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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니 오른쪽 눈의 반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통증이나 이물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실핏줄이 터진 것이 분명한 이런 충혈현상은 처음 있는 일이라 덜컥 겁이 났습니다. 며칠 전부터 안경을 닦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의 흐림 현상을 자각하기도 했던 터라 안과을 방문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출근한 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근무를 끝내고 서둘러 달려와 주어 다행히 토요일 병원 근무가 종료되는 4시 전에 안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안압을 측정하고 의사 앞에 앉았습니다. 연예인의 풍모가 풍기는 '시크한' 젊은 의사였습니다.

"당뇨나 고혈압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결막하출혈입니다. 눈에 촘촘하게 퍼져있는 가는 실피줄이 터진 거예요. 고혈압 같은 지병이 없다면 피곤했던 것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코피 같은 거예요. 코에 출혈이 있으면 외부로 나와서 닦으면 되지만 눈의 결막 안에서 출혈이 있었기 때문에 눈의 흰자위가 빨갛게 된 것입니다. 보기가 흉하지만 10일 정도면 사라질 거예요. 출혈된 피의 흡수를 돕는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진료를 마친 원장님의 시원한 답변에 제 마음도 개운해졌습니다. 최근, 3~4시간으로 잠을 줄인 게 원인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빨갛게 변한 저의 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까싶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둘째딸 주리는 드래곤볼의 무천도사라는 만화캐릭터를 제게 보여주며 똑 같다고 놀렸습니다.
 빨갛게 변한 저의 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까싶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둘째딸 주리는 드래곤볼의 무천도사라는 만화캐릭터를 제게 보여주며 똑 같다고 놀렸습니다.
ⓒ 이안수-후지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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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식 받는 환자 극히 일부"... 사체장기공여에 동의하다

돌아오는 길에, 처가 모티프원 일만으로도 버거우니 외부스케줄을 좀 줄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치과 치료를 위해 몇 번 읍내에 나왔습니다. 돌이켜보니 사람의 몸이라는 게 참 잘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큰 보수 없이 55년간 꾸준히 사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기능하면 정교함 뿐만 아니라 내구성 역시 어떤 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어떤 든든한 기계장치인들 그 기능이 이처럼 순조로울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대폭 보수하거나 수선할 곳이 많아지지 않겠나 싶습니다. 작년 터치아트의 서일하 사장님께 말씀드렸던 것이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작년 10월말 전시오픈에 함께 참여했다가 한동안 만남이 뜸했던 회포를 풀기 위해 헤이리 밖 활어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몇 년 전에 신장이식을 받았던 서 선생님은 평소 술을 통 하지 않으셨지만 헤이리로 오시고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며 사양하지 않고 몇 잔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혈액투석치료를 받아야 하는 분에게 평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신장이식 수술이지요. 서 사장님은 다행히 조카의 기증으로 생체 신장이식을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불편할 수 있는 질문 몇 가지를 시치미를 뚝 떼고 했습니다.

-조카와는 자주 만납니까?
"일 년에도 몇 번씩 봅니다. 열심히 직장에 다니고 있어요."

-조카와 삼촌의 관계이면서 신장의 공여자와 수혜자의 관계이기도 하잖아요?
"후자의 관계는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평생 그 고마움을 잊을 수는 없지만 공여자와 수혜자의 입장만이 지배적이면 오히려 불편해질 수 있어요. 조카가 오히려 그 점을 더 잘 알고 있고…."

-부부나 친자식이 아닌, 조카가 혈액형과 조직적합성 검사에서 합당하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조카가 흔쾌히 동의했습니까?
"조카는 망설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형님부부의 입장이 더 신경 쓰였던 건 사실입니다. 내색은 않지만 어느 부모인들 걱정스럽지 않겠어요? 구만리 같은 자식의 미래에 대해…."

-서울성모병원의 유방암환자들이 조직한 가유회(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유방암 환우회)라는 투병과 봉사모임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유방절개수술을 받은 분들이 같은 입장의 사람들을 도우며 절망을 이기고 자존을 도모하도록 돕고 계시더라구요.
"저도 신장병환우모임의 장을 맡고 있습니다. 동병상련이라고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 서로 간에 힘이 되고 수술을 앞둔 분이나 그 후의 경과에 용기를 드리고자 하는 모임입니다."

