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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박혜경.
 가수 박혜경이 손으로 하트 표시를 그려보이며 재능기부자들의 `트럭콘서트'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최근 2.5톤짜리 트럭 두 대를 빌려 재능기부에 동참한 이들의 수고만으로 콘서트를 꾸미겠다고 야무진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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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트리 공작단은 별건 아니에요. 갑자기 부모님을 잃게 된 청소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친구, 오빠, 언니, 이모, 삼촌 등이 되어줄 재능을 나누는 거죠. 재능은 특별한 게 아니에요. 함께 손잡고 걸어주는 것!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전 얼마나 모일까 그랬는데 의외로 선의를 모아주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서 저 또한 감동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참 좋고 착하신 분들이 많구나, 레몬트리 공작단만 생각하면 그냥 기분이 막 좋아져요!"

사실 가수 박혜경(37)씨를 만나려고 했던 건 '쌍용차의 아이들' 때문이었다. 쌍용차 구조조정으로 1년 무급휴직자로 지내다 회사의 복직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힘들어하던 쌍용차 노조원 임무창씨는 지난 2월 26일 저 세상으로 갔다.

임씨의 부인은 남편의 파업과 실직으로 인해 우울증을 앓다가 지난해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별안간 부모를 모두 잃게 된 아이들. 그들은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2학년이다. 박혜경씨는 트위터에서 이 소식을 접했고, 두 아이의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트위터를 통해 그 뜻을 전달했고, 곧장 '레몬트리 공작단'이 개설됐다. 하루 만에 트위터리안 300명이 가입했다.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게다가 400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영화 <조선명탐정>을 제작한 제작사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도 이 모임에 가입해 자신의 재능을 나누겠다고 밝혔다.

영화배우 김여진씨가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문제에 결합하면서 '날라리 외부세력'을 만들었다면, 가수 박혜경씨는 '레몬트리 공작단'을 만들어 어느 날 갑자기 부모를 잃게 된 아이들의 '꿈 지킴이'가 된 셈이다.

평소 기계치로 알려진 그가 어떻게 이렇게 스마트폰과 트위터의 매력에 빠졌을까, 그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 어려웠던 생활, 생활인 가수로부터 버텨내야 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돈 내는 것보다 재능기부가 더 갚지지 않나 해요"

아래는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찻집에서 키위딸기주스를 앞에 두고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 최근엔 앨범홍보보다는 재능기부에 주력하는 분위기예요. 특별한 까닭이 있나요?
"하하. 우선 재능 기부는 '모두가 섞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 것 같아요. 주는 사람 따로, 받는 사람 따로, 이게 아니고 주고받는 사람들이 모두 섞이는 거죠. 전 그런 게 참 좋더군요. 그냥 돈을 내는 기부보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부하고 어려운 이웃과 '섞일 수 있다는 것'은 기부자에게도 도움이 많이 되는 일이거든요. 돈 내는 것보다 재능기부가 더 값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물론 돈을 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요."

- 왜 재능기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나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부모님을 잃어버린 청소년들이 생계유지 때문에 꿈을 버리지 않는 거예요. 생계유지 때문에 자기 꿈을 버리게 되면 안타깝지 않을까요? 온전히 자기 꿈을 키워가도록 돕고 싶어요. 어떤 환경에서든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이 자기 꿈을 펼치도록 하는 것은 어른들의 임무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10대와 20대에 자기 꿈을 버려야 한다는 건 참 가혹하잖아요. 저 역시도 지금까치 참 처절하게 또 치열하게 가난을 극복하며 살았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장녀로서 어머니와 함께 동생들 공부시켰고, 서러움과 소외, 가난에 떨어보기도 했고, 힘이나 권력에 분노해 치를 떨어본 일도,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후후. 그런 내가 어느덧 성장해 이 자리에 섰는데, 이제는 내 이름을 좀 더 좋은 곳에 써야겠다 내 나이 30대, 그리고 40대를 그렇게 살자 생각하고 재능기부도 적극 하려고 나선 거지요."

