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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님, 불철주야 인기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자릿수의 시청률 빈곤 사태를 겪고 있는 주말 버라이어티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에 김영희 CP를 투입, 대대적인 개편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MBC가 지금 시청률에 얼마나 목매고 있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그런 노력 끝, 김영희 CP가 들고 나온 <창사 50주년 아나운서 공개채용 신입사원>은 시청률 반전을 위한 히든카드라 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방송가의 트랜드가 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 이를 아나운서 채용에 절묘하게 접목시킨 놀라운 센스는 시청자를 깜짝 놀라게 했으니까요.

 

창사 50주년이란 거창한 타이틀, 그에 걸맞은 기획. MBC의 <신입사원>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입니다. 오는 27일 첫 방송을 앞두고, 벌써 응시자는 정시 채용규모인 3000~3500명 수준(10일 현재)이라고 합니다. 10일, 경기도 일산MBC드림센터에서 열린 '일밤' 개편 기자간담회에서 MBC 아나운서국 최재혁 국장의 발언은, 아나운서를 꿈꾸는 지망생들의 가슴에 더욱 불을 지폈습니다.

 

"그간 입시학원에서 숙련된 방법을 배우거나 지나치게 정형화된 편견으로 아나운서에 응시하는 지원자들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었다. 이번 오디션을 통해 정말 국민들이 원하는 아나운서를 찾도록 노력하겠다."

 

무례한 <신입사원>을 멈춰주세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런 훌륭한 의도와 기획을 가진 <신입사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기 때문입니다. 관련 뉴스 인터넷 댓글은 온통 비판으로 가득합니다. 단지 악플이라고요? 그렇게 치부하기엔 뭔가 의아합니다.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상당수도 MBC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례함을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한 인터넷 언론 지망생 카페에는 <신입사원>에 대한 걱정과 불만의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제가 아는 아나운서를 지망생 친구들도 이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많이 합니다. 정시 아나운서 모집률을 훌쩍 뛰어넘는 폭발적 인기에도 <신입사원>은 왜 이렇게 욕을 먹는 것일까요?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지원을 위해 동의를 거쳐야 하는 내용들이, 노예 계약을 연상케 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원서를 냄으로써 나는 (주)MBC에게 내 목소리, 행동, 이름, 모습, 개인 정보를

포함한 기록된 모든 사항을 프로그램에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합니다.(중략)>

 

<관계자들이 출판, 프로모션, 광고, 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모든 권한은 (주)MBC에게 있고

나의 초상과 자료를 2차적 저작물의 사용 등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용에 대해

명예 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등을 포함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에 동의합니다.>

 

 

여기까지는 이를 꾹 참으며 보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내용에서 그만 힐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지원자들의 불이익은 보상받을 수 없는 반면, 프로그램은 동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은 지원자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일방적인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MBC와 본 프로그램에 관련된 관계자 및 모든 제작진이 나의 프로그램 지원 및 참가, 프로그램의 방영취소, 사생활 침해 명예 훼손, 신체적, 정신적 손상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해야 하는 의무가 없음에 동의합니다.(중략)>

 

<(중략) 만약 이 지원서에 쓰인 내용에 대해 하나라도 불이행하는 일이 생기면 (주)MBC는 나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알며 이 불이행이 (주)MBC에 끼칠 막대한 경제적 손해를 알고 있으며, 불이행 했을 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전 기자 지망생이라 이번 오디션에 참여하지 않지만, 같은 분야, 언론의 꿈을 지닌 친구들이 이 오디션을 치르며 겪을 상처가 우려됐습니다. MBC는 대체 우리 언론 지망생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요. 얼마나 언론 지망생들을 우습게 알았기에 이런 불공정한 동의서를 내보이며 버젓이 동의하라고 말하는 걸까요.

