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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 반전(反戰)포스터는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 맞춰 뉴욕과 워싱턴에 나붙었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 반전(反戰)포스터는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 맞춰 뉴욕과 워싱턴에 나붙었다.
ⓒ 이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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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포스터가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전봇대에 둥글게 부착되자, 적을 향했던 병사의 총구가 자신의 뒤통수를 겨냥하고 있었다.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 반전(反戰) 포스터는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 맞춰 뉴욕과 워싱턴에 나붙었다. 이 작품은 원쇼 페스티벌과 클리오 어워즈 등 이름난 국제 광고제에서 10여 개의 메달을 받았다.

뉴욕 북동부의 100년도 넘은 5층짜리 건물 옥상 위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굴뚝 아래 건물 벽면에 설치된 대형 광고판에는 매그넘 리볼버 권총 사진이 붙어 있다. 그러자 연기를 뿜던 굴뚝이 영락없는 권총의 총열로 변했다. 광고판 하단에는 한 줄짜리 카피가 눈에 띈다. "대기 오염으로 한 해 6만 명이 사망합니다." '굴뚝총'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2007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원쇼 칼리지 페스티벌' 최고상을 탔다.

아주 오래된 빛바랜 낡은 갈색 밍크 담요. 뉴욕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촬영된 이 담요 사진이 종이신문 브리지면에 꽉 채워진 광고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담요 오른쪽 아래 작은 태그 안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오늘밤 누군가는 이 신문을 이불로 써야 합니다." '이불신문'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2008년 3월 27일자 <영남일보>에 실린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홍보용 전면광고였다.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광장을 42년 동안 지켜왔던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수작업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 빈 공간에 흰색 탈의실의 조형물이 들어섰다. 출입문 정면에는 '탈의중'이라는 문패가 달려 있고, 오른쪽 옆에는 벗어놓은 청동 갑옷이 걸쳐져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상징물이었다. '재치있다' '가볍다'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작품은 한순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문제작'이 됐다.

'굴뚝총'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이 작품으로 이제석씨는 2007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원쇼 칼리지 페스티벌'에서 최고상을 탔다. 그를 유명한 광고장이로 만든 작품이다.
 '굴뚝총'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이 작품으로 이제석씨는 2007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원쇼 칼리지 페스티벌'에서 최고상을 탔다. 그를 유명한 광고장이로 만든 작품이다.
ⓒ 이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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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 이제석(30)씨의 작품들이다. 아트디렉터인 그에게는 '루저'와 '광고천재'라는 상반된 꼬리표가 붙어 있다. 지방대 출신이 '루저'로, 이후 뉴욕에서 활동하며 국제 광고제의 상을 휩쓴 성공신화가 '천재'라는 꼬리표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바보'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지만, 그러한 상반된 수식어가 붙는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진심어린 말투다. 화려한 포장보다 내실있는 알맹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광고와 딱 맞아떨어지는 반응이다.

계명대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해 4.5 만점에 4.47로 수석 졸업한 그는 국내에서는 코딱지만한 상조차 타지 못했다. 졸업 후 수십 군데에 입사 원서를 냈지만 아무 곳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실력보다 스펙이 우선한 사회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미술학원 강사에 간판장이 일을 하던 그는 돌연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그리고 2006년 9월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chool of Visual Arts)'에 편입했고 1년 반 만에 국제 광고제를 휩쓸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JWT, BBDO, FCB 등 미국 메이저급 광고회사에서 몸값을 높였다. 그러다가 '하고 싶은 광고'를 만들고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꼴통 기질'로 가득찬 광고장이... "불리하면 판을 바꾸면 된다"

상업광고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가 지금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공익광고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된다는 광고가 아니라, 진짜 광고는 돈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장차 광고주에게 일감을 수주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광고를 마음에 맞는 광고주에게 파는 방식의 새로운 '갑을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야말로 '꼴통 기질'로 가득찬 당돌한 서른살이다. '자신이 불리하면 판을 바꾸고 룰을 바꾸면 된다'고 믿고 있다.

