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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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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는 바다가 맑고 아름답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주문진 바다가 그렇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소설가 이순원씨는 주문진 바다를 보고 "한국의 나폴리"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진짜, 라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겨울 바다는 여름 바다와 달리 가까이 다가가 발을 담글 수 없기에  더 신비로운 느낌을 안겨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1월 8일, 강릉의 사천진리 해변공원부터 주문진 해수욕장까지 걸었다. 이 길, 바우길 12구간 '주문진 가는 길'이다. 이 길은 사천진리 해변을 시작으로 내내 바다를 따라 혹은 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길로, 주문진 항을 거쳐 주문진 해수욕장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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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날씨는 참으로 포근했다. 강릉 기온은 서울 기온보다 최소한 5도 정도는 따뜻한 것 같다. 강릉 기온 영하 2도. 서울에서 강릉에 도착한 것은 전날인 1월 6일 오전. 이날 밤, 대굴령 자동차마을에 있는 '바우길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낮에는 포근하던 날씨가 밤이 되자 뚝 떨어졌다. 산 아래 마을이라서 서늘한 기운이 더 빨리 퍼지나 보다.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소박한 아침식사를 하고, 소설가 이순원씨와 이기호 국장과 함께 사천진리 해변공원으로 이동한 시간은 오전 9시. 추운 날씨는 아니었으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으스스한 한기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걸으면 추울 지도 모르겠다, 는 염려를 했으나 걷는 내내 바람은 그다지 많이 불지 않았다. 이날, 바우길 카페 회원들과 함께 걸었다.

앞뒤 보지 않고 내처 걷기만 한다면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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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10분 출발. 바우길 12구간 '주문진 가는 길'은 전체 길이가 12km로 천천히 걸으면 4시간이 채 안 걸린다. 이 구간의 길이가 너무 짧은 것이 아니냐고 이기호 국장에게 물었더니, 주문진 항이 볼거리가 아주 많아서 그곳에 들러 시장이며, 등대를 둘러보라고 그리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아하, 그렇다. 길을 걷는다고 앞뒤 전혀 바라보지 않고 내처 걷기만 한다면 정말 재미없다. 한 구간을 얼마나 빨리 걸었느냐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자신만의 보폭으로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걷는 맛을 만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걷는 길 대부분이 눈에 덮여 있더니, 바닷가 모래밭도 눈이 덮여 있었다. 일부는 파도에 휩쓸려 녹았는지 눈은 일부만 남아 있고, 그 위에 무늬처럼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해변에 바닷새들이 무리지어 서 있다. 겨울이 아니라면 맨발로 모래밭을 걷겠건만, 겨울이라 그러지 못하고, 맨발로 모래밭을 산책하듯이 걷는 새들만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니들은 좋겠다, 발 시리지 않아서. 

 낭독을 하는 이순원씨.
 낭독을 하는 이순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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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이따금 바다를 멀리 하고 싶다는 듯이 바다에서 멀어지다가 다시 바다 가까이로 이어진다. 한 시간 남짓 걸어서 '아미고 카페'에 도착했다.

이 카페, 쥔장이 바우길 카페 회원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정기 걷기모임에 참석하느라 문을 열지 않는단다. 이날 쥔장이 특별히 바우길 걷기에 나선 회원들에게 허브차를 대접했다.

쥔장 사과꽃님은 바우길을 걷다가 언제든지 들르면 허브차를 대접하겠단다. 물론 공짜로. '주문진 가는 길'을 걷는다면 굳이 '아미코 카페'에 들러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추운 겨울이라면 매서운 바닷바람에 언 몸을 녹이러 이 카페 들르는 것도 좋겠다. 푸근하고 넉넉한 표정의 카페 쥔장이 반갑게 맞이해줄 테니까.

이날, 이곳에서 소설가 이순원씨의 즉석 글 낭독회가 열렸다. 이순원씨는 지금까지 산문집을 한 권도 출간하지 않았는데 바우길 덕분에 조만간 산문집을 출간한 예정이라고 한다. 바우길을 만들면서 그가 겪거나 느꼈던 다양한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날 이순원씨는 그 책의 서문에 들어갈 내용의 일부를 함께 걸은 사람들을 위해 낭독했다.

눈 덮인 소나무 숲길을 지나 길은 다시 바다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곳이 '카페 보헤미안'. 이 곳 엄청나게 유명한 커피 명인이 운영하는 곳이란다. 돌아오는 길에 들러 커피를 마실까, 했지만 결국 들르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나는 그냥 돌아왔지만 이 길을 걷는 분들은 꼭 들러서 쥔장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맛보시라. 한 번 맛 본 사람들은 그 맛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주문진 가는 길은 여유 부리며 유유자적 걸어야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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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바람에 말리고 있는 도루묵. 올래는 양미리가 덜 잡히고 도루묵이 많이 잡힌다는 얘기를 들었다.
 바닷바람에 말리고 있는 도루묵. 올래는 양미리가 덜 잡히고 도루묵이 많이 잡힌다는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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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 항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토요일이라서 그럴까? 찾아온 사람들도 많았지만, 어구를 정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활기가 가득 찬 주문진항은 싱싱하게 살아 펄떡이는 생선 같았다. 사람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고 있었고, 하다못해 바닷바람에 꾸득꾸득 말라가는 생선마저도 생기가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걷는 내게도 그 생기가 전염되어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일행 중 일부는 장치찜을 먹으러 가고, 일부는 주문진항에서 가장 맛있다는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아무래도 이순원씨가 낭독한 글이 보이지 않게 작용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데 '짜장면'을 먹겠다고 가서는 대부분 해물짬뽕을 주문한 이유는 대체 뭐지?

이 집, 해물짬뽕은 국물이 칼칼하면서 시원하고 개운했다. '쟁반짜장'은 맛이 좀 달달했고. 주문진 항에서 이름난 곳이라니 한번쯤 들러서 마음이 '부자'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식사를 할 때, 주문진에서 유명한 막걸리를 곁들였다. 맛,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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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치. 심퉁이라고도 불린다.
 도치. 심퉁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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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의 상인들은 상품을 깨끗하게 다듬어서 팔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다못해 대파를 팔 때도 뿌리에 달린 흙을 깔끔하게 털어낸다고 하던가. 이순원씨의 귀띔이었다.

그래서 수산시장을 둘러볼 때 눈여겨보았더니, 맞는 것 같다. 정갈하게 다듬거나 손질한 생선이며, 먹거리들이 눈길을 끈다. 걷는 길이 아니라면, 주문진 시장에서 장을 보면 참 좋겠다, 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주문진 등대
 주문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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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 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문진 등대가 있다. 몸통 전체가 하얀 색으로 칠해져 정갈해 보이는 이 등대는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것으로 유명하다. 1918년 3월 20일이라니 참으로 오래되었다. 그래도 겉보기에는 그리 낡아보이지는 않는다. 등대 주변에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등대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다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섬 하나 없이 툭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라 끝없는 수평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 오래 쉬면서 바다 구경을 하는 맛도 각별하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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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돌해변에서 바닷물이 철썩이는 곳에 위태로운 모습으로 누운 아들바위를 구경하고,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걸어 주문진 해수욕장까지 갔다.

오후 3시. 사천진리 바다에서 주문진 바다까지 여섯 시간이 걸렸다. 이 길, 주문진 가는 길은 이렇게 여유를 부리면서 유유자적 걸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을 걸어보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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