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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해고 노동자 박종태씨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중앙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푯말에는 I was fired(나는 해고당했다)라는 영어 문구가 적혀있다.
▲ 나는 해고당했습니다 삼성전자 해고 노동자 박종태씨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중앙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푯말에는 I was fired(나는 해고당했다)라는 영어 문구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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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오전 11시 30분. 경기도 수원시 매탄동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앞 횡단보도는 점심시간에 맞춰 인근 식당으로 향하는 삼성전자 직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밝은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 신호를 기다리는 이들 틈에서 '초일류기업 삼성전자 부끄럽다'는 피켓을 든 한 남성이 보였다. 삼성전자 해고 노동자 박종태씨다.

"힘들어도 내 일이니 내가 해야죠.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도 가져주고, 변화도 생기는 게 아니겠어요? 탕정사업장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추운 날씨에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씨가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가 사측의 부당해고에 반발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정문에서 1인 시위를 벌인 지도 어느새 66일째에 접어들었다.

박씨는 지난해 11월3일 삼성전자 사내 온라인 소통채널인 '삼성전자라이브(Live)'에 민주노동조합 설립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가 사측으로부터 '업무지시 불이행, 허위사실 유포, 보안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같은 달 26일 해고됐다.

앞서 박씨는 지난 2007년부터 사내 노사협의체인 '한가족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여직원들의 유산 등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발생한 문제들을 거론해 징계를 받았고, 사측이 강요한 러시아 출장을 건강상의 이유로 거부해 직무대기(일명 '왕따 근무')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나서지 못할 뿐이지 직원들도 노조에 관심 많다"

점심시간인 정오를 넘어서면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중앙문 근처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박씨에 따르면 1인 시위를 진행하는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30분 무렵까지 약 2시간 가량 적게는 1000명에서 많게는 2000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이곳을 오간다고 한다.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기자님이 오셔서 그런지 오늘은 사람들이 꽤 많이 오네요"라고 농담을 건넨 그는 "아무래도 오가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힘이 난다"고 말했다.

'직원들 반응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반응은 괜찮은 편"이라며 "10명 중 8명은 관심을 가지고 종종 말도 걸어온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수원사업장에서는 제법 이슈가 된 모양인지 최근 3~4일 동안은 특별히 말을 걸어오는 분들이 없었다"며 "앞으로 1인 시위 장소를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으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업장에서 나오는 직원들은 박씨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멀찌감치 서서 그가 들고 있는 피켓 내용을 유심히 읽어보는 직원들도 있었고, 부담을 느끼는지 박씨 뒤편에서 그가 세워놓은 피켓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이날 부근을 지나던 한 삼성전자 '한가족협의회' 간사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커피주려고 했는데 안 가져왔다"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박씨는 "직원들도 나서지 못할 뿐이지 내 문제나 노조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며 "삼성전자의 노동환경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고를 통보받은 직후에 많은 직원들에게 격려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한편,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들도 박씨의 1인 시위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박씨는 최근 'I was fired(나는 해고당했다)'라는 영어문구를 피켓에 추가했다.

박씨는 "내가 조금 일찍 해고당했을 뿐이지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내용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해고 노동자 박종태씨가 1인 시위에 사용한 피켓 문구.
▲ 부끄러운 초일류기업 삼성전자 해고 노동자 박종태씨가 1인 시위에 사용한 피켓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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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가족들에게 미안해요"

"많은 분들이 1인 시위 현장을 찾아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힘이 많이 되죠.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가족들에게는 미안해요. 나는 어떻게든지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살림하는 사람은 다르잖아요."

1인 시위 현장을 정리하고 찾아간 박씨의 집 한편에는 해고 이후 그의 부인이 생계를 위해 만들어 판다는 아크릴 수세미가 한가득 놓여 있었다. 부인 최희숙(가명)씨는 아침부터 틈나는 대로 수세미를 만든다. 수세미 하나의 판매가격은 2000원. 하루 평균 12개 가량을 만들어 한 달 5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박씨는 "부인이 하는 부업으로 딸내미 피아노 학원도 계속 보내고 생활비도 보탠다"며 "경제적으로 부족하니까 그게 가장 힘들다"고 해고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박씨와 그의 부인은 해고 이후 우울증, 불안증, 위염, 불면증, 목 디스크 등의 신경성 질환을 앓고 있으며, 그로 인한 병원비와 소송비로만 한 달에 250만 원 가량을 쓰고 있다. 삼성일반노조에서 월 100만 원을 지원해 주고 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박씨는 최근 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해고무효확인소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결혼반지를 팔고, 4년간 부은 230만 원 상당의 주택부금을 해약했다.

