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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이 사랑했고, 이제는 전 세계가 사랑하게 된 창덕궁 후원을 지난 21일 답사했다. 창덕궁은 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궁이다. 창덕궁은 오밀조밀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는 전각들과 너른 후원이 있어 조선의 왕들에게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궁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후원은 창덕궁 전체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다. 산과 언덕의 지형지세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골짜기 따라 숨듯 연못과 정자들이 들어차 있다.

창덕궁 돈화문 앞은 견학 온 학생들과 어른들이 섞여서 흙먼지가 뽀얗다. 개나리꽃 만큼이나 노란 옷을 입은 유치원생들이 꼬리를 물고 도착해서는 돈화문 앞에서 재잘거린다.

오전 11시에 후원을 돌아보기 위한 입장권을 구매했기에 곧바로 돈화문을 지나 후원의 입구인 함양문으로 갔다. 함양문은 창경궁하고도 연결되어 있다. 후원 관람 인원은 시간별로 100명씩 제한되어 있다. 해설사가 앞장서고 그 뒤로 쭉 줄을 서서 입장했다. 천천히 느릿한 걸음으로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후원의 멋스러움에 맘껏 취할 시간은 없을 듯싶어 아쉬웠다.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 담 안은 창덕궁, 오른쪽 담 안은 창경궁.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 담 안은 창덕궁, 오른쪽 담 안은 창경궁.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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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은 일제 잔재의 교육 탓에 중년의 사람들에게는 '비원'으로 더 익숙한 공간이다. 후원은 궁의 북쪽에 있다 해서 '북원'이라고도 하고 왕가들만 드나들었던 곳이기에 '금원'이라고도 했단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가르는 담 사이의 숲길로 들어서니 앞이 탁 트이며 곧바로 부용지가 나온다. 네모반듯한 연못 안에 또 하나의 둥근 섬이 있는 부용지. '부용'은 활짝 핀 연꽃을 이르는 말이란다.

부용지를 둘러싸고 부용정, 주합루, 서향각, 영화당, 사정기 비각 등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 영조임금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는 영화당에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랐다. 마룻바닥의 서늘한 기운이 발끝에 매달린다. 그곳에 앉아서 부용지 주변을 둘러보니 만사가 한가롭게 느껴졌다.

맞은 편 창경궁과 연해 있는 담도 파릇하게 돋아나고 있는 나뭇잎 아래서 고즈넉하게 보인다. 영화당 앞 너른 마당에서는 연회뿐만 아니라 과거시험이나 군사훈련도 행해졌다고 한다. 부용지에 두 기둥을 내리고 서 있는 정자인 '부용정'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지붕의 생김새가 열십자 모양인데 그 또한 활짝 핀 연꽃 같다고 한다. 그곳에서 임금들은 낚시도 하고 독서도 했을 것이다.

 부용지 일원. 주합루의 위용이 돋보이는 곳이다.
 부용지 일원. 주합루의 위용이 돋보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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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지에 두 돌기둥을 내리고 있는 부용각.(왼쪽) 임금이 낚시나 독서를 하던 곳이란다.
 부용지에 두 돌기둥을 내리고 있는 부용각.(왼쪽) 임금이 낚시나 독서를 하던 곳이란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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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합루는 2층 전각이며 높은 계단 위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부용지에서 바라다보면 장엄하고 우뚝한 모습이다. 정조임금이 보위에 오를 때 세운 건물이라는데 1층은 규장각이고 2층은 열람실이었다고 한다. 주합루의 현판도 정조임금의 친필이란다. 그런 주합루 옆에는 수줍은 듯 조용한 모습으로 들어서 있는 단층의 서향각이 있다. 즉 '책의 향기'를 뜻하는 이 건물은 책을 말리는 곳이기도 했고, 왕비가 누에를 치며 친잠례를 행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당시 주합루의 규장각에는 8만여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3만 여권의 책이 남아 서울대 규장각에서 보존하고 있다 한다. 주합루로 들어가는 문은 어수문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왕과 신하의 관계도 그러하다는 뜻이란다. 부용지 옆에는 두 개의 우물이 있다. 원래는 세조 때 4개의 우물을 팠던 것인데 전란 등으로 묻혀 있다가 숙종 때 2개만 발견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 연유를 적어서 사정기 비각에 새겨 놓았다.

 효명세자가 기거하였던 기오헌과 의두합.
 효명세자가 기거하였던 기오헌과 의두합.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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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의 대문 역할인 부용지를 지나 금마문이란 곳으로 들어가면, 엄마 치마폭 뒤에 숨은 아이 같은 작은 건물이 나온다. '금마'는 왕세자를 일컫는 중국의 고어란다. 그곳의 단아하고 겸허해 보이는 기와집은 기오헌과 의두합이다. 여염집 사랑채 같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사색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이 집의 주인은 총명하고 개혁적이었으나 단명했다. 해설사는 "만약에 이분이 왕이 되었다면 우리나라 역사가 달리 풀렸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말한다.

