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하던 25세의 김훈 중위가 죽었다.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은 3성 장군이었다. 1997년 12월, 36년간의 군대생활을 그는 영광스럽게 마쳤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두 달 후인 1998년 2월 24일, 장남 김훈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군의 아들이 자살?

물론 유가족은 이 '자살' 사건을 믿을 수 없었다. 유서도 없었고, 군이 발표한 당일 상황과 사인에는 수많은 허점과 오류투성이뿐이었다. 자살에 사용되었다는 권총도 김훈의 것이 아니었고 총을 발사했다는 오른손에는 화약흔이 없었고 오히려 왼손에서 검출되었다. 총을 쏜 사람의 손에서는 모두 화약흔이 검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에 기초한 조사결과들은 모두 군에 의해 묵살됐다.

사건 발생 시간에 대해서도 소대원들의 진술이 전혀 일치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알리바이도 불분명했다. 더욱이 김훈 중위가 사망한 사건현장의 유류품은 사건이 발생한 후 누군가가 손을 댄 상태였다. 그럼에도 군은 김훈 중위의 죽음을 무조건 '자살'로 몰아갔다.

 김희철 감독

김희철 감독 ⓒ 김희철


김희철, 그는 독립영화 감독이다. 2004년 그는 <진실의 문>이라는 김훈의 사망사건을 다룬 독립영화를 만들어 그 죽음의 진상을 알렸다. 7년이 지난 2011년, 김 감독은 다시 한 번 김훈 중위사건을 세상을 알리고자 하는 염원으로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또 다른 독립영화를 만들었다.

김 감독은 과거 한때 육사에 적을 뒀고, 김훈 생도를 만났다. 김훈은 김 감독보다 육사 2년 선배였다. 김훈에 대한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생도들보다 강인하고 모범적인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려는 김 감독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에 어떤 경의와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지난 13일 김희철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국방부 주장에 허점 많아... 김훈 중위 유족 고통 외면할 수 없어"

 <사랑할 수 없는 시간> 영화의 한 장면

<사랑할 수 없는 시간> 영화의 한 장면 ⓒ 김희철


- 이번에 김훈 중위 사건을 다룬 영화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을 만들기로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2004년에 <진실의 문>이라는 작품을 만들어서 잊혀지고 있는 김훈 중위 사건을 다시 한 번 이슈화시키고자 했다. 인디다큐페스티발, 서울독립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되었고 상도 몇 개 받았다. 하지만 작은 문제가 생겨 어쩔 수 없이 작품의 개봉을 무산시켰다. 이후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라는 기관이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것이라고 정말 많이 기대했다. 국방부의 주장에는 너무나 많은 허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에 들어서자 위원회의 조사방향이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이를 직감한 김훈의 아버지, 김척 장군께서 나에게 촬영 기록을 부탁하셨다. 그때는 이 사건을 소재로 다시 작품을 만들 생각이 없었고, 당연히 도와드리는 차원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촬영본이 쌓이면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건의 상황을 작품화하여 알리고 싶었다. <진실의 문> 때와는 다르게 제법 큰 예산 규모로 기획을 해서 상업적이면서도 사회성 짙은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제작비를 충분히 마련하는 데 실패했고 결과적으로는 초저예산 영화가 되었다."

- 영화를 보면 "왜 나는 타인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일을 해야 하나?"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라는 고통스런 자문을 했는데, 왜 이런 돈도 별로 되지 않는 영화를 계속 만드는가?
"그것이 나에게도 항상 미스터리다. 때론 이런 비상업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에 심한 회의감이 든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영화 만드는 일은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매우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를 부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물질적으로 또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김훈 중위 유족이 겪고 있는 고통을 냉정하게 외면할 수 없었다. 계속 해야 했다. 어떻게든 작업을 끝내야 다른 것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 인권문제를 다루는 군의문사위원회를 MB 정부는 경제논리를 내세워 폐지했다. 정부에 영화감독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사랑할 수 없는 시간> 마지막 부분에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질문을 내레이션으로 넣었다.
- 당신은 사람이 왜 죽어갔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 당신은 사람들이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까?'
- 당신은 우리가 정말로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 당신은 사람의 기억이 희미해져가도 영화가 그 기억을 선명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위의 두 질문의 '당신'은 어리석은 위정자들이고, 아래 두 질문의 당신은 관객분들이다."

