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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시교육청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Children First Always."(언제나 학생이 최우선)이라는 모토가 보이고, 학생권리헌장(Student Bill of rights)를 영어뿐 아니라 각 나라말로 번역하여 올려놓았다. 한국어판도 있다.
 미국 뉴욕시교육청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Children First Always."(언제나 학생이 최우선)이라는 모토가 보이고, 학생권리헌장(Student Bill of rights)를 영어뿐 아니라 각 나라말로 번역하여 올려놓았다. 한국어판도 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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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 역사상 최초로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학생의 체벌 금지와 두발 자율화 등을 담은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었고, 2010년 주민직선으로 뽑힌 6명의 진보 성향 교육감이 모두 비슷한 내용의 조례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곽노현 서울교육감은 올해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앞서 전격적으로 체벌 금지를 선언하였고, 이에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보수적 교원단체들은 교육을 망치는 좌파 교육감의 좌파 교육정책이라고 비난하면서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체벌 금지와 학생 표현의 자유 등 학생인권에 담고자 하는 내용들은 이미 스웨덴, 핀란드, 독일 등과 같은 인권 선진국에서는 상식으로 통하고 있는 것들이다.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삼고 있는 미국에서도 우리의 학생인권조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강력한 학생권리헌장 또는 법률 형태로 학생인권을 보장하고 있었다.

학생권리헌장으로 교내 집회도 허용하는 뉴욕

뉴욕시의 학생권리헌장 원본 일부. 이 헌장을 통하여 체벌받지 않을 권리는 물론이고 교내시위, 정치적 유인물 배포의 권리와 뱃지, 버튼, 완장 등도 자유롭게 착용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뉴욕시의 학생권리헌장 원본 일부. 이 헌장을 통하여 체벌받지 않을 권리는 물론이고 교내시위, 정치적 유인물 배포의 권리와 뱃지, 버튼, 완장 등도 자유롭게 착용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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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 교육청 홈페이지에는 유치원생부터 고3 학생까지의 학생들(K-12 grade)에게 적용되는 '학생의 권리와 책무성에 대한 헌장'(이하 '학생권리헌장', Bill of Student rights and responsibilities)라는 것이 탑재되어 있다.

이것은 곽노현 서울교육감 등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하는 학생인권조례와 비슷한 형식과 목적을 갖고 있는데 모든 학생들은 학기 초 학교로부터 이를 서면(written copy)으로 받을 권리가 있다. 이 학생권리헌장은 우리의 학생인권조례보다 훨씬 많은 학생의 권리를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 stock.xch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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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생권리헌장은 전문과 무상교육을 받을 권리,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적절한 절차에 관한 권리, 학생의 책무성의 4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Preamble, I. The Right to a free public school education, II. The Right to Freedom of Expression and Person, III. The Right to Due Process, IV. Student Responsibilities).

이 권리헌장에는 학생들이 학교의 허락 여부와 상관없이 교내에서 여러 이슈에 대해서 자유롭게 유인물을 나누어주고 신문이나 소식지 등을 만들 권리도 규정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은 종교, 철학 관련 모임뿐 아니라 정치적 모임도 조직하고 참여할 수 있으며, 정치적 주장을 담은 배지나 버튼, 완장, 휘장을 하는 것까지 허용되며, (평화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교내에서 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하고 있다. 체벌(corporal punishment)을 받지 않을 권리뿐 아니라 또한 신체 수색을 비롯하여 부당하고 무차별적인 수색(검색)을 받지 않을 권리도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내용들을 학생들의 당연한 권리로, 그것도 학생인권헌장이라는 형식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수단체와 일부 교장들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추진하던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되어 있던 교내의 평화적 시위 허용에 대해서 '좌파 교육이 어쩌고'하며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들려는 시도'라고 난리를 피우던 것을 부끄럽게 만드는 장면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미국 뉴욕은 좌파 교육의 아성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학교는 난장판, 학생들은 좌파 혁명가?

캘리포니아주 교육법에 의한 학생의 권리 안내. 주교육법에 별도 조문으로 유인물배포, 게시판 사용, 교내집회, 버튼, 뱃지 착용 등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교육법에 의한 학생의 권리 안내. 주교육법에 별도 조문으로 유인물배포, 게시판 사용, 교내집회, 버튼, 뱃지 착용 등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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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또 다른 대표적인 주인 캘리포니아는 아예 주교육법(California Education Code)으로 체벌을 금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교육법 제48907조와 제48950조는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선정적이거나 명예훼손 내용이 아니고 수업 등 학교운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내용이나 형식의 제약없이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학교의 지원 여부와 상관없이 유인물을 나누어주거나 공식적인 학교 신문과 교지뿐 아니라 비공식적인 매체로까지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또 뉴욕의 학생인권헌장과 마찬가지로 이 법률에 의해 학교 게시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학교 내에서 평화로운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으며, 버튼이나 배지, 완장 등을 통해서 정치적 의사도 표현할 수 있다. 교내 집회는커녕 학교의 허락 없이는 유인물 배부는 꿈도 못 꾸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내용들이 아예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들은 김상곤 교육감과 곽노현 교육감이 추진하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학생을 좌파 혁명가로 키우기 위한 것이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무상급식과 체벌 금지, 학생인권조례 등을 이유로 곽노현 서울교육감을 소환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뉴욕시는 학생권리헌장으로, 캘리포니아주는 법률로 체벌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교내 시위를 허용하고 나아가 정치적 내용의 유인물 배포, 배지, 버튼 착용 등도 학생의 권리로 보장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들의 주장대로라면 미국의 학교는 이미 난장판이 되고, 학생은 모두 좌파 혁명가가 되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맹목적 비난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제 우리도 학생인권조례나 체벌 금지에 대한 근거 없는 마타도어를 멈추고 학생을 최소한의 인간으로 대우할 때가 되었다. 아니면 보수세력은 미 대사관 앞에 가서 좌파 국가 물러가라고 시위라도 해야 할 판이다.


태그:#학생권리헌장, #학생인권조례, #주교육법, #체벌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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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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