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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노 신고는 담배를 재배하는 농부였다. 간노는 돈을 벌고자 부업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그러던 중 3월 11일 대지진이 발생하고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긴급사태가 선포되면서 간노는 건설 현장에서 할 일이 없어졌다.

 

원전의 위기가 점점 심각해지고 일본 정부가 대피 구역을 넓힘에 따라, 간노는 아내와 어린 딸을 처가로 피신시켰다. 간노는 또한 후쿠시마 원전에서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있는 미나미소마의 고향 마을에 있던 일가친척들이 스포츠센터를 비롯한 대피소로 피하도록 도와줬다. 그 후 간노는 원전 측으로부터 '돌아와서 일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가족들은 간노에게 가지 말라는 전화를 번갈아 했다. 가족들은 간노에게 '너는 원자력발전소 기술자가 아니라 농부다, 그런 복잡한 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네겐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간노에게 부모님과 어린 딸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간노 신고의 작은할아버지인 간노 마사오는 "난 신고에게 '네겐 가족이 있다. 너는 회사에 대해 생각해선 안 된다. 네가 생각해야 할 건 네 가족이다'라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간노는 18일 원전으로 돌아갔다. 간노의 가족들은 그 후 간노에 관한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담배 농부 간노, 원전으로 돌아가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21일(현지 시각) '후쿠시마 원전 사무라이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의 (이른바) '원전 사무라이'가 참사를 막고자 목숨을 걸고 있지만, 그중 많은 이들은 과업을 감당하기 어려운 육체노동자들"이라며 간노 신고의 사연을 소개했다.

 

<가디언>은 "3.11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전개된 위중한 상황은 고사하고 원자로 근처에서 일해본 적도 없는" 담배 농부 간노가 이제는 "조국을 대참사에서 구해내고자 애쓰는 이타적인 영웅인 '원전 사무라이'의 일원"이 돼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사람들은 그들을 원전 사무라이라고 부르지만 (중략) 신고 같은 사람은 아마추어"라는 간노 마사오의 말을 전했다.

 

이와 관련, <마이니치신문>은 21일 300~500명의 작업 인원 중 전력 복구 작업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사람은 약 70명이라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 "영웅? 원전 작업 거절하면 입장 곤란해질 것")

 

간노 마사오는 후쿠시마 인접 지역인 요네자와의 스포츠센터에 대피한 500여 명 중 한 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반경 30킬로미터 내에 살았는데, 본인 혹은 가족이 원전에서 일하거나 학교나 직장을 오가며 매일 원전을 지나친 사람들이다.

 

<가디언>은 "간노 마사오처럼 이번 위기와 개인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원전에서 일하고 있는 약 500명의 노동자들이 보여준 용기에 감동하고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가디언>은 이처럼 "원전 사무라이에 대한 숭배가 고조되던" 21일 일본 텔레비전이 원자로에서 빠져나온 한 원전 노동자의 인터뷰를 내보냈다고 전했다.

 

얼굴을 가린 채 화면에 나온 이 노동자는 사이렌이 울리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땅이 울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고, '사용 후 핵 연료봉' 저장 수조에서 물이 철벅거리는 상황을 묘사했다.

 

그러고 나서 이 노동자는 "(원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힘든 결정이었지만, 난 정말 바깥으로 나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원전과 맺고 있는 관계를 다시 따져보고 있다"

 

<가디언>은 "이러한 장면들이 스포츠센터에 대피해 있던 사람들의 정서를 강하게 자극해, 대피한 사람들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와 맺고 있는 관계를 다시 따져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업무 때문에 정기적으로 원전을 방문했다는 야마모토 케이이치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 삶보다 회사를 우선시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며 "나는 '원전 노동자들이 세뇌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후쿠시마 원전 건설에 "일본 정부도, 후쿠시마현도 동의했고 심지어 지역 주민들도 직업을 얻게 되자 동의했다"며 "그렇게 동의한 데서 비롯된 결과를 지금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야마모토 케이이치는 원전 건설 당시 상황을 "그건 거래였다"고 정리했다.

 

또한 <가디언>은 주변에 원전이 있다는 것조차 충분히 인식하지 않은 채 살아온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 지역의 방사선 수치를 확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대피한 주민 중 일부는 일본 정부가 경보를 해제해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반면, 일부 주민들은 이번 재난에 자신들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지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태그:#일본대지진, #후쿠시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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