-생체이식말고 뇌사자이식이 이루어지기도 하잖아요.
"신장이식이 필요한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식을 받는 환자는 극히 일부입니다. 많은 환자들이 저처럼 혈연관계 공여자로 부터 장기를 받고, 비혈연관계 공여자는 그것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뇌사에 대한 법적·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사체공여자의 비율은 현격하게 낮습니다. 저는 사체장기공여에 동의했습니다. 저의 운전면허증에 이렇게 '장기기증'이라고 그 사실이 표기가 되어있습니다. 제가 뇌사상태가 된다면 저의 쓸만한 장기가 적출되도록 한 것이지요."

서 사장님은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주었습니다.

'장기기증'이라고 표기된 서일하사장님의 운전면허증
 '장기기증'이라고 표기된 서일하사장님의 운전면허증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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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상황 발생 시 저도 기증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하나요?
"저희 환우모임에서도 정기적으로 장기기증 희망자들을 모아 기증 등록을 돕고 있습니다."

-그 행사에 저도 동참하고 싶습니다.
"연락드리지요."

그날 밤 우리 일행은 다시 모티프원으로 자리를 옮겨 정선농업기술센터의 최대성 소장님께서 보내주신 정선의 생막걸리인 곤드레와 만드레 술로 새벽을 맞았습니다.

'육신'이라는 옷의 재활용

저는 옷을 새옷 가게에서 좀처럼 사지 않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에서 일 년에 한두 번씩 있는 학교바자에서 주로 조달했지요. 저희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학부형들이 재활용품 바자회를 열어 학교에 쓰일 기금에 보탤 돈을 만들곤 했는데 그곳에는 입을 만한 옷들이 500원에서 비싸도 3000원 안팎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크고는 '아름다운 가게'라는 재활용 가게를 활용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입기 곤란한 옷들은 나눔과 순환을 실천하는 그 가게에 가져다주고 아주 싼 가격으로 다른 사람이 기증한 알맞은 옷을 골라오곤 했습니다.

추운 올 겨울 제가 주로 입었던 양모 스웨터도 3년 전에 '아름다운 가게'와 '고양세무서'가 함께 열었던 나눔장터에서 소엽 선생님께서 1만 원을 주고 사서 제게 선물해준 것이었습니다. 외국을 여행할 때도 저는 Goodwill 매장('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재활용 가게)이나 우연히 마주치는 대학의 바자회 등을 이용해 모자나 옷같이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조달하곤 합니다.

Goodwill 스토어에서 배낭을 비롯한 모든 여행용품을 구입한 캐나다의 여행자
 Goodwill 스토어에서 배낭을 비롯한 모든 여행용품을 구입한 캐나다의 여행자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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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뉴펀들랜드 코너브룩의 윌프레드렌펠경대학 학생회관에서 펼쳐진 재활용바자회. 이 대학의 교수는 학생들의 유럽수학여행의 경비 일부를 마련하기위해 지역신문에 재활용품 기증광고를 냈고 이 지역사회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기증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바자회에서 모자 하나를 골랐습니다. 얼마냐고 묻자, 이 바자회의 주최자인 젊은 교수님은 손을 저었습니다. “그 모자는 돈을 받을 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재사용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코너브룩의 윌프레드렌펠경대학 학생회관에서 펼쳐진 재활용바자회. 이 대학의 교수는 학생들의 유럽수학여행의 경비 일부를 마련하기위해 지역신문에 재활용품 기증광고를 냈고 이 지역사회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기증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바자회에서 모자 하나를 골랐습니다. 얼마냐고 묻자, 이 바자회의 주최자인 젊은 교수님은 손을 저었습니다. “그 모자는 돈을 받을 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재사용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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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가게를 이용하면 유한한 자원의 순환을 실천한다는 자긍심과 착한 가격의 기쁨, 내가 지불한 적은 돈이 누군가를 돕는 데 사용된다는 위안이 덤으로 주어집니다.

저는 육신은 단지 정신의 옷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육신이라는 옷도 재활용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재활용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육신이란 옷의 재활용에는 의학적, 윤리적 엄격함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또한 본인의 의사뿐만 아니라 가족의 동의도 필요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입지 않는 옷의 기증처럼 쉬운 일이면서 훨씬 숭고한 정신의 발로임이 분명합니다.

정신을 담고 있는 육신이 효도와 효심,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지 정신이 떠난 육신은 하루빨리 분해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가야 할 한 유기체의 흔적일뿐일 테니까요. 저의 처에게 서일하 사장님에게 했던 저의 약속을 얘기했습니다.

"저도 함께 가요."

처는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관련홈페이지 바로가기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 www.donor.or.kr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장기기증, #서일하, #터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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