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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주말(14일)이다. 삼주 째 연속해서 궂은 날이 이어지더니 오랜만에 날씨좋은 주말을 맞았다. 상쾌한 기분으로 금정산을 만나러 나섰다. 몇 주 동안 몸이 많이 지치고 굳어 있어 먼 데까지 못 가고, 멀지 않고 부담 없이 즐겨 찾는 금정산으로 갔다. 오월의 금정산은 또 어떻게 변해있을까. 

 

산과 들 온통 연초록 물결로 출렁인다. 거대한 물감통의 물감을 엎질러 놓은 듯 연초록으로 천지는 물들었다. 놀랍다. 자연의 생명력. 겁나게 발돋움하고서 뻗어 오르던 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꼭대기를 향해 타고 올라가고 있더니 이젠 완전정복이다. 단 한군데라도 생명 없는 곳, 느린 생명은 놔 둘 수 없다는 듯 계곡과 산과 들, 논두렁 밭두렁... 천지에 연초록빛이다.

 

이번에는 상마마을에서부터 금정산 고당봉까지 닿기로 한다. 범어사를 지나 상마마을로 접어든다. 범어사 계곡 쪽으로 오르는 길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일 테지만, 상마마을에서 오르는 등산길은 조용하고 호젓해서 좋다. 온통 연두 빛으로 물든 숲에 들어서자 연두빛 잎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아침햇살 비치고 온몸이 씻은 듯 상쾌해진다.

 

등산교실 실전교육으로 뭉친 근육들과 피로감이 씻은 듯 사라지고 방에 틀어박혀 글 쓴다, 책 읽는답시고 내내 머리 지끈지끈하도록 꽉꽉 채워 지친 노독을 연두빛 상쾌한 봄바람에 씻으니 가벼워지고 상쾌하다.

 

내 컴퓨터에 가득 들어있던 휴지통의 쓸데없는 것들을 클릭 해 휴지통비우기를 하듯 그동안의 여독을 비워내고 복잡하던 머리와 마음도 숲에서 걷고 또 걸으며 가벼워지고 상쾌해진다. 걸을수록 생각은 탈탈 비워진다. 몸도 마음도 산들바람처럼 가벼워지고 홀쭉해진 듯 하다.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생각비우기다. 아무리 생각을 붙들고 생각을 거듭하려고 해도 자연은 생각을 비우고 쉬라 한다. 자꾸만 생각은 달아난다. 앙금처럼 마음 밑바닥에 내려앉아 있던 상념들조차도 기어코 비워내고 만다. 등산은 생각 버리기다. 걷고 또 걸으면서 생각은 달아나고 자연은 우리를 쉬라고 한다.

 

대신에 산들바람과 따사로운 햇살, 나무와 울울창창한 숲길...대 자연을 가슴가슴마다 가득 채워준다. 이 힘으로 또 세상에 내려가고 다시 때 묻은 마음 씻으러 오라한다. 걸을수록 내 마음도 생각도 가벼워진다. 산들바람으로, 연두빛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드는 햇살과 푸르름으로 선물처럼 나를 물들인다.

 

산성 길 따라 걷는 길, 철쭉꽃 피어 붉은데

 

 

금정산은 동으로 금정구, 북으로는 경남 양산시, 남으로는 부산의 동래구, 서로는 북구와 접하는 넓은 지역에 위치한 산으로 도심 한가운데 있는 부산의 진산이다. 부산과 인근도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이며 산을 오르는 길이 많아 접근하기 쉽다.

 

현대인들의 삶 터전 가까이 녹색공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장군봉(727m)과 남으로는 상계봉(638m), 성지곡 뒷산인 백양산(642m)까지 길게 이어져있고 그 사이사이에 원효봉, 의상봉, 미륵봉, 파리봉, 동제봉 등 준봉들이 솟아 있다.

 

상마마을에서 금정산 숲길 걷는 이 길은 고당봉과 한껏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 걸어서 만나는 길이다. 제법 먼 거리를 한껏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진다. 계속 되는 숲길은 대부분 흙길이어서 발이 편하고 길도 호젓하다. 비온 뒤 불어난 개울물 소리 졸졸졸 상쾌하게 들려온다.

 

용락암 당에는 아침 햇살이 한 가득하다. 햇빛에 반짝이는 콸콸 솟는 약수 아 다시 걷는다. 산 중턱쯤 되는 곳에 있는 호젓한 숲길을 걷다가 위쪽으로 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간다. 제2망루와 3망루 사이의 안부다. 어느새 오전 11시 5분이다. 숲길 벗어나 능선 길 오르니 바람이 분다. 거칠거칠 불어도 봄바람이다.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듯 한꺼번에 많아진다. 호젓이 걷던 길 끝나고 이제 앞에서 뒤에서 사람들 사이로 걷는다.

