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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기회 주어진다면, 간첩질 할랍니다" 국보법 전과자… 합참 전산센터 4년 출입, 기밀 빼냈다>
 지난 5월 2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기회 주어진다면, 간첩질 할랍니다" 국보법 전과자… 합참 전산센터 4년 출입, 기밀 빼냈다>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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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전과자····합참 전산센터 4년 출입, 기밀 빼냈다, 그의 파일엔 '전시 지휘통제 시스템'까지 있었다."

지난 2일 <조선일보>의 보도내용이다. <조선일보>는 위와 같은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한 전산관리업체 웹 개발자 K(44)씨가 군 기밀 및 정부기관 전산 자료를 빼낸 혐의로 공안당국에 검거된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는 민주노동당원 K씨가 정부기관의 전산 프로그램을 개발·관리하는 N사에 입사한 뒤 합동참모본부(합참)와 정부통합전산센터 등을 수시로 출입하며 군 기밀 및 정부기관 전산 자료를 빼낸 혐의로 공안 당국에 검거됐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 신문은 또 "K씨가 유출한 자료 중에는 합동참모본부(아래 합참)의 '통합지휘통제체계(KJCCS) 제안요청서'와 우리 군의 '노드 IP 주소' 등 군 기밀이 다수 포함됐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이 신문은 K씨가 2002년 5월 민노당에 입당한 뒤 2003년 8월 당 게시판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간첩질' 할랍니다"라고 적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6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만난 K씨는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검찰과 <조선일보>가 물증도 없이 나를 간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항변했다. 업무용 노트북에 합참의 입찰제안서와 노드 IP 주소가 저장되어 있던 것은 회사의 일상적 업무수행을 위한 것이었을 뿐 제3자에게 유출한 적은 없다는 게 K씨의 주장이다.

K씨는 또 "내가 마치 군 기밀정보를 빼내 북한으로 유출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는데, 이 같은 내용은 구속영장에도 없는 혐의"라며 "허위보도에 대해서는 반드시 법적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 2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K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수원지방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없고 구속시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기각한 바 있다. 현재 K씨는 불구속 상태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고 검찰은 K씨에 대한 혐의사실을 보강해 다시 영장을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2일 <연합뉴스>는 N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 "(K씨가 참여한) 합참 등과 관련된 프로젝트는 국가기밀이 아닌 일상적인 성격의 것이었고 사건에 관련된 K씨는 기밀을 다룰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며 관련성을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또 이 관계자가 "K씨는 현장에 투입된 사람이 아니라 본사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이고 검찰이 중요한 인터넷 주소(IP)라고 밝힌 것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며 "언론에서 드러난 혐의는 부풀려진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K씨의 변호를 맡은 설창일 변호사(로피플 법률사무소)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경찰에서 장기간 수사를 했고 본인과 N사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도 광범위하게 진행했는데, K씨에 대한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게 의도적으로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 변호사는 "검찰이 기소하기도 전에 <조선일보>에 보도가 나간 것은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한다"며 "민·형사상 손해배상, 반론·정정 보도 청구 등 구제절차를 밟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위터에 글 올렸더니 경찰이 집-회사 압수수색"

다음은 K씨와의 나눈 일문일답이다.

- 사건의 발단이 궁금하다.
"지난해 11월 트위터에 '연평도 사건의 본질은 NLL 문제다', '6·15와 10·4 선언은 우리민족 모두의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다'는 내용의 글들을 올렸는데, 12월 2일 아침 8시경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 형사 7~8명이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한다며 집으로 들어왔다. 같은 시간 회사에서도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경찰은 업무용 노트북과 외장하드, USB와 내가 가지고 있던 북한 관련 서적 등을 압수해가면서 출두요구서를 주고 갔다.

12월 8일 수원에 있는 경기경찰청 대공분실로 불려 가서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연말과 연초, 설을 제외하고 매주 1번 정도씩 경찰 조사를 받았고 4월 26일 수원지검에 출두해서 한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사로부터 4월 중에 기소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주초에 갑자기 <조선일보>에 내가 군사기밀을 유출했다는 보도가 나간 것이다."

- 그러면 경찰이 처음부터 군사기밀 유출 혐의를 둔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처음에는 트위터를 이용해서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 혐의였다. 그러다가 경찰이 압수해간 업무용 노트북에서 업무 관련 폴더들을 발견하고 '자진지원' 혐의를 추가해서 지난 2월 21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법원에 의해 기각당했다."