- 아버님께서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그랬지요. 엄마는 30대 초반이셨고, 당시 우리 막내가 다섯 살이었어요. 생계를 유지해야했지요. 제가 돈을 벌기 전까지는 우리 엄마가 정말 지극정성으로 네 아이를 키우시며 생계를 유지하셨어요. 저도 참 많이 힘들었던 유년시절이 있답니다. 후후."

-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수라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궁금하네요.
"'연예인이 되면, 스타가 되면' 그런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노래를 잘 해서 스타가 되면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고 삶도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죠. 부모님 없는 아이들이 원래 좀 조숙해요. 눈치도 빠르고. 저 역시도 그랬어요. 남 눈치 잘 보는 어른스러운 아이였지요. 자기 즐거움보다는 가족과 엄마에게 미칠 영향을 먼저 생각했고. 노래만 부르는 게 꿈은 아니었어요. 일반 직장인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주 막연한 스타에 대한 꿈이 있었지요."

시골소녀의 서울탐험 이야기

 가수 박혜경.
 가수 박혜경.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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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어떻게 해서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됐나요?
"제 고향이 전북 진안이에요. 중학교 때 처음 서울로 유학을 왔어요. 그땐 전화도 없어서 우체국을 통해 엄마랑 통화하고 그랬어요. 하하. 제가 살던 고향이 엄청 시골이었거든요. 다른 지역에 비해 굉장히 낙후했지요. 그런 시골 촌동네에 살다 서울에 와서 이른바 '서울탐험'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신기한 게 많았겠어요. 고등학교 때는 극단도 찾아다녔고, 뮤지컬 오디션도 보러 다녔어요. 연예인, 가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다닌 거지요. 그때 생각이 아, TV에 나오는 걸 해야겠다, 결심했지요. 그리곤 대학 1학년 때에야 강변가요제에 나간 거예요."

- 강변가요제에서 입상을 했나요?
"본선진출이요. 하하하하. 그게 1995년도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치면 제가 벌써 17년째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네요. 무슨 가요제에서 본선 진출을 하면 기획사들이 이런저런 제안을 해요. 그런데 그때 온 제안들은 모두 제가 원하는 장르의 노래가 아니었어요.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1997년도에 더더로 앨범도 냈고 데뷔를 한 거죠."

- 가수라는 생활은 만족스러우셨나요? 힘들었던 것, 부당했던 것은 없었어요?
"생활인으로서 가수를 한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하하하. 어떻게 보면 더 용감해질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 첫 데뷔 음악프로는 <이소라의 프로포즈>인데, 사실 그 전에 <서세원쇼>의 토크박스에 먼저 출연해서 주목을 끌었죠. 예능프로 먼저 출연하는 게 반갑지 않았을 것 같아요.
"솔직히 싫었죠. 하지만 신인가수를 방송에서 자리 만들고 불러주나요? 얼굴은 알려야 하고. 싫었지만 그래도 나갔어요. 그때 <서세원쇼> 시청률이 엄청 났었어요. 제가 토크박스 1위를 세 번 정도 했어요. 그냥 자신 있었어요. 이런 프로에 나와도 내가 가수가 되는데 별 지장은 없을 것이다, 뭐 그런 자신감이 있었어요. 한동준 선배가 어디 글을 올렸던데, 예전에는 노래가 좋아서 가수를 좋아했다면, 요즘엔 가수가 좋아서 그 노래를 좋아해주는 것 같다고. 트랜드의 변화겠죠?"

