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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가계부 정리를 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움에 있어서 우리 가계 고정비와 변동비를 계산하고 어디서 지출을 아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보험비와 저축비 그리고 거의 매달 들어가는 경조사비 등 고정비만 얼추 우리 한 달 수입의 2/3를 넘고 있었고 남은 돈은 한 달에 40만 원 정도였다.

 

이는 결국 한 달 동안 40만 원으로 먹고 입고 즐겨야 한다는 이야기요, 동시에 먹고 입고 즐기는 데서만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혹여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그만큼 외식을 줄이고 문화생활을 자제해야 마이너스를 면할 수 있는 현실.

 

그러나 문제는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이었다. 지금이야 아이가 17개월 밖에 안됐으니 특별히 들어가는 비용이 없지만 이 녀석이 당장 유치원,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된다면 추가로 얼마나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될까?

 

아마도 추가되는 비용의 대부분은 교육비가 될 텐데, 그때까지 월급이 많이 오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 외식과 문화생활을 더욱 줄이고 급기야는 저축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빈곤층이든 중산층이든 그 액수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자녀 교육비를 가장 중요시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닌가. 이러니 많은 사람들이 교육비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밖에.

 

살인적으로 오르는 물가와 얼마나 들어갈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자녀 교육비. 처음에는 나하고 상관없는, 아주 멀고 먼 나중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보니 당장 시급한 이야기가 된 교육비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내 아이는 사교육 시키지 않겠다던 10년 전의 결심이 잔인한 현실 앞에 철없던 시절의 이상적인 생각으로 추락한 것이다.

 

진정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미래에 현실을 저당 잡히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때 눈에 띄는 책 한 권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쓴 <아깝다, 학원비!>라는 책이었다.

 

우리들의 사교육 이야기

 

<아깝다 학원비!> 표제 좀 더 많은 분들이 보시기를

<아깝다, 학원비!>는 사교육에 관한 10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원 보냈더니 성적이 오르던데요?',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라 선행학습이 필요하겠죠?', '영어교육은 빠를수록 좋은 것 아닌가요?' 등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자식 가진 부모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고민해 볼 질문과 대답이 나열되어 있다.

 

물론 10개의 질문은 결코 어렵지 않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사교육 폐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그 답을 유추할 수 있는 질문들.

 

그러나 문제는 그 질문이 다른 아이가 아닌 내 아이에게 적용되었을 때다. 공적으로 입바른 소리를 하기는 쉽지만 그게 바로 내 자신의 이야기, 특히 내 아이의 이야기가 되었을 때, 우리는 각자의 조건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래도 내 새끼는'이란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 되지 않기를 바라겠는가.

 

따라서 <아깝다, 학원비!>가 제시하는 질문들은 하나같이 어렵다. 아이를 둔 부모들의 폐부를 찌르는, 대부분 부모들이 자식들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 경우를 보자. 책을 내내 읽으면서 떠올린 건 학창시절이었다. 다행히 난 중·고등학교시절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은 편이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가는 시기, 너무도 불안한 마음에 자처해서 종합학원을 2개월 다닌 적이 있지만, 생각해보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경험을 기준삼아 아이를 학원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수 있을까? 아이러니 하지만 자신 없다. 모든 아이들이 학원을 다닌다는데 어찌 내 아이만 방치할 수 있겠는가. 이러다가 이 무한 경쟁 시대에 우리 아이만 뒤떨어지게 된다면? 비록 그것이 잘못된 길일지라도 사회 전반이 그렇게 굴러간다면 대세를 따르는 게 낫지 않을까? 하필 내 자식이 앞장서서 다른 길을 걸을 필요가 있을까?

 

저자는 이와 같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부모들에게 용기를 준다. 물론 그게 완벽한 정답일 수는 없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교육의 신화가 얼마나 맹목적이고 계산적이고 터무니없는 것인지 고발한다.

 

예컨대 많은 이들이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믿지만, 결국 학원은 영리기관인 이상 경제적 논리에 따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학원의 전매특허인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학원의 부를 축적시키는 하나의 기제일 뿐이며, 학원의 개별지도는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교육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아이에 대한 신뢰, 성장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저자는 주장한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스스로 자제력을 키우며,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이는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우리가 쉽게 잊고 있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딴 짓 하게 놔두느니 칠판 앞에서 조는 게 낫다며 학원 보내는 것이 이 시대 부모들의 보편적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적만으로 그 아이의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시대의 반영이며, 한 인간이 자아를 형성해 가는 과정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천박한 의식의 투영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교육이 없이도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동안 우리가 길들여져있던 이 지긋지긋한 죄수 딜레마에서 벗어나 보자.

 

극심한 빈부격차 덕에 비싼 돈을 들여 사교육을 시켜도 명문대에 갈 가능성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명문대를 간다고 하더라도 취업하기는 더 어려운 시대. 차라리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모두에게 현명한 일일 수 있음을 함께 고민해보자.

 

마지막으로 <아깝다, 학원비!>가 제시하는 질문들을 열거해 보기로 한다. 마음에 절절히 와 닿으면 일독해 보시기를.

 

학원에 보냈더니 성적이 오르던데요?

아이가 원해서 학원에 가는 것도 문제가 되나요?

학교와 달리 학원은 개별지도를 하잖아요?

맞벌이 가정은 학원 외에 대책이 없어요.

선행학습이 학교 진도 나갈 때 효과 있지 않나요?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라 선행학습이 필요하겠죠?

영어교육은 빠를수록 좋은 것 아닌가요?

요즘 초등학생들의 단기 조기유학이 필수라던데요

외고 가려면 학원의 로드맵을 무시할 수 없잖아요?

성적을 올려놓으면 진로 선택에 유리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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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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