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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가 노인 계층뿐만 아니라 청·장년층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정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고독사가 노인 계층뿐만 아니라 청·장년층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정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 서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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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의 한 월세방. 젊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씨는 평소 도움을 받아온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쪽지 한 장을 남긴 채 서른 두 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최씨의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그의 죽음이 "문화·예술인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 누리꾼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름 없는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지만 우리 사회의 찌그러진 단면이자 쓸쓸하고 고독한 죽음 그 자체"라고 밝혔다.

최씨의 죽음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날인 지난 9일, 충남 아산시 읍내동 한 아파트에서는 주민 두 명이 각각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박아무개(65)씨와 이아무개(52)씨로 모두 1인 가구 거주민이며, 각각 숨진 지 3일과 7일이 지난 후 타지에 거주하는 가족의 신고로 발견됐다.

이에 앞선 지난 4일 광주광역시 동구에서도 독거노인 조아무개(71)씨가 숨진 지 4일이 지나 발견됐다. 서울에서는 고시원에 홀로 거주하다 심리적 외로움과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박아무개(20)씨가 지난해 8월 한강 동작대교 남단에서 투신하는 등 홀로 거주하는 노인 및 청·장년층이 이웃의 무관심 속에 숨지는 사고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 "이웃이요? 여기는 그런 거 없습니다"

신림9동 고시촌 밀집 지역 꼭대기에 위치한 고시공원. 이 공원에서 만난 주민에 따르면 10여년 전만 해도 이 공원 인근에서 자살하는 고시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원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대부분 건물들이 원룸과 고시원이다.
▲ 고시공원 신림9동 고시촌 밀집 지역 꼭대기에 위치한 고시공원. 이 공원에서 만난 주민에 따르면 10여년 전만 해도 이 공원 인근에서 자살하는 고시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원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대부분 건물들이 원룸과 고시원이다.
ⓒ 김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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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고시촌'으로 불리는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 일대는 '1인 가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고시원 밀집 지역이다. 이곳에는 주민센터 추산 약 800여 개에 이르는 원룸과 고시원이 모여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주민등록상으로 집계되지 않는 1인 거주자가 이곳에만 1만 6000여 명 정도 살고 있다"고 밝혔다.

좁은 도로를 따라 줄지어 자리한 고시원 초입의 분위기는 평범한 주택가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고시 '장수생'들이 주로 거주한다는 윗동네(관악산 인근)로 들어서자 초입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연출됐다.

비탈진 골목 사이사이에 자리한 고시원 건물 앞에는 담배를 피우거나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누구 하나 대화를 나누거나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이 지역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최영진(가명)씨는 "이곳에서는 서로 말을 잘 섞지 않는다"며 "어차피 찾아올 친구나 가족도 없고 그러다보니 방에서 사람이 죽어도 한참 있다가 발견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말했다.

고시촌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시공원'에서 만난 김정현(가명)씨도 "사람들끼리 두터운 유대는 없다"며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들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일은 자기가 해치우자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고시촌만의 (시험을 목표로 하는) 특수성이 있다"면서도 "요즘에는 일반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올해로 20년째 고시촌에 거주하고 있다는 김씨는 "먹고 살기에 급급한 세상인 것 같다"며 "고립되거나 상처받지 않고 사람들끼리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그런 곳이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 "옆방 사람 죽어도 몰라"

동자동 쪽방촌 거주자인 박씨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폐지를 줍는다. 생활비를 감당하려면 하루종일 일해도 빠듯하다.
 동자동 쪽방촌 거주자인 박씨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폐지를 줍는다. 생활비를 감당하려면 하루종일 일해도 빠듯하다.
ⓒ 이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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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지난 달 5일에는 생전에 '마귀'라는 별명을 지닌 한 남성이 자신의 방에서 혼자 사망했다. 술을 마시고 숨져 있는 것을 집주인이 발견했다고 한다. 18년간 동자동 쪽방촌에서 살아온 문태식(52)씨는 고인을 떠올리며 "잊을 만하면 한 명씩 죽어나간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쪽방촌 거주자들이 혼자 사는 이유는 딱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타인과 교류하는 곳은 동네 공원이 유일하다. 매일 같이 공원 주변에 모여 시간을 보낸다. 150여 미터를 걸으면 동자경로당이 있지만 쪽방 거주자들에겐 먼 얘기다. 문씨는 "쪽방촌에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도 있지만 (심리적 거리감 때문에) 여기서 나가 다른 곳에 가서 놀기는 힘들다"며 "울타리에 갇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동자동 쪽방촌에 산 지 3년이 된 박석근(75)씨는 "조금이라도 게을러지면 바로 밥을 굶어야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동사무소를 통해 얻은 도로 청소일을 하고 있다. 일급 2만 1000원을 받지만 그 돈으로는 부족해 시간이 날 때마다 쉬지 않고 폐지를 구하러 다닌다. 가끔은 지하철에 가서 신문을 수거하기도 한다. 방은 월 17만 원으로 다른 쪽방에 비해 싼 편이고 노령연금 9만 원도 받지만 한 달 20만 원이 넘는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하루 종일 빠듯하게 일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만날 시간도 없다.

