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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설기현의 다음 정착지는 울산이었다. 울산은 지난 16일 포항과의 계약이 종료된 설기현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1월 10년간의 해외무대 생활을 정리하고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K리그에 진출했던 설기현은 시즌 초반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후반기 16경기에 출장해 7득점 3도움을 기록하여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다. 하지만 올시즌 포항에서의 입지에 불안감을 느낀 설기현은 포항의 재계약 요청을 거절하고 새 소속팀을 찾았고, 공격수 보강이 절실했던 울산의 러브콜을 수락해 1년만에 또다시 팀을 옮기게 되었다.

설기현만큼 프로생활이 다사다난했던 선수도 없다. 광운대 재학 중이던 2000년 축구협회의 유망주 해외진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벨기에 앤트워프에 입단하며 K리그를 거치지 않고 곧장 유럽 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설기현은 이듬해 벨기에의 명문 안더레흐트로 이적했다. 2002년에는 한일월드컵 주전 멤버로 이탈리아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어 한국팀의 4강신화에 수훈을 세웠다. 2004년 잉글랜드 챔피언십에 소속된 울버햄튼 원더러스를 거쳐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레딩FC에 입단해 마침내 꿈의 무대인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하지만 레딩에서 보낸 두 번째 시즌부터 팀내 주전경쟁에서 밀려나고 코칭스태프와의 불화까지 겹쳐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설기현은 2008년 풀럼으로 다시 이적했지만 로이 호지슨 감독의 주전 구상에서 밀려나 또다시 벤치 신세를 감수해야했다. 이로 인하여 2009년에는 중동에 잠시 진출하여 사우디 리그의 알 힐랄에서 임대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승선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던 설기현은 출전기회가 보장되는 팀을 찾아 포항의 요청을 수락해 10년 만에 국내무대 복귀를 결정한다. 하지만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월드컵 출전의 꿈이 좌절되며 시련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설기현은 부상에서 회복한 후반기에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AFC 챔피언스리그 조바한과의 8강전에서 결정적인 실수로 준결승 진출 실패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 1차전 원정에서 1-2로 졌던 포항은 전반 9분 만에 터진 김재성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서며 이 승리만 지켜도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반 23분 설기현이 결정적인 추가골 기회를 놓친 것이 뼈아팠다. 완전한 노마크 찬스에서 설기현이 텅빈 골대를 향해 지나치게 강슛을 날린 것이 크로스바를 훌쩍 넘고 말았다. 문전으로 쇄도하던 모따도 있었기에 설기현의 실책은 뼈아팠다. 막판 반격에 나선 조바한은 후반 34분 동점골을 터뜨렸다. 결국 1-1로 비긴 포항은 땅을 쳐야했다.

설기현은 포항과의 결별과정도 아쉬움을 남겼다. 스트라이커로 뛰기를 원했던 설기현은 올해 포항이 외국인 공격수 슈바(32)와 가나 대표팀 출신의 공격수 데릭 아사모아(30)를 영입하면서 입지가 좁아지자 팀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프로가 자신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찾아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전지훈련까지 함께하며 올시즌 설기현을 측면 날개로 기용하는 구상을 다 마쳤던 포항 황선홍 신임 감독으로서는 갑작스러운 설기현의 이적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몸값에 비해 지난해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을 날려보내며 큰 공헌을 하지 못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 팀 탈락의 빌미가 되는 결정적 실수까지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설기현을 감싸안았던 포항 팬들로서도 조금은 서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설기현은 유럽 진출 이후 지난 10여 년간은 한 팀에서 2~3년 이상 안정적으로 활약하지 못해 저니맨의 이미지를 안고 있다. 오랜 유럽생활로 인해 다소 개인주의적인 마인드가 강해졌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레딩이나 안데레흐트에서 좋은 활약을 보내던 시기에도 기복이 심하고 전후반기 체력 문제로 경기력 편차가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 설기현에 대한 공격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울산에서 '꾸준함'은 설기현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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