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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이 24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사무동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문화사업은 장기적인 차원에서 비전을 갖고 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정치적 중립은 굉장히 중요한 변수임에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이 24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사무동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문화사업은 장기적인 차원에서 비전을 갖고 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정치적 중립은 굉장히 중요한 변수임에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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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정치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그 답은 지난 2010년 11월 MBC <황금어장>에서도 나왔다. "1회부터 지금까지 15년간 정치인들의 축사가 한 번도 없었다"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말이었다.

문화사업의 정치적 중립, 당연하지만 지키기도 어려운 말이다. 문화사업이 정치적 임용으로 흔들리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예산이 표류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당시 많은 시청자들이 김 위원장의 말에 호응을 보낸 것 역시 이와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예산규모만 5조3000억 원이라는데... 아직 낯설기만 한 '그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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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문화사업이 있다. 그 예산 규모만 20년간 5조3000억 원(민자 1조7000억 원). 2004년부터 시작됐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2023년에야 마무리되는 문화사업이다. 바로 건국 이래 최대 문화 프로젝트로 불리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광주문화수도 육성'이란 선거공약에서 밑그림이 나왔으며, 2006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구도가 잡혔다. 현 정권 들어서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축이 시작되면서 색칠이 한창이다.

그 만큼 화려한 숫자들도 잇따른다. 생산유발효과 8조6984억원, 고용창출효과 또한 11만2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브로슈어의 수식어 또한 화려하다. "세계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듯", 아시아문화를 키워드로 "세계인 모두가 광주에 접속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한참을 봐도 "빛고을 광주가 아시아문화의 등대가 된다"는 뜻이 무엇인지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 아니, 그 이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처럼 '똑' 떨어지는 맛이 없다. 아시아문화가 무엇이고, 또 문화중심도시는 무엇인지, 마치 통 모르는 명화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정치적 중립 지킬 수 있을까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감도를 보며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감도를 보며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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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어려운 그림을 제대로 읽어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니 이런 우려가 생긴다. 과연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을까. 앞으로도 대통령이 세 번은 바뀌어야 완성되는 그림 아닌가. 오히려 정치적 간섭이 적극적으로 작용할 사업은 아닌가.

안 될 말이다. 전문가들은 반값 등록금 정책에 소요될 예산을 5.5조∼6조 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만드는 돈이면 대학생들을 빚쟁이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5조3000억 원이면 서울시 산출 방법에 준하더라도 초·중·고 무상급식을 10년 동안 실시할 수 있는 돈이다.

당연히 검증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는 의지가 어느 정도 확고한지, 그와 같은 의지를 실제로 뒷받침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지난 24일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장을 만난 것도 그래서였다. 노무현 정권 말기였던 2007년 7월에 취임했으니, 이 단장은 적어도 이와 같은 의문에 답할 시간 정도는 충분히 보낸 상태였다.

인터뷰 시작부터 김동호 위원장 이야기를 끌어들였다. 앞으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아래 아문도) 행사에서 정치인 축사가 얼마나 나올지 물었고, 정치적 임용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인적기반을 구축할 것인지도 들어봤다. 정부 재정상황이나 정치적 지형 변화 등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적 기반에 대한 구상 역시 물어봤다.

아직 써먹지 않은 스토리 무궁무진... 아시아의 문화가치

이병훈 '아문도' 추진단장은?
1957년 전남 보성 출생으로 고려대 법대를 나와 줄곧 문화행정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하여 그동안 청와대, 광양군수, 전남도청, 전남도의회, 문화체육관광부 등을 거쳤다.

평소 "문화 위에서 사람이 꽃 핀다"는 지론을 갖고 있을 정도로 '문화 행정'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전남도의회 사무처장 재직시절에는 <문화 속에 미래가 있다>는 책을 썼다. 책을 통해 "개발하지 않는 것도 관광"이란 신념을 피력하기도 했다.

2009년 9월에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전략을 다룬 '문화도시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연구'란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평소 '철밥통'이란 말을 참 싫어한다고, 공부하는 행정가란 평판이 따르는 인물이다.
먼저 아문도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벤트보다는 콘텐츠를 핵심으로 하는 도시다. 어떤 하나의 행사로 1년이 집약되는 것이 아니라, 365일 내내 창조, 교류, 공연 등 문화 활동이 일상적으로 지속되는 도시란 설명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것은 일상적인 문화 활동이 새로운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 콘텐츠는 아시아문화를 '찰흙'으로 한다. 당장 이런 질문이 나올 차례다. 그러니까 대체 그 찰흙이 뭐냐고요. 비슷한 질문을 이 단장에게 던졌다.

