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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16일 오전 11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최근 내부형공모제 절차를 통해 서울 상원초와 영림중에서 새롭게 교장 임용을 결정했는데, 이들이 전교조 평교사 출신이란다. 이에 보수언론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보수세력들은 "최초의 전교조 출신 교장"이라며, '전교조 밀어주기 인사'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급기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는 해당 학교에 대한 감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보수언론이 떠드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전교조 출신의 교장은 이미 10년 전부터 전국 곳곳에 있었다. 때문에, 이전엔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보수 언론과 교과부가 곽노현 등 진보교육감들이 혁신학교를 통하여 공교육 혁신을 시도하자 전면적으로 딴지를 걸고 나선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보수언론들 중심으로 '서울에서 최초의 전교조 출신 교장이 취임했다'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실제 전교조 조합원 출신의 최초 교장이 취임한 것은 10여년 전인 1998년의 일이다. 이후 경기, 서울, 경남, 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 전교조 출신의 교장들이 취임했으며 이들 대부분이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교육계의 지지를 받으며 우리 교육의 모범을 만들어 오고 있었다.

[사례①] 차 심부름하는 성남 은행초 이상선 교장

지난해 6월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린 '교사대학살 중단 전교조 지키기 전국지회장 결의대회' 모습.
 지난해 6월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린 '교사대학살 중단 전교조 지키기 전국지회장 결의대회'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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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출신 1호 교장은 13년 전 경기도 성남의 은행초 교장이 된 이상선 교사다. 그는 초년 시절부터 정권을 홍보하고 어린 학생들에게 반공교육을 해오던 당시에는 평범한 교사였다. 그러나 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거리에서 만난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박정희 군사정부의 유신헌법을 훌륭한 법이라고 가르치던 교사를 존경할 수 없다"고 비난하자, 충격을 받고 교사로서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후 그는 전교조의 경기교사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전교조 운동에 적극 가담한다. 그 뒤 교사 생활을 계속하다가 1998년 조합원 출신으로는 최초로 교장이 되었다. 교장이 된 후 그는 정권을 홍보하고 학생들에게 반공의식을 고취시키던 애국조회를 '일제시대의 잔재이며 권위주의 산물'이라는 소신으로 폐지했다. 대신 '발표조회'를 만들어 학생들의 노래, 웅변 등을 듣는 시간을 만들었다.

또 '상명하달식 통제수단'이던 교무회의 역시 같은 이유로 폐지했다. 교사들을 교무실이 아닌 교실로 출퇴근하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토론식 교무회의를 개최했다. 이외에도 이 교장은 전국 최초로 소년신문 구독을 끊은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특히 그는 차 심부름 하는 교사를 없애고 스스로 차를 타서 마시고 손님을 대접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교장이 오죽 못났으면 직원에게 차대접도 못 받냐"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스스로 교장의 권위를 포기한 것이다.

이 교장은 지난 2002년 8월, 44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때 이 교장은 학생들에게 반공 교육과 정권 홍보 교육 등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백하면서, 퇴임 후 탈북 청소년 교육으로 속죄하겠다는 퇴임사를 해 많은 이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사례②] 전국 유일 수업하는 교장, 고춘식 선생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세 가지 결심을 했었다. 한성여중을 가장 민주적인 학교로 만들겠다는 것, 전교조 출신이 교장을 해도 괜찮더라는 평가를 받는 것, 한 번의 임기를 마치면 다시 평교사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2004년 한성여중 교장에 취임한 고춘식 교장이 밝힌 결심이다. 그는 서울 최초 전교조 조합원이자 평교사 출신 교장이다. 고 교장은 취임하자마자 교장실 소파 상석을 치웠고, 교장실 문을 항상 열어놓아, 아무때나 교사와 학생들이 찾아오도록 했다.

또 결재 받으러 온 교사들을 반드시 서서 맞이하고, 간단한 내용은 서서 결재했다. 대부분의 사학에서는 학운위 교원위원을 2~3배수 형식적 추천을 받아 학교장 입맛에 맞는 교사를 임명한다. 하지만 고 교장은 교사들이 투표로 추천하면 그대로 임명하도록 규정으로 만들고 교감과 보직교사, 학년부장을 교사 직선으로 뽑도록 인사제도를 고쳤다.

주제를 정해 매달 교직원 토론회를 열어, 교사들이 마음껏 발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또 부장회의를 교장실이 아닌 교무실에서 했고, 행정업무 중심의 교무실을 학년별 교무실로 바꾸었다. 방학 중에 선생님들이 연수를 받는 것이 고마워서 예산을 미리 세워 연수비를 지원했다. 학교에서 존중받는 교사가 학생들 앞에 당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선생님의 자존감을 살려주려고 한 것들이다.

