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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바람 다리

안목 해변의 모텔에서 자는 밤, 바다가 밤새 앓는 고양이처럼 그르렁거렸다. 발코니로 통하는 문을 닫았는데도 그 소리는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려왔다. 그 밤, 배낭에 찔러 넣어 온 추리소설을 밤이 이슥하도록 읽다가 잠을 청했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아 몇 번이나 자다가 깨다가 결국 늦잠을 자고 말았다. 혼자 자니 누가 흔들어 깨우는 것도 아니고 또 서둘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하루 종일 걸을 것이니까.

 

천천히 배낭을 꾸렸다. 아침부터 횟집에 들어갈 수 없어서 아침식사는 걸렀다. 속이 비면 더 가뿐하게 걸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신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타서 마셨다. 달달한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정동진. 지도만 봐서는 해안을 따라 걸으면 오후 3시면 넉넉하게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남항진부터 하시동까지 해안도로가 없어 내륙을 에둘러 걸어야했기 때문에 예상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아침 건너 뛰고 걸었는데, 이러다가 쫄쫄 굶겠네

 

 강릉항

강릉항과 남항진을 잇는 솔바람다리에 오르니 바람이 사정없이 불어대고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귀가 먹먹해지도록 요란한 소리를 낸다. 한 남자가 연을 들고 다리 가운데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바람이 부니 연을 날리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한 것은 잠시였다. 연이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던 것. 그들을 지나쳐 다리를 건넜다.

 

안목해변에는 횟집이며, 모텔이며, 카페들로 흥청거리는데 비해 남항진은 한가로웠다. 민박집과 횟집이 몇 군데 보이긴 했지만 안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잘 걸 그랬다, 는 생각이 들었다.

 

남항진부터 해안도로가 사라졌다. 길은 내륙으로 이어졌고, 나는 그 길을 걸었다. 푸른 하늘에는 구름들이 얇은 솜처럼 펼쳐져 있었다. 걷다보니 철도 건널목이 보인다. 철로를 따라가면 한쪽은 강릉역으로, 반대쪽은 정동진으로 갈 수 있으리라.

 

길은 7번 국도로 이어진다. 대형 트럭이, 대형 버스가 씽씽 신나게 달리는 길. 갓길에 바싹 붙어 걷는다. 자동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뽀얀 먼지가 일어난다. 황사가 날릴 거라고 했는데,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내 잊었다. 지도를 들여다보니 곧 하시동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올 것 같다.

 

어디선가 점심식사를 하지 않는다면 하루 종일 쫄쫄 굶게 생겼다, 는 생각을 하다가 7번국도 건너편에 음식점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반갑다. 4차선 국도를 건너야한다는 건데,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횡단보도가 있다. 신호등도 있고.

 

 닭곰탕

길을 건너 음식점으로 가서 안을 기웃거리니 아무도 없다. 다시 밖으로 나와 쥔장을 찾았더니 밖에서 커다란 무쇠 솥에 장작을 지피던 쥔장이 안으로 들어가란다. 닭곰탕을 한 그릇 시켜 달게 먹었다. 반찬으로 곁들인 열무김치가 입에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맛있다.

 

할미꽃 옆에서 돗자리 깔고 낮잠이나 잘까

 

다시 7번 국도를 건너 하시동으로 가는 샛길로 빠졌다. 그 길에서 철로와 만났다. 철도를 따라 노란 유채꽃이 화사하게 피어 화사한 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나게 해준다. 그 길을 벗어나니 이번에는 튤립이다. 붉은 색 꽃과 노란 색 꽃이 아주 선명한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바람에 하늘거리면서 여린 꽃들이 흔들린다. 풍호 마을로 들어섰다가 빠져 나가는 길에 무덤들이 한 무더기 모여 있는 곳에서 할미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할미꽃

걷다가 만나는 꽃들은 늘 내 눈길을 잡아끌다 못해 발걸음까지 멈추게 한다. 그래서 꽃 주변을 한동안 서성이게 만든다. 할미꽃을 보면서 무덤과 무덤 사이에 돗자리를 깔고 낮잠을 한숨 자고 갈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햇살이 너무 따가워 포기했다.

 

하시동과 안인 사구를 지나니 철조망에 가로 막힌 바다가 나타난다. 바다 앞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철조망을 두르는 공사를 기념하는 네모반듯한 돌이 있기에 그 위에 배낭을 부려놓고, 나도 올라앉았다.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었다. 이상하다. 고작 하루 반을 걸었을 뿐인데 발바닥에서 열이 난다. 새끼발가락 발톱이 그 옆 발가락을 파고들어 상처가 나서 욱신거린다. 집을 나서기 전에 발톱 깎는 걸 잊었더니 살을 파고든 것이다. 1회용 밴드를 꺼내 발가락에 허리띠처럼 둘렀다. 

