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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은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국가정보기관'이다. 그런 국정원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투숙한 롯데호텔에 잠입했다가 발각된 '절도미수'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국가정보기관은 군-경찰 조직 부문정보기관의 정보활동을 감독·조정·협의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미국 같은 우방국과의 국제 정보공동체(Intelligence Community)에 카운터파트로 참여한다. 따라서 국정원의 '망신'은 국가 정보공동체에서의 위신 추락을 넘어 국제 정보공동체에서의 '왕따'로 이어질 수 있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3회에 걸쳐 국정원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말]
 극 중, 현존하는 최첨단 무기를 등장시킨 SBS <아테나: 전쟁의여신>
▲ 픽션과 현실은 하늘과 땅 국정원은 직접 '감수'한 <아테나>(위) 같은 첩보드라마를 통해 정보기관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였으나 롯데호텔 절도미수 사건으로 '아, 티나'로 패러디한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 SBS <아테나: 전쟁의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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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드라마 <아테나>에서 대테러정보기관이 테러단에 의해 보안이 뚫리거나 점거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픽션이지만 이건 (정보기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 국가정보기관 요원들이 외국 특사단의 호텔방에 침입했다가 '절도미수'로 발각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전 국정원 1급 간부 A씨)

"롯데호텔 사건은 국정원 지휘부 자체가 인텔리전스(정보)와 공작의 ABC도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벌어진 일이다. 국내에서 I.O(Intelligence Officer)나 조정관하던 사람들이 공작을 하니 마구잡이로 호텔방에 들어간 것이다. 공작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비유컨대 노상에서 마스터베이션(자위행위)을 하다가 들통난 것이다."(전 국정원 1급 간부 B씨)

"롯데호텔 사건은 노상에서 마스터베이션 하다 들통난 것"

지난 2월 21일 국정원 3차장실 산하 산업보안단 소속 직원들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호텔방 침입 및 절도미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전직 국정원 간부들에게 '소감'을 묻자 나온 첫 일성들이다.

국정원 간부 A씨와 B씨는 각각 국내 파트와 해외 파트에서 잔뼈가 굵은 뒤에 부서장을 지냈다. 특히 B씨는 중동 등지에서 수많은 해외공작에 참여한 '스페셜리스트'(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상에서 마스터베이션 하다가 들통난 것"이라는 혹평은 오는 6월 10일로 창립 50주년이 된 국정원에 뼈아픈 지적이다.

정보기관의 전통적 업무영역은 정보, 수사, 공작, 보안-방첩의 4대 분야다. 여기에 국제테러가 중대한 안보위협으로 등장하면서 '대테러' 업무를 포함해 5대 분야로 나누기도 한다. 이번 호텔방 침입 사건의 경우,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런 공작을 계획한 착상부터가 정보 및 공작 활동의 ABC를 어겼다는 점이다.

우선 정보-공작활동에선 그 행위(절도) 자체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뒷마무리'와 수습(보안 유지)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일반적으로 공작은 경제적 비용은 적은 반면에 정치적 비용은 매우 크므로 성공의 이점이 크지만 실패와 노출의 대가 또한 크기 때문이다. 

득보다 실이 큰 대표적 사례는 65년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가 모로코 정부를 돕기 위해 모로코 국왕의 정적이었던 메흐디 벤 바르카(Mehdi Ben Barka)를 제네바에서 파리로 유인해 납치한 공작이다. 이후 바르카의 시신을 염산에 녹이거나 시멘트에 암매장됐다는 전직 모로코 정보기관 요원들의 증언들이 잇따랐다(79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의 경우도 중정 요원들이 김씨를 프랑스 파리에서 납치해 양계장 사료분쇄기에 넣어 살해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비밀공작은 성공리에 끝났으나 그 후 프랑스 경찰의 추적으로 보안이 누설돼 프랑스 정보기관인 대외보안총국(DGSE) 개입설이 유포되어 큰 정치 문제로 비화됐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원자였던 드골 대통령의 분노를 사 프랑스 정보기관의 개편 및 모사드 파리 거점(유럽지역 본부) 폐쇄 명령, 프랑스-이스라엘의 관계 악화, 이세르 하렐 모사드 부장의 사임 등으로 비화됐다.