"모든 예술이나 콘텐츠 원천은 스토리다. 그 스토리란 것이 지금까지는 그리스 신화, 로마 신화, 성경 등이 주축이었다. 그런 것들은 영화,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등 지금까지 여러 형태로 소화됐다. 너무 많이 써 먹어서 고갈 상태다."

다시 말하자면 아직 써먹지 않은, "아시아에는 신화, 설화, 역사들이 산재해 있다". 이와 같은 스토리를 창작의 아이디어로 제공하고, 그래서 나온 창작물을 콘텐츠 산업으로 연계시켜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핵심이다. 전당 내 아시아문화정보원에 아카이브 형태로 쌓인 '찰흙'을 창조원에 입주한 창작가들이 뽑아 쓴다. 언어가 필요 없는 음악과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을 첨단영상을 버무려 새로운 콘텐츠를 탄생시킨다. 일종의 쇼케이스 형태의 공연을 통해 경제성까지 검증되는 곳이 또한 전당 내 아시아예술극장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 정치적 중립은 굉장히 중요한 변수"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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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이 단장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에서 중심은 패권적 의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일종의 '산파 도시', 그는 "멍석을 까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5조3000억 원짜리 멍석이 광주에 깔리는 셈이다. 물론 그로인해 세계적인 콘텐츠가 나온다면 결코 아깝지 않을 '요람 값'이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문화사업은 장기적인 차원에서 비전을 갖고 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따라서 정치적 상황에 따른 예산 변화나 정치적 임용, 이런 것이 없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은 굉장히 중요한 변수임에 틀림없다."

이 단장도 <황금어장>을 봤다고 했다. 그는 김동호 위원장 말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아문도에서도 정치인 축사는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표심을 얻는 장으로 축제가 활용된다는 것은 대단히 큰 문제"라며 "우리나라만을 무대로 하는 행사가 아닌 데다가, 공동창작과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정치적인 언사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 단장은 "정치적 임용 역시 대단히 어려울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아문도 일 자체가 세계와 연결돼 있어 만만하게 들어갈 자리가 별로 없다"면서 "국제적인 네트워크 능력이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을 비전문적인 사람이 와서 하기는 대단히 어렵지 않겠냐"고 낙관했다.

"현 정부가 굉장히 중요한 버팀목 역할"

이에 '그와 같은 상식적 판단을 무너뜨리는 일이 많지 않냐'고 재차 묻자 이 단장은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해서 현 정부 들어 구체적인 계획들이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라면서 "그 전부터 계속해 온 사업을 정치적으로 흔든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정부가 굉장히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단장은 아문도 주요 기관 인사에서 외국인을 적극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지원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의 기본원리를 제대로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 이야기는 '선수'가 와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꼭 국내 인사로 국한 시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치적 외풍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적 기반 조성에 대해서도 이 단장은 비교적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문화사업은 지속성이 생명"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이 사업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재정자립도 또는 경제적 수익 효과를 극대화 시켜야 한다. 그래서 재정자립도를 30% 이상 확보하는 1차안을 만들어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나아가 이 단장은 좋은 콘텐츠 생산과 공간의 효율적인 운영 등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모든 일을 정부가 다 해야 한다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 과감한 아웃소싱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정말 욕 많이 먹었지만, 진정성에는 변함없어"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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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치적 중립에 대한 소신을 강하게 피력하던 이 단장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축 과정에서 빚어진 도청 별관 보존 논란을 설명하는 과정에 이르러서는 "마치 5·18 정신을 훼손시키는 사람처럼 각인되는 것이 정말 참기 힘들었다"고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단장은 "정말 욕을 많이 얻어먹었지만, 진정성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과거의 역사적 기억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역점을 둬야 한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지면, 5·18의 의미와 가치 또한 세계적으로 전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하여 지역, 정부, 아시아, 세계와의 소통 중 어디가 가장 어렵냐고 묻자 이 단장은 "우리나라와의 소통이 제일 힘들다"란 답으로 대신하면서 "그러나 비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5000년 역사에 이런 일을 언제 하겠나. 앞으로 이런 대형 문화 프로젝트는 나올 수 없다"는 말로 성공적인 조성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끝으로 이 단장은 "사업 자체가 축소되거나 그런 일 없이 하나하나 구체화시켜 나가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돈 많다고 대접받는 건 아니고 이는 국가도 마찬가지다. 아문도가 광주만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것이란 생각으로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는 바람을 함께 전했다.


태그:#이병훈,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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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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