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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장관을 둘러싼 소문들'

지난 16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의 제목이다. 이 신문의 박두식 정치부장이 썼다. 칼럼 요지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최근 실현성이 없는 개헌론을 제기하는 통에 본인은 온갖 구설(口舌)과 음모론에 시달리고, 친이-친박 간 감정의 골이 깊어져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것이다.

칼럼의 지적처럼 개헌론은 실현성도 없고 진정성도 안 보인다. 맞는 말이다. 시의도 적절하다. 그런데 명색이 '대한민국 1등 신문'이라면서 정치부장이 정치권의 '소문들'을 갖고 칼럼을 쓰니, 이 또한 예사롭지 않다. '사실'이 아닌 '소문들'을 동원해야 할 만큼 뭐가 그리 다급한 것일까? 좋은 칼럼일수록 대개 하고 싶은 말은 꾹꾹 눌렀다가 마지막에 틔운다.

'이재오 장관을 둘러싼 소문들'을 전한 <조선일보> 16일자 기명 칼럼.
▲ <조선>은 분당이 두렵다? '이재오 장관을 둘러싼 소문들'을 전한 <조선일보> 16일자 기명 칼럼.
ⓒ 조선일보 인터넷판 캡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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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장관은 여당 분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 장관이 개헌의 고삐를 죌수록 친이(親李)·친박(親朴) 간 감정의 골은 깊어갈 것이다. 양쪽 모두 여당의 분열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말빚이 쌓이다 보면 돌이키기 힘든 지경에 이르는 게 정치다. 이 장관을 둘러싼 소문들을 듣다 보면 한나라당은 이미 둘로 쪼개진 상태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 장관이 끌고 가는 개헌 수레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하나 둘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대선에선 힘을 모은 쪽이 이겼고, 분열은 패배로 이어졌다. 개헌의 당위성만으로 밀고 나가기에는 문제가 너무 커져 버렸다."

이재오는 지금 '분당'을 꿈꾼다

그렇다. '한국 대선에선 힘을 모은 쪽이 이겼고, 분열은 패배로 이어졌다'는 백만인의 상식을 강조하기 위해 '이재오 장관을 둘러싼 소문들'을 전진 배치한 것이다. 그런데 허전하다. 왜? 이재오를 둘러싼 많은 소문들 가운데서 '결정적 소문'은 칼럼에 명기(明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이 씨가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그것은 '분당'이다. '한나라당의 천당'이라는 경기도 분당이 아니고 당이 갈라지는 분당(分黨)이다. 이재오는 지금 분당을 꿈꾼다. 근거는 이렇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27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동아시아 중심시대 국가비전 개헌 토론회'에서 개헌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27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동아시아 중심시대 국가비전 개헌 토론회'에서 개헌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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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은 실현성이 없다. 개헌은 정치권의 찬성(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의 공감대(유권자의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구제역과 전세대란 그리고 물가고에 시달리는 국민은 개헌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민주당도 명시적으로 반대하지만, '캐스팅 보트'를 쥔 한나라당의 2대 주주인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반대한다. 심지어 친이계 일부 의원들조차도 반대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표 계산이 안 된다.

개헌의 진정성도 찾기 어렵다. 추진자가 이재오 장관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재오가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개헌이 대통령의 의중이라 대놓고 반대하지 못할 뿐이다. 여북하면 이 장관과 '형님 동생' 하는 홍준표 최고위원이 "이재오가 나서니 안 돼…개헌 정말 하고 싶으면 이 대통령 직접 나서라"라고 했을까?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는 것은 대통령이 직접 박근혜 전 대표와 담판을 지으라는 얘기다. 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는 이미 건널 수 없는 '불신의 강'이 깊게 파여 있다. 그 강의 중심에는 이재오라는 '잠룡'이 산다. 그에 대한 불신과 원한은 뿌리가 깊다.

대선 전 '부도수표' 남발했던 이재오, 지금은...

한나라당 경선 전인 2006년 11월 22일 기자간담회 현장으로 거슬러 가보자. 그때도 지금처럼 그는 '구설'과 '음모론'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이재오 최고위원이 마련한 간담회였다. 그는 "내가 명색이 최고위원인데 나에 대한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이렇게 음해하는데 후보들은 오죽하겠는가"라면서 1막, 2막, 3막까지 '음해 사례'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정책은 국가 전체의 기를 살리고 국민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 돈이 한 푼도 안 든다. 운하를 만들면 옆에 새롭게 500만 평의 땅이 조성되고, 이를 민간기업에 불하나 임대를 하면 건설비용이 넘게 나온다. 또 운하를 건설해서 그 이전보다 환경이 파괴된 예는 전세계적으로 없다. 운하에 맞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또 4~5년의 공사기간 동안 실업자 전체를 흡수할 수 있다.

운하 건설정책은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줄 것이다. 부산에서 서울, 그리고 신의주까지 뚫으면 한반도 운하를 통해 새로운 통일로를 구축할 수 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단순한 대선공약이 아니라 한반도 국운을 되살려 보자는 것이다."