"아직 어리니까 크게 이해는 못하는데, 아무래도 눈치를 많이 보죠. 예전에는 애들이 집에 친구들을 많이 데려왔는데, 내가 집에 있으니까 이제 친구들을 못 데려와요. (집안 처지가) 아이들에게는 내세울 만하지 않으니까요. 가정적으로 장점은 별로 없고 단점만 있는 것 같아요."

부인 최씨는 "사춘기인 큰 딸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는 딸이 입학 후 부모직업을 '무직'으로 적어내야 할까 봐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씨는 "요즘 애들 사이에 누구네 아빠는 직업이 뭐더라, 차종이 뭐더라, 아파트 평수가 얼마더라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다"며 "큰애가 한창 사춘기인 중학교 3학년인데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친인척들이 해고 사실을 알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씨는 "다 알지만 어머니는 모르신다"고 말했다. 그는 "막내아들이 삼성전자에 다닌다고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셨다"며 "올해로 일흔 아홉 되셨는데 말씀드렸다가 쓰러지기라도 하시면 어쩌냐"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형제들도 '삼성은 이길 수 없다'고 난리"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소송'이나 현재 벌이고 있는 1인 시위가 결국 '바위에 계란치기'라는 반응이다.

박씨의 해고이후 부인 최씨가 생계유지를 위해 만들어 팔고있는 아크릴 수세미. 최씨는 하루 종일 수세미를 만들어 팔아 한 달 50만원 가량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 아크릴 수세미 박씨의 해고이후 부인 최씨가 생계유지를 위해 만들어 팔고있는 아크릴 수세미. 최씨는 하루 종일 수세미를 만들어 팔아 한 달 50만원 가량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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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두렵지 않다"

박씨에게 '삼성전자라는 거대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게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말로 운을 뗐다.

"나는 재직 당시 한가족협의회 위원으로 사원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해고가 부당했기 때문에 정당하게 나서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

박씨는 지난 3일과 11일에 충남 아산시 삼성전자 탕정사업장 직원기숙사에서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우울증 등으로 스스로 투신해 목숨을 끊은 고 김주현씨 등 2명에 관련된 이야기도 꺼냈다.

"그래도 나야 살아갈 길은 있지 않냐? 탕정사업장에서 돌아가신 분들은 유서도 없고 사측의 부당한 처우를 입증할 만한 자료도 없다. 1인 시위를 하면서 내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분들의 요구도 함께 전하겠다."

오는 7월1일 시행되는 복수노조법과 관련해서 박씨는 "한 사업장 내 다수 노동조합 설립이 가능해지면 삼성 내에도 지금의 한가족협의회를 대체할 노조가 생길 것"이라며 "우리 사원들이 진심을 가지고 노조를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래야만 사원들도 인간답게 일하고 하청업체만도 못한 지금의 회사도 진정한 초일류기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해고 노동자 박종태씨가 27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국회 앞 1인 시위 삼성전자 해고 노동자 박종태씨가 27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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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1인시위 국회 앞으로 이어지다

한편, 박씨는 전날 예고한 대로 27일 오전 11시 30분 장소를 옮겨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이어갔다.

하루 만에 다시 만난 기자에게 박씨는 "여의도에 나오니 수원보다 공기가 더 좋은 것 같다"며 "주차요금 정산하는 분께 해고자도 주차비 내야 하느냐 물었더니 당황하시더라"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전까지 국회에는 한 번도 와보지 못했다는 박씨는 "국회 앞에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다"면서도 "회사(수원사업장) 앞에서 시위를 하면 동료들에게 행여나 피해가 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이곳에 있으니 마음만은 한결 편안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앞으로 매주 목요일 국회와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에서 번갈아가며 1인 시위를 할 예정"이라며 "국회의원이나 삼성전자 간부들이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겠지만 삼성이란 기업의 부당함을 곳곳에 알리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김재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박종태, #삼성전자, #부당해고, #박종태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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