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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내를 다니는 한 버스 밖에 신공항 유치 홍보물이 부착돼 있다.
 부산 시내를 다니는 한 버스 밖에 신공항 유치 홍보물이 부착돼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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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공약을 뒤집은 게 벌써 몇 번째냐. 걱정이다. 신뢰와 명예에 관련된 문제라는 점에서 대통령께서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경제성장률 7% 달성 같은 건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할 수도 되지만 이건 그냥 시행하면 되는 일 아닌가."

정부가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고 필요하면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소식에, 이명박 대통령 직계로 꼽히는 한나라당 한 의원이 내놓은 탄식이다.

대선 이전부터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이 의원은 "계속 이런 식이며 대통령이 다음 대선에 (한나라당 재집권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 어렵고, 대통령 스스로 우리 당 대선후보에게 차별화하라고 하는 것밖에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를 놓고 평가작업을 해온 국토해양부 입지평가위원회가 30일쯤 최종결과를 발표하기로 한 가운데 여권에서는 "두 곳 모두 경제성이 떨어지며, 향후 항공수요 등을 감안해 필요하면 김해공항을 확장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결과발표를 며칠 앞두고 백지화 사실을 흘림으로써 충격을 완화시키는, 전형적인 '여론정지 작업' 모양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문제는 2005년부터 본격화됐다. 1990년대 말부터 '김해공항 포화론'을 주장한 부산시가 가덕도·녹산·김해·기장 중 한 곳에 신공항을 세우는 계획을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에 제출했으나, 경제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돼 유보됐다.

그러던 중 그해 10월 영남권 광역지자체들이 '영남권 경제공동체 구축'의 일환으로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동추진하기로 합의하고 건설교통부에 이를 건의했다. 하지만 대구·경북(TK)은 같은 생활권인 밀양을, 부산은 가덕도를 염두에 둔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고, 건교부도 계속해서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입장이어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6년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허남식 부산시장, 영남권 상공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영남권 신공항 건설 검토를 약속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대선 때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결국 4년 만에 백지화로 결론 나고 있다.

세종시·과학벨트 "대선 때 표 때문에 그랬다" 말 뒤집어

2007년 이명박 후보는  국제과학벨트 입지와 관련 대전 대덕연구단지와 세종시 사이에 행정도시 자족성을 위한 보충성격의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2007년 이명박 후보는 국제과학벨트 입지와 관련 대전 대덕연구단지와 세종시 사이에 행정도시 자족성을 위한 보충성격의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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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이 굵직한 대선공약을 번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종시 문제가 시작이었다. "행정도시는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대통령이 돼도) 변경할 계획 없다"(2006년 12월 13일 충북대 특강)는 발언을 시작으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과 당선 이후까지 15회 이상 세종시 공약이행을 약속했다. 취임 2년 차인 2009년 6월까지도 "당초 계획대로 현재 진행 중이고, 나도 정부 마음대로 취소하고 변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6개월도 안 된 2009년 11월 27일 TV로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이 대통령은 "(대선) 유세 때 처음에는 어정쩡하게 얘기했다가 선거 다가오니 계속 말이 바꿔더라"면서 세종시 수정을 공식화했다. 표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MB표 세종시 원안'의 하나로 내놓았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충청권 조성사업도 '원점재검토'하겠다고 말을 뒤집었다. 올해 2월 1일 방송좌담회를 통해 "선거 유세에서는 충청도에서 표를 얻으려고 관심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해, 다시 한 번 '표 때문에 그랬다'고 인정했다.

덧붙여 "(대선)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거짓말을 했으나, 발언 이후 곧바로 대선공약집 34쪽에 명시된 것이 확인되면서 곱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TK 대 부산의 극심한 세대결 양상 감안해 없었던 일로?"

영남지역 특히 '밀양파'인 대구경북과 경남 밀양 쪽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밀양·창녕이 지역구인 조해진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신공항 문제는 이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08년 9월에 '5+2 광역경제권'에 포함시켜 발표했다는 점에서 세종시 문제와도 차원이 다른 사항"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명박계 핵심으로 꼽히는 의원이지만 "2002년과 2007년에 두 차례나 정부 차원에서 김해공장 확장이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을 지역민들이 다 알고 있다"며 "지역에서는 이번 백지화가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공항 유치전이 당의 핵심축들인 대구·경북 대 부산의 세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어, 한쪽으로 결정될 경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반대쪽의 극심한 반발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없었던 일로 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판단이다. 

'김해공항 확장'에 대해서도 그는 "대선공약 번복이라는 비판에 대한 면피용으로 나온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김해공항 확장'에 대해서는 "김해을의 4·27보궐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유승민 대구시당 위원장 등 대구지역 의원 9명도 28일 오전 긴급회의를 열어 "신공항 백지화에 결사 반대하겠다"는 성명서를 내고 "(백지화가) 사실이라면 정부 스스로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가) 대국민 사기극임을 증명한 것"이라고 맹비판했다.

관련 광역지자체장들도 "중앙 엘리트들의 지방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이번에 절실하게 느꼈다"(김범일 대구시장), 지방의 거센 반발과 엄청난 분노에 직면할 것"(김관용 경북지사), "1320만 영남권 주민과 호남권까지 합쳐 2천만 남부권 주민들의 기대와 염원이 꼭 관철되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김두관 경남지사)고 반발했다.

박근혜, 재차 영남민심 받아 안게 될 가능성 높아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11월 28일 후보자 자격으로 세종시를 방문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세종시 주변에 조성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11월 28일 후보자 자격으로 세종시를 방문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세종시 주변에 조성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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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 지역구이기도 한 박근혜 전 대표의 반응도 주목된다. 그가 신공항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지난달 16일 "대선공약으로 약속한 것이다. 대통령이 약속한 것이고 다른 사람이 결정권도 없고, 알아서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게 전부였다. 밀양이든 가덕도든 한 지역으로 선정이 됐다면 개입하기 어렵겠지만, 백지화가 확정될 경우, 그가 '약속'을 강조하고 나올 것임을 예측케 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가 이 대통령과 날카로운 각을 세우지는 않겠지만, 한목소리로 대통령의 약속위반을 비판하는 영남 전체의 민심을 받아 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표가 오는 31일 자신의 지역구에서 열리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취임식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신공항 관련 언급을 할지 주목된다.

일부에서는 다음 총선까지 1년, 대선까지 1년 반 이상 남았기 때문에 수습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으나, 대선공약번복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정국의 핵으로 등장한 '신공항 백지화' 문제는, 한나라당의 핵심인 영남 내 갈등이라는 점에서 파괴력이 더 커질 수 있다. 충청권의 세종시, 과학벨트에 대해서는 표 때문에 한 공약(空約)이라고 했던 이 대통령이 신공항 문제에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지 궁금하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태그:#동남권 신공항, #대선공약, #세종시, #과학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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