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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 설거지를 하는데 라디오에서 단신뉴스가 들려옵니다. 현금인출기를 탈취하여 트럭에 (무거워서) 싣지 못하자, 매달아 끌고 가던 차가 뒤집혀 그대로 두고 도망간 얼빵한 도둑 이야기에 이어, 노동자 출신 함민복 시인이 오는 6일에 나이 50살 지천명에 첫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라디오 뉴스 기자는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인의 글을 검색하면 나온다며 꼭 읽어보라면서 뉴스를 끝냅니다. '함민복이라, 들어본 듯도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이미 널리 알려진 글입니다. 글을 읽으며 코끝이 시큰해집니다.

시인 함민복의 어머니, 그리고 내 어머니

지난 설날에 내 집에 오신 어머니
 지난 설날에 내 집에 오신 어머니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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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한쪽 다리를 조금씩 절면서 걷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서너곳의 전문 병원과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았지만 뚜렷한 원인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정확한 것은 절개해서 수술을 해봐야 될 것 같다고 했지만, 문제는 어머니의 '간수치'가 너무 높아 수술이나 약물치료가 어렵다는 데 있었습니다. 일단 간수치부터 정상으로 회복한 다음에 병원에 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간수치는 술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알코올 분해가 떨어지는 체질이라서 술을 드시지 말아야 하는데 가끔씩 마시는 것이 때로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종일 누워있을 정도로 회복이 늦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림도 좋아하다 보니 분위기 맞추느라 마시고, 당신처럼 외로운 이웃들 찾아갈 때 술 받아 가시고, 또 가끔은 집에서 혼자서도 마시고. 술 좀 그만 드시라 하면 "알았다"고 합니다만, 당신도 술의 힘을 빌려야 하는 삶의 질곡에 대한 기억이 있으려니 하고는 넘어갈 뿐, 자식들 그 누구도 강력하게 만류하지는 못합니다.

그 후로 몇 달간의 시간을 두고 병원에 갈 때마다 여전히 간수치가 높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예전보다는 술을 많이 안 마신다고 했지만 여전히 가끔씩은 마시는 것 같았습니다. 몇 년간 병원을 다녔지만 약처방 한번 받지 못하다 보니 자식들도 반쯤은 포기하게 되고, 어머니는 동네병원에 가서 주사 한 대 맞고 오면 괜찮다면서 약도 안 주는 대학병원은 안가겠다고 합니다.

"약 안 주는 대학병원 안 가시겠다"는 어머니

작년 이맘 때쯤 의정부에 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한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TV에 나온 병원장의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더니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한 달이라…. 오히려 더 믿음이 생깁니다. 병원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지방 사투리가 들리고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는 말도 들려옵니다. TV에서 봤던 병원장이 직접 어머니 다리를 만져보고 걸어보게도 하면서 친절하게 상담을 해줬습니다. 약물치료로도 가능하다며 자세한 처방을 위해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다른 병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여러 검사를 받고 보름 후에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이번 만큼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의사 앞 어머니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중년의 담당의사는 전날 과음을 했는지 눈이 쾡하니 술 냄새도 느껴져서 매우 불쾌했지만, 어쩔 수가 없지요. 검사받은 자료를 살펴보던 의사는,

'술 많이 드시나 보네요. 간 수치가 너무 높아서 약 처방이 어려워요. 간 수치 회복한 후에 다시 오세요. 6개월 정도 술 끊고 수영장에 가서 물속에서 걷는 연습도 하시고요….'

진료실를 나서면서 어머니는,

'염병하네 지 놈은 술 안쳐묵간디…. 인자 병원같은데 그만 올라니까 너도 이제 그만해라.'

어머니의 뒷모습, 뭐냐 뜨겁게 흐르는 이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침묵만이 두 모자 사이를 뱅뱅 돌았습니다.

어머니는 감자탕이나 순대국처럼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오는 음식을 좋아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순대국밥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주문을 해놓고 어색하니 앉아 있다가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며 답답한 마음에 긴 한 숨만 몇 번이고 내뱉었습니다.

식탁에는 뚝배기 국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내 순대국에 담긴 고기가 더 많았습니다. 어머니 것을 보니 당신이 덜어놓은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마나한 말을 한두 마디 하면서 식사를 끝내고 값을 치르려 지갑을 꺼내자, 어머니는 당신이 냈다면서 조용히 손사래를 칩니다. 화장실에 간 사이에 계산을 한 것 같습니다.

동네 어귀에 다다르자 어머니가 천천히 걸어가겠다며 내려달라고 합니다. 다리도 아픈데 집에까지 가자고 했으나 어머니는 들렀다 갈 곳이 있다며 내렸습니다. 따뜻한 햇살에 얼었던 눈이 녹아서 반짝거리는 그 길을 불편하게 걸어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뒤돌아 보더니 어이 가라는 손짓을 합니다. 일부러 라디오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쏟아지려고 하는 뜨거운 그것을 막으려 눈을 깜박거리며 차를 몰았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 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괘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끔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역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며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 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 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덧붙이는 글 | 시인의 결혼을 축하하며 축의금을 대신하여 그의 책 몇 권을 주문했습니다.



태그:#어머니, #눈물, #함민복, #설렁탕, #압구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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