당시는 본격적으로 대선 캠프가 차려지기 전이다. 그러나 당시 이미 그는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전도사'였다. 운하는 돈이 한 푼도 안 든다, 운하를 건설해서 환경이 파괴된 예는 전 세계적으로 없다, 4~5년의 공사기간 동안 실업자 전체를 흡수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이 후보를 띄우기 위해 그가 얼마나 맹목적으로 '부도수표'를 남발하며 감당할 수 없는 헛된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민주화 운동 경력 30년'을 강조하며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나도 대통령을 하고 싶다"던 이재오의 욕망

"지금 드러난 박근혜 전 대표나 이명박 전 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 대선주자들은 다 장단점이 있다. 지도자는 그 시대에 필요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향후 5~10년, 이 시기에 적합한 인물이 누군가? 이 점이 중요하다. 나도 당내 주요 당직을 다 거쳤다. 민주화 운동 경력 30년이다. 그럼 나도 대통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필요한 사람은 국운을 헤쳐나가고 국가 경제를 살려야 하기 때문에 나는 부족하다. 나는 이 시기에 특정한 인물이 이 나라를 맡을 수 있도록 돕고, 그를 도와서 새로운 스타일의 나라를 만드는 힘을 보태고 싶다. 어려운 시기에 그런 인물이 나와야 하는데, 난 누군지 모르겠다. 내 마음 속에 있다고 해도 말할 수 없다. 하, 하, 하(웃음)."

원하던 대로 그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이라는 '특정한 인물'이 이 나라를 맡을 수 있도록 도와서 '새로운 스타일의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그렇다면 당시 특정한 인물을 위해 유보했던 "나도 대통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그의 욕망이 다시 꿈틀거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정치인의 본성이 아닐까?

게다가 이명박 당선의 1등 공신으로 이명박 정부의 2인자가 된 그는 18대 총선에서 박근혜계를 '공천학살'한 원죄가 있다. 그만큼 뿌리가 깊다. 박근혜 전 대표를 대변해온 친박계의 한 의원은 "국민이 무섭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고 했다. 국민들이 지난 총선에서 친박계가 '공천학살 3인방'으로 지목한 이재오 최고위원과 이방호 사무총장, 정종복 사무부총장을 마치 핀셋으로 뽑아낸 것처럼 찍어낸 것을 보고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마치 족집게처럼, 핀셋으로 뽑아낸 것처럼 찍어냈다. 국민은 이명박 정부의 2인자이자 '왕의 남자'인 '천하의 이재오'를 서울 은평을에서 떨어뜨렸다. 그것도 20년 동안 관리해온,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문국현한테 졌다. 이방호 사무총장을 텃밭인 영남(경남 사천)에서 떨어뜨렸다. 그것도 민노당 농민 후보(강기갑)한테 졌다. 정종복 사무부총장은 경북(경주시)에서 떨어뜨렸다, 그것도 2번씩(2008년 총선과 2009년 재보선)이나. 박근혜를 탄압한 것에 대한 유권자들의 응징이었다."

이재오의 '폴더형 인사'는 면종복배?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해 9월 1일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해 9월 1일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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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계의 공천 학살에도 불구하고 친박계의 상당수는 혼자 힘으로건 연대(친박연대)해서건 살아서 돌아왔다. 이재오 장관도 지난해 7월 은평을 보궐선거를 통해 부활했다. 돌아온 이재오는 그해 9월 국회가 열리자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의원을 찾아가 90도 '폴더형 인사'를 했다. 이제 19대 총선 공천을 앞두고 양 진영은 다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임기 말이어서 힘은 예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칼을 쥔 쪽은 친이계이다. 친박계는 친이계의 '제2차 공천학살'을 두려워하고, 친이계는 친박계의 '복수'를 두려워한다. 오히려 이재오가 허리를 숙일수록 친박계는 칼을 숨긴 면종복배(面從腹背)로 의심한다.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장관은 지난 10일 트위터에 "개헌을 위해 가장 강력한 상대와 맞서겠다. 나는 다윗이고 나의 상대는 골리앗"이라는 글을 남겼다. 11일 라디오 인터뷰에선 "대선 2년 전부터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일하는 건 국민을 많이 피곤하게 한다"고 말했다. 본인은 "성경에 골리앗 장군이 여자란 말은 없다"고 토를 달았지만, 그 해명을 믿는 친박계 의원은 없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의원은 11일 123명이 발의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론이 아닌 개인 의원이 낸 법안에 100명 이상의 의원이 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친박계 의원은 50명 안팎인 점에 비춰 중립 성향뿐 아니라 친이계의 상당수도 서명에 참여한 것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줄서기'가 시작된 셈이다.

그래서 친박계의 한 의원은 17일 전화통화에서 "MB정권 최고실세와 친이 핵심 중진의원이 최근 만나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되거나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친이계가 분당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주간조선> 최신호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개헌론의 본질은 친이계를 결집시켜 '박근혜 죽이기'나 '딴살림을 차리려는 노림수'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선 지금 '개헌'이라고 쓰고 '분당'이라고 읽는다

<주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현 정권 핵심실세인 A는 이 자리에서 개헌 드라이브에 대해 "친이 세력을 모아 보려는 것"이라며 "연말까지 쭉 개헌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A는 "이번에 친박 입장이라는 게 영양가가 없다는 것을 한번 보여줘야 한다", "친이계가 정권을 잡긴 잡아야 한다"고 개헌 드라이브 목적이 '박근혜 죽이기'임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앞서의 친박계 의원은 "<주간조선>에 인용된 '핵심실세 A'의 발언을 보면 99% 그분(이재오) 발언이다"면서 이렇게 반문했다.

"개헌론이 '박근혜 죽이기'라는 인식은 오랫동안 이 장관을 지켜본 내 판단이다. 야당이 반대하는 개헌을 하려면 한나라당이 뭉쳐야 된다. 그런데 지금은 친이-친박이 다르고, 친이계에서도 '함께 내일로'와 일부가 다르다. 그런데도 국무위원이 의원 20~30명을 집합시켜 놓고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은 개헌의 목적이 다른 데 있는 것 아니냐."

한나라당에선 지금 '개헌'이라고 쓰고 '분당'이라고 읽는다. <조선일보>는 지금 한나라당 분당으로 인한 패배,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태그:#이재오, #개헌, #박근혜, #조선일보, #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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