"앞뒤 자르고 떼어내서 간첩행위 자원한 것처럼 보도"

- <조선일보>는 당신이 지난 2003년 민주노동당 게시판에 "간첩질 할랍니다"라는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2002년에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이듬해 민주노동당 고문이었던 강아무개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민주노동당 게시판에서는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진중권씨와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북한과 다양한 형태의 접촉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글을 쓴 것이다. '남북 간에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하는 것을 간첩이라고 한다면 나는 간첩질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다양한 접촉과 교류가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일보>는 전후맥락 없이 앞뒤 자르고 이 부분만 떼어내서 마치 내가 스스로 간첩행위를 자원했던 것처럼 보도했다."

- 기사에서는 두 차례 방북한 것도 부각됐는데.
"지난 2007년 1월과 2008년 2월 통일부에 신고하고 합법적으로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 두 번 다 1박 2일 코스였다. 첫 번째 방북에서 금강산 일출을 꼭 보고 싶었는데, 전날 과음을 하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일출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 다시 간 것이다."

- 북한에서 운영하는 인터넷사이트 '려명' 관계자와 이메일로 접촉한 사실이 있다는데.
"지난 2008년 4월경 <통일뉴스>에서 이 사이트를 소개한 기사를 읽고 호기심에서 접속했다. 책을 주문 받는다는 내용이 있어서 '려명' 관계자와 3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았지만 책값을 지불하거나 책을 받지는 않았다. 오고 간 이메일 내용은 모두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다."

- 당신의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도 문제를 삼았다.
"지난 2002년 7월 25일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에 체포되어 구속된 적이 있다. 그전에 2001년 말부터 2002년 초까지 민주노동당 당원 게시판에 북한과 관련된 글을 올렸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프리첼에 주체사상 커뮤니티를 만든 것도 문제 삼았는데 몇 개의 글을 링크해서 올려놓았을 뿐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반포, 찬양·고무죄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난 개발자... 제안요청서 갖고 있는 게 당연"

- <조선일보>는 "합참 전산센터를 15번 들락거리며 빼낸 군기밀이 '통합지휘통제체계(KJCCS) 제안요청서'와 '노드 IP 주소'"라고 보도했는데, 노트북에 이런 자료가 저장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통합운영관리소프트웨어 운영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웹 어플리케이션 서버(WAS)의 성능을 모니터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개발자다. KJCCS 제안요청서와 노드 IP주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프로그램 개발자가 업무처리를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다. 프로그램 유지·보수를 위해서는 발주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안요청서도 회사의 팀장을 통해서 전달받았다. '노드 IP 주소'는 서버 수정을 위해 일종의 '관리자 서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고유 IP 정보다. 작업을 의뢰한 쪽이 노드 IP를 알려주는 건 기본이다. 그리고 맹세코 이 정보를 업무외의 목적으로 제3자에게 제공한 적은 없다.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도 내가 외부에 이런 정보를 넘겼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 회사 보안서약서 제출을 거부했다는데 특별한 사유가 있는가.
"2005년 입사했는데 회사에서는 올해 초에 보안서약서를 제출하라는 통보를 했다. 그런데 이 보안서약서 조항 중에는 '퇴사 후에도 회사가 요구하면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무료봉사하라는 얘기와 마찬가지인데, 이것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내 입장을 회사에 전달하고 의견 조율을 하는 과정이었고, 조율이 되면 서명을 하려고 했다."

- 합참 이외에 정부기관과 은행 전산자료를 유출시킨 것처럼 보도됐는데.
"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관리자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관리자는 해당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만 볼 수 있다. 마치 해당 기관의 모든 정보를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것처럼 보도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은행에 우리 측이 납품한 프로그램이 '인트라넷'이라면 이 프로그램에만 접근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일부 언론들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관리자가 이 은행의 모든 금융정보 즉 자산현황, 고객정보, 여타 기밀사항까지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사를 썼다. 그렇지만 이런 전산자료들은 내가 접근할 수도 없고 더더구나 유출시킬 수도 없다."

- 더 하고 싶은 말은.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내가 군 기밀 같은 것을 빼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N사에 입사한 것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먼저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잡 코리아'에 이력서를 올려놓았는데 그쪽에서 연락이 와서 입사를 한 것이다. 그 회사가 어떤 곳에 납품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합참에도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직원 입장에서 회사에서 시키면 해야 되지 않나. 트위터에 올린 글로 시작된 수사를 검찰과 경찰이 무리하게 확대하고 있는 것 같다."


태그:#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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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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