궁금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의 상상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루저에서 일약 광고 천재로 급상승한 본인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렵게 들어간 주류 광고판에서 왜 스스로 탈주해 비주류의 길을 걷고 있는지, 서른살의 나이에 일찌감치 인생 2모작을 고민하는 그는 어떤 인생 설계를 하고 있는지….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내고, 지난 1일 뉴욕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는 그와 1시간 동안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된 까닭은 그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20, 30분도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전화로 인터뷰하는 게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석씨에게는 '루저'와 '광고천재'라는 상반된 꼬리표가 붙어 있다. 지방대 출신이 '루저'로, 이후 뉴욕에서 활동하며 국제 광고제의 상을 휩쓴 성공신화가 '천재'라는 꼬리표가 된 것이다. 그러한 상반된 수식어에 대해 그는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제석씨에게는 '루저'와 '광고천재'라는 상반된 꼬리표가 붙어 있다. 지방대 출신이 '루저'로, 이후 뉴욕에서 활동하며 국제 광고제의 상을 휩쓴 성공신화가 '천재'라는 꼬리표가 된 것이다. 그러한 상반된 수식어에 대해 그는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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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황이 궁금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뉴욕에 있는 대학원에 다니는데,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수업 내용이 사업하고 직결되고, 사업의 결과물이 연구 주제로 쓰이고 있으니까요. 광고에 국한된 건 아니고 콘텐츠 개발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클라이언트 없이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P2P 스타일의 콘텐츠, 디자인 등을 국내 클라이언트와 공동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갑을 관계가 아닌 동반자 관계에서 진행하는 일입니다."

- 2006년 뉴욕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학원강사도 하고 간판 만드는 일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미술학원 강사 일은 고3 때부터 유학 가기까지 했습니다. 강사 경력이 꽤 됩니다. 간판 일은 제가 변변한 직장이 없다 보니까 주위 이웃들에게 여러가지 부탁을 해서 하다 보니 직업이 된 거였구요."

- 그런 경험이 지금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상당히 좋은 질문인데요. 저는 스티브 잡스를 존경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 가운데 '커넥티드 닷츠(connected dots)'라는 표현이 있어요. 인생은 점과 점을 연결하는 것이고, 그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면이 된다는 얘기인데…. 살면서 경험했던 모든 게 지금의 나를 만드는 밑바탕이 되고 밑거름이 됐거든요.

미술학원 강사를 하면서 추상적인 개념과 애매모호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쉽게 풀어서 가르친 것도 나중에 클라이언트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됐습니다. 동네 뒷골목에서 간판을 만들었던 일도 대기업 광고 일을 통해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죠. 예를 들어 대기업 광고업체 부장쯤 된다고 하면 그런 조건에서는 광고 만들기가 쉬워요. 밑에 직원들만도 수십 명이 되니까. 그런데 정말 지지리 돈도 없이 30만 원, 50만 원의 적은 예산에 쪼들리면서 (간판 일을) 했던 게 지금 제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광고계의 전설인 데이비드 오길비도 수세미 같은 걸 파는 방문 판매원이었던 시절이 있었죠. 아파트 문 틈에 발을 집어넣고 '이거 하나 사주세요' 이렇게 외치며 처절하게 살았던 삶의 몸부림들이 결국…. 광고와 영업은 뗄 수 없는 관계거든요. 세상 모든 경험은 버릴 게 없어요. 어차피 버릴 게 없다면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이제석이라는 이름 뒤에는 '광고 천재'와 '루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데요. 이런 상반된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광고장이로서 천재와 루저라는 수식어를 함께 가진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광고를 취권에 많이 비유하거든요. 광고라는 게 너무 똑똑해 보이면 사람들이 경계하고 거리감을 느낍니다. 장삿속이다 싶으면 '속물 같은 얘기하고 있네' 하면서 거리감을 두죠. 그런데 좀 바보 같고 어리바리한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고 호감을 갖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봤던 좋은 광고 캠페인들은 다들 바보 같으면서도 동시에 스마트한 면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광고장이는 바보스러움과 천재스러움을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바보 같아도 광고가 안 나오고 너무 똑똑해서 머리 굵은 얘기만 해도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지요. 저는 바보와 천재가 공존한다는 평가에 대해서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재'이자 '바보'란 평가,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 한국이나 미국이나 '루저'가 존재할 텐데, 루저가 만들어지는 사회 분위기나 시스템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저도 미국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제가 '이건 이렇다'라고 명쾌하게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이 자유로운 나라라고 하지만 사실 그만큼 보수적인 나라도 없고….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사회든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세상이 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만이 공평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한테 불리하게 주어진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의 힘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나오리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70, 80년대 영화만 보더라도 '야, 이러다가 언젠가는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는 세상이 올지도 몰라'라는 대사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은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부분을 오히려 유리한 조건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역설적으로) 흑인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겁니다.

