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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7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시인 박영근의 5주기 추모제가 강제철거에 맞서 농성 중인 홍대 앞 두리반에서 열린다. 시인 박영근과 철거농성장 두리반의 만남은 "창살 아래 네가 묶였으되 살아서" 만나는 자리이다. 시인 박영근이 세상의 부조리함과 물신화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삶을 놓아버렸다면, 두리반은 투기자본의 탐욕에 의해 삶을 빼앗긴 곳이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재개발 지역에서 강제철거를 반대하며 농성하고 있는 칼국수집 '두리반' 건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재개발 지역에서 강제철거를 반대하며 농성하고 있는 칼국수집 '두리반' 건물.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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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영근은 이승에 있는 동안 영혼이 만신창이가 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기어이 추스르면서 제 갈 길을 잃지 않았다. 두리반 역시 투기자본의 탐욕에 철저히 짓밟힌 곳이지만 끝내 일어나 빼앗긴 권리를 되찾고자 온 몸으로 싸우고 있다. 하여 시인 박영근과 두리반의 만남은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만남이다. 박영근의 시는 눈물과 깊은 서정성이 배어 있다. 시인 백무산은 박영근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민중은 내가 가야 할 미래라고 하면서도 박영근은 극렬한 저항시를 쓰지 않았다. 왜일까? 그는 저항해야 할 것이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이미 물신화되어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미 그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조차 허위의식에 빠져 있음을 보았다. 박영근에겐 그것이 종종 큰 슬픔이 되어 세상과 정면으로 대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이 마흔 무렵부터 시인 박영근은 울기 시작했다. 물질 만능의 시대에 빠져버린 세상에 절망했다. 변해버린 사람들의 가치 앞에서 절망했다. 그를 아는 많은 지인들이 그의 장취와 눈물 앞에서 함께 취하고 울었다. 제5회 백석문학상을 심사한 선배 시인들은 박영근을 수상자로 뽑으면서 그의 시 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어머니」, 「흰 빛」, 「길」, 「눈이 내린다」 등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속으로 울었다. 과연 최상의 시란 어떤 것인가, 가장 작은 말을 가지고 가장 큰 감동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시가 아닐까!" (신경림)
"결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그의 내성(內省)의 진정성이야말로 세기의 전환기에 우리 삶이 지불했던 역경과 도정의 쓸쓸함까지를 시적 성숙과 감동으로 이끌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황지우)

눈물과 함께 박영근은 영원한 어머니의 품인 고향을 찾기 시작했다. 1997년 봄의 일이었다. 종로에서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던 그는 밤 12시쯤 술자리를 말도 없이 빠져나와 그길로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전북 부안으로 갔다. 하지만 새벽에 찾아간 고향에서 시인 박영근은 해체되어가는 공동체를 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영근의 고향 방문은 계속 이어졌다. 부안읍에서 변산 가는 길에 있는 해창을 지나며 그는 사라져버린 마을과 긴 방조제를 보았다. 건설 자본의 폭압을 보았다.

수평선 자락에서부터 눈 시리게 출렁이던 물이랑을 지우고

물길을 끊어버린 방조제 공사장을 나는 바라본다

뻘길은 평지가 되고 한 도시가 들어서겠지

보상금에 조생이 자루를 놓아버린 조개미 아짐은 또 취했나보다

다 떠나버린 마을길에서 해장 술집을 찾는다.
- 「해창에서2」 부분.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흐르다>에 수록

2000년대, 세상은 더 화려해졌지만 속으로 어둠은 더 깊어졌다.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4번째 시집, 1997년 간행)라며 어둠을 몰아낼 별들을 불러보았지만 사람들은 비겁한 자본의 일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허위와 가식으로 치장한 꽃들이 불편했다. 자정을 넘긴 깊은 밤 시인 박영근은 외로움에 떨다가 택시를 타고 지인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낭만도, 결기도, 사랑도, 연대도, 정당한 분노도 사라진 각진 세상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지난해 봄 변산에서 열린 '박영근 시인 4주기 추모제'에 참여한 현기영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혁명은 타락하고 물질적 가치만 대서특필된 세상이 되었을 때, 압제의 어둠 속에 빛나는 횃불을 들었던 시인들이 변화한 세상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있었을 때, 많은 시인들이 부박한 세상에 편승하여 영혼이 없는 시, 하루 동안 살기도 어려운 하루살이 시를 쓰고 있었을 때, 시인 박영근은 절망했고, 아마도 그 절망이 그를 나락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그의 순수한 영혼이 살 수 없었던 이 세상에 우리는 궁색하게도 살아남아 있다."

<제5주기 박영근 시인 추모마당>

■ 1부 : 제5주기 추모제
- 시간 및 장소 : 2011년 5월 7일(토) 오후 3시 - 3시 30분, <두리반> 3층
- 연대시화전 : 김하연, 김환영, 김재석, 성효숙, 이윤엽, 전진경

■ 2부 : 참여문학과 현장의 대화
- 일시 : 당일 오후 4시 - 5시 30분
- 사회자 : 이시백
- 대화 : 문학 - 도시 재개발과 한국문학/장성규(문학평론가)
         현장 - 이원호(용산참사진상규명위 사무국장)

■ 3부 : 어울림 마당
- 일시 : 당일 오후 5시 30분 - 7시
- 연대 시낭송 :  김일영, 박일환, 황규관
- 노래 : 비너스, 이씬 등
- 음식 나눔, 소통과 연대의 자리

■ 기타
- 박영근시인 추모카페 http://cafe.daum.net/poemwindow
- 두리반 카페 http://cafe.daum.net/duriban
- 문의 : 유채림 (010-3372-1173), 송경동(010-8278-3097)

■ 함께 여는 사람들
박영근 시인을 추모하는 사람들 / 한국작가회의 / 리얼리스트100 / 인천민예총 / 인천작가회의 / <두리반> 대책위 / 자립음악가생산자모임

덧붙이는 글 | 유채림 기자는 소설가이자 홍대 앞 두리반 철거민입니다.



태그:#박영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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