그는 "옆방에 사는 사람이 죽어도 모를 것"이라며 "얼굴 마주친 적은 있어도 다 따로 살고 교류가 없으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혼자 죽어가는 사람들... 더 이상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1인 가구 및 자살률 증가추이
 지난 10년간 1인 가구 및 자살률 증가추이
ⓒ 오마이뉴스 이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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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0 인구주택총조사 잠정집계결과'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1인가구수는 403만9000가구로 전체 가구 수(1733만4000가구)의 4분의1 수준이다. 2000년 1인가구수(222만4000가구)에 비하면 두 배 가량 증가했다.

20대 1인 가구 구성 비율도 증가했다. 2010년 통계청 사회통계국 인구동향과에서 실시한 '가구구성 및 가구원수별 추계가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1인 가구 구성 비율은 전체 20대 가구의 절반이 넘는 51.0%를 기록했다. 40대 이상 1인 가구 구성비율도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 내 1인 가구 100명 중 5명은 자살 충동을 느껴봤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2010년 4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경기도 내 26~55세 1인 가구 600가구 가운데 30.5%가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5%는 지난 1년 동안 자살 충동을 자주 느끼거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이에 따라 '고독사(孤獨死)'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고독사란 도와주는 사람 없이 집 등에서 혼자 맞는 죽음을 말한다. 법적 용어는 아니지만 1970년대 일본에서 사망한 독거노인이 일정시간 이상 방치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처음 등장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마찬가지다. 인구 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주민들 사이에 동질감이나 연대의식이 사라지고, 이혼 등으로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끊임없는 경쟁구도,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에서 개인중심 문화로 변모하고 있다.

"독거노인 102만 명 보살피기도 힘든데...청·장년층 고독사 무대책"

고시촌 전신주에 붙은 '잠만 자는 방'의 광고 전단들.
▲ 잠만 자는 방 고시촌 전신주에 붙은 '잠만 자는 방'의 광고 전단들.
ⓒ 김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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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는 혼자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을까.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노인돌봄기본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경제력, 건강상태, 주거환경, 사회적 관계 등을 고려해 요보호 독거노인을 선정하고, 전국 5700명의 독거노인 돌봄이를 통해 안부 전화와 방문, 안전 확인 등 1:1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노인돌봄기본서비스 도입 이후에도 노인 고독사가 계속되자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해결을 촉구했다. 이것을 계기로 보건복지부 내에 '독거노인 사랑잇기 TF'가 설치돼 노인돌봄기본서비스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한 독거노인들에게 기초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이 사업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는 남아있다. 독거노인 102만명(2010년 기준) 중 노인돌봄기본서비스를 받는 13만 명과 독거노인 사랑잇기 서비스를 받는 3만 600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 독거노인은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효율성의 문제도 있다. 노인돌봄기본서비스는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반면 독거노인 사랑잇기 서비스의 경우 대부분 서울에 상주하는 기업의 콜센터에서 지방에 거주하는 독거노인에게 안부전화를 하다 보니 심리적 거리감이 존재한다. 안부전화 위주의 기초서비스만을 제공하다보니 일부 수혜대상자들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비스를 거부하기도 한다.

고독사가 노인 계층뿐만 아니라 청·장년층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정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곽순헌 '독거노인 사랑잇기 TF' 팀장은 "이혼한 남성 등 청·장년층도 위험한 사람들이 있다"면서도 "독거노인 서비스 대상자를 확대하는 것도 벅차 청·장년층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실질적인 대안은 없을까. 곽 팀장은 "공동체 문화의 회복이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라는 것에 공감한다"면서도 "시골에서는 노인 공동생활 거주제가 가능하지만 도시에서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책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범국민 운동으로 전개해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에 대해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독거노인의 안부를 살피는 대책들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주로 보호를 필요로 하는 독거노인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중산층의 독거노인들은 혜택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공동체문화의 확산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며 "그 지역사회에 소속된 사람들 위주로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수진, 김재민, 이선필, 이혜리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고독사, #1인 가구, #자살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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