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이라는 민영의료보험 광고 카피가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다. 지금도 케이블 TV를 켜면 프로그램 사이마다 민영의료보험 광고가 판친다. 몸이 아프면 병보다 병원비가 걱정인 사람들에게 민영의료보험은 진실로 위안을 삼을만할까? <오마이뉴스>와 <진보신당>은 공동기획을 통해 다섯 차례에 걸쳐 민영의료보험의 실체를 해부해봤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한다. [편집자말]
'세계인권선언 62주년'을 맞은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 현병철인권위원장사퇴촉구대책회의 등의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근조 대한민국 복지'가 적힌 영정에 국화꽃을 놓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62주년'을 맞은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 현병철인권위원장사퇴촉구대책회의 등의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근조 대한민국 복지'가 적힌 영정에 국화꽃을 놓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무상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진보 개혁진영의 무상복지 요구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강력히 저항하고 나서고 있다. 주된 논리는 무상복지를 하려면 수십 조 원의 재원이 더 필요한데 과연 감당할 수 있느냐다.

MB 정부와 보수진영의 이런 논리는 한 마디로 국민에 대한 사기와 협박에 다름 아니다. '무상의료에만 최소 30~54조가 더 들어가는데, 그러려면 국민들이 보험료를 2~3배 더 내야 하는데, 국민들아, 너희들이 그럴 각오가 되어 있어? 못하겠지?'라는 암묵적인 협박 말이다.

더욱이 30~54조는 순전히 엉터리 셈법으로 계산된 것이다. 의료서비스에 사치재보다 더한 가격탄력성을 적용해 계산한 것이다. 의료서비스의 기본 특성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의 소치일 뿐이다.

이런 협박에 속을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무상의료를 시행하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늘기는커녕 줄어든다. 그것도 확! 줄어든다. 믿기지 않는다고? 찬찬히 끝까지 읽어보고 다시 판단해 보길 바란다.

'무상의료' 나라보다 의료비 지출이 많은 대한민국

통계상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은 OECD 평균에 비해 상당히 낮게 측정된다. 2008년 OECD 대비 국민의료비는 6.5%로 OECD국가보다는 약 2.4%정도 적다. GDP 대비 대략 24조 원 가량 되는 셈이다. 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의료비 부담은 상당하다. 실제로도 그렇다. 왜일까?

첫째 국민의료비 비중에서 공적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기 때문이다. 국민의료비 중 45%가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의료비다(국민의료비는 55%의 공적지출과 45%의 사적지출로 구성되는데, 공적지출은 건강보험재정부담금+ 의료급여 의료비지출(전액 국고로 지원)+국가의 공공병원에 대한 시설 투자비로 이뤄져 있고 사적지출은 건강보험의 본인부담금(법정 본인부담+비급여 본인부담)+ 미용성형 등의 의료비 + 일반의약품 의료비로 구성돼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료비에서 그 비중이 가장 큰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60% 밖에 되지 않아서다. 중병의 경우 보장률은 55%가량으로 더 떨어진다. 의료비의 45%를 국민들이 직접부담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부담이 큰 것이다.

둘째, 국민들이 상당히 많은 지출을 하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국민의료비 통계로 잡히지 않는 지출이 있다. 바로 민영의료보험이다. 적게는 27~40조까지 추산할 수 있다. GDP 대비 2~4%에 이른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국민의 의료비 지출(국민의료비+민간의료보험료)은 이미 8.5~10%수준이다. (사)교육비 지출과 마찬가지로 (사)의료비 지출은 상당하다. 이러니 사는 게 고달플 수밖에.

사교육비에 허리 휘고 사보험에 허리 꺾인다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은 교육비 지출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는 교육비 지출에 상당한 재원을 쏟아 붓고 있다. GDP대비 6.5%이다. 공교육 선진국이라할 수 있는 유럽의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국가들과 비슷하다.

유럽의 경우, 보육부터 대학까지 완전히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아이를 교육시키는 데 아무런 부담이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보육부터 대학까지 엄청난 사교육비 지출에 부모들 등골이 휘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교육비 지출이 비슷한데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등골이 휜다. 그 이유는 교육비를 공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적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교육비를 공적으로 해결할 경우, 그 재원은 세금으로 마련한다. 세금은 소득에 따라 누진적으로 부담을 한다. 반면 혜택은 공히 평등하게 누린다. 반면, 교육비를 사적으로 해결하게 되면, 부자나 서민이나 똑같은 액수를 부담한다. 학원비나 대학등록금은 부자냐 아니냐에 따라 차등을 두지 않고, 똑같이 부담한다. 그러다 보니 부자들에 비해 서민들의 등골이 휠 수밖에.