 

바닷바람이 철조망을 넘어 불어온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달구어진 발바닥을 식히고, 걷느라고 붉어진 뺨까지 식혀준다. 안목해변에는 사람들이 북적였건만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철조망에 가로 막혀 바다로 나갈 수 없는 곳이니 관광객들이 이 길을 찾을 리 없으므로. 나처럼 걷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발바닥의 열기가 어느 정도 가신 듯해 양말을 신는다. 땀으로 푹 젖은 양말도 바닷바람에 서늘해져 신으니 찬찜질을 하는 것 같다. 신발 끈도 다시 조이고, 길 위로 나선다. 염전해변을 지나 닿은 곳은 안인항이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사람이 그리워서..."

 

안인항은 오래 전에 와봤기에 낯설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바다를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더니 막다른 길이다. 계속 앞으로 가려면 바다에 뛰어들어야 할 판이다. 온 길을 되짚어 가려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위로 올라가는 좁은 돌계단이 있다. 계단 끝에서 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계단 중간쯤에 할머니 한 분이 허리를 숙인 채 뒷짐을 지고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조금 뒤, 할머니는 계단에 걸터앉았고, 나는 계단을 오르던 걸음을 멈추고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할머니가 느닷없이 말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돈 안 받을 테니까."

그 말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할머니는 금방 덧붙였다.

"사람이 그리워서 그래."

 

그 말을 들으니 걸음이 더 떼어지지 않았다. 배낭을 내려놓고 할머니 곁에 앉았다. 자고 갈 수는 없어도 잠시나마 할머니의 말동무는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계단에 앉으니 푸른 동해가 정면으로 펼쳐진다. 그 바다 위를 하얀 배 한 척이 미끄러지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정동진에서 안목까지 운행하는 유람선이라고 했다.

 

슬하에 다섯 남매를 두었지만 지금은 안인항에서 홀로 산다는 할머니는 내가 곁에 앉자마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나이는 일흔 여덟이요, 삼십 년 동안 고기(생선) 장사를 해서 자식들을 가르쳤다는 할머니는 장성하여 성공한 자식들 이야기를 오래도록 했다.

 

자식들은 전부 외지에서 산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1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단다. 젊어서 고생할 때는 나이 들어서 며느리가 해주는 따순 밥을 먹을 줄 알았더니, 나이를 먹으니 세상이 변했더란다. 요즘 사람들이 전부 그런 걸 어떡해, 하는 말을 할머니는 몇 번이나 되풀이 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을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여 있노라.

 

한참 뒤에 할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귀를 기울여 할머니의 노래를 들었다. '황성옛터'였다. 할머니의 지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그래서일까,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나도 이다음에 늙어 홀로 남게 된다면, 이 할머니처럼 사람이 그리워서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할까?

 

작년 봄에 청산도에 갔을 때 나를 재워주셨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 할머니 역시 홀로 살고 계셨고, 나처럼 여행하다가 잘 곳을 찾지 못한 사람을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재워주시곤 하셨다. 재워주기만 하셨나. 정성들여 저녁밥과 아침밥을 차려 주셨지. 그리고 아침에 다시 길로 나서는 내게 당부하셨다. 잘 곳 없으면 다시 오라고. 청산도에도 다시 한 번 가야하는데, 못 가고 있다.

 

할머니의 노래가 끝나자 나는 다시 한 번 할머니에게 노래를 청해 들었다. 할머니는 노래를 부르고 난 뒤 말씀하셨다. 치매에 걸리지 않게 자꾸 노래를 부르라, 고 아들이 그랬다고. 노래는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는 할머니의 눈물겨운 노력이었던 것이다.

 

노래가 끝난 뒤에도 할머니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자꾸 되풀이 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이따금 추임새를 넣어가며 들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불과한 낯선 사람을 붙들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할머니에게서 진한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지. 내가 그 할머니처럼 늙어서 외롭게 홀로 살게 될 지 뉘라서 알겠는가. 안인항은 그렇게 할머니의 노래와 함께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게 되었다. 다시 배낭을 짊어지는 내게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다음에 꼭 와서 자고 가.

 

안인항에서부터 정동진까지는 바다를 따라 7번국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차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나는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발바닥에서는 불이 나고 있었다. 유난히 화끈거리는 발은 아무래도 고어텍스 등산화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걷는 길이 산길이나 흙길이 아닌 포장도로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딛는 걸음이 더뎌진 것은 아니었다.

 

정동진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 20분경이었다. 조금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정동진역에서 출발하는 강릉행 기차를 탈 수 있었을 텐데, 기차는 내가 역에 도착하기 전에 강릉역을 향해 떠나고 말았다. 기차가 철로 위를 힘차게 달려가는 것을 길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안인항에서 오래 지체하지 않았더라면 기차를 탈 수 있었겠지만,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안인항을 떠나왔지만 할머니의 노랫소리는 여전히 귓전에 남아 있었다.

 

정동진 버스정류장에서 강릉행 버스를 기다리면서 청년 둘을 만났다. 그들은 군 입대를 앞두고 여행을 떠난 것이라고 했다.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와서 하룻밤을 잤고, 이번에는 경포 바다를 보러 간다고 했다. 바다는 거기서 거기지만 사람들이 더 많이 있는 곳에 가고 싶어서요.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일요일이었지만 강릉고속버스터미널은 붐비지 않았다. 10분 뒤에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에는 좌석이 넉넉했고, 나는 그 버스를 타고 강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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