제가 지방대 출신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를 높이 평가하는 거 아닐까요? 제가 강남 출신에 좋은 대학 들어가서 광고대회를 휩쓸고 알아주는 광고대행사에 들어갔다면 '엄친아'라는 소리나 들었겠죠. 그러나 저한테 주어진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저는 루저라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제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아마 오바마도 (흑인이라는) 자기 환경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할 거예요."

이제석씨가 CF 촬영장에서 스태프들과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석씨가 CF 촬영장에서 스태프들과 작업을 하고 있다.
ⓒ 이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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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 광고판에 직접 뛰어들지 않았다면, 지금 이제석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평가받고 있을까요.
"글쎄요…. 미국에 가지 않았더라면, 제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봐줄 만한 멘토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사람들이 껍데기로 보이는 포장에 워낙 열광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한 단점을 안고 살아갔을 것 같아요. 저의 기량과 재능을 알아주는 스승들을 만났기 때문에 제가 성공할 수 있었으니까요. 저 혼자 힘으로 잘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한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확률적으로 저의 잠재력을 인정받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렸겠지요."

- 이제석의 성공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고 평가라고 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석의 성공신화가 불편하기도 합니다. 한국은 여전히 스펙을 우선하는 구조와 시스템이 강고하거든요. 그런 가운데 이제석의 성공신화가 본인의 의도하고는 달리, '능력이 있고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데 활용되는 면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건 언론이나 이 사회의 책임이겠지만요.
"같은 현상을 두고 사람마다 해석하는 것이 다 다를 수 있지요. 사람들은 종종 이런 현상을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저를 본보기로 해서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콤플렉스 가운데 잠재적 가치가 아닌 외형적인 부분에 너무 치우치는 것을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청년들이 주어진 상황에 대해 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게 제가 인터뷰를 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거든요. 제 이야기가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광고천재 이제석>이라는 책과 언론 인터뷰 등 자료를 보다보니, 당신은 부당함에 대한 분노와 일에 대한 몰입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부당한 걸 잘 못 참는 성격입니다. 공익광고도 만들고 얼굴도 선하게 생겼지만, 제가 결코 부드러운 사람만은 아니거든요. 클라이언트와 다투기도 하고. 조금 돌려서 얘기하거나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직선적으로 얘기하고 행동합니다. 성질이 급하고, '이건 아니다, 이건 틀렸다' 싶으면 아닌 겁니다. 고집이 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성격이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다그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캐릭터이기도 한데. 그런 성향들이 잘못된 걸 보면 잘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이제석'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이제석 표절'이라는 단어가 뜬다. 클릭해 봤더니, 그의 대표작들과 유사한 콘셉트의 작품들을 나열하며 표절 의혹을 제기한 사진 모음이었다. 어느 블로거가 올린 포스트 맨 뒤에는 이제석광고연구소의 반론도 링크돼 있었다. 이제석 대표가 직접 작성한 반론이다.

