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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오후 2시 강원지방경찰청 대강당에서 복무 6개월 미만의 전.의경들이 소원수리서를 쓰고 있다. 이날 도내에서는 구타.가혹행위로 집단 이탈한 전경들이 소속된 307 전경대를 비롯한 5개 상설중대원과 17개 경찰서 112 타격대원 150여명이 참석했다.
 27일 오후 2시 강원지방경찰청 대강당에서 복무 6개월 미만의 전.의경들이 소원수리서를 쓰고 있다. 이날 도내에서는 구타.가혹행위로 집단 이탈한 전경들이 소속된 307 전경대를 비롯한 5개 상설중대원과 17개 경찰서 112 타격대원 150여명이 참석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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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로부터 공통된 내용의 꿈 이야기를 듣곤 한다. 분명 만기 제대를 했음에도 다시 훈련병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군 생활을 시작한다는 꿈이다. 이런 꿈을 길조로 여기는 남자는 거의 없다. 스멀스멀 기어오는 소름에 진저리를 치며 기분 잡쳤다는 듯 침을 퉤퉤 뱉을 뿐이다. 보편적 경험에 기인하는 보편적 악몽.

유승준 사태를 돌아보자. 미국 국적을 선택함으로써 병역의 의무에서 자유로워진 그에게 가해진 예비역들의 분노는 가히 놀라운 것이었다. 건강한 남성 이미지를 내세워 유명세를 떨친 스타에서 병역 기피 연예인의 대명사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왜 예비역들은 유승준에게 분노했을까

이때 유승준에게 집중된 분노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나도 고생하고 얘도 고생하는데 저 새끼는 뭐야?"에서 출발한 적대적인 의문은 그가 "웨스트 코스트"의 "스티븐 유"로 탈바꿈되는 대목에서 거의 눈이 뒤집혔다. 우스운 일이다. 예비역들과 입대를 앞둔 남성들 모두 솔직해져야 한다. 밝히진 않지만 모두 군대를 "기피"하고 싶은 속내가 있으면서 타인의 "기피"는 인정하지 않는다. 기왕이면 다 같이 "기피"하자. 남에게 악몽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

대학교 수업 시간에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자신의 청소년기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강요된 야간자율학습과 숨이 턱턱 막히는 경쟁뿐인 학교, 학원 생활이 곧 청소년기의 대부분이었던 학생들이 이를 긍정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이 외려 이상한 노릇일 터.

내가 정말 놀랐던 것은, 이들이 청소년 담론에 대한 관심은 물론 문제의식도 크게 갖고 있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대입 수능에 함몰된 교육 과정을 거치며 누구보다 암울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대학생이란 훌륭한 보상을 받은 이들에게 청소년기란 생각하기 싫은 악몽일 따름이었다(악몽에서 깨고 싶다면 대학에 합격하라!).

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해당 문제를 악몽이라 여길 때 우리는 개입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군대는 그저 버려진 악몽 중 하나일 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삶의 일부를 이런 식으로 내버려야 하는가?

전경 무단 이탈, 의경 자살... 어찌 이런 일이

선임들의 반복되는 구타와 가혹 행위를 견디다 못해 근무지에서 이탈한 강원경찰청 소속의 307 전경대원들이 자진 복귀하자 바통 터치를 하듯 그 다음날인 25일 아침 9시에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한 인천중부경찰서 소속 방범순찰대 의경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참고로 307 전경대는 이미 2006년 알몸신고식과 같은 해 9월 부대원의 탈영 사건을 겪은 전력이 있으며 인천중부서 방순대는 악질적인 가혹 행위로 맹위를 떨치던 곳이었다.

뒤늦게 드러난 사뭇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는, 자살한 의경이 근무하던 인천중부서 방순대의 경찰들은 군기 확립을 위해 고참 의경들에게 가혹 행위를 주문했으며 심지어 경찰 직원 눈앞에서도 구타가 행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경찰이 의경들 사이의 폭력을 용인하고 "합법적 구타"의 권한을 넘겨준 꼴이다.

한국의 남성은 군대를 통해 최초의 폭력을 경험한다. 물론 폭력은 학교에나 가정에나 사람이 있는 사회 어디에나 무수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건만 군 생활을 겪으며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폭력은 종래의 것들과 명백히 다르다. 개인의 자유로운 이동과 언행을 제한하는 "일신의 구속"과 상관에의 항명을 불허하는 "계급 질서"를 양분 삼아 폭력은 제약 없이 생산된다.