올해부터 무상급식이 시행됨에 따라, 한 자녀당 월 4~5만 원씩 연간 약 40여만 원(방학 제외)의 급식비 부담이 줄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급식비를 안 내는 것이 아니라 세금으로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을 공적 부담으로 해결하지 않고 사교육 투자경쟁으로 해결하는 한, 서민들은 항상 질 수밖에 없다. 어찌 부자들의 물량공세를 이길 수 있겠는가.

사적 의료비 지출 줄이고 공적 지출 늘리자

서울시내 한 병원의 모습
 서울시내 한 병원의 모습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런 우리나라의 교육비의 문제는 고스란히 의료비에도 적용된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60%밖에 안 된다는 것은 병원비의 40%는 사적으로 지출한다는 것이다. 중병에 걸려 병원비가 2000만 원이 나오면 부자든, 서민이든 똑같이 80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누구에겐 800만 원이 껌 값일 수도 있지만, 대다수 서민에게 가계파탄마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가져다준다.

현재 무상의료 운동의 일환으로 기획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의 당면 목표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느 질병에 걸리더라도 연간 개인 부담비용을 100만 원이 넘지 않도록 하자는 것, 진료비 부담이 큰 입원진료비에 대해서는 보장률을 90%로 하자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국민들의 가계 부담을 최소화하자는 것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부 주장대로 이를 위해 30~54조 원이 추가로 필요하지는 않다. 단지 사적 지출을 공적 지출로 돌리면 된다. 간단한 공식은 다음과 같다.

건강보험재정(A)+본인부담(B) ⇒ (A+C) +(B-C) 
                 60% +40%   =  (60%+20%)+(40%-20%)
                 (여기서 C=보장성 강화 소요재원)

즉,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60%에서 80%로 올리기 위해서는, 사적지출 40%를 20%로 줄이거나 나머지를 공적 지출로 돌리면 되는 것이다. 사적지출은 부자나 서민이나 똑같이 부담해야 하나, 이를 공적 지출로 돌리게 되면, 소득에 따라 정률방식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서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오히려 줄어들게 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마치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으로 모두 해결할 때처럼 말이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MB정부는 이에 대해, 무상의료를 하게 되면 '공짜'라는 사실 때문에 의료이용이 폭증하여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적게는 30조에서 54조까지 추가로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도 같은 논리를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의료서비스의 특성을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무상의료를 흠집 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가격 비탄력적' 특성을 갖고 있다. '가격비탄력적'이라 함은 필요할 때는 비싸더라도 이용할 수밖에 없고, 또 아무리 공짜라 하더라도 필요하지 않으면 굳이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더라도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가 줄어들게 되면 의료이용은 증가하게 마련인데, 주로 저소득층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높은 비용장벽 때문에 의료를 이용하지 못한 부분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추가되는 재원은 대략 2조 안팎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MB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사치재의 가격탄력성(1~1.5)를 적용하여 30~54조가 들어간다고 뻥튀기한 것이다. 이는 실증적으로도 증명이 된 바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시민회의가 분석했듯이 지난 2005년 6세미만 영유아 입원진료 무상의료를 시행했을 때, 의료비 폭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건강보험하나로'면, 값비싼 사보험도 '안녕~'

다른 한편으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또 다른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하는 효과를 낸다. 불필요한 민간의료보험의 지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이유의 80%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이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의료비 불안을 국민건강보험이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로선 민영의료보험의 정확한 규모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추산은 가능하다. 2008년 한국의료패널자료에 의하면 가구당 평균 민영의료보험 가입량은 3.6개이며, 민영의료보험의 주계약 기준(질병, 상해, 간병보험)으로 대략 월평균 13만 원(가구당)이 지출되고 있었다. 종신 연금보험의 특약 형태로 가입하고 있는 규모까지 포함하면 대략 가구당 21만 원에 이른다.

이를 전국가구로 환산해보면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될까? 우리나라 전체가구 수는 1700만 가구쯤 된다. 그렇다면 대략 1700만 가구×13만 원×12개월 = 27조 원이다. 특약 형태를 포함하면, 무려 43조(1700만 가구×21만 원×12개월)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큰 규모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번 자신의 가정이 민영의료보험에 어느 정도 가입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따져보시라. 그러면 이해가 될 것이다.