그 글을 읽어보니 '낮은 평가는 참을 수 있지만, 부당한 평가는 참을 수 없다'는 결기가 느껴졌다. 그에게 본인의 캐릭터에 대한 질문을 던진 건 이 때문이다. 그는 이 반론 글에서 광고장이로서 얻는 가장 큰 이득이 '보람과 재미'라고 했다. 그리고 "작가에게 있어서 수상과 명예·돈보다 더 중요한 건 작가의 자기만족을 위한 자존심과 원칙·철학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에게 명예와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자존심과 철학입니다"

- 누리꾼들이 제기한 '이제석 광고 표절'에 대한 반론 글을 인상깊게 봤습니다.
"남이 이상한 얘기를 하면 그냥 모른 척하면 되는데 저는 그걸 잘 못해요. 어떻게 보면 오지랖이 넓은 건데 잘못된 건 바로 잡아야죠. 사실 자료 찾고 글 쓰고 하는 것도 에너지 소모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걸 안 할 수가 없는 성격이더라고요."

- 상업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릅니다. 이 대표는 공익광고를 어떻게 규정하나요.
"저는 사람들마다 광고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광고를 도구로 보고, 어떤 사람은 광고를 코미디로 생각합니다. 저도 (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얘들아 안녕, 밥 먹어' 이런 것도 광고거든요. 대중과의 진솔한 대화가 광고죠. 저는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아요.

광고를 통해 대중과 대화를 할 때 뭔가 유익할 수 있고 생산적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런 측면에서 공익광고를 생각하고 있어요. 공익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좀더 즐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상업광고도 공익적인 톤으로 만들 수 있고, 거짓 약속이 아니라 가능한 약속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제 영역을 굳이 공익광고에 한정짓지는 않아요."

이제석씨가 아름다운가게 캠페인의 하나로 만든 공정무역 초콜릿 광고 시리즈.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그의 책과 함께 전시돼 있다.
 이제석씨가 아름다운가게 캠페인의 하나로 만든 공정무역 초콜릿 광고 시리즈.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그의 책과 함께 전시돼 있다.
ⓒ 이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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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표는 NGO에도 활발하게 재능 기부를 하고 있는데요. 상업광고를 하다가 공익광고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된 특별한 계기나 동기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처음 광고계에 뛰어들 때부터 생각하고 있던 걸 실천하고 있는 건가요.
"그건 반반입니다. 광고에 입문하기 전에도 공익광고가 재밌었고요. 광고를 시작한 후에도, 지금도 공익광고가 재미있습니다. (클라이언트 가운데) 기업주 마인드가 날강도 같은 사람도 있어요. 돈이면 다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조금 더 배고픈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광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시다시피 광고 바닥이 좀 치열하고 더럽습니다.

도덕성이나 윤리, 기업 철학이 없는 광고주들도 있어요. (그런 광고주와 일할 경우) '저런 사람이 이런 푼돈으로 내 재능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가'라는 마음이 들죠. 사실 돈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거든요. 물론 돈으로 많은 것을 살 수 있죠. 하지만 돈 갖고도 못 사는 게 많거든요. 내 마당에 있는 내 사과나무는 내가 팔지 않으면 못 삽니다. 그건 내가 팔고 싶을 때만 다른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죠.

재능이 올바른 곳에 쓰여질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됩니다. 그 가치는 돈을 많이 매긴다고 해서 올라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의 재능을 좋은 데 쓰고 싶습니다. 가장 가치있고 좋게 쓰이는 게 뭘까를 늘 고민합니다. 노벨의 다이너마이트도 원래 살상 용도로 만들어진 게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내 재능에 대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과자 오레오나 고양이 다이어트용 사료 등 상업광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상업광고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데요.
"(상업광고도) 재밌지요. 지금도 상업광고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상업광고를 버리고 공익광고만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물론 요청 들어온 상업광고의 절반 정도는 취소합니다. 클라이언트 마인드나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의지를 봤을 때 그나마 좀 괜찮다, 수준이 된다는 사람하고만 작업을 하는 거죠. 제 인생은 짧기 때문에 거지 같은 일을 맡지 않고 보람된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선별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공익광고는 대부분 좋은 클라이언트들이어서 관계가 오래 갑니다."

