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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나 지금은 오토바이가 지급돼 한결 나아졌다고.
 예전에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나 지금은 오토바이가 지급돼 한결 나아졌다고.
ⓒ 윤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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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이 발달하면서 빨간 우체통이 많이 사라지고 편지봉투를 뜯으며 느꼈던 설렘도 맛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우체부 아저씨 고맙습니다'라고 봉투에 적어 넣는 경우도 보기 힘들다. 그래도 변함 없이 은평 곳곳을 누비는 사람들이 있다.

"신사동 사는 아무개라고 합니다."
"아, 00아파트 몇호 사시죠?"

오표열(52)씨는 집배원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다. 지금 맡은 구역은 신사동. 6년간 이 지역을 돌다 보니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이 어느 아파트 몇호에 살며 신문 잡지는 뭘 보는지까지 훤히 꿰고 있다. 동네 주소를 달달 외우는 것만도 신기한 일인데 이정도 되면 가히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게 아닐까 싶다.

오씨는 30대 초반에 우체국 공무원이 되었다. 보통은 20대 초반에 시작하지만 많이 늦은 출발이다. 전에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새 일을 찾던 중 공채 공고가 눈에 띈 것을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그 뒤로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때 이미 아이 셋을 둔 상태였는데, 그 아이들이 자라 대학에 다니고 있으니 많이 흐르기도 했다.

점심 거르며 우편 배달...명절에는 살인적 물량

우편물이 보내는 사람 손을 떠나 받는 사람 손에 들어가기까지 집배원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과정은 없다. 우체통에 넣은 편지, 우체국에 가서 접수한 등기와 소포는 모두 수거해 우편물류과로 보낸다. 거기서 각 동별로 집배원들이 우편물을 분류한다. 하루 배달 일이 끝나면 다음 날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하는데, 모두 수작업이다. 우편번호는 집배원 손에 들어가기까지만 유효할 뿐, 나머지는 일일이 주소와 이름을 확인하고 나누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배달하는 물량이 많게는 하루 3500통에서 적게는 1500통이다. 평균 2천 통이라고 보면 되겠다. 여기에 등기와 소포, 소형 택배 따위 특수우편물이 150여개 더해진다.

"저는 7시 못돼서 나오는데, 퇴근시간은 전체 평균 9시에서 10시 정도로 보면 됩니다. 주 40시간 얘기하는데 우린 해당이 안 돼요. 특수직이죠. 체력도 약해지고 건강 문제에 취약해요."  

격무에 시달리지만 아프다고 해서 쉴 수도 없다. 결원이 생기거나 누군가 사정이 있어 못 나오게 되면 동료들이 빈 자리를 메운다. 그래서 한달에 두 번은 토요일에도 일을 한다. 최근에는 연말연시라 카드사와 보험사의 소득공제 서류가 넘치는 상황이다.

명절이 되면 택배가 넘친다. 은평우체국에만 하루에 1만 개 넘는 택배가 들어온다. 연말에서 설까지는 특히 바쁘다. 워낙에 많다 보니 차로 실어다가 아파트 공터에 부려놓고 분류하기도 한단다. 명절 선물은 먹을거리가 많다 보니 무겁다. 20~30kg 나가는 상자를 하루 종일 온 동네에 배달한다는 건 상상이 잘 되지 않는 일이다.

"그나마 지금은 오토바이라 나아요. 초창기에는 자전거 타고 가방 메고 다니느라 힘들었어요."

'내 시간에 맞춰 달라'는 주민... 힘들어요

분류 대기 중인 우편물. 연말에는 소득공제용 서류들이 봇물을 이룬다.
 분류 대기 중인 우편물. 연말에는 소득공제용 서류들이 봇물을 이룬다.
ⓒ 윤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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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이 많은 건 그래도 감내할 수 있지만 정말 힘든 건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고.

은평구가 내놓은 2010년 통계자료를 보면 은평의 인구 수는 47만여 명이고, 가구당 평균 가족 수는 2.5명이며, 가구 수는 총 18만 5679가구다. 은평우체국 근무 인원이 100명쯤이라고 하니 한 사람당 1800여 가구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주민들이 대하는 건 단 한 사람, 자기 집 문을 두드리는 집배원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사정에 맞춰 배달을 해 달라는 요구도 종종 있다. 등기나 소형택배를 받을 수 있는 시간에 맞춰 달라 하지만 한 사람의 요구에 맞추려면 다른 배달에 차질이 생긴다. 사설 택배와는 달리 집배원은 등기나 소포, 택배물을 받아야 할 사람이 제대로 받았는지 꼭 서명을 받아야 한다. 다른 택배는 집앞에 놓고 가라 하면 놓고 가는데 우체국에서는 왜 안 해주느냐는 불만도 나온다.

