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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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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림중 박수찬 교장 후보, 정말 훌륭하고 아까운 분이었는데… 너무 안타깝다."

곽노현(57) 서울시교육감이 23일 저녁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의 평교사 출신 교장에 대한 임용제청 거부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교과부가 서울 영림중 박수찬 교장 후보자에 대해 임용제청 거부를 발표한 지 6시간쯤 흐른 뒤였다.

곽 교육감은 "교과부 발표 두 시간 전인 점심 때 미리 알게 되었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면서 "공모 과정에서 일부 미숙함의 틈을 비집은 교과부 트집에 그만 훌륭한 교장을 놓치게 될 것 같다"고 강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전교조 소속 교장 후보가 3명 모두 추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담합 의심이 들어서 그냥 포기하려고도 했는데, 학교 심사위원 점수표까지 살펴보니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곽 교육감은 "교과부가 보도자료를 드라이하게 썼다, 교육청에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하는 등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번에 공모 교장 임용이 사실상 무산된 영림중에 대해 평교사도 응모할 수 있는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다시 한 번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진단평가 일제형으로 치르지 않는 방안 새로 검토"

3월 개학과 동시에 현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큰 일제고사 식 진단평가에 대해 곽 교육감은 이날 "교사가 미리 계획을 만들면 일제고사 식으로 치르지 않아도 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대상 진단평가에서 국어, 수학은 일제고사 식으로 하겠다던 기존 방침에 대한 변화가 감지되는 순간이었다.

곽 교육감은 "오늘은 정말 힘들고 긴 하루였다"면서 그 이유로 영림중 사태와 함께 3월 1일자 전문직 인사에 대한 어려움을 밝히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진행된 곽 교육감과 <오마이뉴스>의 만남은 오후 8시쯤부터 2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곽 교육감은 오른 손가락으로 왼 손바닥에 글씨를 써가며 최근 시교육청의 현안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담담하게 내보였다. 이날 나온 여러 이야기 가운데 일부 내용만 간추려서 싣는다.

- 오늘은 더 바빴을 것 같다.
"정말 힘들고 긴 하루였다. 주말 이틀을 꼬박 전문직 인사구상으로 보내고 어제 그제까지 그 일에 매달렸다. 새벽 2시까지 토론한 날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교과부가 영림중 교장 추천에 대해 임용제청 거부를 한다고 하고…."

- 미리 교과부와 접촉이 있지 않았나.
"결과를 처음 안 것은 오늘 점심쯤이었다. 부교육감이 여러 번 교과부에 갔다 왔다. 교과부가 정확히 얘기를 해주지는 않았지만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는 느낌을 전해오기도 했다."

- 교과부가 임용제청을 거부했단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엇보다 영림중 박수찬 교장 후보자는 정말 훌륭하고 아까운 분이었는데… 너무 안타깝다. 처음 만나 면접을 했는데 동네 아저씨 같은 외모였지만 교장 일을 누구보다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생활부장을 7년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면서 4년 전부터는 체벌 없는 학교를 만들려고 노력해온 분이다. 27살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국어교육에서도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평판이 높았다. 이런 분이 교장이 되었다면 학생을 위해서 얼마나 좋았겠나."

"절차상 미숙함 있었지만, 공정성 해칠 만한 건 없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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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부의 발표에 대해 할 말이 있을 텐데.
"공모 과정에서 일부 미숙함의 틈을 비집은 교과부의 트집에 그만 훌륭한 교장을 놓치게 될 것 같다. 솔직히 전교조 소속 교장 후보가 3명 모두 추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심사위에서 담합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정말 그랬다면 그냥 포기하려고도 했다. 내가 학교 심사위원 점수표까지 다 살펴봤다.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 공모 절차에서 문제가 있는지도 직접 살펴봤다. 절차상에 미숙함이 있었지만 공정성을 해칠 만한 게 없었다."