-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가요차트 1위곡을 부르는 가수는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던데, 무슨 의미예요?
"항상 2위까지는 가는 가수예요. 하하하. 1위는 안 되더라고요.(웃음) 솔직히 말하면 제 노래가 많은 대중들에게 큰 공감과 반향을 일으키는 장르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인터뷰를 하면서 틈새시장을 얘기하곤 했었지요. 굳이 분류를 하자면 마니아층이 있는 것 같고, 모든 대중이 다 사랑하는 그런 장르로 접근하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살짝 낯선 스타일? 그 덕분에 CF음악에 많이 사용됐고, 오히려 그래서 제 노래를 편히 여기는 분들도 생기는 것 같고 그래요. 제 노래는 대중가요지만 노래 부르는 스타일, 악기 구성과 편성이 좀 낯설기는 해요. 그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 올 초 발표한 새 디지털 싱글앨범 '헬로 허니'는 박혜경의 새로운 변신을 담았다는 평가를 듣더군요. 스윙풍의 소프트 록이 가미된 경쾌한 분위기의 노래던데, 저도 들어보니 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더군요. 뮤지컬 같은 퍼포먼스도 하실 거라면서요.
"제 노래는 늘 변하지 않지만 변해온 것 같아요.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음…, 변하지 않지만 변화하는 것? '주문을 걸어' '안녕'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 '빨간 운동화' '하루' '레인' 모두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랩 들어간 노래도 불렀고, '레몬트리' 같은 상큼발랄 노래도 있고. 어떤 곡이든지 제가 부르면 저스러워지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 지금까지 부른 노래 중 가장 '박혜경스러운 노래'는 어떤 거예요?
"전부. 하하하하. 세 곡을 고르라, 하면. 우선 '내게 다시' 이건 더더를 대표하는 곡이고. '고백'은 솔로 히트곡. 다시 또 오랜 세월 노래를 하게 해준 '레몬트리'. 박혜경스럽다기 보다는 제가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해준 노래, 다시 한 번 가수로서 살게 해준 노래들 같아요. 젊은 친구들이 박혜경이 누구야? 해도 '레몬트리'하면 아하! 그래요. 고마운 일이지요."

박혜경이 2.5톤 트럭 2대를 렌트한 까닭

 가수 박혜경.
 ‘트럭콘서트’로 재능기부 나선 가수 박혜경.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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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최근 들리는 소문으로는 2.5톤짜리 트럭 2대를 렌트해 놓셨다고 하던데, 왜요?
"아, 그거요! 사실 데뷔하고 어느 정도까지는 오로지 일만 생각했어요. 아무것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나 자각이 생겼어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건 지난해부터죠. 그전에도 가끔 봉사는 다녔지만 그것도 다니다말다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고 한 주에 한번 꼭 봉사를 하자 목표를 세웠어요. 최근 제가 트위터를 시작했잖아요. 봉사 다녀와서 어디 갔다 왔다 이렇게 글을 올리면 맨션이 많아요. 나도 가고 싶다, 같이 하면 안 되겠느냐. 아, 이걸 나만 할 게 아니라 알려서 모두 함께 동참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생각을 한 거죠.

재능기부를 적극적으로 제안한 것도 그 맥락이에요. 함께 하고 싶지만 몰라서 못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분들께 트위터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알려드리는 거죠. 번개를 하면 정말 많이들 오세요. 신기하죠? 그래서 결심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나는 매니저가 되자!' 그렇게요. 하하."

- 그래서 트럭을 빌려 무엇을 하게 되는 건가요.
"3월말에 '박혜경과 레몬트리 공작단'에서 재능기부 트럭콘서트를 할 거예요. 재능기부 하면, 뭔가 특출 난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들 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나는 김밥을 잘 싼다, 혹은 나는 설거지를 잘한다, 나는 청소를 잘한다, 뭐든 재능기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 이번 트럭콘서트 때도 재능기부자들이 도시락과 음료를 싸갖고 다닐 거예요. 재밌지 않아요? 하하하하."

- 레몬트리 공작단은 뭐예요? 배우 김여진씨의 '날라리 외부세력' 비슷한 건가요?
"하하하하. 맞아요. 여진 언니도 참 열심히 하시죠? 레몬트리 공작단 문 열고 첫날 모이자 했을 때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해주셨어요. 첫날 가입자가 300명이 넘었어요. 1주일 넘었는데 얼마나 더 늘었을까요?

레몬트리 공작단은 별건 아니에요. 갑자기 부모님을 잃게 된 청소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친구, 오빠, 언니, 이모, 삼촌 등이 되어줄 재능을 나누는 거죠. 재능은 특별한 게 아니에요. 함께 손잡고 걸어주는 것!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전 얼마나 모일까 그랬는데 의외로 선의를 모아주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서 저 또한 감동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참 좋고 착하신 분들이 많구나, 레몬트리 공작단만 생각하면 그냥 기분이 막 좋아져요!"