 

문득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 속 세진이의 면접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영화 속 세진이는 노래를 불러보라는 면접관의 요구에 일어나 노래를 부릅니다. 춤까지 추라는 요구에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를 무반주로 부르며 열심히 춤을 춥니다. 그때 영화 속 면접관들은 키득키득 웃기 바쁩니다. 눈물이 핑 돈 세진이의 외침이 아직 기억에 생생합니다.

 

"원래 면접을 이렇게 봐요? 가뜩이나 취직 안 돼서 괴로워 죽겠는데, 사람을 갖고 놀아? 아무리 약자라도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대우를 해 줘야 할 것 아냐!" -  영화 <내깡패 같은애인> 중

 

영화 속, 세진이와 우리 언론 지망생들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속에는 저마다 생각하는 이상, 신념이 있지만 언론사, 방송사 공고가 뜨면 매체를 가리지 않고 입사 지원서 내기에 바쁜 사회적 약자입니다. 그렇기에 MBC <신입사원>의 들러리가 될 것을 각오하면서, 불공정한 동의서를 참아가면서 지원서 신청에 클릭을 하는 것이 지금 우리네 모습입니다.

 

이뿐입니까. 꿈을 위해 숨기고픈 개인사까지 자기소개서에 솔직히 담아내는 것이 <신입사원>에 임하는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모습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MBC가 <신입사원>이 만약 기자 오디션이었다면, 로또만큼 희박한 가능성을 꿈꾸며 입사 지원서를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사회적 약자, 언론 지망생들의 '행동, 이름, 모습, 개인 정보를 포함한 기록된 모든 사항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MBC'가 갖겠다고 합니다.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지망자가 어렵게 써낸 개인사를, 아나운서를 꿈꾸는 자긍심을 제멋대로 요리하겠다는 MBC의 우악스러움에 화가 납니다. 그래놓고 '명예 훼손이나 사생활 침해'의 문제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MBC의 동의서는 비겁하고 또한 무책임합니다.

 

프로그램이 과열되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어떤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신상이 털리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악플과 비난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또 타 방송사 입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의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들을 보호하지 않고 시청률의 소모재로 쓸 요량입니까?

 

<일밤>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신입사원>이 진정 아나운서를 뽑기 위한 프로그램인가 맞나 하는 의아함이 듭니다. 혹 시청률을 위해 수많은 아나운서 지망생들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무례한 MBC <신입사원>, 당장 고쳐주세요.

 

희망 고문을 멈추고, 아나운서 채용 제도 자체를 개혁하세요

 

<MBC TV 창사 50주년 신입사원>은 그 거창한 이름에 걸맞지 않습니다. 제대로, 정규화된 아나운서 입사 오디션이 아닌 시청률을 위한, 시청률에 <일밤>의 일회성 프로그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선발자는 겨우 1명, 혹은 인사권을 가진 MBC 사장님의 아량으로 좀 더 많아질 수도 있다는 극소수의 합격자는 아나운서 지망생들을 그저 희망 고문하는 것 아닐까요?

 

일회성 프로그램을 위해 수천 명의 지망생들이 '새로운 형식'에 맞춰 준비를 해야 합니다.  16~20주에 이르는 긴 오디션(시험기간)은 지원자들의 애간장을 타게 할 것입니다. 이 일회성 오디션을 위해 다른 시험 준비할 시간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바늘 구멍의 입사를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한 아나운서 지망생들, 그 과정 끝에 <신입사원>의 들러리로 전락한 지원자들을 꿈과 열정. 그리고 시간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나운서를 뽑기 위해 오디션을 보는 것보다,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시청률 상승을 위해 아나운서 채용을 이용한다는 비판에 MBC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MBC가 시청률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 보십시오. <뉴스후>와 <W>를 폐지했을 때부터, 올바른 지성의 자리에 시청률 지상주의가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볼 일입니다.

 

부디 문제 많은 <일밤>의 <신입사원>을 과감히 고쳐서, MBC의 미래가 될 언론인들을 제대로 뽑으시길 바랍니다.


태그:#신입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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