교사들만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학생, 학부모가 함께 하는 교육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1년에 두 번은 학부모와 함께 학년협의회를 준비했고, 지원을 늘려 22개의 동아리를 운영하였다.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도 리모델링하여 언제든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개조했다. 때문에 여학교인데도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에는 땀을 흘리며 뛰노는 여학생들이 넘쳐났다. 위압적인 교문 등교지도를 없애고, 교사들과의 토론을 거쳐 체벌도 없앴다. 기존의 학생자치회의인 '한성인 한마당'을 활성화해 학생 스스로 토론하고 결정하게 하는 등 학생들을 학교의 주인으로 대접했다.

고 교장의 실천 중 가장 파격적인 것은 전국 최초의, 전국 유일의 수업하는 교장이었다는 점이다. 교장은 물론 교감도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그는 수업을 담당하면서 수행평가도 하고, 시험 출제와 채점도 직접 했다. 학급 간 평균 점수가 10점 이상 차이가 나서 교장이 사유서를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수업하려면 무엇 하러 교장을 하나? 수업하면 군림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다른 교장의 비아냥에도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고, 선생님들 곁으로 다가가는 방법으로 수업보다 좋은 것은 없다'는 신념으로 계속 수업에 들어갔다.

고 교장은 취임 때 한 약속 3가지를 모두 실천한 후, 재임 요청에도 불구하고 4년 임기를 끝낸 뒤 평교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 교육계에 "학교의 주인은 누구이며, 교장은 뭐 하는 사람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채 교사, 학생, 학부모들의 박수 속에 명예롭게 정년 퇴임했다(자세한 내용은 우리교육 2010 겨울호 "학교에 필요한 것은 교장 자격증이 아니다" 참고).

[사례③] 남해-하동, 전교조 경남지부장과 서울지부장 출신이 교장

이영주 설천중 교장
 이영주 설천중 교장
ⓒ 도서출판 브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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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은행초 교장과 서울 한성여중 교장이 전교조 출신 전직 교장이라면 경남 남해 설천중 이영주 교장은 내부형공모제를 거쳐 임명된 현직 교장이다. 그는 89년 전교조 창립을 주도했다가 10년 남짓 해직교사로 지냈으며, 전교조 진주지회장과 경남지부장 등 전교조 핵심 간부를 지냈고, 복직 후 2007년 내부형 공모제를 통해 경남 남해도의 설천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당시 설천중은 여느 섬마을 학교처럼 학생수가 줄고 시설이 낡아 폐교 직전이었다. 그런 학교에 이 교장이 부임 와서 학교를 단장하고 변화를 거듭하여 신입생도 늘어나 현재는 1·2·3학년 전교생이 70명이다. 폐교 직전의 섬 마을 학교를 이렇게 살린 것은 무엇보다도 수업예고제와 명사특강, 방과후 활동 등이 입소문을 타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으면서부터였다.

전국 최초로 시행한 수업예고제는 미리 수업 내용을 알려주어 학생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오게 하는 제도다. 예비 우주인이었던 고산씨를 비롯하여 시인 도종환, 김진경씨, 상지대 정대화 교수, 서울대 박상현 교수 등 TV나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유명 인사를 학교에 초청하여 직접 학생들을 만나게 하는 명사 특강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와 함께 교사들이 직접 교재를 만들어 학생의 희망에 따라 방과후학교까지 책임져 주니 당연히 아이들과 학부모가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2년 뒤인 2009년, 남해도와 마주보고 있는 하동군 옥종고에는 전교조 서울지부장을 지낸 해직교사 출신의 유수용 교장이 공모제를 통해 임용됐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하동에는 전교조 서울지부장이, 남해에는 경남지부장 출신 교장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전교조 출신 평교사, 그것도 해직교사 출신의 핵심 지도부인 서울지부장과 경남지부장을 역임한 교사를 공모제를 통해 교장으로 임명한 것은 고영진 교육감이었다. 그런데 당시 어느 누구도, 어떤 언론도 전교조 평교사 출신, 해직교사이자 전교조 지부장 출신 교장이라는 타이틀로 고 교육감을 비난하지 않았다.

[사례④] '보수' 김진춘 교육감도 전교조 교장 임명

남한산초등학교의 영어 수업 모습.
 남한산초등학교의 영어 수업 모습.
ⓒ 남한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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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과 경기도 등 진보교육감은 공통적으로 혁신학교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이 되었는데 이 혁신학교의 모델이 경기도의 남한산초와 조현초 등이다. 그런데 혁신학교의 대표적 모델로 불리는 조현초에 공모제를 통하여 전교조 경기지부장 출신의 이중현 교장을 임명한 것은 김상곤 교육감이 아니라 선거 맞상대 후보였던 김진춘 당시 교육감(현 경기도 교육의원)이다.