- 트럭콘서트 이외 '레몬트리 공작단'에선 또 어떤 활동을 하나요?
"어린이재단과 연계해서 일종의 결연을 해요. 또 어린이재단 후원금 모금 저금통을 받아서 레몬트리 공작단의 스티커를 붙이고 트럭 타고 돌아다니면서 콘서트 하지요. 콘서트 하면서 그 저금통도 돌리고. 석달 뒤엔 저금통이 가득 쌓일 게 아니에요? 그럼 그때 거둬들여야지요. 후원하는 게 목적은 아니지만 그런 것도 필요하니까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원합니다"

-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때 옥쇄투쟁을 했고, 최근 사망한 고 임무창씨 아이들과 함께 하셔서 화제가 됐는데. 
"생각해보면 저도 일찍 아버지를 잃었지만 이렇게 잘 클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기 때문이에요. 제가 꿈을 버리지 않도록 지도해주신 분들이죠. 자취방 주인, 독서실의 좋은 오빠들, 좋은 선생님, 또 시골 선교사님. 그런 분들 덕택에 제가 꿈을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저는 그 친구들에게 그런 누나 언니가 되고 싶은 거지요. 그래서 만났고, 만나서 뭐 특별하게 한 건 없고. 굉장히 가볍게 만났어요. 뭐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머리 하고 싶다고 해서 함께 미용실 가서 머리하고 밥도 먹고 그랬어요. 서로 문자도 주고받고, 사인도 받아갔어요. 3월말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그냥 친구 만나듯 자연스럽게 만나서 노는 거예요. 별건 아니지요."

- 쌍용차 문제에는 어떻게 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트위터에 그 사연이 올라왔어요. 쌍용차 정리해고 때 파업을 했던 아버님, 그리고 곁에 계셨던 어머님 모두 돌아가셨다고. 그 글을 읽고 아이들이 걱정이 돼서 그 글을 올린 분에게 트위터에서 쪽지를 보냈어요.

도움이라는 것도 실은 막무가내로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상대가 원치 않을 수도 있는데 무작정 돕겠다고 나서는 건 또 하나의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물어봐달라고 요청을 드렸더니, 큰아이가 허락을 했다더군요. 정확한 사정을 얘기했고.

그 친구를 만난 뒤 문자가 왔는데,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 나중에 이 은혜를 꼭 갚겠다' 그랬어요. 생각해보니 저도 어릴 때 그렇게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눈물이 났어요. 마음이 짠해지더군요. 그날 머리 하고, 인도요리 먹고, 용산역까지 데려다주고 그리곤 집으로 왔지요."

"남자들한테 욕 먹기 싫어 말 안 했는데"

 가수 박혜경.
 가수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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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인데 집에 텔레비전이 없으시다면서요? 왜 안 보세요?
"기계를 싫어해서. 아주 오랜 세월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어요. 한 1~2년? 나 혼자 지낼 공간을 얻게 된 뒤로 없앴지요. 사람들이 '미실' 얘기를 하면, '미실이 누구야?' 했고, 길라임 얘기하면 걔가 누군데? 했죠. 제가 TV 나와도 전 모니터 잘 안 해요. 보고 싶지 않아서요. 제가 나오는 걸 보면 가슴 졸이게 돼서 오히려 불편한데, TV 안 보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 기계를 싫어하시면 집안에 모든 가전제품이 없는 거예요?
"아니오. 오디오는 있어요. 밥통도 있지만 잘 안 쓰고. 주로 솥단지에 밥을 해먹어요. 하하하. 아날로그를 지향한다고 해야겠지요. 기계보다는 꽃을 사랑하고 나무를 아주 좋아해요. 지금은 우리 고향이 용담댐 때문에 수몰됐지만 참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 그래서 새벽시장에 가서 꽃을 사다 꽃꽂이도 하시곤 하시는군요.
"그럴 때도 있지만 대개 게으르고 싶을 때는 아주 게으르게 살아요. 억지로 일부러 새벽시장에 가는 건 아니에요. 꽃을 너무 좋아하니까 꽃을 보고 싶어서 가는 거죠 뭐. 왜 싸우다가도 꽃을 보면 웃게 되지 않나요? 저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꽃,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을 모두 좋아하지요."

