 항암제를 투여 받는다.
▲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환자는 보통 척수강 내로 ‘시타라빈’이라는 항암제를, 정맥주사로 ‘빈크리스틴’이라는 항암제를 투여 받는다.
ⓒ 드러그인포

관련사진보기


빈크리스틴이 척수 주사로 주입된 6시간 후인 5월 20일 새벽 4시 종현이는 두통을 호소했고, 엉덩이가 잡아 뜯는 듯이 아프다고 해서 진통제를 맞았다. 하지만 새벽 6시가 되어 극심한 두통과 함께 눈이 아파 못 뜰 정도의 통증이 와서 마약성 진통제까지 맞았다. 이후부터는 차츰 다리부터 배꼽 아래까지 하체 마비가 왔고, 다음은 젖꼭지 아래, 겨드랑이, 팔 중간 부분, 손가락 순으로 상행성 마비가 진행되었다.

24시간이 지난 후 종현이는 소변 기능을 상실하고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에서도 2일 후에 의식을 완전히 잃었고, 3일 만에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다음, 7일 만인 5월 29일 새벽 1시 종현이는 사망하고 말았다.

종현이 부모는 빈크리스틴의 투약지도서에서 "빈크리스틴은 반드시 정맥 내로만 투여해야 하고 척수강 내로 투여하면 보통 사망하게 되어 있다"라고 적힌 주의문구를 봤다. 또 관련 논문에서 빈크리스틴이 척수강 내로 주입되었을 때의 증상과 종현이에게 나타난 증상이 일치하는 것도 알았다.

병원 측 "주사는 정확...종현이는 뇌수막염으로 사망"

종현이 부모는 병원 측에 빈크리스틴이 정맥이 아닌 척수강 내로 투여되어 종현이가 사망한 것이 아니냐며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병원 측은 "빈크리스틴은 정맥에 정확하게 투여됐고 척수강 내로 투여된 시타라빈의 부작용으로 뇌수막염이 발생해 종현이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우발적 뇌척수강 내 빈크리스틴 주입에 의한 뇌척수신경병증”에 나타는 증상과 종현이에게 나타난 증상이 거의 동일하다.
 “우발적 뇌척수강 내 빈크리스틴 주입에 의한 뇌척수신경병증”에 나타는 증상과 종현이에게 나타난 증상이 거의 동일하다.
ⓒ 안기종

관련사진보기


빈크리스틴은 정맥이 아닌 척수강 내로 들어가면 어떤 치료 방법도 없이 죽는 위험한 항암제이다. 그런데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환자들 가운데 시타라빈과 빈크리스틴 이 두 항암주사를 바꿔 놓아 사망한 환자가 종현이 외에도 더 있다는 것을 종현이 부모는 장례 후에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척수강 내로 주사되어 사망하는 사건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이와 동일한 사건이 자주 발생해 1989년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빈크리스틴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병원에 적절하고 분별 있는 기준을 마련하도록 촉구하는 권고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빈크리스틴 척수강 내 주사로 인한 백혈병 환아 사망 사건을 소개한 책
▲ 호모파베르의 불행한 진화 캐나다에서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빈크리스틴 척수강 내 주사로 인한 백혈병 환아 사망 사건을 소개한 책
ⓒ 알마출판사

관련사진보기


"의사는 이미 용서했다... 제2의 종현이 나오지 않길"

"종현이가 3년간 유지 항암치료 맨 마지막이 아니라 처음이나 중간 단계에 사망했다면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았을 거예요. 백혈병이 워낙 위중한 병이니까 치료 중에 사망한 거겠지.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2박3일 예정으로 입원했는데 첫날 검사 후에 상태가 너무 좋아서 의료진이 외박을 시켜줘서 종현이와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오후에 다시 병원에 들어갔어요. 저녁에 항암주사 맞고 그 다음 날 퇴원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종현이는 열흘 만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린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빈크리스틴이라는 단어로 인터넷에서 검색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놀랐어요.

빈크리스틴이 척수강 내로 주사되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지, 종현이 이전에도 많은 환자가 동일한 사고로 사망했고, 외국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빈크리스틴 주사 매뉴얼이 있고 그 매뉴얼대로만 빈크리스틴 주사를 놓았다면 종현이에게 그러한 불행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순서가 바뀌었지만 '제2의 종현이'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고 저희 가족이 나서기로 했어요. 의료소송은 백전백패한다며 주위에서 말렸지만 저희는 법정소송을 시작했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매뉴얼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도 했어요. 의료진에게 사과받는 거 이젠 더는 원하지 않아요. 이미 용서했어요. 의사 몇 명 형사처벌한다고 종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빈크리스틴 사고가 방지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결국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 백혈병 환아 정종현 엄마의 인터뷰 종현이 부모는 종현이의 불행한 죽음이 미래의 누군가를 살리는 의미 있는 희생으로 바꾸기 위해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
ⓒ 안기종

관련영상보기

종현이 부모는 병원을 상대로 현재 법정소송 중이다. 지난해 12월 7일 첫공판 때 재판부는 '시타라빈'과 '빈크리스틴'의 부작용에 대한 사실 조회를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에, 진료기록 감정을 순천향대병원 혈액종양내과에 의뢰하는 결정을 했다.
외국에서도 빈크리스틴 사고 발생... 병원 사실 조회 거부로 재판은 답보

그러나 삼성서울병원, 순천향대병원 모두 사실 조회 및 진료기록 감정을 거절해 재판부는 다시 중앙대병원과 이화여대병원에 의뢰했지만 이들도 모두 거절했다. 그래서 재판은 현재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2010년 10월. 종현이 부모는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빈크리스틴 척수강 내 주사로 인한 의료사고 예방을 요청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는 민원을 검토한 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대한신경과학회와 대한병원협회를 통해 전국 병원에 '빈크리스틴(Vincristine) 적용 관련 유의사항 및 피해 예방법 안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대한병원협회가 전국 병원에 권고한 빈크리스틴 적용 관련 유의사항 및 피해 예방법 안내 공문.
 대한병원협회가 전국 병원에 권고한 빈크리스틴 적용 관련 유의사항 및 피해 예방법 안내 공문.
ⓒ 대한병원협회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종현이 부모는 "협회나 학회에서 공문 하나 달랑 보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빈크리스틴과 같이 위험한 약제를 주사할 때는 모든 병원에서 반드시 두 번 세 번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안기종 기자는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6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