- 미디어의 본질이 커뮤니케이션에 있다고 한다면 광고도 미디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제석이라는 브랜드는 매우 영향력이 큰 미디어입니다. 사람들과 어떤 소통을 하고 싶습니까.
"내용적인 부분과 형식적인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인데요. 굳이 비유를 하자면, 음식처럼 사람들에게 맛도 있으면서 영양가도 있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그 이야기의 주제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죠.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와 들어야 하는 얘기를 들려주는 게 제 역할인 것 같아요.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사회라는 것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저는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꼭 이윤이 아니더라도 무형의 가치로 전환돼 돌아다닌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수지 타산을 맞추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결정)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저한테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제가 하는 한마디에 사람들이 감동받고 박수를 친다면 상당히 보람있는 거고, 제가 하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야유하고 욕한다면 제가 말할 필요가 없는 거겠지요."

서울시 홍보대사인 이제석씨가 만든 표창장 광고다. 환경미화원, 식당 아주머니, 소방공무원, 건설노동자, 대중교통 기사 등 대상을 달리한 여러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서울시가 새해를 맞아 전개하는 '서울을 빛낸 위대한 서울시민들'이란 공익광고로 지난달 28일부터 시내 가로판매대, 버스 출입문 앞 슬라이딩 고정창, 지하철역사 등 총 3900개 곳에 설치돼 4월말까지 전시된다.
 서울시 홍보대사인 이제석씨가 만든 표창장 광고다. 환경미화원, 식당 아주머니, 소방공무원, 건설노동자, 대중교통 기사 등 대상을 달리한 여러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서울시가 새해를 맞아 전개하는 '서울을 빛낸 위대한 서울시민들'이란 공익광고로 지난달 28일부터 시내 가로판매대, 버스 출입문 앞 슬라이딩 고정창, 지하철역사 등 총 3900개 곳에 설치돼 4월말까지 전시된다.
ⓒ 이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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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업계건 간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합니다. 언론계에서도 동종업계 비판을 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쓴 책을 보면 한국을 포함한 기존 광고업계에 대한 비판이 신랄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쉬쉬하고 있어서는 발전이 없거든요. 비판에도 비판을 위한 비판이 있고 발전을 위한 생산적인 비판이 있어요. 제가 광고업계 사람들을 못 살게 굴겠다, 망하게 하겠다 하는 마음에서 비판하는 게 아니고요. 우리도 수준을 올리자(는 문제제기입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온 것도 그런 거잖아요. 대중문화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어마어마합니다. 저는 광고가 한국 사회를 투영하는 거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저질이라면 그건 국민을 욕 먹이는 거예요.