- 고 장자연씨 편지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편지의 진위여부를 떠나 사람들은 이 사건의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고, 김여진씨도 트위터를 통해 진실을 밝혀 달라 호소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저는 생전에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그 사건은 참 어이없는 일인 거죠. 말이 안 되는 사건 아닌가요?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저도 대중연예인이라 남자들한테 욕먹기 싫어서 이런 말 잘 안 했었는데요. 뭐랄까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데도 참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 같아요.

태국에서 한국 남자들이 10대 성매매 해서 문제 된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동남아를 돌아다니며 해외 원정 성매매를 하지요. 심지어 필리핀에선 어학연수생들이 현지처까지 두고 성매매 하는 것 아시죠? 이런 건 다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에요. 뭐든 하지 말아라, 웃어라, 행복해라, 이것만 가르치지, 슬픈 감정, 화내는 감정, 이런 건 모두 억누르는 교육이에요. 성문제도 무조건 못하게 막으니까 어떻게든 해보려는 호기심이 발동해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성경험을 하되 문제가 생기지 않게 교육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무조건 안 돼, 나쁜 거야, 막지요.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최근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도 아주 감명 깊게 읽었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다 여자들이 남편과 행복하게 살려면 좀 참으라는 것 같아요. 남편이 바람을 펴? 당신이 아내로서 최대 주주니까 참아! 이 대목에서 저는 저항정신이 생기더군요. 우리나라는 일부일처제가 아닌 것 같아요. 요즘 보면 일부다처제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이런 건, 비단 학교교육의 문제라기보다는 집안에서 또 사회적으로 잘 가르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정말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슬람 국가에서 하느님 믿으라 하는 것, 고쳐야 한다"

- 살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신 경우는 없었나요?
"저는 직장 생활을 못해봤지만 대기업에 가면 여자가 너무 잘나서도 안 되고 못 나서도 안 되고, 딱 중간만 해야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더군요. 이게 말이 되는 걸까요? 무엇보다 저는 최근 공개오디션을 통해 신입사원을 뽑는 한 방송 프로를 보면서 이게 참 말이 되는 건가 싶었어요.

오디션을 보는 프로인데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못 하는 사람을 뽑아서 잘하게 하고, 그걸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인데 거기까지 오기 위해 잘하려고 불굴의 노력을 했던 이들은 다 뭔가 싶더군요. 열심히 준비해서 이제 잘하게 됐는데, 그 시험은 못 하는 사람을 뽑아 잘하게 해준다면 그 허탈감이 어떨까요? 잘하는 사람은 모두 떨어뜨리고. 세상이 참 특이한 게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 가수지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생활인인데 무엇이 가장 잘못됐고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슬람 국가에 가서 하느님을 믿으라고 선교하는 것. 뭐냐면 우리는 늘 같아야 한다는 것만 배우고 자란 것 같아요. 다르다 이런 걸 잘 안 가르친 것 같아요. 예전 학교 다닐 때도 너는 꿈이 뭐니? 하면 반은 대통령, 장군, 판사, 간호사라고 말하잖아요. 뭔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또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만 강조할 게 아니라 실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아픔과 슬픔도 돌이키고 생각해볼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복은 당위만으로 오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 그러던데, 네잎클로버만 찾다가 세잎클로버가 다 죽도록 몰랐다, 이러면 안 되잖아요."

-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로 알려져 있어요. 요즘 주로 무슨 책을 읽으세요?
"많이 읽을 땐 하루에 세권도 읽어요. 주말엔 주로 강남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보지요. 사람들이 잘 몰라봐요. 후후. 어제(7일)는 동화책 10권을 샀어요. 그냥 그림이 예뻐서 사기도 하고, 글이 좋아서 사기도 하고. 제가 동화책을 참 좋아해요. 최근엔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쓴 책 참 재밌게 읽었고. <어린왕자>를 또 샀다는 거 아닙니까. 보면 볼수록 참 좋아요."