 

4망루에 도착. 산성 길 따라 걷는 길에 듬성듬성 철쭉꽃 피어 붉다. 금정산성(사적 제215호)은 길이 18,845m로 총면적은 약 2,512천명이나 되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행정구역상 금정구, 북구, 동래구, 경남 양산시와 성벽을 기점으로 경계하고 있고 산 능선을 따라 성을 쌓은 것이 특징이다. 이 산성은 임진왜란의 혹독한 피해를 입은 동래부민의 난(亂)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피난겸 항전성이다. 

 

나날이 변해가네

 

금정산성 길에서 예전과 달라진 금정산의 모습을 발견한다. 원효봉 가는 길에 나무마루를 깔아서 걷기 편하고, 곳곳에 중봉들 소개 글판도 달라져 있다. 원효봉 지나서 또 얼마동안 나무마루를 깔아 평지 걷듯 하게 만들어놓은 길도 보인다. 참 많이 달라졌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금정산성 길을 걷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변해간다.

 

금정산성길 따라 걸으면서 눈길 닿는 높은 화강암 바위들, 그 속에 나비바위도 무명바위도 조금만 높은 암봉만 보아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에전에 그 높은 암봉들이 나와는 무관한 것들이었는데, 등산교실에서 백운슬랩과 아리랑릿지를 경험한 후부터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 아니다. 바위의 높이와 난해도를 눈으로 가늠해보기도 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본다. 이 또한 변화다.

 

오랜만에 걷는 금정산성길, 연초록으로 물든 5월에 만난 감회가 새롭다. 과연 5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산성 길 걷다가 돌아보고 또 앞을 보고 하면서 걷는다. 산성 길은 언제나 마음과 발걸음에 쉼표를 찍게 만드는 길이다. 순간 순간 붙들리면서 다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길.

 

그동안 몸이 많이 지쳐있었나 보다. 꽤 먼 길을 에둘러 걷고 또 걸었고 몇 주간의 여독도 남아있던 터라 북문 쉼터 바위에서 느긋하게 쉬어 가기로 한다. 북문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북문에서 고당봉 쪽으로 가는 길, 약수터 옆에 있던 금정산장은 헐어버리고 새로 생긴 건물이 시선을 끈다.

 

새로 번듯하게 지은 이 건물은 등산인의 쉼터가 될 곳으로 금정산 등산문화탐방지원센터다. 이곳 북문엔 많은 산꾼과 나들이 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아직 개장은 하지 않았지만 반듯하게 지은 건물이 제법 규모있게 지어져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이용할 것 같다.

 

우린 금정산 등산문화탐방지원센터 뒤쪽 숲에 든다. 널따란 바위 바위마다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적당한 바위 하나 골라 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 점심을 먹고 피곤해서 바위에 아예 누웠다. 설핏 잠이 들었나보다. 사람들 소곤대는 소리 곳곳에서 들려온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한동안 바위에 그냥 누워 쉰다. 몸이 많이 지쳐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걷는 길, 너무 오래 쉬었나. 걸음에 힘이 붙질 않고 몸은 무겁다. 얼마동안 걷다보니 탄력이 붙는다. 금정산 고당봉 정상 바위에 올라 망중한...초록은 무섭게 타고 올라 금정산 전체를 뒤덮고 있고 이웃한 산산이 온통 초록 물결로 번져 천지엔 푸른 불꽃 화르르 지펴놓았다. 자연의 압도하는 힘에 그 위력에 그저 놀랍다.

 

아침 9시 30분부터 시작해 금정산 고당봉에 이르고 고당봉 뒷길로 해서 호젓한 숲길로 다시 하산한다. 산 오름 길, 하산길이 모두 한적해서 좋다. 나날이 푸르러 가는 금정산에서 느릿느릿 걸으며 쉼을 얻는 하루였다. 탈탈 털린 생각들...세상에서 다시 꽉 차오르면 비워내러 다시 산에 오르리라.

 

산행수첩

상마마을(9:40)-용락암(10:10)-무명릿지(11:05)-4망루(11:20)-의상봉(11:30)-원효봉(12:15)-북문(12:30)-금정산문화탐방지원센터 옆에서 휴식 후 출발(2:25)-고당봉(801m/3:15)-하산(3:30)-범어사(4:40)-상마마을(5:00)


태그:#금정산,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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