"저희는 공무원이니까 서명을 받고 근거를 남겨야 합니다. 간혹 분실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택배 분실은 협의를 할 수 있지만 등기 분실은 협의가 안 됩니다."

인력이 부족한 것도 어려운 점이다. 특히 은평 곳곳에서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가구수가 급증해 어려움이 더해진다. 단독주택 한 가구를 헐어내면 그 자리에는 몇 층짜리 다가구 주택이 들어서거나 고층 아파트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한 가구였던 것이 수십 가구로 늘어나는 것이다. 일은 늘어나는데 인력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또, 등기나 택배를 경비실에 맡겨 달라는 요구를 해도 난감하다. 전에는 아파트 동마다 있던 경비실이 줄어들어 이제는 정문과 후문 정도에만 있기 때문에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경비원도 고유 업무가 있고, 경비실에서 맡았다가 분실이라도 하면 책임 소재를 놓고 말이 나게 마련이다.

그날 배달해야 할 우편물을 다 소화해내려면 점심을 거를 때도 많다고. 사람을 대하는 일이 대부분 그렇듯 집배원 일도 감정노동을 포함하고 있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주민이 문을 열면 웃는 얼굴로 우편물을 전달해야 한다. 오씨는 그래도 너무 지치면 표정 관리가 잘 안 될 때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면 힘들기도 하지만 이웃간에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한 건물에 배달을 하러 올라갔다 내려왔더니 오토바이에 김이 들어 있었다. 얘기를 하는 오씨의 입이 귀에 걸릴 듯하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누군가의 표현이 가슴 뿌듯하고 고맙다. 방학이나 수업이 비는 때면 아버지 일을 돕는 딸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딸들은 동네에서 성실하다고 칭찬을 받고, 졸업하면 자기 회사에 추천하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어려운 이웃 돌보미 역할도

우편물 분류는 집배원들의 큰 일거리이다.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들을 주소별로 분류하고 있는 집배원들.
 우편물 분류는 집배원들의 큰 일거리이다.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들을 주소별로 분류하고 있는 집배원들.
ⓒ 윤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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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살피다 보니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훤하다. 홀로 기거하는 노인들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친분도 쌓게 된다. 오 씨는 그런 노인들을 항상 관심 있게 지켜본다. 응암동을 담당하던 시절에는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내복을 사다 드리기도 했는데, 신사동으로 구역이 바뀌고 나서는 한동안 찾아가지 못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찾아갔더니 이사를 가고 없었다. 할머니 소식이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신사동에서도 따뜻한 관심은 이어진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아 지하방 문을 두드려 보니 앓아 누워 계셨다. 기운 내시라고 쌍화탕을 한 상자 사드리고 왔다 한다.

오씨는 다른 집배원들도 많이 하고 있는 일이라 전한다. 최근에는 이렇게 개인이 하던 선행을 우체국 차원에서 했다. 집배원들이 각자 담당하는 구역에서 독거노인을 살피고 선정해 은평우체국 전체가 힘을 모아 내의를 사 드렸단다. 집집마다 다니며 소식을 전하는 집배원이란 직업이기에 이웃들의 삶이 더 잘 보인다고.

도로명 주소 어려우시죠?

2012년부터 주소가 '번지수'에서 '도로명'으로 바뀐다. 현재는 두 가지를 같이 쓰고 있다. 바뀌는 주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주민들뿐만 아니다. 도로명 주소로 적은 우편물에는 분류작업을 하면서 일일이 기존 번지를 써넣는다. 집배원들도 아직 도로명 주소를 다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편물 반송을 줄이려면 도로명 주소 옆에 기존 번지도 같이 적는 게 좋다고 귀띔한다. 그러면 우편물 배달이 정확할 뿐 아니라, 집배원들의 일손도 덜어주어 일석이조다.

또 의외로 잘못된 주소가 많아서 배달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우편번호만 맞으면 제대로 도착할 거라는 생각은 금물. 앞서 말했듯이 우편번호는 집배원 손에 들어갈 때까지만 유효하고, 나머지는 주소다. 번지만 쓰고 층과 호수를 빠트리지는 않았는지, 잘못 쓴 주소는 없는지, 재개발로 사라진 동네에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볼 일이다.

"추워서 마스크도 하고 그러는데, 벨 누를 때는 되도록 벗습니다. 그런데 신분 밝혀도 벨 누르면 경계하는 경우가 많아요. 따뜻하게 맞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도 최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어릴 적 배웠던 노래가 떠오른다.

♬아저씨 아저씨 우체부 아저씨 큰 가방 메고서 어디 가셔요. 큰 가방 속에는 편지 편지 들었죠. 동그란 모자가 아주 멋져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우체국,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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