앞서 인천중부서의 사례에서 확인했다시피 군대 내에서 일련의 폭력 행위들은 조직적으로 자행되며 군기와 기강 확립을 빌미로 당위성을 갖는다. 이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군대에서 개인이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은 개별적 특성 탓이 아니라 군대가 갖고 있는 계급성에 기인한다. 군대에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직위와 계급이란 관념적 주체만 남을 뿐이다. 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로서의 개인과 윤리적 책임은 함께 증발한다.

"남자라면 꼭 군대 가야지"...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동안 기동대 내무반의 가혹행위가 문제된 적은 있었지만 지휘관이 부하사병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기동대 내무반의 가혹행위가 문제된 적은 있었지만 지휘관이 부하사병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선임들의 반복되는 구타와 가혹 행위를 견디다 못해 근무지에서 이탈한 강원경찰청 소속의 307 전경대원들이 자진 복귀하자 바통 터치를 하듯 그 다음날인 25일 아침 9시에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한 인천중부경찰서 소속 방범순찰대 의경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자료사진)

지난해 2월 입대하여 인천중부서 방범순찰대에 전입한 심 의경의 군 생활은 녹록지 않았나 보다. 4월에 그는 다리가 부러졌으며(순찰대 관계자는 축구 경기 도중 생긴 골절이라 설명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그의 선임은 이 사실을 밖에 알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5월에는 급기야 화장실을 통해 무단으로 이탈하기까지 했다. 영외에서 검거된 그는 결국 적응장애를 이유로 7월 25일 휴직하였다. 해가 지나고 복직을 앞둔 1월 25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심 의경은 웨딩홀 주차장 인근의 나무에 목을 맸다. 그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관련 기사들을 읽던 나는 지난 12월에 심 의경이 후배와 함께 식사를 하며 선임들에게 받은 구타와 가혹 행위에 대해 토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나는 이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심 의경이 스무 살이니 그 후배는 더 어릴 터였다. 고등학생일지도 모른다. 여하간 막 고교를 졸업했거나 대학에 들어왔을 두 소년은 번화가의 식당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했겠지. 그 어색한 분위기와 암담한 이야기들.  

일전에 전라남도 고흥을 간 적이 있는데, 터미널 근처에 있던 기사 식당에서 밥을 먹다 아주머니와 잠깐 군대에 대한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난다. 그때 아주머니는 단호하게 "남자라면 군대는 꼭 다녀와야지"라고 말했다. 심 의경의 소식을 접하며 나는 우리 사회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그런 단호함을 떠올렸다.

식당 아주머니에게도 아이가 있다면, 자신의 아이가 군대에서 욕설을 이름처럼 듣고 구타를 밥 먹듯이 당하고, 그런 끝에 자살을 결심한다면, 그럼에도 아주머니는 군대를 "꼭 다녀와야" 하는 곳이라 생각할까? 대체 군대가 어떤 곳이기에, 어떤 소중한 가치와 의미가 있기에 스무 살 청년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 "남자라면 군대는 꼭 다녀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먼저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그 알량하기 그지없는 "신성한 의무"로 인해 한 청년의 삶이 앞으로 경험할 수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포기한 채 영원히 이탈되었다.

더이상 죽기 싫다... 입대 거부 파업을 벌이자

군대를 욕하기란 쉬운 일이다. 저주를 퍼붓고 담배를 피우며 혼자 달래던 울분은 이제 실천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군대라면 으레 있는 일, 남자들이라면 노상 있는 일이라는 안일한 인식이 결국 심 의경을 "살해"했다.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군대의 구타, 가혹 행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탄이 절실하다.

"국민이 고분고분하면 국가가 버르장머리가 없어진다." 군대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68혁명 당시 고등학생들이 앞장서 대학 평준화를 요구한 것처럼 군대를 향한 우리의 투쟁 역시 입대를 앞둔 남성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구타와 가혹 행위로 인한 사고, 자살이 군대에서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입대를 거부하는 "파업"을 벌이면 어떨까? 이번 기회에 아예 군대 없어져도 좋겠다. 그럼 전쟁할 일도 없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일찍 삶을 포기한 심 의경을 위해, 슬픔과 비참함으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중구난방 정치·문화 비평지 시도와 가능성>에 실린 글입니다.
시도와 가능성 웹진 : http://si-ga.tistory.com/
시도와 가능성 트위터 : @siga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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