공작에선 행위 그 자체의 성공보다 '뒷마무리'가 더 중요

이번 사건에서는 정보-공작의 상대가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특사단이라는 점에서 성공이 100% 보장될 경우에만 추진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 경우 비용 대 편익 분석에서, 득보다 실이 압도적으로 컸다. 더구나 발단이 된 고등훈련기(T-50) 사업에 대한 특사단 협상전략은 국방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사안이다. 따라서 국정원으로서는 '득'이 전무한 상황이므로 착수하지 않는 것이 공작의 ABC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무능이 드러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5월에는 국정원 직원이 국정원 소유 차량을 이용해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일행을 캠코더로 촬영하며 미행하다가 오히려 차량 번호판이 사진에 찍혀 국제 망신을 당했다. 또 6월에는 리비아 주재 외교관으로 활동해온 국정원 직원이 방위산업 수출을 위해 리비아 무기목록 같은 군사정보와 현지 북한 근로자 관련 정보를 수집하다가 체포되어 '내정 간섭'을 이유로 추방된 바 있다.

이 사건은 대통령의 '형님'이 노구를 이끌고 리비아에 날아가 무마했지만 무기는 비밀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아마추어리즘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으로 지적된다. <제인연감>(Jane's annual report)에는 북한제 권총에서 미제 군함까지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무기가 사진과 함께 종류별로 상세히 나와 있는데 쓸데없는 수집활동으로 오히려 '국익'을 손상한 셈이다.

이런 일들이 벌어진 1차적 원인은 지나치게 잦은 무리한 인사와 '기능 배치'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국정원은 'S라인'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행정부시장을 지낸 원세훈 행안부장관을 2009년 2월에 국정원장으로 기용한 데 이어, 시장 비서실장을 지낸 목영만 행안부 차관보를 지난해 9월 국정원 기조실장(위 오른쪽)으로 기용함으로써 국정원을 S라인 행정관료들의 손에 맡겼다.
▲ 국정원은 'S라인'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행정부시장을 지낸 원세훈 행안부장관을 2009년 2월에 국정원장으로 기용한 데 이어, 시장 비서실장을 지낸 목영만 행안부 차관보를 지난해 9월 국정원 기조실장(위 오른쪽)으로 기용함으로써 국정원을 S라인 행정관료들의 손에 맡겼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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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원장은 2009년 2월 국정원에 부임한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인사를 하면서 조직을 흔들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특히 과도한 '물갈이'로 인해 1차장실 관할 '해파'(해외 파견) 요원의 60%가 국내파트 출신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해파' 요원 선발을 실무부서(해외공작국)에서 하지 않고 지원부서인 총무국장이 한다는 점이다. 다시 B씨의 지적이다.

"정보요원은 안에서는 I.O이지만 밖에서는 '스파이'다. 스파이(해파)를 관할하는 책임자가 비밀리에 선발해 주재국에 내보내도 '펑크'가 나는데 총무국장이 공개석상에서 선발해 내보내니 신원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리비아에서처럼 불필요한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정부 부담이 큰 해외공작에서도 실패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부에선 불필요한 실패가 너무 많다는 점이 문제다."

롯데호텔 사건의 1차적 원인은 '기능 배치'의 실패

이번 사건의 경우, 국방부라는 '카운터파트' 조직이 없었다면 국정원의 몫일 수 있다. 다만, 국정원이 수행하더라도 상대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국정원의 해외파트에서 먼저 수집활동이 이뤄지고 수집대상이 국내에 입국할 경우 진행상황을 첨부한 추적 '의뢰'가 이뤄진다. 그렇게 해서 별도의 팀이 꾸려져 활동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다.