- 산울림이나 양희은 같은 가수의 노래를 동요처럼 만들어보고 싶다고 얘기하셨던데 그것도 다 동화사랑에서 기인한 건가요?
"요즘 동요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어요. 제가 리메이크한 노래 중 광고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던 '뭉게구름'이라는 노래. 그것도 참 좋았어요. 그런데 그 세대 선배들의 노래는 가사가 정말 예술이잖아요. 한영애 선배님의 노래도 그렇고. 기타리스트 이정선 선배의 '꽃신'도 제가 헌정앨범에서 불렀지요."

- 동화를 열심히 읽는 건 작사하는데 도움을 좀 받기 위한 노력인가요?
"아니오. 그냥 철이 덜 들어서 그래요. 하하. 그냥 동화책이 좋아요. 좋으니까 읽는 거죠. 어른 책도 많이 읽어요. 공지영 선생님의 책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줄쳐 가며 읽었어요. <즐거운 나의 집>도 재밌게 읽었죠. 박완서 선생님 책도 거의 다 읽었어요."

- 어느 인터뷰를 보니 불행해져도 좋으니 가수가 되게 해 달라 기도를 했다면서요. 그렇게 가수가 되고 싶었던 까닭은 뭐예요. 차라리 행복한 게 더 나은 것 아닐까요.
"그만큼 절실히 가수를 하고 싶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뭐냐면, 내가 가수를 하고 싶다는데, 내가 이 길이 나의 길이라는데, 안될 게 뭐야, 하는 반항심 같은 거죠. 불행해져도 좋으니 가수는 꼭 되고 싶다 이런 말은 꼭 가수가 될 것이라는, 되고야 말겠다는 의지였어요. 후후."

- 대한민국 국민의 80%가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여론조사가 있었어요. 연예인이 되려는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직종인가요.
"옛날에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과 요즘 아이들이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자기의 주장과 생각이 뚜렷해서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대중문화에 많이 노출되다보니까 그냥 그게 좋아 보이는 것이고, 하고 싶게끔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빵집 옆에 살며 늘 빵 굽는 것만 보고 자란 청년이라면 나도 나중에 빵집 주인이 돼서 큰 부자가 되고 멋있게 살아야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요즘 아이들은 대중문화와 미디어 노출빈도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꿈을 그쪽으로 가져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저 여자 까칠하네! 그래도 노래방에선 노래 안 합니다"

 가수 박혜경.
 가수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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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인터뷰 하러 오기 전에, 트위터에 박혜경씨 인터뷰 하러 가는데 뭐 묻고 싶은 거 없냐, 대신 물어드리겠다! 했더니, 여러 질문이 왔는데 그중 제일 많았던 것이 독특한 목소리 관리 비법입니다. 또 특이한 목소리는 부모님 가운데 누굴 닮으신 거냐고 묻더군요.
"엄마는 그림을 잘 그리셨어요. 옷도 잘 만드셨고. 그런데 노래는 잘 못하셨어요. 제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목소리는 따로 관리 안해요. 다만, 술과 담배는 안 합니다. 담배 많이 피워 공기가 나쁜 곳엔 안 가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담배연기가 자욱 하면 사양하고 빨리 나옵니다. 또 가라오케, 노래방에서 노래는 안 합니다. 친한 친구들끼리 1년에 몇 번 가기는 하지만 노래를 굳이 하려고 하진 않아요. 담배냄새를 많이 맡으면 목이 너무 금방 쉬어요. 남자들이 저 여자 성격 까칠하네! 그래도 그냥 나와요. 저는 담배냄새가 너무 싫어요. 저는 솔직히 제 목소리 보험 들어놔야 할 정도로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웃음) 그런 자리에 가서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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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정치선임기자입니다. <장윤선의 팟짱> 진행자이기도 해요. 지은 책으로는 <한국의 보수와 대화하다> <소셜테이너> 등이 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기자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모든 워킹맘을 응원합니다.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