그 옆의 불로문으로 들면 애련지가 나온다. 불로문은 하나의 돌로 깎아 만든 것으로 임금의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숙종과 장희빈이 거닐었다는 애련지는 눈으로 일별하고 연경당 권역으로 향했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사대부집의 형태를 빌려 지은 120여 칸의 집이라고 한다.

민가형식이기에 단청도 하지 않았고, 사랑채, 안채, 서재, 행랑채들이 오밀조밀 머리들을 맞댄 듯 들어앉아 있다. 안채의 뒷마당에 심은 돌배나무는 연경당을 지을 당시부터 있던 나무란다. 돌배나무의 꽃가지들이 기와지붕을 빗기며 하얀 눈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그늘을 만들고 있다. 사랑채 마당에는 여러 모양의 수석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현대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고, 이곳에 기거했던 임금들이 각 지방의 것들을 수집해 놓은 것이라 한다.

 연경당의 안채 지붕위로 돌배나무의 꽃이 눈처럼 하얗게 피었다.
 연경당의 안채 지붕위로 돌배나무의 꽃이 눈처럼 하얗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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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겸 손님맞이 공간인 선향재는 기와지붕 아래로 동판지붕을 차양처럼 이어 놓았다. 고종 때 햇살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서 올린 것이다. 동판은 겨울에는 95% 햇볕을 흡수하고, 여름에는 95% 햇살을 반사하는 역할을 한단다.

선향재의 마루가 반질반질 까맣게 빛나 보인다. 연경당 뒷문을 나서려는데 한쪽으로 놓여있는 높은 계단 위로 작은 정자가 보인다. 지붕 끝이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개처럼 날렵하다. 농수정이란 정자인데 임금이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던 정자라고 한다.

 연경당 뒤에 있는 농수정. 임금이 책 읽으며 명상을 즐겼던 곳이다.
 연경당 뒤에 있는 농수정. 임금이 책 읽으며 명상을 즐겼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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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덕지와 관람지로 오르는 오솔길에서 바라다본 연경당의 뒷모습.
 존덕지와 관람지로 오르는 오솔길에서 바라다본 연경당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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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의 뒤쪽은 후원 속의 후원인 것 같다. 산언덕을 살펴 내리니 그곳에 꼭꼭 숨겨 놓은 듯한 존덕정과 관람지가 나온다. 육각의 겹 지붕 형태인 존덕정에는 정조가 지은 교시의 현판이 걸려 있다. 그 앞의 관람지는 한반도를 닮아 있다. 관람지에 두 기둥을 내리고 있는 관람정은 평면이 부채꼴로 된 우리나라 유일한 형태의 정자란다.

또 한 번의 산골짜기를 올라 어느 정자 앞에서 다리쉼을 하며 한숨을 돌렸다. 창덕궁의 후원은 산허리 하나 돌고 나면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그렇게 숲 속 골짝 곳곳에 연못을 만들고 정자를 세우고, 왕실 가족들의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한반도 지도를 닮은 관람지와 관람정.
 한반도 지도를 닮은 관람지와 관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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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의 맨 끝에서 만난 옥류천 일원은 인조 때 조성된 곳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한 달 전에 완공되었다 한다. 후원 깊숙한 곳에 바위를 깎아 홈을 내고 물이 흐르게 해 술잔을 띄워 놓고 왕과 신하들이 시를 지으며 풍류를 즐겼단다. 그래서 왕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라고 한다.

물이 흐르는 소요암을 중심으로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취한정, 농산정의 정자가 있다. 청의정은 조그만 사각형의 질척한 밭 위에 세워져 있다. 임금이 손수 농사짓는 본을 보인 곳이란다. 후원에서 유일하게 초가지붕이다. 현재도 이엉 잇기 등의 행사를 공개적으로 한다. 농산정은 긴 일자형의 정자로 온돌이 놓여 있다. 정자라기보다는 한 채의 집이다. 그래서 임금들이 잠시 들를 때마다 기거를 했다 한다.

 옥류천 일원. 청의정, 소요정, 소요암, 태극정, 농산정의 정자들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다. 후원 중의 후원이다.
 옥류천 일원. 청의정, 소요정, 소요암, 태극정, 농산정의 정자들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다. 후원 중의 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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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후원은 전체가 하나로 열려 있으면서도, 각각의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밀의 문을 하나씩 열면서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아니면 동양화 한 폭 속에서 잠시 머물다 쑥 빠져나온 기분이랄까. 후원은 관람 시간에 제약을 받는다. 그렇기에 왕의 걸음 따라 거닐며 부용지나, 애련지나, 관람지나, 옥류천에 풍덩 마음을 뺏길 여유가 없다. 백성의 걸음으로 총총히 걸어야 한다. 후원을 빠져나오니 궐내각사 옆구리다. 궁궐의 담 너머로 북촌 거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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