김상곤 현 경기교육감이 취임한 이후에는 성남 보평초와 최초의 고등학교 혁신학교인 용인 흥덕고에 전교조 조합원 출신 교장이 임용되었다. 조현초, 흥덕고 등은 모두 현재 공교육 혁신의 모델이다.

이렇듯 현재 보수언론과 교총, 교과부가 합동으로 문제 삼고 있는 서울 상암초와 영림중 이전에 전교조 출신 교장은 수 없이 있었지만 한 번도 문제된 적이 없고 오히려 모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이런 객관적 상황을 애써 모른 척하며 이제 와서 최초의 전교조 평교사 출신 어쩌고 하는 타령은 생뚱맞다(평생을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하다가 작년에 유명을 달리하신 전북 장수중의 고(故) 김인봉 교장 선생님의 사례는 예의상 생략한다).

전교조 만든 건 교장, 전교조 교장 만든 건 공정택?

교육계에서는 이전부터 '전교조를 탄생시킨 것은 교장들'이라는 말이 있다. 교장이 '교장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학교의 주인행세를 하며 인사권과 예산을 한 손에 쥐고 권력을 휘둘러 교권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한 것에 대한 평교사들의 불만이 전교조 결성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전교조 출신 교장을 만든 것은 공정택이라는 말은 어떻게 나왔을까? 지난 10일 대법원은 인사 청탁 대가로 뇌물을 받아 기소된 공정택 전 서울교육감에게 징역 4년에 벌금 1억 원, 추징금 1억46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는 9명으로부터 1억 원이 넘는 뇌물을 받고 자격이 안 되는 장학사와 교사들을 교장으로 승진시켰다가 구속 기소됐다. 이전부터 회자되던 장천감오(교장은 1천만 원, 교감은 5백만 원을 뇌물로 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어느 정도 사실로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교감, 장학사, 장학관, 교장을 위한 교원 승진 제도 개혁 주장이 나오지 않을 리가 없다.

이렇게 공정택 교육감 사건으로 대표되는 교장 승진 비리와 문제점들에 대한 한 가지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공모제 교장제도'다. 그리고 이 공모제 교장제도를 통해 전교조 조합원 출신의 평교사들이 교장에 일부 등용되었다. 역사와 상황이 이러하니 "전교조 교장을 만든 것은 공정택"이라는 말 또한 결코 빈말이 아니다.

'교총' 출신 교장은 서울에서만 1100명

13일 한국교총 홈페이지 첫 화면에 나온 홍보 포스터 사진.
 13일 한국교총 홈페이지 첫 화면에 나온 홍보 포스터 사진.
ⓒ 한국교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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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택 뇌물사건으로 유죄선고를 받거나, 감사원에서 '부정 승진 의심 대상자'로 언급된 K고, C고, J고 교장 등 상당수가 교총 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교장 또는 교감 승진의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장학사, 장학관들 중 상당수도 교총 회원이다.

교육계에서는 전국 1만1000여 개 초중고 중 80~90%가 교총 출신 교장인 것으로 추산하는데, 실제 조전혁 의원이 공개한 교원단체별 회원 현황에 의하면 서울 1270여 학교장 중 90%에 가까운 1100명이 교총 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교총이 전교조 평교사 출신 교장 임명에 결단코 반대한다면서 내부형 공모제 반대 성명서(13일)를 내고,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14일)도 열었다. 서울에만 1100명 등 전국적으로 수천명에 이르는 출신 교장을 가진 교총이 단 2명의 전교조 출신도 안 된다고 우긴다.

전체 교원 중 전교조 비율이 20%에 가깝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전국 2000명, 서울에만 적어도 200명의 전교조 출신 교장이 있어야 정상인데, 2명도 못 받겠다고 생떼를 부리고 있다.

보수교육감 시절, 10년도 더 된 전교조 출신 교장을 어느 누구도 문제 삼지 않더니 이제 와서 뒤늦게 사실도 아닌 "전교조 평교사 출신 최초 교장"이라는 타이틀을 갖다붙이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보수언론과 교총, 교과부는 "왜 교총 출신 교장은 1000명도 되는데, 전교조 출신 교장은 2명도 안 되는가? 왜 보수교육감인 경남교육감이 전교조 경남지부장과 서울지부장 출신을 공모제를 통해 교장으로 임명해도 괜찮은데,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하면 문제가 되는가?"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처음 기사에 언급된 "고양 덕양중 교장이 전교조 조합원 출신"이란 내용은 사실과 달라 바로잡습니다.



태그:#곽노현, #전교조, #공모제,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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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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