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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고3 수험생들.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고3 수험생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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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 10월 5일 공포한 경기학생인권조례가 3월부터 본격 시행된 가운데 경기도내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야간자기주도학습(야자)과 보충학습을 강요하는 사례가 잇달아 드러나 시행 초기부터 파행으로 얼룩지고 있다. 경기학생인권조례에서는 '학생은 야자와 보충 등을 선택할 수 있고, 학교는 강요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해당 학교에서 정식 민원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에 대한 현황 파악을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혀 사실상 도교육청이 강제 야자와 보충을 방관·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강요하면 안 되는 야자·보충수업, 안 하면 수시 원서 안 써준다?

지난 2월 7일 개학한 성남의 한 외고에서는 개학과 동시에 밤 10시까지 야자를 실시중이고, 안산의 한 공고에서는 "야자를 하지 않을 경우 담임이 죽여 버린다는 등의 협박을 일삼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광명의 ㄱ고교에서는 "야자를 하지 않을 시 대입 수시지원 원서를 써 주지 않고, 고3은 '기계'이지 인권 따위를 논할 처지가 아니다"라며 일부 담임 교사는 "이를 지키지 않으려면 자퇴서를 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학교에서는 3학년에게는 강제로 야자를 시키고 1·2학년에게는 야자 1교시는 강제, 2교시는 선택으로 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군포의 ㅅ고교 역시 3학년에게 보낸 가정통신문을 통해 "야자 시간에 진학 상담이 이루어지므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야자를 권장한다"면서 사실상 야자를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야자를 할 경우 8교시 보충수업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용인의 ㅅ고교도 비슷한 상황이다.

안양의 ㅇ고교에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학교방침은 무조건 야자'라고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이에 학부모가 "동의서 없이 야자를 못 한다고 들었는데 교육청에 이야기를 하면 조치를 받을 수 있냐"고 학교장에게 항의하자 "'(교육청에) 신고하시라'고 화를 내면서 전화를 그냥 끊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학교 ㅈ교장은 28일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인권조례 통과됐다고 희망자만 하라고 풀어주면 누가 하겠나? 일주일에 이틀 정도 학원 다니는 시간 할애해 주고 나머지는 야자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뜻을 알리기 위해 강압적 표현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강제 야자를 거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동의 안 하면 어쩔 수 없다. 강압적으로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학부모 항의 전화와 관련해서는 "선생님들 교육을 잘못 시켰다"는 말로 대신했다.

수원의 ㅎ고교에서는 전체 방송을 통해 야자를 강요하고 야자에 빠지면 대입 추천서 등을 쓸 때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고 토요일에도 오후까지 야자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의 ㅅ여고도 사정이 비슷한데 이 학교의 경우 일요일 오후에도 5시까지 야자를 해야 한다.

도 교육청 "강제인지 동의인지 파악 힘들어"

지난 2010년 1월 19일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1월 19일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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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내 고교들의 전반적인 사정이 이러한데도 경기도교육청은 소극적 자세로 대처하고 있어 학생·학부모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도교육청은 지난 27일 '2011학년도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운영 기본 계획(운영계획)'을 발표했다. 운영 계획에 따르면 자율학습은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학생 희망원과 학부모 동의서에 의한 실시를 의무화 하고 희망원과 동의서를 학교에 보관하도록 했다. 또한 자율학습 운영 현황에 대해 분기별로 정기적으로 전수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도교육청 교수학습지원과 전아무개 장학사는 "전수조사는 (현장 방문 실사가 아니라) DCMS(전자문서시스템)로 학교 측의 보고를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학교 측에서 강제에 의한 야자와 보충을 실시하고 있지만 DCMS 보고 시 희망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거짓 보고가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전 장학사는 "강제 야자·보충과 관련해 민원이 있는 학교가 있으면 현장에 가서 파악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정식 민원이 접수되기 전에는 실사를 통해 학교 현실을 파악할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더욱이 이 같은 민원은 학생이나 학부모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강제 야자·보충의 책임을 피해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경기학생인권조례 제정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던 다산인권센터 박진 상임활동가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인권조례의 핵심은 도교육청의 의지다. 시행 초기에 학교에서 인권조례를 위반하는 사례들을 엄격히 지도·관리해야 하는데 그런 의지가 없어 보인다. 도교육청 관료들의 무딘 인권감수성이 가장 큰 문제다. 이대로 가면 결국 아이들한테는 배신감을 심어주고 인권조례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도교육청이 밝힌 2010년 하반기 야간자율학습 운영 현황에 따르면 도내 409개 고교 가운데 385개교가 야간자율학습을 운영하였고 정원의 56%에 이르는 학생들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도교육청은 이것이 강제에 의한 것인지 희망에 따른 것인지는 전혀 파악하지 않았다. 도교육청 전 장학사는 "동의한 것을 전제로 파악한 것"이라며 "엄밀히 강제와 동의 여부를 파악하는 건 힘들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같은 도교육청의 소극적 행보가 학생인권조례 정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인권조례 시행 첫 학기를 맞아 도교육청 인터넷 누리집에는 강제 야자와 보충을 없애달라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전교조 경기지부도 2일 '학생인권조례의 올바른 정착을 위한 경기교사 인권실천 선언문'을 발표하고 "교사들이 학생들과 소통하고 학생들을 존중하며 배려와 나눔의 학교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서며, 인권친화적인 학교 풍토를 만들기 위해 반인권적 반민주적 관행과 제도에도 당당하게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경기지부에 '학생인권 침해 신고 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태그:#인권조례, #인권침해, #경기도교육청, #전교조경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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