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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한 송광사 대웅전. 현재 보물 제1243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 대웅전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한 송광사 대웅전. 현재 보물 제1243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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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송광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7년인 867년에 도의선사가 처음으로 세운 절이다. 그 뒤 폐허가 되어가던 것을 광해군 14년인 1622년에 응호, 승명, 운정, 덕림, 득순, 홍신 등이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인조 14년인 1636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확장했고, 요즈음에는 조계종 포교원장을 지낸 도영스님에 의해 중창이 계속되고 있다.

송광사는 원래 '백련사(白蓮寺)'라 불렸으며, 800동의 당우와 600명의 승려들이 살았다고 한다. 경내에는 16방사가 즐비하여 16명의 주지를 두어 '방주'라고 불렀다고 하니, 그 규모가 대단했나 보다. 현재 절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은 보물 제1243호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소조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보물 제1274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지붕은 부연을 내달은 겹처마 양식의 팔작집이며 다포계 양식으로 꾸몄다
▲ 팔작지붕 지붕은 부연을 내달은 겹처마 양식의 팔작집이며 다포계 양식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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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은 덤벙주초를 사용하고 있으며, 원형의 기등을 세웠다
▲ 주초 대웅전은 덤벙주초를 사용하고 있으며, 원형의 기등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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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작지붕으로 지어진 송광사 대웅전

어느 절이나 가장 중심이 되는 대웅전은 볼 것이 많다. 이는 아무래도 대웅전이라는 곳이 포교의 중심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송광사 대웅전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인조 14년인 1636년에 벽암국사가 다시 짓고, 철종 8년인 1857년에 제봉선사가 한 번의 공사를 더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송광사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우측에 아미타부처님, 좌측에 약사 부처님을 각각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로 모셨다. 전각 안에 모셔진 부처님으로서는 규모가 매우 크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지어진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다포 양식으로 꾸며졌다. 현재 대웅전에 걸린 현판은 인조 14년인 1636년에, 광해군의 아우인 의창군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기단은 2단의 장대석으로 쌓았다. 앞쪽에 보이는 기단은 최근에 새롭게 꾸민 것이다
▲ 기단 기단은 2단의 장대석으로 쌓았다. 앞쪽에 보이는 기단은 최근에 새롭게 꾸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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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 계단 옆에 놓인 석물. 용의 머리로 보인다
▲ 석물 대웅전 앞 계단 옆에 놓인 석물. 용의 머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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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과 왕비를 위해 만든 소조삼존불

송광사는 명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기원한 곳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현재 경기전 안에 있는 전주사고의 왕조실록을 지키기 위해, 승병 700명이 송광사에 머무르기도 했다. 이렇듯 수난을 당할 때마다 영욕을 함께 한 송광사이기에 남다른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웅전을 한 바퀴 돌아본다. 2단의 기단 위에 덤벙주추를 놓고 원형의 기둥을 세웠다. 정면에는 5칸 다 창호로 문을 내었으며, 전면을 제외한 삼면의 아래쪽은 판벽으로 처리하였다. 벽의 위편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다포계 양식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다. 외형적로만 본다면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송광사가 특별한 것은 바로 내부에 있다.

송광사 대웅전에 모셔진 본존불에서는, 1993년 소조삼존불의 조성기가 발견되었다. 조성기에 의하면 인조 5년인 1641년 6월 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기 위해 삼존불을 조성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우측에 아미타부처님, 좌측에 약사 부처님을 각각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로 모셨다. 소조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보물 제1274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 소조삼존불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우측에 아미타부처님, 좌측에 약사 부처님을 각각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로 모셨다. 소조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보물 제1274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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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본존불 뒤편에 세워놓은 목조삼전패. '주상전하수만세'란 글이 보인다.
▲ 목조삼전패 대웅전 본존불 뒤편에 세워놓은 목조삼전패. '주상전하수만세'란 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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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삼존불 사이에는 나무로 만든 목조삼전패가 있다. 그 중 본존불의 뒤편에 있는 삼전패는 높이 2.28m로 앞면에는 '주상전하수만세'라고 적었다. 뒷면에는 조선 16대 왕인 인조 때 조성되었다고 제작연대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2점은 높이가 2.08m로 같으며, 뒷면에 정조 16년인 1792년에 수리하였음을 검은 글씨로 적었다. 앞면에는 왕비와 세자의 만세를 기록했다.

조선 문화를 보여주는 비천무인도

송광사 대웅전이 특별하다는 것은 바로 대웅전 안쪽 위벽에 그려진 비천상이다. 좌우측에 2점씩 있고, 전면으로 7점이 그려져 있다. 모두 11점이 그려져 있는 이 비천상은 인조 14년인 1636년에 벽암국사가 대웅전을 다시 지으면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모두 11점의 '비천무인도(飛天舞人圖)'는 색깔이 화려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현재는 대웅전 바깥벽에 이 그림들을 모사해 걸어놓았다.

대웅전 안벽 위쪽에 그려진 비천무인도. 당시의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소중한 자료이다.
▲ 비천무인도 대웅전 안벽 위쪽에 그려진 비천무인도. 당시의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소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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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천무인도를 보면 당시 지역의 문화를 알 수가 있다. 이 비천무인도는 그때의 무용 복식과, 활발하게 연희되었던 춤 등을 알아보는 데 있어 소중한 자료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송광사는 지역문화를 이끄는 중심사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광사는 나라를 위한 호국사찰로, 지역의 문화를 일으키는 문화사찰로의 가치를 갖고 있다. 송광사 대웅전이 소중하다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는 절이 흔치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송광사는 2월 23일과 3월 16일 두 차례에 걸쳐 답사하였습니다.



태그:#송광사대웅전, #소조삼존불, #보물, #전북 완주군, #비천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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