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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신조어 중에 '아오안(out of 안중(眼中)'이라는 말이 있다. 아내폭력은 우리에게 '아오안'이었다. 다시 말해 관심 없는 이슈다. 그럼에도 '아내폭력'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 2011년을 맞아 새롭다(新)라는 접두어를 붙여본다. 주제는 식상하지만 아내폭력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는 새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일, 집안일, 고리타분한 일,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새롭게 "나의 일, 사회적 범죄, 반드시 해결해야할 일"로 새롭게 거듭나길 바란다...<편집자말>

 2010년 4회 여성인권영화제 행사 부대행사중 가정폭력 피해자 미술치료 작품전시회 사진.
 2010년 4회 여성인권영화제 행사 개막작 '침묵을 말하라' 영화 중 일부
ⓒ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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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아내폭력 피해자는 "무기력하고 불쌍한" 이미지로 대표된다. 장기간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리는 아내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시달리는 것이 사실이다. 남편의 분노가 자가 상승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아온 경우,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신체화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피해의 내용 중에서 유독 두려움만이 부각되는 것은, '아내-피해자'를 유약하고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불쌍하게 보는 시선은 피해자에 대한 동정을 구할 때 유효하지만, 피해자가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남편과 자식에 대한 책임 때문에 폭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폭력마저도 책임지려는 행동을 보여왔다. "무기력해서 폭력에서 못 빠져나온다"는 시선이 지배적이지만 사실 피해자들에게는 무기력 이전에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자리해 있다.

사람들은 '참는 게 이기는 것'이라 쉽게 말하지만, 인내하며 사는 것이 아이들의 삶과 다른 가족까지 고통스럽게 한다는 사실과 직면하게 되면 마냥 참을 수만은 없다.

이때부터 아내들은 폭력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선다. 폭력관계를 끝내기 위해서, 남편의 폭력을 고쳐 살아보겠다는 피해자들의 책임감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감으로 전환된다.

이별을 전할 때, 폭력은 다시 시작된다

아내들은 참고 살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폭력남편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자신의 손아귀에서 아내(피해자)가 벗어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남편들은 쉽게 아내를 놓아주지 않는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여성의전화(본부)가 279명의 피해여성을 대상으로 면접상담설문을 실시한 결과, 남편의 폭력을 고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아내는 응답자의 3.9%에 불과했다. 남편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남편과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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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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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별폭행(분리폭력, separation assault)으로 알려져 있는 이별요구에 대한 남편들의 보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끈질기고 집요하다. 미국의 경우 응급실에 실려 오는 아내폭력 피해자의 75%가 남편과의 이별 이후에 실려 오며(Stark and Flitcraft, 1988) 이런 이별폭행은 이후 최소 2년 동안 지속된다고 보고 된 바 있다.

이별폭행은 스토킹 중 '단순집착형'으로 분류되며 스토킹 중에서도 가장 흔하고, 가장 위험하다고 명시돼 있다(정유경, 2007). 살인, 납치 등 강력 범죄로 끝맺는 비율이 가장 높으며 가해자 중 30%는 위협한 내용을 실제로 실행한다(이건호,2003)고 알려져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관계를 끝낼 때 가해자의 '위협과 협박'(이별폭행 중에 발생)은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형태로 전체 스토킹의 70~80%를 차지하는 범죄다.

한국에서는 이별폭행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사조차 없는 실정이지만, 이혼소송 중에 아내를 위협하거나, 남편을 피해 쉼터로 피신한 아내를 찾아 해코지하는 남편들의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지난 2월 14일 김해에서는 아내의 이혼소송에 지속적으로 아내를 때리고 위협한 남편이 체포됐다.

또, 지난해 12월 17일 파주에서 일어난 아내살해 사건도 경찰조사결과 이혼문제를 협의하러 온 아내를 남편이 살해한 것으로 지난 21일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12월 17일 파주시 교하읍 연다산리 자신의 집에서 이혼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찾아온 아내 이씨를 살해하고 1㎞ 떨어진 외딴집에서 시신을 소각해 인근 논에 암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가정폭력방지법)이 가정폭력예방만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를 명시하고 있는 것도 가정폭력이 가진 심각한 위험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한 상황을 각오하고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아내들의 시도는 제대로 지지받고 있을까. 답은, "피해자 보호의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다.

 아내 폭력사례.
 아내 폭력사례.
ⓒ 김홍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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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의 안전불감증... '아내의 주소지를 공개하라?'