- 교과부가 문제 삼은 것은 학교 서류심사에서 5명을 탈락시켰다가 다시 그 결정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핵심 문제로 지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이 14명이나 응모하니 소견발표 시간이 너무 길다는 판단을 학교 심사위원회에서 한 것 같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볼 때는 계획에 없이 5명이 탈락된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교장 공모할 때 서류심사에서 5명 정도로 1차 합격자를 뽑도록 지침을 만들도록 하겠다. 그러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아닌가."

- 영림중 교장심사위원장은 남부교육지원청에 문의한 뒤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듣고 5명을 탈락시켰다고 한다. 결국 교육청 잘못 아닌가.
"……."

곽 교육감은 이런 사실에 대해 처음 듣는 것처럼 보였다. 특별한 답변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영림중 교장심사위원장을 만나보니 곽 교육감께서 교과부 결정에 대해 강하게 치고 나가지 않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더라.
"그게 쉽지 않은 문제다. 우선 깊은 유감을 표했다. 공정성을 해칠 만한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의 특별조사 결과도 뒷받침해주고 있다. 교과부도 보도자료를 드라이하게 썼다. 교육청에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지도 않았고…."

"제비 한 마리가 봄소식 알려주듯이 인사를 할 것"

- 3월 일제고사 식 진단평가에서 다른 5명의 진보교육감과 달리 국어·수학을 일제히 보도록 했는데.
"진단평가는 어떤 형태로든 봐야 하는 것에 선생님들 모두 동의하리라 본다. 초등학생들이 하루에 5과목이나 일제 시험을 보는 것에 대한 문제점 지적은 마음에 확 다가왔다. 그래서 국어·수학만 보고 나머지 과목은 시일을 갖고 보도록 했다. 이렇게 해놓고 보니 진보교육감 가운데 우리만 일제고사를 보는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다."

- 그런 점에 대해 반발하는 교사들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서 여러 방안을 놓고 수없이 고심해서 낸 결과다. 교사가 미리 계획을 만들면 일제고사 식으로 치르지 않아도 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제고사가 되지는 않는 것 아닌가. 내년부터는 진단평가 도구를 폭넓게 학교에 주는 방안으로 바꿀 것이다. 일제고사 형으로 진단하는 것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 3월 1일자 전문직 인사로 바쁘다는 내용의 트위터 글을 봤다.
"여태까지는 못하는 사람을 빼버리는 것, 부패한 사람을 징계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앞으로는 훌륭한 사람을 키워주는 인사를 하려고 한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이런 흐름이 교육청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다."

- 특별한 복안을 갖고 있나?
"교장과 장학사, 장학관, 학무국장, 교육장, 과장 등을 평가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교장에 대한 평가가 학교 교육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장 업무 수행에 대한 말 그대로의 '수행평가'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교장에 대한 정성평가(주관식 평가)를 겨울방학 중에 했는데 정량평가(객관식 평가)도 병행하려고 한다. 교장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교장 순환근무를 정착시킬 것이다. 급식지원비율이 5%인 학교의 교장은 지원비율이 15%인 학교로 보내는 식으로 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공정하고 제대로 된 인사라고 생각한다."

음식점 종업원들이 곽 교육감이 직접 사인한 명함을 받고 있다. 식당을 나오면서 핸드폰으로 인증샷을 찍어봤다.
 음식점 종업원들이 곽 교육감이 직접 사인한 명함을 받고 있다. 식당을 나오면서 핸드폰으로 인증샷을 찍어봤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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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끝난 뒤 곽 교육감은 5분여 간 식당에 더 머물러야 했다. 식당 종업원 4명이 모두 다가와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녀에게 주어야 한다고 여러 장을 해달라는 이도 있었다. 곽 교육감은 웃으면서 자신이 젊은 날 유학 갈 때쯤 개발했다는 한글 사인을 잇달아 한 뒤 문을 나섰다. 곽 교육감 뒤로 다음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들은 전부 지지하니까요.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을 굳게 먹고 일하세요!"


태그:#곽노현, #교장공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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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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