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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월 17일 오전 11시 50분]

 

첩보액션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는 SBS 월화 드라마 <아테나:전쟁의여신>(이하 아테나)은 수출하는 것을 목표로 2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으며 첫 방영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특히 극 중에 무인전투기, K-11 소총 등 최첨단 무기들이 등장해 오랜만에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첩보물이 나왔다는 기대도 갖게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아테나>를 본 시청자들은 적잖이 실망했을 법합니다. 특히 밀리터리 마니아라면 그 실망감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극 중에 '최첨단 무기'를 등장시켰지만, 무기 고증이 되지 않은 연출로 그 의미를 반감시켰기 때문입니다. 지난 14, 15일 방영분이 그랬습니다.

 

<아테나>는 미 공군의 최첨단 무기 중 하나인 'GBU-28' 폭탄(벙커버스터)을 등장시켜 긴장감을 높였지만, 'GBU-28' 무기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결국 시청자들의 빈축을 사고 말았습니다. 이는 <아테나> 제작진의 얕은 무기 지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하나의 단면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항공기 투하용 레이저 폭탄 'GBU-28'을 미사일로 개조한다고?

 

<아테나> 14, 15일 방송에서는 신형 원자로 개발 계획을 방해하려는 아테나와 이를 막으려는 대한민국 NTS 간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계획에 연이어 실패한 아테나는, 분풀이를 하려는 듯 급기야 대한민국 원자력 발전소 테러를 준비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일반 미사일로 다중 방호벽으로 되어있는 원자력 발전소에 피해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테나, 비장의 무기를 반입해 공격을 준비합니다. 반전의 카드는 바로 'GBU-28'(Guided Bomb Unit 28)무기였지요.

 

그런 아테나의 음모를 NTS에서 알아챈 건, 테러범들이 들고 간 상자에 무기 제식번호 'GBU-28'이 써져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GBU-28'은 현존하는 실제 무기의 제식 번호입니다. 항공기 투하용 레이저 유도폭탄의 이름인 것입니다.

 

무게만 2톤이 넘는 초대형 폭탄이기에 전투기 중에서도 F-15 등의 전폭기에 장착해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자체 추진력 없이 보통 4만 피트 상공에서 떨어뜨려 그 낙하 속도로 파괴력을 얻는 '항공기 투하용 레이저 유도폭탄'인 것이죠. 그래서인지 CCTV 확대를 통해 무기의 정체를 확인한 NTS 관계자들 얼굴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당시 <아테나>의 대사를 그대로 옮깁니다.

 

"잠깐, 지금 가지고 나간 게 뭔지 확대해봐"                김준호 (시원)

"알았어요. 저건 벙커버스터예요"                             최태현 (최강창민분)

"벙커버스터?"                                                       이정우 (정우성)

"네. 틀림없어요. 변형된 형태이긴 하지만, 지금 미군이 개발한 GBU-28이에요." 김준호 (시원)

 

극 속 NTS 국장은, 벙커버스터(GBU-28)에 대해 묻습니다. 그 말에 한 요원이 영상을 확대해 'GBU-28' 제식번호를 보고, 레이저 유도 폭탄을 미사일 형태로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상한(?) 추측을 합니다.

 

"GBU-28?"                                                           권용관 국장 (유동근)

"맞습니다"                                                            오실장 (오윤아)

"자세히 말해봐"                                                     권용관 국장(유동근)

"원래는 전폭기에서 투하하는 레이저 유도폭탄 형식인데, 미사일 형태로 개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준호(시원)

 

제식번호만 보고 미사일 형태로 개조한 것이라 판단한 NTS의 추측과는 달리 'GBU-28'은 그 자체가 2톤이 넘는 '항공기 투하용 레이저 유도폭탄'을 알리는 제식번호입니다. GBU-28은 다른 레이저 유도폭탄(GBU-24)처럼 미 공군 레이저유도폭탄(LGB:Laser Guided Bomb)의 일종입니다.