가정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가족들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지 못하도록 하는 '주민등록등초본 열람 및 교부제한'규정이 있다. 이 규정은 위험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난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때 가정폭력을 증빙하는 서류로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 입소사실 확인서'나 '고소고발사건처분결과통지서(혹은 사건처분결과증명서)'만을 인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피해자 쉼터에 입소했거나 가해 남편을 고소했던 피해자에 한해서 안전한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는 이야기다.

폭행남편의 굴레에서 벗어난 여성들도 이별 후, 계속 가해자에게 노출된다. 남편은 아내를 찾기 위해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하면 아내의 주소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피해자가 쉼터에 입소했거나, 과거 폭력남편을 고소했던 기록이 있을 때만 남편은 아내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을 수 없다.

하지만 쉼터는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소 가능하도록 준비되지 않았다. 자산조사를 거쳐 특정 소득 이상의 경우에 입소가 불가하기 때문에 자동차가 있거나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경우 아예 입소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더욱이 남자아이의 경우 7세(몇개 쉼터는 13세까지 받기도 한다) 이상은 입소가 제한되어 있어 중학생 이상의 아들을 데리고 입소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쉼터의 지원비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임신 중이거나 영유아를 받아주는 쉼터도 거의 없다. 결국 쉼터에 입소할 수 있는 대상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가족을(남편을) 고소하는 일 또한 가정폭력을 집안일이라고 치부하고 사소화하는 사회에서는 매우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지난해 11월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이런 현실을 고려해서 가정폭력상담소에서 발급하는 가정폭력 피해사실 확인서 및 의료기관 진단서만으로도 주소지 열람을 제한할 것을 행정안전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상담사실확인서는 재산분쟁 등에서 악용될 소지가 있고, 진단서로는 남편에 의한 피해임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의전화가 권고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고 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전가협)에서도 이 권고안이 규칙안 수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건의할 예정이다.

쉼터로 피난 온 아내에게 남편과 만나라는 법원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 이미지.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 이미지.
ⓒ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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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이혼을 청구한 부부에게 상담처분을 내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담처분을 가정폭력 피해자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적용하고 있는 점이다. 지난 3월 8일, 이혼 소송 첫 기일이었던
장씨는 남편과 8회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처분받았다. 장씨는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쉼터로 피신한 적이 두 차례나 있었고 이미 재판부에 관련 증빙자료를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아무런 고려 없이 부부상담의 이름으로 장씨를 위험한 상황으로 내 몰았다.

"남편이 계속 친정집으로 전화해 위협하고 있다"고 호소하며 "지금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피해자는 접근금지가처분을 할 만큼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지만 법원에서는 남편과의 상담명령을 내리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안산지방법원은 폭력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담 등을 이유로 피해자의 안전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었다.

다행히 안산지방법원 담당판사는 <한국여성의전화>가 제기한 아내폭력 피해자 안전권 문제에 대해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가정폭력이 있는지를 보다 면밀히 살피고 피해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상담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며, 미성년 자녀의 양육권 문제로 인해 상담이 필요할 경우라면 가해자와 분리해서 상담하고 이때 피해자의 상담일자 및 장소는 가해자가 모르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폭력남편은 '가장'이 아니라 '가해자'

아내폭력은 분명히 범죄이지만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폭력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고소를 하더라도 불기소 또는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되는 비율이 80~90%를 웃돈다.

이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가정폭력사건의 특성으로 인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보다는 사회 내 처우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며 "사건처리에 있어서 가정이 해체되지 않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법률신문, 2011. 4. 11).

가정 해체를 막기 위해 가해자를 관대히 처벌한다고 하지만 가해자는 가해자일 뿐 '가장'이 아니다. 남편을 신고하는 일부터 쉽지 않은 한국의 정서에서, 폭력남편 고소는 폭력관계를 끝내고 가족을 보호하려는 아내폭력 피해자들의 절실함이 전제된 것이다.

이런 아내들의 시도에 대해 검찰이 솜방망이 처벌로 응답할 때, 돌아오는 것은 반복되는 가정폭력과 가정의 해체다. "가정폭력에 단호히 대응하라"는 아내폭력 피해자 지침은, 당사자뿐 아니라 법원과 경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피해자는 가정을 해체하는 사람이 아니라 폭력을 해체하는 사람이다. 평생을 폭력관계에 얽매어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폭력을 해체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해 온 피해자들의 움직임을 이제는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마지막 방법으로 위험을 무릅쓴 탈출을 감행할 때에는, 최소한의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안전을 사회에서 보장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홍미리는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활동가입니다.



태그:#아내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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