광고를 본인들이 편한 대로, 유리한 대로, 관행대로 만들어 사람들을 그런 광고의 노리개나 돈의 희생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광고를 잘 만들어서 사람들의 삶에 보탬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알아듣지도 못하는 얘기를 자꾸 해댄다는 건 사람들에게 상당히 불쾌감을 주는 거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욕 좀 하려고 했는데, 세게 하지는 않았어요. 한심한 게 많아서 얘기하면 끝도 없고, 얘기를 해도 잘 못 알아들어요. 광고업계가 잘 되면 저에게도 좋은 거지요. 그래서 광고업계에 약이 될 만한 소리를 선배건 클라이언트건 간에 가리지 않고 한 거예요. 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풀빵 아줌마나 초딩들에게 평가받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 예전에 한 인터뷰를 보니까, 자신의 대표작을 반전 광고로 꼽으면서 '그것보다 더 좋은 게 나오기 어렵고, 앞으로 (그런 작품이) 한두 점 더 나오면 다행'이라고 얘기했더군요. 대부분의 작가가 '본인의 대표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다음 작품'이라고 대답하는 것과는 대조적인데요.
"기사를 재미있게 쓰려고 그렇게 표현한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의 성과나 업적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하다는 차원에서 얘기를 한 거예요. 항상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작가로서의 욕심은 끝이 없죠. 더 좋은 작품이라는 게 상당히 애매모호한데,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제 같은 레벨에서의 작품은 됐다'는 겁니다. 차원이 다른 뭔가를 찾아내고 싶지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비슷한 수준의 작업만 하고 싶지는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는 제가 발전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광고를 광고 이상의 무언가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특정 클라이언트나 전문가들이 '이게 최고다'라고 꼽는 게 아니고, 정말 풀빵 아줌마나 인터넷의 초딩들이 보고서 '이거 진짜 괜찮다'고 평가하는 작업을 하고 싶은 거죠. 이제 제게는 상을 50개 받으나 60개 받으나 그건 의미없는 거예요. 과거에는 칼을 가는 데만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잘 벼려진) 이 칼을 어디다 쓸 것인지가 제 고민입니다."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광장을 42년 동안 지켜왔던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그 빈 자리에 이제석씨의 작품이 설치됐다. '이순신 탈의중'으로 불렸던 이 작품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광장을 42년 동안 지켜왔던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그 빈 자리에 이제석씨의 작품이 설치됐다. '이순신 탈의중'으로 불렸던 이 작품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이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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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평가할 때 '이건 내 생각보다 높게 평가됐다, 혹은 낮게 평가됐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까.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죠. 사람들에게는, 제가 작품을 만들면서 했던 고민이나 문제 해결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건 결국 마지막에 남는 한 장의 그림밖에 없거든요. 결과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엄청난 사회적 반향이나 영향력을 미친 작품도 있어요. 비교적 쉽게 만든 '굴뚝총' 같은 작품이 그런 경우예요. 대중들은 보기에 가장 멋진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보다 더 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작업한 게 광화문 광장에 설치됐던 '이순신 장군 탈의중' 작품입니다. 지금도 상당히 큰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광화문은 굉장히 예민한 장소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두들겨 맞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있는 곳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그렇게 '장난'을 친다는 건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정말 힘든 과정이었어요. 에피소드도 많았고, 스트레스도 많았어요. (작업하면서) 공무원들과도 정말 피 터지게 싸웠습니다. (작품이) 올라가기 이틀 전까지도 못 올라간다고 했으니까요.

제가 그때 수명이 5년은 줄어든 것 같은데…. 그렇게 힘들게 싸우면서 결국 그 작품을 올렸어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그 자리에는 앞으로 50년 후에도 그런 작품이 설치되기 어려울 겁니다. 그 작품을 보면서 시민들이 '서울시가 유머있게 소통을 하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수 있는 거고, 그 딱딱하고 경직된 장소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짓게 한다는 게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죠. 또한 제 작업을 통해서 다른 작가들이 또다른 새로운 시도를 생각해볼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 '이순신 탈의중' 작품을 재밌게 봤습니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더군요.
"그럼요. 그 동네는 그렇게 상상할 수 없는 장소예요. (그 작업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거고, 미술교과서에도 실릴 만하다고 생각해요. 역사적으로나 디자인사(史)적으로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매우 애착이 있지만, 보는 사람들은 트위터에 '재밌다', '센스있다'고 한 줄 남기는 게 끝이죠. 소모된 에너지와 시간과 열정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아주 훌륭한 프로젝트도 물거품이 될 때가 있습니다"

- 대개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수상 경력이 화려한 성공작들입니다. 실패라고 표현하긴 그렇지만, 빛을 보지 못한 수많은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성공작이 빛나는 거라고 봅니다. 좌절과 실패를 경험해봤을 텐데요.
"좌절과 실패도 많았죠. 방귀가 잦으면 똥이 된다는 말이 있어요. 계속 안타를 치다보면 홈런도 치는 건데, 사람들은 제가 홈런 치는 것만 보고 '홈런왕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아주 훌륭한 프로젝트도 물거품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정말 허탈하죠. 상당히 큰 아픔도 겪지만, 더 큰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광고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일을 하다 보면 갑을 관계 때문에 인격적 모독이나 멸시를 당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돈 준 사람이 장땡이라는 풍조가 있거든요. 그런 취급을 받을 때면 때려치고 싶죠. 그러나 좋은 작품을 만들면 대중들이 좋아해줍니다. 그런 대중들의 환호가 없었다면 때려쳐도 벌써 때려쳤죠."