 

그런데 NTS 요원들은 이 제식번호만을 보고, 이 무기가 레이저 유도폭탄에서 미사일 형태로 개조된 것 같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합니다. 즉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GBU-28'을 폭탄을 개조한 미사일의 제식번호라고 오해할 수 있는 셈이죠.

 

하지만 이는 현존하는 무기의 고증을 실패한 것입니다. 만약 대사속 내용을, 달리 해석해 (무기 제식번호 상자만 보고) 'GBU-28' 레이저 유도폭탄을 미사일로 개조했다는 억지 상황을 전개해 나가더라도 무리수가 따릅니다.

 

거대 벙커버스터 폭탄을 미사일로 개조한 무기는 존재하지 않고, 효율적인 면에서 실현될 가능성도 없기 때문입니다. 상공에서 위치 에너지를 갖는 폭탄을 자체 추진력을 갖는 미사일로 바꾼다는 것, 벙커버스터의 크기가 2톤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테나>에서 등장한 가공할 위력을 지닌 미사일 형태의 그 무기는, 폭탄과 미사일에 대한 기본 상식이 결여돼 나온 결과물입니다 한 밀리터리 사이트 대표는 'GBU-28' 폭탄을 다른 형태로 개조해 사용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GBU-28은 '항공기 투하용 레이저 폭탄'이다. 이 폭탄은 다른 투발 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무게, 규격 등 맞는 포가 없어 포탄으로 쓰기에도 불가능하다. GBU-28의 미사일 개조? 현재 그런 미사일이 없고 그런 형태는 효율도 없다. (2톤이 넘는) GBU-28를 자체 추진력을 갖는 미사일처럼 개조하더라도, 원자력 발전소의 방호벽을 뚫기 어려울 것이다. 상공에서 투하해 위치 에너지를 갖는 GBU-28의 파괴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설픈 상황전개... 해외 팬들에게 부끄럽다

 

<아테나>에 이 폭탄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를 사용하기 위해 아테나 테러범들이 전투 비행단을 급습, F-15K 전투기라도 탈취할 줄 알았습니다. 물론, 소수의 인원으로 공군 전투 비행단을 급습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설정이었지만, 포탄과 미사일로 개조가 불가능한 'GBU-28' 폭탄을 사용하기 위해선 거의 유일무이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나> 제작진은 이 폭탄을, 미사일처럼 사용하는 황당 연출을 했습니다. 2톤이 넘는 투하용 폭탄을 사람의 힘으로 단 몇 십분 만에 미사일 발사대에 설치, 땅에 제대로 고정되지도 않은 빈약한 발사대에서 그 무거운 폭탄이 10Km 정도를 날아간다는 극 중 상황에선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비과학적인 설정은 판타지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사실 <아테나>의 황당 설정은 이번 한 번이 아닙니다. 극 중반에 무인전투기를 소총으로 맞혀 추락시키는 장면과 극 초반, 저격수가 검은 옷에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저격 자세를 취하는 모습 등은 밀리터리 마니아는 물론, 일반 시청자까지 웃게 만들었습니다.

 

드라마에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고 최첨단 무기들까지 등장시켰으면, 이를 살릴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연출이 뒷받침돼야 하지 않을까요? 해외 수출까지 염두해 둔 상황에서, 'GBU-28'으로 불리는 '폭탄'을 '미사일'로 변신시키는 주먹구구식 연출은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제대로 된 첩보 액션물을 만들기 위해 군사자문전문가까지 두는 미국 등지의 해외 드라마를 생각할 때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입니다.

 

<아테나>가 후에 수출이 된다면, 해외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세계 최초 'GBU-28' 미사일(?) 장면을 보며 폭소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저 뿐일까요? 막대한 제작비와 화려한 액션도 중요하지만, '폭탄'과 '미사일'의 매커니즘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기본 역량이 대한민국 드라마에 필요해 보입니다.


태그:#아테나, #GBU-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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