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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3학년 1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과목까지 시험을 다 치른 나는 미리 챙겨둔 짐가방을 들고 기차역으로 갔다. 부산발 평택행 차표를 끊은 나는 그제서야 한숨 돌리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갔다올게. 걱정마."

내가 향한 곳은 경기도의 어느 공장. 핸드폰 부품을 조립하는 곳으로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일하면 기숙사비를 제외하고 한 달에 18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한 학기에 400만 원 하는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장학금에 목숨 걸고 공부했던 나는, 방학 때 번 돈으로 전공 공부를 위한 컴퓨터 한 대를 장만하고, 다음 학기 생활비를 쓸 요량으로 공장 알바를 시작했다.

'2등이라니...' 공장에서 엉엉 울었다

서울의 한 대학교의 도서관 풍경. 늦은 시각인 밤 10시에 찾아갔음에도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의 도서관 풍경. 늦은 시각인 밤 10시에 찾아갔음에도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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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빠와 몸이 아파서 일을 중단한 엄마.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은 등록금만이 아니었다. 용돈, 통신비, 차비, 식비, 책값… 내 몸 하나 내가 먹여 살리기도 이렇게 힘든데 자녀들을 줄줄이 대학에 보내는 부모들은 어떨까.

밤새 하얀 백열등 아래 서서 부품을 조립하고, 날 새면 퇴근해서 기숙사에 가서 자고, 해 지면 또 일어나서 바로 출근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1학기 성적이 발표됐다. 내가 2등이라는 소식이었다. 퇴근 직후 전화로 그 소식을 듣고 기숙사 베란다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엉엉 울었다. 2등이면 등록금의 3분의 2인 260만 원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행히 성적 장학금 외 다른 장학금을 받게 되어 방학 내내 공장에서 번 돈 360만 원 중 160만 원을 등록금으로 냈고 200여만원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등록금을 낸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등록금은 알바로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그래도 2등이라도 한 게 어디야. 장학금 못 받았으면 방학 내내 번 돈을 다 모아도 등록금을 낼 수 없는 금액이었으니.'  이렇게 날 위로하며 3학년 2학기를 맞이했다.

평일엔 버스 끊길 시간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집에서는 새벽까지 전공 공부를 하고, 주말엔 DVD방에서 영화를 틀어주며 공부를 계속했다.

등록금은 대출받아 해결하고, 알바한 돈으로 엄마 병원비를 내는 언니에 비하면 나는 호화로운 대학생활이었다. 그래도 나는 장학금 받을 만큼 공부할 시간이 있었다.

알바 한 돈으로 버티려 했지만... 결국 대출금 1200만 원

ⓒ 오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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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과 취업 걱정으로 얼룩진 내 대학생활은 끝없는 알바의 연속일 뿐이었다. 최대한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을 내고, 알바 한 돈으로 버텨보려 했지만 결국 지금까지 학자금 대출 금액은 1200만 원. 대출금리는 평균 연7%.

2011년 4월, 학교에 다녔으면 4학년 1학기지만,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더 하는 것보다 빨리 직장을 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지난해 휴학에 이어 지금은 취업계를 내고 힘겹게 구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우리 학교는 4학년의 경우 취업증명서를 제출하면 학교에 다닌 것과 동일하게 인정해준다).

서울로 출퇴근 하기 위해 경기도 구석에 집을 구한 나는 취직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저축을 한 푼도 못했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안 보이는 대출금때문이다. 저축은 너무 호화로운 상상인 걸까.

1년 전 동생이 대학에 입학했다. 그 입학금 역시 대출로 해결했다. 입학원서비로 70여 만 원을 써 그 중 한 군데에 입학했지만 나머지 대학은 원서비를 돌려주지 않는다. 대학 입학은 누구에게나 간절한데, 돈에 부담이 없는 사람만이 수십 군데에도 원서를 낼 수 있다면 이게 정말 공정한 입학 심사일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50대 남자가 만나자 했을 때 고민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올해 들어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후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도서관에 '징벌적 등록금제' 등과 관련해 서남표 총장에게 보내는 질문과 건의사항이 적힌 대자보가 붙여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올해 들어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후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도서관에 '징벌적 등록금제' 등과 관련해 서남표 총장에게 보내는 질문과 건의사항이 적힌 대자보가 붙여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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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뉴스에서 등록금 때문에 자살한 대학생의 소식을 들으면 나는 한없이 우울해진다. 저럴 수밖에 없었나, 싶기도 하지만 나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한다.

사실, 학교에 다니면서 헬스장에서 알바를 할 때 50대 VIP회원이 나에게 조건있는 만남에 대해 제안을 해온 적도 있었다. 단번에 거절하지 못하고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결국 거절했지만, 정말 등록금 때문에 슬픈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헬스장 모습(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습니다).
 헬스장 모습(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습니다).
ⓒ 최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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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등록금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 모습을 보면 동생과 후배들에게 "대학 가지마" 라고 말 해주고 싶지만 대학 졸업장이 없는 채로 사회에 나가면 큰 꿈을 이루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그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다. 대학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이 상황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갑갑하다.




태그:#등록금, #등록금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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