 <사랑할 수 없는 시간> 영화의 한 장면

<사랑할 수 없는 시간> 영화의 한 장면 ⓒ 김희철


- 군 의문사 위원회가 3년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김훈 중위 사건을 조사했지만 결과는 '모르겠다'는 진실규명 불능이다. 이런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에 대해 국내인권단체나, 민변, 국제인권기구 등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는가?
"내가 단체나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당장 해결해야 하는 현안들 때문에, 단체나 기구들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김훈 중위 사건은 불행한 사건이긴 하나 시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아닐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의 힘을 믿는다. 10여 년이 넘게 진상규명작업을 계속해온 것은 정의로운 단체도 아니고 힘 있는 기구도 아닌 김훈 중위 아버지 개인이다. 나도 영화 만드는 개인일 뿐이다. 개인은 약하지만, 끈질기고 집요하다. 작은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어렵게 어렵게 지켜온 것은 개인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어 힘있는 큰 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용기 있게 진실을 요구할 수 있는 개인이다. 이 기사를 보시는 수많은 개인들이 유족과 함께 항의하고 진실을 요구해 주시길 바란다."

"영화 보는 관객들이 적극적인 목소리 낼 때, 희망 생겨"

- 영화 내레이션에서 "죄 없는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고, 거짓말로 대통령도 되는 세상인데, 진실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다소 비관적인 한탄을 했는데, 물론 어두운 현실이지만 체념하기 보다는 실의에 빠진 유가족을 위해서라도 좀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줘야 하지 않았나?
"맞다. 유족이 그 마지막 내레이션을 보시면 기분이 언짢으실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절망에 절망을 거듭해서 자살하고 싶은 심정, 비극적인 상황 그 자체를 전달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신 관객분들이 공분(共憤)해 주시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실 때 희망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장군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장군 ⓒ 김희철



- 향후 김훈 중위 사건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는지. 
"정부가 내린 공식적인 결과는 '진상규명 불능'이다. 하지만, 김훈 중위의 유족을 비롯해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시는 고상만님, 이덕우 변호사님, 정희상 기자님 등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온 몇몇 개인들이 계속 이 사건의 의혹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나도 그 일에 다양한 방법으로 합류할 것이다."

- 영화 만들기, 특별히 독립영화 만들기는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영화는 다른 예술과 다르게 산업적인 성격이 강하고 대중적인 요소가 크다. 그렇지만, 영화는 기록성을 가진 문화재이고 정신적 가치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빠르고 현란한 상업영화들을 많이 접하는 관객들에게 내 영화는 다소 느리고 어렵고 무거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한 소비재로 영화를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만든 사람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소중한 가치들을 기억하고 그것을 실천할 때 영화는 우리의 삶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비타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의 의미, 범위는 점점 확장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독립영화라고 국한시키지는 않겠다."     

김희철 감독은?
김희철 감독은 1975년생.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전문사과정을 졸업. 2001년 <나의 아버지>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으며, 판문점 김훈 중위 사건을 다룬 <진실의 문>은 2005년 제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평론가상을 수상. 이후 조작간첩사건을 다룬 <무죄>, <기억하는 공간> 등의 작업을 했고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은 올해 열렸던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경쟁부문에서 상영했다.
-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대중적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쉰들러 리스트> 등처럼 차라리 상업영화 쪽으로 제작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예전에는 그런 포부도 있었지만, 지금은 좀 많이 지쳐서 더 이상 이 사건을 작업으로 풀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상업영화 만드시는 분들이 이 사건을 영화화하고자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돕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체인질링>같은 대작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찾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체인질링>에서 실종된 아이의 어머니 역을 맡아 외롭게 진실을 외치는 '안젤리나 졸리'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왜 한국인들이 김훈 중위 사건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의혹에 둘러싸인 사건들을 많이 접한다. 사람들은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지만, 바쁘기 때문에 또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13년이 지나고 있지만 사람들은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 그곳에서 발생했던 김훈 중위 사건을 기억한다. 이 사건은 1984년 허원근 일병 사건과 더불어 수많은 군의문사 사건들의 대표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건이 해결될 때 사람들은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는 또 하나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척 장군은 군에 오래 계셨는데 국방부나 군인 중에서 좀 더 이 사건에 동정적 입장을 취하거나 비공식적으로 진실규명을 위해 협조해 주는 분은 없는가?
"김척 장군의 육군사관학교 동문들이 2010년 가을에 육사 총동창회 명의로 국방부에 건의했다. 군의문사위원회에서 자살도 아니고 타살도 아니라는 '진상규명불능' 결정이 내려졌으므로 11년 전 국방부가 내린 '자살' 결론은 비합리적이며, 동문 김훈 중위의 국립묘지 안장을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국방부의 살아있는 권력은 선배들의 합리적인 주장을 무시했다. 국방부는 여전히 자신들이 과거에 내렸던 결론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외로운 싸움은 계속 진행 중이다. 김척 장군은 국가보훈처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자신이 그동안 수집하고 분석해 온 사건 관련 자료와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국방부의 자살주장이 상식에 맞지 않음을 설명하고 아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훈처는 국방부의 결론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편의주의적 답변만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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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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