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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치솟는 물가, 해결이 난망한 실업난, 점점 더 절박해지는 서민경제는 이제는 '비상'이라기보다는 '일상'에 가깝다. 일상이 날마다 힘겨운 사람들, 또 어떤 '비상'의 일들이 그들의 뺨을 후려치며 달려들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 어처구니없다고 넘기면 그만이다. 세상 별별 일이 다 있고 역리가 순리를 거스른 것이 어디 하루이틀의 일인가? 하루하루 버티는 듯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군상들에게 이 정도 뉴스거리는 그냥 웃고 넘길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경천동지할 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무덤덤하다. 이들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현대사를 송두리째 다시 써야 할 대사건인데 말이다.

생각해보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의 시발점이 된, 그리고 지금도 4·19혁명과 더불어 국가 정체성의 커다란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시민들을 학살한 자들이, 알고 보니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들이라니. 30년을 불피워왔던 민주주의의 역사가 일거에 녹아내릴 놀라운 일이 아닌가?

개인의 호불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그들의 주장. 30년을 넘겨 이제는 역사의 기록이 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또 다시 산 자 앞에 진실과 거짓의 잣대를 들고 나타났다. 착잡하다. 지금까지 숱한 투쟁과 죽음으로 밝힌 일부의 진실조차 의심받아야 하다니.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통해 전남도청을 다시 장악하면서 5.18은 막을 내렸다. 사진은 '충정작전'으로 체포된 시민군.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통해 전남도청을 다시 장악하면서 5.18은 막을 내렸다. 사진은 '충정작전'으로 체포된 시민군.
ⓒ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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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시민들을 학살한 게 간첩 소행?

"북한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들로 구성된 자유북한군인연합이라는 탈북자 단체가 있습니다. 2006년 기자회견, 또 2010년 저서를 통해 가지고 또 그 저서에는 36명의 탈북자 증언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이제 특수부대가 '광주사태' 때 약 600명이 침투했다는 겁니다.(중략)

서해 바다를 통해 가지고 큰 배로 해 가지고 작은 배로 다 분산을 해 가지고 조로 나눠 가지고 침투해 와 가지고 북한 지령대로 광주시민들을 무차별 사살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국군이 죽인 것처럼 뒤집어씌우고…."
- 5월 13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전화로 인터뷰한 서석구 변호사(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본부 대표)의 말 가운데

어떻게 공중파 방송에서 검증도 되지 않은 이런 엄청난 말을 할 수 있는지. 지금까지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 나온 민간의 주장, 국가의 기록, 사법부의 판단, 정부의 조처 모두를 부정하는 발언인데, 저 사람은 저 말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18 기록물 유네스코에 등재될까
22일부터 26일까지 영국 맨체스터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총회에서 5·18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하지만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본부 대표 서석구 변호사,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등이 유네스코 총회 본부 데이비드 헵번 의장 등에게 등재 반대 서한을 보내 논란을 빚고 있다.

서석구 변호사의 말대로라면, 600여 명의 간첩이 대거 남파되어 광주사태(?) 때 민간인들을 사살하고, 공수부대의 만행으로 둔갑시켰으며, 이 결과 전두환과 노태우는 선의의 피해자가 되었으며, 역대 정권은 이를 은폐하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고, 자기네들이 그것을 막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재생산되는 간첩 개입설, 증거는 탈북자 증언 하나

이런 일련의 주장들은 이전에도 수차례 있어 왔다. 2008년 5월 29일 전주KBS <포커스전북21>에 참석한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인 원광대 사학과 이주천 교수도 탈북자에게 전화로 들었다며 "'광주사태' 때 북한군 500~600명이 들어왔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국민일보> 2008년 6월 4일). 또 서울교회 이종윤 목사는 "'5·18사건'도 북한 특수부대가 투입되었다는 사실이 자유북한군인연합 탈북단체의 양심선언으로 밝혀졌으며, 아직까지 공수부대원이 잔인한 행위를 했다고 믿고 있는 우리는 한심하다"는 설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불교방송> 2008년 10월 8일).

또 지만원씨는 탈북자들의 기자회견 등을 인용해 지난 2008년 자신의 홈페이지 '시스템클럽'에 북한 특수부대 개입 의혹 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여 5·18 관련단체 등에 의해 고발되었으나, 무죄 판결이 내려져 큰 논란이 일었다(<뉴시스> 2011년 1월 20일).

탈북단체의 증언이나 양심선언에서 정보를 얻었다는 동일한 주장이 역사적으로 규명된 최소한의 사실조차 무시된 채 재생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미흡했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청문회가 열리고 전두환과 노태우가 법정에 섰으나 화합과 용서라는 미명하에 면죄부를 받았다. 그뿐인가? 아직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어디에 묻혔는지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많다. 발포자가 누구인지, 발포를 명령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불분명하다. 5·18특별법이나 명문화된 기록들조차 1980년 광주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 규명하지 못했다.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반쪽에 불과했다.

2010년 5월 18일 오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30주년 서울 행사 기념식'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형형색색의 꽃들로 치장된 '축하 화환'을 보내 빈축을 샀자, 급히 흰 국화로 만들어진 조화로 교체했다.
 2010년 5월 18일 오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30주년 서울 행사 기념식'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형형색색의 꽃들로 치장된 '축하 화환'을 보내 빈축을 샀자, 급히 흰 국화로 만들어진 조화로 교체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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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일제가 망했는데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악질 경찰이나 지주들이 또 다시 지배세력으로 둔갑할 수 있었던 것은 '반일'보다는 '반공'을 내세운 이승만 정권이 반민특위 할동을 무력화시킨 것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없는 화해와 용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과 음모의 싹을 키워낼 수 있다. 그렇다면 여전히 살아 있는 자들이 밝혀내야 할 숙제가 많은 셈이다. 입증된 사실들을 다시 확인하고 규명되지 않은 문제들을 시간과 조건에 구애됨 없이 밝힐 수 있어야 올바른 과거 청산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전두환, 노태우 등 쿠데타 세력이 정권에 눈이 멀어 광주시민을 학살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로 촉발된 투쟁이 1987년 6월항쟁을 만들어냈으며, 아직까지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불을 지피는 용광로의 핵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심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녹여 없애려는 음모가 자라나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그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태그:#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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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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