민영보험의 '천국' 미국, 국민에게 '지옥'

영화 <식코>의 한 장면. 두 손가락이 절단된 환자가 의료비가 너무 많이 나와 한 손가락의 접합 수술을 포기하고 있다.
 영화 <식코>의 한 장면. 두 손가락이 절단된 환자가 의료비가 너무 많이 나와 한 손가락의 접합 수술을 포기하고 있다.
ⓒ 스폰지하우스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을 그대로 놔둔다면 우리의 미래는 미국식 의료시스템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하지 않고, 단지 재정 안정에만 초점을 둔다면,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점차 하락할 수밖에 없다. 급격히 진행하는 고령화와 의료이용의 증가, 그리고 비용유발적 의료공급체계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은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떤가. 미국 의료시스템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영화 <식코>를 기억할 것이다.  절단된 손가락을 붙이는데 약지가 1만2000달러, 중지가 6만 달러라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미국은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는 나라다.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시행하는 메디케어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이드라는 공적 의료보장체제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그런데 민영 의료보험료가 너무 비싸 전체 인구의 15%인 4500만 명이 의료보험이 없다.

< USA투데이 >의 기사에 따르면 2009년 기준 민영의료보험의 가구당 보험료는 1만3375달러, 1인당 4824달러다. 환산하면 가구당 1500만 원, 1인당 550만 원이다. 2007년 기준 미국 국민의료비는 GDP의 16%이다. 국민 일인당 7290달러(한화 800만 원)라는 엄청난 금액을 의료비로 쓰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가계파산을 한 미국 가정 62%가 '의료비 때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의료비 파산자의 80%는 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더라도 부실보험이 많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런데도 미국인의 건강수준(평균수명)은 OECD에서 24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우리보다도 의료비를 5배나 더 쓰면서도 건강수준은 우리보다도 못한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지금 우리의 국민건강보험을 그대로 놔둔다면 미국처럼 될 것이다. 이 기획시리즈 1편(불안하니 사보험은 필수? 당신도 속았다), 2편('노인들은 돈 안 돼요, 거부합니다'), 3편('치질은 안 해줍니다!' 약관 안 봤어요?)에서 언급했듯이 민간의료보험은 로또, 카지노 등의 도박보다 지급률은 낮으며 노인층, 만성질환자들은 가입조차 거부당하기 일쑤다.

온갖 과장 광고로 국민들을 현혹한다. 민간의료보험은 개인위험률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므로, 연령이 증가할수록 보험료 부담이 급격히 늘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따로따로 가입해야 한다. 그리되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천정부지로 증가하게 되고, 값비싼 보험료로 인해 무보험자들의 규모는 미국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복지제도 갖춘 뒤 성장 늘어난 북유럽 사례, 못 봤나

드라마 <뉴하트>의 한 장면.
 드라마 <뉴하트>의 한 장면.
ⓒ MBC

관련사진보기


복지를 늘리자는 주장에 보수 쪽은 한결 같이 '성장이 우선'임을 강조한다. 성장을 하게 되면 복지는 자연스럽게 늘어난다고. 그러나, 성장과 복지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며 튼튼한 보편적 복지제도를 갖춘 경우에 오히려 성장이 늘어난다는 것을 북유럽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민소득 2만 달러의 문턱에 있는 한국은 소득만으로 보면 이미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삶은 너무도 고달프고, 힘들다. 일차적인 이유는 사회의 양극화 때문이다. 소득의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양산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 일정소득 이상인 중산층도 살기가 버겁다. 아이들 교육(보육)비, 부모님 의료비, 값비싼 민간보험료, 주거비 등의 압박 때문이다. 점증하는 사교육비와 의료비,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집값을 보면 소득이 더 늘어도 이를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무리 성장을 외쳐봐야 그 과실은 일부의 재벌, 불로소득자에게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삶의 필수 영역을 개인적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사회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함께 해결하는 사회로 재조직화 하는 수밖에 없다. 의료비 부담의 사적 지출을 공적으로 돌리자. 보육도, 교육도, 노후도 이렇게 해결하자. 일자리를 나누고, 최저임금을 높이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늘리자. 단순히 복지 확충이 아니라 '복지국가'를 만들어보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이제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자는 운동에 동참해 주길 기대한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한국사회가 사회연대와 보편적 복지가 활짝 꽃피는 복지국가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김종명 기자는 진보신당 건강위원장입니다.



태그:#건강보험하나로, #민영의료보험, #건강보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보적 사회를 염원하는 의료인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