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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새 코너인 '나는 가수다'
 <MBC> 새 코너인 '나는 가수다'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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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입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MBC 일요일 오후 5시 20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들의 열창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지난 20일 방송되었던 윤도현의 열창과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김건모의 탈락 이후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불편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불쾌했다. 지극히 인간적인 면도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시청자들과의 약속이 몇몇 힘있는 이들에 의해 파기되었다는 것과 평가단 500명의 평가가 무색해졌다는 것이 불쾌감을 느낀 가장 큰 이유였다('나가수'의 연출자인 김영희 PD가 23일 하차하게 되자, 김건모도 같은날 밤 기자간담회을 열어 '자진하차'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주 작은 차이로 승패가 엇갈리고, 명암이 바뀌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삶을 통해서 누누이 경험했다. 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어도 승복을 했고, 때론 그 1점 때문에 자신의 인생길에 굴곡이 생겨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그동안 지녀온 문화적인 토대에서 1점의 부족함으로 인해, 종이 한 장의 차이 때문에 명암이 바뀌었다고 '그것은 무효!'라고 선언하거나, 겨우 1점 모자라는데 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태도로 비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나가수'에 느끼는 분노의 근저에는 이런 문화적인 상황들이 들어 있으며, 동시에 최근 몇 년간 '정의롭지 못한' 정치권의 행태에 질린 탓도 있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법 두툼한 인문학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 역시도 정의에 목말라하는 사회현상의 하나였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강자독식의 사회다. 강자들, 가진 자들이 무엇이든지 독식하는 사회는 아이들의 말로 '나쁜 사회'다.

석패율제도 '나가수'와 다르지 않다

<일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고 있는 가수 김건모
 <일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고 있는 가수 김건모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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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정치권에서 '나가수'식 해법인 '석패율제'를 내놓고는 오랜만에 여당과 야당이 한마음이 되었다며 박장대소(?)하고 있다. 석패율제란 국회의원 선거 때에 지역구 출마자를 비례대표 후보로 이중등록할 수 있게 하고,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시키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근소한 차이로 낙마한 유능한 인재들이 나라에 봉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지역주의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일단은 국회의원을 해야만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대다수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다. 둘째, 유권자가 외면한 정치인을 부활시키는 것이 문제다. 셋째, 이러면 소수야당이나 현재 여성이나 장애인 등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이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결국은 여당과 거대야당이 자기들끼리 다 해먹겠다고 야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종의 나눠 먹기인 것이다.

이번에 '나가수' 파문과 '석패율제'는 전혀 다른 내용 같지만,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몇몇 사람이 약속과 규칙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재도전을 감행한 '나가수' 경우에도 인간적인 면만 보면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 석패율제도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약속과 규칙을 몇몇 강자가 깨뜨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나가수'에 나온 7명의 가수와 매니저, 연출자, 스태프들이 500명 평가단의 평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것, 이후 논란이 일자 관계자들이 지속적으로 이런저런 변명을 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하고 있다는 것 등등. 그들은 오히려, 문제제기를 하는 시청자들이 문제인 것처럼 자신들의 잘못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 시작은 지극히 인간적이었지만, 남은 것은 피차간 상처뿐이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의도가 나쁘지 않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만일, 재도전이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고 규칙대로 진행했다면 '나가수'는 물론이요, 김건모도 부끄러울 것 없는 무대였을 것이다. 모두가 승리할 기회였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모두 패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것이다.

국회의원 말고 차라리 입시를 그렇게 바꿔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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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는 충분히 이해가지만, 단순히 국민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대로, 유권자가 탈락시킨 정치인을 다시 정치인으로 앉히는 것은 재도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아까운 인재가 1표 차이로 낙선할 수도 있지만, 부도덕한 정치인이 1표 차이로 낙선할 수도 있다. 현재의 제도가 비인간적인 것 같지만, 차라리 지극히 인간적이다.

만일, 국회의원을 이런 식으로 뽑을라치면 대학입시도 그렇게 치르는 것은 어떻겠는가? 어차피 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될 것이고, 그 1점 차이라는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니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수험생 모두 서울대(?) 혹은 원하는 대학에 다 들어가게(어차피 1점 차인데) 하는 것도 좋은 방안 아닌가? 입시제도를 전면 수정해서 원하는 이들은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하면 골칫거리 사교육도 해결할 수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입시교육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석패율제보다 차라리 대학입시를 바꾸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여당과 거대야당에만 유리한 제도라는 것이다. 석패율제가 적용되면 소수야당이나 소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제도교육이 파행을 겪으면서 사교육이 창궐하고 결국 교육에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가져왔듯이, TV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고 스타가 되려고 연줄연줄 이어가는 과정에서 장자연 사건 같은 것이 일어났듯이, 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소수자들과 약자들은 언제나 강자와 권력을 쥔 자들의 노리개가 되었듯이, 정치권의 판도도 그렇게 갈 것이다.

거대야당과 여당이 손을 맞잡고자 한다면 못할 일이 없는 정치판에서 그들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다면 정당의 목적인 '권력의 획득' 이면에 숨어 있는 칼날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오랜만에 한마음으로 찬동한 '석패율제', 그것이 걱정되는 이유다.


태그:#나가다, #석패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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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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