- 작업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푸나요.
"일이 잘 됐을 때는 다 풀려요. 고생했지만 일이 잘 됐으니까요. 클라이언트랑 죽일 듯이 싸웠더라도 일이 잘 되면, 다시금 일이 들어옵니다. 그런 걸 믿고, 아니다 싶을 때는 죽어도 아니라고 고집을 부리는 거죠. 알랑방구 살랑살랑 끼면서 계약 따는 건, 장기적으로는 우리나 클라이언트를 모두 죽이는 일입니다. 저는 클라이언트에게 듣기 싫은 얘기를 많이 합니다.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까발리고 얘기를 하죠. 병을 확실히 진단하지 않으면 그 병에 대한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점과 약점을 낱낱이 까발립니다. 결과가 좋으면 서로 겪었던 스트레스가 산고의 고통이 되는 거죠."

- 신영복 선생의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에 보면 "변화의 키워드는 변방성이다. 변방과 마이너리티가 변화의 공간이다. 중심부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제석의 상상력도 변방에서 나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변방이라는 말이 정확한 것 같아요. 우리는 변방성이나 비주류성을 계속 갖고 갈 겁니다. 매출액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중심부 역할을 안 할 생각이에요. 위험한 시도를 계속하고, 끊임없이 혁신과 변화를 하지 않으면 우리도 정체될 뿐만 아니라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밖으로 알려지다 보니 과거보다 행동에 자유롭지 못한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언론에 알려지더라도 개인보다는 작품이나 작업, 정신이나 철학 등이 중요하게 다뤄졌으면 좋겠어요."

지난 1월 UN공보국 NGO 기관인 국제뇌교육협회(IBREA) 주최로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가한 이제석씨. 소셜 캠페인을 주제로 한 그의 발표에 청중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지난 1월 UN공보국 NGO 기관인 국제뇌교육협회(IBREA) 주최로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가한 이제석씨. 소셜 캠페인을 주제로 한 그의 발표에 청중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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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석광고연구소에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광고장이들이 네트워킹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연구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앞으로 10년 안에 주류 광고회사들이 다 이와같은 (소규모) 방식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제적으로 명성있고 실력있는 집단의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조직이 유동적이고 순발력을 가지려면 규모가 작아야 합니다. 국내에 있는 연구소 직원들은 주로 계획을 짜고 세팅하는 일을 합니다. 이 사람들이 허브 역할을 하고 여기에 선을 꽂는 게 제가 아는 프리랜서나 디자이너들입니다.

아무리 큰 광고회사라도 자체 조직만으로 모든 솔루션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단일 조직은 획일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연구소는 핵심 인물들을 다 풀밭에 풀어놓고 그 사람들이 투잡을 하든 쓰리잡을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이 있을 때마다 적절하게 인물을 배치해서 팀을 만듭니다. 애시당초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큰 조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 20년 후, 30년 후의 당신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지금하고 있는 일을 더 구체화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고요. 지금은 올챙이지만 용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투자하고 노력해야겠지요. 이제석광고연구소라는 게 아시아에서 슈퍼스타급 아이콘이 되고, 결국에는 뉴욕이나 유럽까지 아우르는 영향력을 미치는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인 바람은 UN과 일을 하는 겁니다.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거나,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게 UN의 역할이거든요.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 더 효과적으로 빛을 보기 위해서는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UN과 대중이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캠페인을 만들고 싶어요. 세계사에 남을 만한 유명한 캠페인이 알고 보니 메이드 인 코리아더라, 이런 얘기를 듣고 싶은 거죠. 저는 광고로 대한민국 문화가 크리에이티브하다는 찬사를 받기 위해서 노력할 겁니다. 현재 재능기부센터라는 작은 교육집단을 운영하면서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굴뚝총, #원쇼 페스티벌, #이순신 탈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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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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