그런데 이번에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보도된 산업보안단 실행팀은 호텔 직원에게 문을 열게 해 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보안 유지가 생명인 해외에서 활동하는 요원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앞서의 B씨는 "산업보안이 전문인 요원들이 수집활동까지 하게 되니 사고를 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70년대 중동 건설붐을 통해 한국 경제발전의 계기를 만드는 데 이바지했던 중앙정보부 '해파'(해외파견) 요원들의 활약상과 대비된다. 그러나 B씨는 "과학기술이나 산업기술은 국가자산이기 때문에 공작의 차원이 다르지만 중동에서의 발주처 동향이나 외국 경쟁업체 동향 같은 경제산업 정보는 대부분 합법적으로 수집했다"면서 "또 산업기술 정보라는 것이 꼭 훔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이 분류한 산업스파이 유형 중에서도 '절도'는 가장 낮은 수준의 '하수'(下手)이고 자료 복사 및 촬영, 항공 및 망원촬영, 전송자료 가로채기, 컴퓨터 해킹, 정보 브로커 활용, 도청, 스카우트, 위장침투, 기업 내부자 매수, 비용은 많이 들지만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제3자 이용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이처럼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원세훈 원장이 지난해 9월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대북 업무에 주력하던 3차장 산하 조직을 국내 산업 정보의 해외 유출을 막고 국익에 민감한 국내외 산업 정보를 수집하는 산업보안단을 포함해 과학정보 수집활동으로 기능으로 재배치했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의 생리를 무시한 '성과주의' 중심의 조직 운영의 결과다.

'전공'과 무관한 수집활동까지 확장한 탓

산업스파이 적발 건수 국정원에 따르면 산업기술 해외불법유출 적발 건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산업보안단을 설치한 명분이다.
▲ 산업스파이 적발 건수 국정원에 따르면 산업기술 해외불법유출 적발 건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산업보안단을 설치한 명분이다.
ⓒ 국정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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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산업보안단을 포함한 과학정보 수집기능을 강화해 3차장 산하로 배치한 것은 휴대폰과 반도체 등 세계 1위의 첨단 기술을 보유한 업종이 늘게 되면서 우리나라가 갈수록 국제 산업스파이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3년 10월 국내 산업기술 보호를 전담하는 산업보안단 신설 이후 꾸준히 산업스파이 사건을 적발해 국부 유출을 예방해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기능 재배치는 밖으로 내세운 명분일 뿐, 실제로는 북한정보 분석과 대북전략 등 대북 업무를 전담하던 3차장실이 남북대화의 단절로 '개점 휴업'인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조직 활동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기능을 재배치하면서 '전공'과는 무관한 수집활동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보안의 경우 외국의 산업스파이나 정보기관의 침투에 의한 산업기술 유출을 막는 '보안-방첩'이 주된 업무이다. 설령 수집활동을 하더라도 '산업보안을 위한 정보'에 국한해야 하는데 이번처럼 산업보안단이 실행팀을 만들어 산업정보를 직접 수집하는 것은 조직보안과 조직운용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산업보안단은 이번에 직접 수집활동을 하다가 발각됨으로써 활동영역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게 된 셈이다.

국정원에서 원세훈 원장은 한때 '원주사'로 통했다. 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정보기관의 생리에 문외한인 원장을 맞이한 직원들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원주사'는 지난해 9월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형님' 라인인 김주성 기조실장을 내보내고 지휘부를 서울시청 인맥인 'S라인'으로 재구성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목영만 행정안전부 차관보를 기조실장으로 기용한 것이다. 또 육사 출신으로 현 정부 들어 대통령실에서 2년여 동안 근무한 김남수 국가위기상황팀장을 3차장으로 승진 발탁하면서 기능을 재편했다.

원장을 정점으로 한 'S라인'의 아마추어리즘과 정보기관의 생리와 전문성을 무시한 성과주의가 빚은 예견된 사고라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원주사', 안에서는 '원따로' 밖에서도 '왕따'?

 원세훈 국정원장이 1일 오후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 곤혹스런 원세훈 원장 원세훈 국정원장이 지난해 12월 1일 오후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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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실이 있는 서울시 내곡동 국정원 본관 5층에는 점심시간이 되어도 정적이 흐른다. 원장이 외부 인사나 직원들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고 혼자서 집무실이나 구내식당에서 도시락 등으로 때우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원따로'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안에서 '원따로'가 밖에서도 '왕따'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리비아에서의 스파이 활동이 문제되었을 때 리비아에 영향력이 있는 미국, EU 같은 우방국과의 '국제 정보공동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형님'이 날아가서 무마한 것은 전문성 없는 국정원장이 이미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국가적 비극이다.

국정원이 '안방'에서 망신을 당한 것은 3차장을 포함해 국정원장을 정점으로 한 사령탑이 공작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로 포진돼 있어 벌어진 예견된 사고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결국 나락으로 추락한 현 사령탑의 리더십으로는 국정원을 장악할 수도 없지만, 현 지휘부를 교체하지 않고서는 비슷한 종류의 사고가 계속 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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